소설리스트

절대타경-163화 (163/712)

163화. 결점이 없는 허칠안

장개태는 아무 말 없이 앞장서서 바깥 대청으로 뛰어갔다. 허칠안도 장 금라와 함께 돌진하고 싶었지만, 그보다 빠르지 못했다.

그가 아주 빠른 속도로 바깥 대청에 이르렀을 때였다. 장개태가 손가락 대신 검으로 마지막 종이 인형을 두 동강 내 버렸다.

그리고 이때 바닥에는 종잇조각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얼추 봐도 종이 인형이 10개는 돼 보였다. 이외에도 바닥에는 소년 두 명이 누워 있었는데, 그들은 목구멍이 예리한 칼날에 찔려 선혈이 도처에 튀었고, 이미 숨이 끊어져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허칠안은 크게 놀랐다.

“이 두 사람 몸에서 갑자기 종이 인형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사람들을 죽여 멸구하려 했으나 나와 일행이 저지했지요.”

은라가 범인을 감시하다가 장개태에게 대답했다.

“범인은 어떻게 됐는가?”

장개태는 물어보면서, 여러 동라에게 포위당한 비단옷의 중년이 몸을 쪼그리고 있는 구석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는 머리를 감싸고 담 모퉁이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그런데 얼굴은 담벼락을 향하고 있어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

“야, 별일 없어.”

가장자리에 있는 동라가 그를 걷어차자 중년이 바닥에 축 늘어져 쓰러졌다.

모든 이들의 표정이 변했다. 감시를 책임졌던 은라가 성큼성큼 달려가 호흡과 목덜미를 살핀 후 낯빛이 파랗게 질렸다. 그러고는 황급히 읍을 올렸다.

“소직 호위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으니, 대인께서는 저를 처벌하여 주십시오.”

장개태는 한순간에 침울해졌고, 이마에 핏대가 섰다. 그는 몇 초 동안 침묵하다가 천천히 호흡을 내쉬며 말했다.

“너를 탓하지 않는다.”

그는 시체 곁으로 걸어가 중년의 멱살을 잡고 가볍게 흔들었다. 이내 ‘짝’ 하는 소리와 함께 옷이 조각조각 부서졌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중년의 몸이 모든 이들의 눈앞에 드러났다. 그의 가슴에는 선홍색 낙인이 있었다.

“이건 주술사의 주살술(咒殺術)이네. 사람의 머리카락, 피, 손톱 등을 취하고 사주팔자를 더하면 무형(無形)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지.”

장개태가 고개를 저었다.

이는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무사처럼 폭력에 익숙한 체계라면 더욱이 그러했다.

“그럼 종이 인형은요?”

허칠안이 물었다.

장개태가 시체 옆에 쭈그리고 앉아 한참을 중얼거렸다.

“이 종이 인형들을 보니 한 가지 일이 떠오르는군. 무신교의 수법은 기이하여 헤아릴 수가 없어. 주살술이 있고 꿈에서 사람을 죽이기도 하며 망령과 시체를 조종하는 능력도 있네. 이 종이 인형에 망령이 달라붙어 시술자(施術者)를 위해 일을 처리하게끔 내몰린 것이네.”

허칠안은 아주 똑똑한 사람이라, 장개태의 말뜻을 순간적으로 알아차리곤 아주 놀라 말했다.

“뒷마당의 그 우물이…… 무신교의 주술사가 귀신을 기르는 전용 우물이네요.”

이로써 왜 완벽하게 정화하는 대신 봉쇄했는지 설명이 됐다.

“그 주술사는 근처에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미 떠났네. 우리의 습격에 미처 손쓸 새가 없었기 때문에 주변에 잠복하다가 주술을 시전하여 사람을 죽이고 멸구한 것이야. 이미 죽었으니 계속해서 근처에 머물지 않을 것이네.”

“장 금라, 금라조차도 이 종이 인형을 감지하지 못하셨습니까? 방금 종이 인형이 몇몇 소년의 몸에 숨어 있었는지도 전혀 몰랐습니다.”

금라가 말했다.

“첫째, 무사의 신식(神識)은 자신에게 위협이 되는 사물에만 미리 경보를 알릴 수 있네. 둘째, 종이 인형이 망령에 붙어 봉인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감지를 차단할 수 있었지. 셋째, 종이 인형은 아주 강한 살상력을 지니고 있지는 않아. 통상적으로 적을 죽이는 데에 쓰이지 않고 일을 처리하는 데 쓰이네.”

허칠안은 갑자기 화가 치밀어 폐물이라고 욕을 내뱉은 후, 칼자루에서 흑금장도를 꺼내 대청의 대들보를 맹렬하게 베었다. 끊어진 나무와 기와 조각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그러자 여인들과 소년들이 머리를 감싸고 사방으로 도망치며 비명을 질렀다.

거리를 사이에 둔 그림자 속에서 누군가 저 멀리 무너지는 용마루와 소란스러운 상황을 지켜보았다. 그 사람은 그림자 속에 숨은 채 냉소를 지으며 ‘어이’하더니 이내 다시 적막 속으로 사라졌다.

* * *

공부상서는 아내가 세상을 떠난 지 여러 해 됐으나 지금까지 후처를 들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저택에서 안방에서 첩을 끌어안은 채, 깊고 달콤한 잠에 빠졌다.

종이 인형 하나가 밤바람을 타고 마당으로 들어와 하늘하늘 바닥으로 착지했다. 몇 초 후, 종이 인형은 기어 일어나 어렵사리 문틈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종이 인형은 조심스럽게 화로를 피해 서툰 걸음을 내디뎌 침상 옆으로 왔다. 그리고 남실바람을 타고 침상 위로 올라 공부상서의 베개 옆으로 떨어졌다.

종이 인형은 베개 위에서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그러고는 젖 먹던 힘까지 다해 공부상서의 얼굴에 머리를 부딪쳤다.

공부상서는 미간을 찌푸렸다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는 베개 위에 종이 인형이 있는 걸 보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는 먼저 첩을 살펴봤고, 그녀가 곤히 잠들어 있는 걸 확인한 후에야 종이 인형을 주워 침상에서 내려와 탁자로 갔다. 그런 다음 그는 탁자 위의 초에 환하게 불을 붙이고 종이 인형을 펼쳤다. 그러고 나서 실눈으로 종이 위의 깨알 같은 글씨를 읽었다.

공부상서는 글씨를 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공연히 낯빛이 변하여 수염을 떨었다. 그는 다 읽은 뒤, 홀가분하다는 듯 탁한 공기를 내뱉고 냉정을 되찾았다.

공부상서는 촛불에 종이 인형을 태워 버린 후, 침상으로 돌아가 깊이 잠든 첩을 바라보며 잠시 망설였다. 그러다가 그는 천천히 베개를 들어 첩의 얼굴을 덮었다.

* * *

다음날, 형부상서는 일찍 일어났다. 그는 관아에 가서 직접 감옥에 내려가 이곳에 구금된 야경꾼을 순시했다.

횡령 사건에 연루된 야경꾼은 금라부터 동라까지 총 10여 명이었다. 그들은 전부 형부에 수감되었다.

본래 이 일은 규율에 따라 세 군데 관아에서 각자 나눠서 가두고 관련자들을 심문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왕당이 세은 사건과 상백 사건 중 연이어 두 명의 핵심 구성원을 잃어 위연과 대립각을 세운 상태였다. 게다가 형부는 불난 집에 부채질한 일 탓에 제당의 대리사경보다도 열성적이었다.

“사람의 일은 하늘에 달렸거늘 너희가 입을 다물면 나라 법을 피할 수 있을 줄 아느냐?”

형부상서가 냉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본관이 이미 너희의 가산을 낱낱이 조사하여 접본을 만들었다. 조금 뒤 폐하께서 훑어보실 테니 너희 중 한 명이라도 달아날 생각은 하지 마라. 물론 본관은 여전히 너희에게 기회를 주고자 한다. 누가 너희에게 은량을 횡령하고 백성을 핍박하라고 지시했는가? 위연 아닌가?”

그의 말에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때 갑자기 누군가 찬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횡령? 상서 대인께서 알려주십시오. 제가 얼마의 은자를 횡령했습니까? 이놈은 야경꾼으로서 십수 년 동안 동전 하나도 욕심내지 않았습니다.”

‘흥, 입만 살아서는……’

형부상서는 소리를 따라 걸어갔고 뭐라 말을 하는 남자를 보았다. 그런데 그 순간, 그는 말끔한 감방을 보고는 첫눈에 매료되었다.

바닥의 장물과 마른 풀들이 전부 구석으로 쓸려 있었다. 벽 모퉁이에는 거미줄도 보이지 않았다. 멍석은 여전히 너덜너덜했지만, 아주 반듯하게 깔려 있었다. 하나하나 세세한 부분 모두 질서정연했다.

형부상서는 내심 궁금해서 말한 남자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는 융통성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아 보이는 야경꾼이었다. 비록 죄수복을 입고 있었지만 깨끗하고 말끔한 인상이었다. 머리는 가지런히 빗었으며, 좌우로 말아 올린 소매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대칭을 이루었다.

이 남자와 이 감방을 보고 있으면 형부상서를 포함한 형부의 관원들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편안함에 절로 잠겼다…….

“이 자의 이름이 무엇인가.”

손 상서가 뒷짐을 지고 서서 물었다.

“이옥춘입니다.”

“은자를 얼마나 횡령했지? 내성에 집이 몇 채 있나?”

관원은 책자를 펼쳐 잠시 보더니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손 상서가 힐끗 쳐다보자 관원은 그제서야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내성에 남루한 소원 한 채가 있고 집에는 노모와 임신한 아내가 있습니다. 재산은…… 형부가 그의 집에서 은자 오십 냥밖에 착취하지 못했습니다.”

“은자 오십 냥?”

손 상서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리 기백 있는 은라의 전 재산이 은자 오십 냥뿐이라니.’

“어떻게 조사한 것이냐.”

손 상서는 형부 관원이 일을 대충했다고 짐작했다.

관원은 그의 귓가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잠시 얘기했다. 다 들은 뒤 손상서는 침묵했고, 깨끗한 이 남자를 더는 상대하기도 귀찮다는 듯 돌아서서 가 버렸다.

강율중은 평온함을 되찾은 감옥에서 벽에 등을 기대고 탄식했다.

“강 씨, 무슨 계획이 있는가?”

다른 금라가 옆 감방에서 벽을 두드리며 물었다.

“무슨 계획이 있을 수 있겠나. 면직되면 달리 살길을 찾아야지 뭐. 나는 암자(暗子)가 되지 않을 걸세. 처와 자식이 모두 경성에 있어.”

강율중이 언짢아하며 말했다.

“어이, 나는 무자식이라 강호를 다녀와도 되네. 이곳 경성도 이제 질렸어.”

그 금라가 말했다.

“개소리.”

강율중이 찬웃음을 지었다.

“자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장가를 들고 자식을 낳아 경성에 자리 잡고 싶다고 하지 않았는가. 이 몸이 요 몇 년간 재물을 착취하지 않아 한스럽네. 아주 보잘것없는 이득만 조금 취했을 뿐이라고. 그러지 않았으면 이 감옥에 쭈그려 앉아 지낸 시간들이 억울하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야.”

“허, 그럼 자네 감옥에서 나오면 산적패로 들어가시게.”

“꺼져.”

가장 나쁜 결과라고 해도 파면에 불과했다. 적어도 생명의 위협을 받을 리는 없었다. 고품 무사는 아주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이상 조정에서 극형을 내리지 않았다.

고품 무사는 발광하기 시작하면 그 파괴력이 어마무시하기 때문이었다.

“휴!”

또 한숨이 이어졌고 뒤이어 긴 침묵이 흘렀다.

* * *

형부상서가 감옥에서 나와 물었다.

“어째서 허 씨 그 잡놈이 보이지 않는 것이냐.”

“아무래도 도망친 것 같습니다.”

관원이 대답했다.

“지명 수배령을 내렸느냐?”

“이미 작성해 두었습니다. 관아에서 날인하기만 하면 공포할 수 있습니다.”

손 상서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놈은 은자를 얼마나 횡령했던가?”

“어제 사람을 보내 허부를 조사했는데 능라 주단만 수백 필 있었고 은자는 별로 없었습니다.”

관원이 말했다.

손 상서가 ‘응’하고는 말했다.

“그럼 능라 주단을 우선 거두고 일이 마무리되면 관아의 대인께 드리자.”

“그게…… 저희는 그 물건들을 감히 거두지 못했습니다.”

관원이 나지막이 말했다.

손 상서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응?”

관원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 그건 폐하께서 하사하신 물건이라 건드릴 수 없습니다. 나중에 허평지가 어전에 고발이라도 하면…….”

“……듣자 하니 그 자식 교방사에 자주 간다던데?”

손 상서는 다른 돌파구를 찾았다.

“네. 저희가 사람을 보내 교방사의 기생 어미에게 물으니 허 씨가 고작 두 달 사이에 교방사에서 기녀 8명과 즐겼으며, 영매소각의 부향과 연애한다고 합니다.”

“이거네.”

손 상서가 말했다.

“알고 보니 은자를 모두 여인에게 썼구먼? 교방사 여자들의 자백이 증거가 될 수 있을 것이야.”

관원이 아주 난처해하며 말했다.

“하지만 그 여자들의 자백이 모두 아주 일치합니다…….”

손 상서가 의구심 어린 눈빛을 내비치자, 관원이 속을 끓이며 말했다.

“그 여자들 말이 허 씨의 재능을 사모하여 아무것도 받지 않고 시중 들기를 자처했다고 합니다.”

손 상서는 몸이 휘청거렸다. 하마터면 화병에 걸릴 뻔했다.

“개 같은 놈, 허점이 없다니. 그럼 허점을 만들어 내! 돈이 없으면 돈을 보내서라도!”

손 상서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본관은 이 잡놈을 절대로 놓아주지 않을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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