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화. 대위천룡(大威天龍)
두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밖으로 걸어갔다. 몇 걸음 가다가 저채미가 갑자기 멈추더니 ‘아이고’ 소리를 내며 뒤를 돌아봤다. 그녀의 눈동자에서 청광이 뿜어져 나왔다.
우물 안에서 또다시 솟아오른 미미한 검은 기운이 망기술에 잡혔다.
“왜 그러시오?”
허칠안이 그녀의 이상한 표정을 보고는 물었다.
“아니, 완벽하게 정화되지 않았어……. 이상하다. 검은 기운이 또 솟구쳤어. 우물 아래에 괴이한 것이 있어.”
저채미가 뛰어가 우물 어귀에 엎드리더니, 잠시 주시하다가 굴하지 않고 다시 한번 순양 풍수진을 설치해 검은 기운을 몰아냈다.
하지만 결과는 방금과 마찬가지였다. 검은 기운이 또 솟아올랐다.
“어떡하오?”
사건은 허칠안이 예상한 것보다 훨씬 번거로웠다.
“가장 간단하고 효과적인 방법은 청룡사의 승려를 모셔 와 법술을 써서 검은 기운을 소멸시키는 것인데…….”
저채미가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허칠안은 우물 어귀로 달려갔다.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결수(結手)하며 주문을 외웠다.
“대담한 요괴가 농간을 부리니, 대위천룡, 세존지장, 대라법주, 반약제불! 반약파마홍! 비룡재천! 가거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심지어 바람조차 불지 않았다.
저채미가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너 뭐 하는 거야?”
“내 고향에서 악귀를 쫓아내고 요괴를 잡는 신주(神咒)라 한번 시도해 봤소.”
허칠안이 어깨를 으쓱했다.
“내 고향의 요괴를 잡는 법주(法咒)는 확실히 믿을 만하지 못하구려.”
저채미가 말했다.
“나 방금 말을 끝까지 하지 못했어. 아까 그 거간꾼이 전에 몇몇 부호들이 승려를 모셔 와 법술을 쓰면 한동안은 잠잠하다가 다시 원상태로 회복됐다고 말했잖아. 방금 내 상황과 딱 들어맞아.”
“그럼 어떡하오?”
허칠안이 물었다.
“내가 약간 짐작이 가기는 하는데, 우리 저녁에 다시 오자.”
저채미가 자신만만한 태도로 말했다.
“하지만 너 음식을 추가해야 해.”
‘음식을 추가하는 건 문제없는데, 나는 항상 네가 믿음직스럽지 않아. 자신이 열등생인 걸 잊지 마, 채미 동생…….’
허칠안은 웃으며 말했다.
“채미 소저가 나서 주면 제가 안심하지 못할 일이 뭐가 있겠소이까. 음식을 추가하라면 추가하죠.”
* * *
두 사람은 즉시 그곳을 나왔고, 늙은 중개인을 따라 다른 저택을 보러 동분서주하며 뛰어다녔다.
허칠안은 선택지가 많아 성급하게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 * *
전망청에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었다. 위연은 청의 차림으로 일광욕을 했다.
그의 얼굴은 난옥(暖玉)처럼 윤이 났으며, 햇빛에 비친 귀밑의 희끗희끗한 은발은 백은(白銀)보다도 눈부셨다.
“평양군주 사건으로 양당을 무너뜨렸고, 세은 사건과 상백 사건으로 왕당이 막심한 손해를 입었네. 현재 조당에서 비교적 온전한 건 연당(燕黨)과 제당(齊黨)이야.”
위연이 소매 속의 밀서를 꺼내더니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이 밀서는 제당의 날개 한쪽을 꺾을 수 있지.”
남궁천유가 음침하게 웃었다.
“의부님, 경찰 기간을 틈타 눈에 거슬리는 걸림돌들을 서둘러 해치워 버리십시오. 손발을 쭉 뻗을 수 있도록 말입니다.”
“급하지 않다!”
위연이 이어서 말하려는데 계단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더니 하급 관리 하나가 올라와서 말했다.
“위 공, 폐하께서 부르십니다.”
* * *
남궁천유는 마차를 몰아 천천히 궁성 밖에 세웠다. 위연은 찻간에서 내려 여인보다도 이목구비가 수려한 의붓아들을 데리고 어서방으로 향했다.
원경제는 정사를 돌보는 일이 드물었지만, 가끔 어서방에서 조회를 열었다. 평소에는 가끔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경찰 기간에는 조회를 여는 횟수가 빈번한 편이었다.
어쨌거나 그는 정말 바깥세상의 일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길고 가늘게 살고 싶을 뿐이었다.
그는 어서방 밖에 도착하여 높은 문턱을 넘었다. 위연은 아무도 알아채지 못할 만큼 잠시 동안 발걸음을 멈췄고, 이내 원래대로 회복했다.
“신 위연, 폐하를 뵙습니다.”
대환관은 읍을 올리고 인사하면서, 짧은 순간에 원경제와 양쪽 대신들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그는 위기를 감지했다.
원경제가 무표정으로 나지막이 말했다.
“위연, 짐이 자네에게 야경꾼을 관장하라고 한 이유가 무엇인 것 같소?”
위연이 말했다.
“폐하와 경성을 호위하기 위함입니다.”
“옳소.”
원경제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갑자기 탁자 위의 상소문을 집어 위연을 향해 매섭게 내리쳤다. 그러곤 사나운 표정을 하고 격한 어조로 소리쳤다.
“자네는 짐을 이렇게 호위하는가? 짐이 자네를 믿고 진심으로 대했는데 자네는 겨우 이런 식으로 짐에게 보답하는 것인가?”
위연은 침착하게 상소문을 주워서 펼쳐 읽기 시작했다. 그의 눈동자가 삽시간에 수축됐다.
그는 두말없이 무릎을 꿇고 큰 소리로 외쳤다.
“소신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폐하의 신임을 저버렸사오니 죽여 주십시오.”
위연의 이런 태도 탓에, 급사중들은 원경제에게 이 흉악한 놈을 처단해 달라고 공격 태세를 갖추고 있다가 어떻게 입을 열어야 할지 모를 지경이 되었다.
원경제는 냉소를 지었다.
“자네 참 솔직하군그래, 위연. 오늘 만약 궤변을 늘어놓았다면 짐은 즉시 자네를 감옥에 처넣었을 것이야.”
위연은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원경제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자네를 고발한 건 야경꾼 관아의 금라 주양이네.”
위연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상소문에는 금라에서 은라까지 최근 몇 년간 뇌물을 받아 법을 어긴 야경꾼들의 죄증이 적혀 있었다. 일부 증거는 확실한 근거가 있었으며, 일부 증거는 순전히 중상모략이었다.
당연히 새로 들어온 동라도 그중에 포함됐는데 죄가 가볍지 않았다. 그가 한 달 만에 직책을 이용해 백은 수천 냥을 착취하고, 날마다 교방사를 들락날락하며 기녀와 즐겼다는 것이었다.
이때, 형부의 한 도급사중이 대열에서 나와 말했다.
“폐하, 야경꾼은 권력을 이용해 사욕을 도모하고, 법을 알면서도 고의로 법을 어겼습니다. 소신, 위연의 목을 베어 야경꾼에게 본보기를 보이고 그릇된 풍조를 근절하길 청하옵나이다.”
즉시 몇몇 대신들이 그 의견에 찬성을 표했다.
원경제는 죄를 인정하고 법에 따르는 위연을 쳐다보더니 나지막이 말했다.
“이 사건은 형부의 대리사경과 부아가 협력하여 해결하시오. 3일 내로 짐에게 결과를 내놓아야 할 것이오.”
* * *
조회가 끝났다.
남궁천유는 어두운 표정으로 위연의 뒤를 따랐다. 그들이 몇 걸음 가지 않았는데 뒤에서 누군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위 공은 잠시 걸음을 멈추시게.”
부자(父子) 둘이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니 대리사경이 쫓아오고 있었다. 그는 운안(云雁)이 수놓아진 붉은색 두루마기 차림이었으며, 4품 고관이었다.
대리사경은 경조 부윤과 마찬가지로 직위가 그리 높은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역시 막강한 권력을 쥐고 있는 관원이라 꽤 무게감이 있었다.
경성에서 한 관원의 지위나 발언권은 품계가 아니라 얼마나 권력을 쥐고 있는지에 달렸다.
훈귀는 품계를 뛰어넘어도 권력의 무대 뒤편으로 밀려나지 않았는가.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수척한 얼굴의 노인이 허허 웃으며 공수했다.
“본관이 그 명단에 적혀 있는 죄목에 대해 소상히 알고 싶네.”
위연은 달가운지 아닌지 모를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따가 사람을 시켜 대리사로 한 부 보내겠습니다.”
대리사경이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며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그리고 한 가지 일이 더 있네. 본관이 보아하니 주 금라 성미가 대쪽 같은 것이 인재로 보이기에, 그를 대리사로 데려오고 싶네. 본관이 조금 뒤에 폐하께 여쭙고자 하는데 그 전에 먼저 위 공에게 알리고자 하네.”
위연은 여전히 평온했다.
대리사경이 앞으로 몇 걸음 걸어가더니 말했다.
“위 공은 본관이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구먼.”
위연이 웃기 시작했다.
“손해 보는 교환은 아닙니다.”
대리사경은 어두운 얼굴을 하고 위연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 * *
남궁천유는 마차로 돌아온 다음, 야경꾼 관아 방향으로 마차를 몰기 시작했다. 찻간 안에서는 위연이 미간을 문지르며 길게 탄식했다.
“눈이 삐었어, 눈이…….”
남궁천유는 냉소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의부님, 그가 딴마음을 먹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분명히 아시면서도 굳이 옛정을 염두에 두십니까. 이번에 꼴좋게 됐습니다. 단순히 많은 장병을 잃은 것처럼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야경꾼 관아에는 이옥춘처럼 고지식한 자 외에, 양연 같이 융통성 없는 무술광도 미색과 재물에 관심이 없었다.
또 남궁천유 같은 편집광도 하루 종일 지하 감옥에 틀어박혀서 사형수 괴롭히기나 좋아하고 재물에는 관심이 없었다.
‘여자는…… 나만큼 예쁜가?’
“그를 죽일까요?”
남궁천유가 분개하여 말했다.
“끝장을 보려면 가을 추수 이후여야 한다.”
위연이 차분하게 대답했다.
* * *
그들은 오는 길 내내 말이 없었다. 남궁천유는 마차를 몰아 장터를 가로질러 으슥한 길거리로 들어섰다. 그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이 일이 그 자식 때문은 아니지만, 그가 발단입니다. 의부님께서는 본래 피하실 수 있었어요. 그 자식이 의부님께서 이렇게 중시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까?”
“금라는 많지만 그리 재미있는 자는 딱 한 명이지. 나는 그의 성장이 매우 기대되네.”
위연은 가볍게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
“우리 폐하께서는 내가 우쭐대는 걸 마음 놓은 채 보고만 계시지는 않을 걸세.”
위연은 여기까지 말했을 때 결국 울적한 마음이 아주 조금은 들었다.
“대리사경이 방금 그 명단을 의부님 수중에 있는 밀서와 바꾸려 했는데 의부님께서는 왜 거절하셨습니까?”
남궁천유가 물었다.
그는 의부님의 마지막 그 한 마디, ‘손해 보는 교환은 아닙니다’가 대리사경의 교환에 응한 게 아님을 알았다. 의부님은 울며 겨자 먹기로 금라와 은라들과 교환하기로 결정했을 뿐이었다. 쌍방 모두 손해를 입었다.
그에게 돌아온 대답은 침묵이었다.
‘올해는 정말 다사다난하다. 아니, 매번 경찰 때마다 한 번씩 크게 동요되니까, 의부님께서 어렵사리 주요 구성원을 키우셨는데 이번에 치명적인 상처를 피하기 어렵겠어…….’
남궁천유는 탄식했다.
매번 경찰에는 승리자가 있기 마련이었다. 왕당이 바로 지난번 경찰에서 궐기한 것이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한 가지 진실이 있었으니, 바로 경찰이 끝나면 모든 당파가 막심한 손해를 입는다는 점이었다. 승자 역시 간신히 이기기 때문이다.
“관아로 돌아가서 허칠안을 찾아가 그에게 며칠 피해 지내라고 일러라. 내가 그를 떼어낼 방법을 강구할 것이다.”
“네.”
남궁천유는 시큰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 *
허칠안은 진작 저택을 다 둘러본 다음, 해 질 무렵이 되자 한 시간 동안 저채미와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맛있는 음식이 보일 때마다 샀다.
커다란 눈의 미인은 열의에 가득 차 신나게 돌아다녔다. 얼굴에는 시종일관 달달한 웃음을 머금은 채였다.
역시나 쇼핑은 싸움보다 지쳤다. 신체적으로가 아니라 정신적으로 지치는 일이었다. 허칠안은 한숨을 내뱉었다. 하지만 이 여인을 기쁘게 해 줄 수 있다면 좀 피곤한 일도 가치가 있었다.
그는 전생에 여자를 달래는 방식은 70가지인데 그중 하나가 쇼핑이고 나머지가 69가지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었다.
후자는 허칠안도 시전할 방법이 없으니 당연히 검증할 길이 없었다. 하지만 쇼핑은 실질적으로 효과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