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화. 저택을 사다 (2)
허칠안은 저채미를 데리고 거간꾼을 찾아갔다. 한 늙은 중개인이 그들을 친절하게 맞이했다.
“나리, 부인. 집을 사시렵니까, 아니면 세를 내놓으시려 합니까?”
‘이 영감탱이가…….’
허칠안은 속으로 비아냥거렸으나 겉으로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집을 사려 하오.”
늙은 중개인은 더욱더 상냥한 웃음을 띠었다. 집을 세놓는 것과 사는 건 그 수수료가 어마어마하게 차이 나기 때문이다.
“규모는 어느 정도로 생각하십니까?”
“세 채 딸린 뜰이오.”
늙은 중개인의 웃음은 친절함이라는 단어로 형용할 수 없었다. 그는 여러 해 동안 헤어져 지낸 친아버지를 만난 듯, 기쁨에 겨운 나머지 하마터면 눈물을 흘릴 뻔했다.
그가 이렇게 흥분할 만도 했다. 내성에선 값이 구역에 따라 다른데, 평범한 소원(小院)은 차치하더라도 세 채가 딸린 저택의 가격은 은자 5000~10000냥에 달했다.
세 채 이상의 저택은 일반 백성이 살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거간꾼은 올해 이렇게 격이 있는 대저택을 판 적이 없었다. 거래가 성사되기만 하면 일 년은 먹고살 수 있을 터였다.
“마음에 두신 저택이 있으십니까?”
늙은 중개인이 공손하게 물었다.
“5000~7000냥 하는 저택의 목록을 가져오시오.”
허칠안은 늠름하게 앉아 찻잔을 들고, 아마도 거간꾼이 가진 것 중 품질이 가장 좋을 것 같은 녹차를 한 모금 마셨다.
맛은 평범했다. 위연 다실의 녹차만 못했다.
이내 거간꾼이 늘어놓은 목록 몇 장을 허칠안이 받아서 몇 번 훑어보았다. 그런 다음 잠시 꼼꼼하게 기억을 더듬더니 그중 세 장을 솎아내고 한 장만 남겼다.
“왜 이 저택 한 장만 남겨 두는 거야?”
저채미가 마술을 부리는 것처럼 허리춤에 찬 사슴 가죽으로 된 주머니에서 밀전(蜜餞)을 한 움큼 더듬어 꺼냈다.
“위 저택들은 교방사와 가깝소.”
허칠안이 눈썹을 치켜세우며 웃었다.
종이에 나열된 정보는 저택의 위치와 면적이었다. 그보다 더 자세한 자료는 별도로 열람해야 했다. 허칠안은 쓱 훑어보더니 위치가 괜찮고 면적도 크지만, 가격이 다른 곳보다는 훨씬 낮은 저택을 발견했다. 중개 번호는 을이습삼(乙貳拾叁)이었다.
“영감, 이 저택은 왜 이렇게 싼 것이오?”
허칠안은 아무런 내색 없이 물었다.
을이습삼의 가격은 백은 5500냥으로, 같은 급의 다른 주택은 가격이 7000냥 이상이었다.
“싼 건 당연히 싼 이유가 있지요…….”
늙은 중개인이 두리번거리더니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그 저택은 사악한 기운이 서려 사람이 살 수 없습니다. 손님께선 다른 집을 고르시지요.”
허칠안과 저채미는 서로 쳐다보았다.
‘사악한 기운? 그럼 나 이 야경꾼이 얼마나 사악한지 한번 보러 가야겠군.’
하지만 허칠안은 경거망동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떻게 된 일이오? 영감, 기탄없이 말해 보시오.”
경성은 야경꾼 근거지긴 하나 그 내막을 모르는 고수가 많이 숨어 있었으며, 실제로 불가사의한 곳들이 존재하기도 했다. 허칠안은 어릴 적에 경성의 괴이한 전설에 관해 많이 들었었다.
“그 저택에서 요사스런 귀신이 나타납니다!”
늙은 중개인은 나지막이 말하더니 따라 앉으며 몸을 앞으로 살짝 기울였다.
“아마도 2년 전부터 시작된 것 같습니다. 그 저택은 원래 한 부호의 소유였는데, 어느 날 밤 갑자기 뜰에서 아주 섬뜩한 여인의 울음소리가 들려왔죠. 저택의 하인이 초롱을 들고 나가서 살펴보니 백의를 입은 여인이 우물가에 앉아 얼굴을 가린 채 흐느끼고 있었습니다. 하인이 그녀에게 누구인지 물었지만, 그녀는 대답 없이 그곳에서 울기만 했지요. 하인이 저택의 어느 부녀자가 억울한 일을 당한 줄 알고 뜰 안으로 달려가 털어놓은 후 초롱을 들고 비추러 갔는데, 누가 알았겠습니까…….”
늙은 중개인은 여기까지 말한 뒤, 목소리를 더 낮추고 거드름을 피웠다. 마치 공포스러운 일을 직접 목격한 사람처럼.
“그 후에는?”
저채미가 작은 주먹을 불끈 쥔 채, 눈을 깜박였다. 긴장하면서도 기대하는 모습이었다.
허칠안은 두려워하면서도 공포 영화를 보려는 전생의 사람들이 떠올랐다. 그녀는 분명 7품 풍수사인데.
“이때…….”
늙은 중개인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의 표정은 어둡고 무서웠다.
“여인이 고개를 들었는데 얼굴은 피범벅이고 얼굴에 달린 눈알 뒤로 두 개의 검은 구멍이 드러났고, 그 안에서 구더기가 이리저리 기어 다녔더랬죠. 그녀의 흑자줏빛 입에서는 새까만 선혈이 흘렀습니다…….”
허칠안은 저채미의 하얀 목덜미에 돋은 닭살이 보였다. 그녀는 작은 체구로 몸서리쳤다.
늙은 중개인은 저채미의 반응에 매우 만족했고, 아주 성취감을 느끼는 듯 허허 웃으며 말했다.
“첫 번째 부호가 이사를 나간 후 두세 명이 집을 사고 똑같은 사건을 겪었지요. 더 불가사의하게도 그때부터 재수 옴 붙은 것처럼 연이어 문제가 생겼습니다. 집안의 누군가 재수 없게 다치거나 한순간에 장사가 망하거나 재산이 축나 어쩔 수 없이 저택에서 나와야 했지요.”
‘그래도 양심 있는 거간꾼이군…….’
허칠안이 물었다.
“관아에 알렸소?”
“알렸지요. 어찌 안 알렸겠습니까. 그래도 사람이 목숨을 잃은 건 아니니 관아에서도 몇 번 나온 뒤에 손을 놓았습니다. 전에 몇몇 부호가 대사를 모신 적이 있는데, 처음에는 확실히 한동안 평온했지요.
허나 얼마 지나지 않아 되살아났습니다. 여귀(女鬼)가 한밤중에 처량하고 애달프게 울어 저택의 모든 이들의 마음을 불안하게 했지요. 하지만 불운은 나아지지 않았으니, 여긴 여전히 재수 옴 붙은 곳입니다.”
허칠안이 탁자를 두드리며 웃었다.
“아주 재미있는 저택이로군. 우리는 먼저 그 저택을 보러 가겠네.”
늙은 중개인은 아주 의외라고 생각했다.
‘이 젊은 부부가 바보는 아닐 테고, 젊고 팔팔하여 세상 물정 모르는구먼. 자기들은 특별해서 남다른 대우를 받을 거라 생각하겠지.’
“알겠습니다. 지금 두 분을 모시고 보러 가죠. 저희 천천히 고릅시다. 저택은 차고 넘치니까요.”
하지만 늙은 중개인은 여전히 겸손한 웃음을 지었다.
* * *
저택은 교방사에서 불과 삼 리밖에 되지 않았다. 저택의 동쪽으로는 구불구불한 강이 흘렀으며, 서쪽에는 화원이 있었다. 저택은 중심 거리와 수십 미터 떨어져 있어 멀지도 가깝지도 않았다. 대낮에는 왁자지껄한 잡음이 없었으며, 길거리를 구경하러 나설 때도 너무 멀리까지 갈 필요가 없었다.
시끌벅적한 환경 속에서 고요함을 지킬 수 있으니 좋은 곳이었다.
늙은 중개인은 저택 문에 걸린 자물쇠를 열었다.
그런 다음 무거운 대문을 힘겹게 열고 나서 손에 묻은 먼지를 털며 청하는 자세를 취했다.
“나리, 부인. 이쪽으로 오시지요.”
나리와 부인은 아주 공손한 호칭이었기에, 이는 정식적인 장소에서 ‘선생님, 여사님’으로 불리는 것과 같았다. 공자와 아가씨는 미남과 미녀나 해당되는 호칭이었다.
“네!”
허칠안은 고개를 끄덕인 다음 저채미를 이끌고 들어가 사방을 둘러보았다. 뜰에는 스산하고 황폐한 기운이 서려 있었다. 그리고 온 바닥은 잿빛에, 기둥과 담장은 도료가 얼룩덜룩 벗겨져 있었다. 만약 여름에 왔다면, 뜰 전체에 가득 자란 잡초를 볼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화원에는 흙 비린내가 풍겼다.
늙은 중개인은 그들을 이끌고 앞마당과 바깥 대청을 둘러보았다. 허칠안은 아주 만족스러웠다. 구조, 건축 모든 것이 숙부의 저택보다 탁 트이고 대범했다.
하지만 늙은 중개인은 한사코 그들을 안마당에 데리고 가지 않으려 했다. 그는 손을 문지르며 말했다.
“여기까지만 보시죠. 안에는 들어가면 안 됩니다. 불길해요.”
‘나는 네가 방해하는 게 싫어…….’
허칠안은 손을 내저었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금방 나올 것이오. 나는 부인을 데리고 가보겠소.”
지금은 햇볕이 내리쬐는 오전이라, 늙은 중개인도 좀 안심이 됐으나 신신당부했다.
“빨리 나오십시오.”
저채미는 뒤늦게 허칠안을 쳐다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누가 네 부인이야? 순전히 헛소리만 늘어놓는구나.”
허칠안은 속으로 토를 달았다.
‘조만간의 일인데 뭐…….’
“너 참 이상해. 돈이 생겼으면 경작지를 사야 하지 않아? 왜 저택을 사려고 하는 거지?”
“소저도 집값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공포를 알게 되면, 나와 같아질 거요.”
허칠안이 경계하는 눈빛으로 주변을 주시하며 말했다.
“도문 외에 각 체계의 수련자는, 죽은 후에 원신이 세간에 오래도록 머문다고 알고 있소. 구체적인 건 원신의 힘에 달렸지만 말이오. 이 저택에는 강자가 죽은 후의 원신이 남은 것은 아닐지 모르겠소.”
허칠안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옥석경을 꺼내 등허리에 가볍게 채운 다음, 흑금장도를 꺼냈다.
그는 크게 뜬 저채미의 아름다운 눈을 보더니 웃으면서 말했다.
“이건 제 보물이자 제 비밀이니까 남한테 퍼뜨리면 안 됩니다. 나중에 맛있는 음식을 사 드리겠소.”
“아.”
저채미는 단지 신기해서 몇 번 훑어보았을 뿐 신경 쓰지 않았다. 어쨌거나 그녀의 사슴 가죽 주머니도 마찬가지로 물건을 수납하는 법기였다.
낡은 거울과 맛있는 한 끼를 교환하는 일은 아주 수지가 맞는 행동이었다.
저채미는 몸을 훌쩍 날려 용마루로 뛰어올랐다. 청광(淸光)을 뿜는 예쁘고 동그란 눈이 마치 아이언맨의 두 눈 같았다.
그녀는 이 저택을 자세히 훑으려 용마루 위를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위치를 옮겼다. 어느 한구석도 놓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안마당의 우물 어귀에 청광이 내려앉았다. 그녀는 미미하게 흐르는 검은 기운을 발견했다.
“바로 이곳이야.”
저채미가 기뻐하며 재빠르게 내려와 허칠안을 끌고 우물 어귀로 갔다.
“여기에 원기가 있어, 사귀(邪鬼)를 키울 수 있는 원기가.”
허칠안은 깜짝 놀라 경계 태세를 갖췄고, 저채미를 잡아당기며 멀리 떨어졌다. 그러나 저채미는 거절했다.
“괜찮아!”
그는 저채미에게 고개를 저었다.
“원기가 미약한 걸 보니 안에 있는 원혼 사귀의 실력이 강하지 않은 것 같아. 나 혼자서도 처리할 수 있어.”
그녀는 말하면서 손을 뻗어 사슴 가죽 자루를 더듬더니 안에서 물건을 꺼냈다. 검은 개의 피, 주사(朱沙), 금 그리고 허칠안이 알아볼 수 없는 괴상망측한 물건이었다.
그런 후, 그녀는 마른 나뭇가지를 쥐고 우물 어귀를 중심으로 바닥에 그림을 그렸다. 어렴풋이 보니 팔괘진(八卦陳)이었다.
그녀는 팔괘진을 다 그리고 나서 지양지강(至陽至剛)을 상징하는 그 물품들을 특정한 위치에 두었다.
“진법이오?”
허칠안은 옆에서 흥미진진하게 지켜봤다.
“아니, 이건 풍수진(風水陳)으로 엄밀히 말하자면 진법이 아니야. 내가 우물 어귀를 중심으로 이 순양(純陽) 풍수진을 설치하면, 팔괘도(八卦圖)가 씌워진 곳의 풍수가 지양지강으로 변해. 이렇게 우물 안의 원기를 억제하는 거야.”
저채미가 말했다.
‘흡사 진법의 남루한 버전 같군…….’
풍수사는 진법사의 전신(前身) 혹은 근간이라 할 수 있다. 허칠안은 사천감의 술사 체계를 한 걸음 더 이해할 수 있었다.
일각이 지난 후에, 저채미가 청광을 뿜는 눈을 뜨고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라졌어.”
허칠안은 웃기 시작했다.
“채미 소저, 고맙소.”
두 사람은 함께 재료를 수거했다. 저채미는 사슴 가죽 허리 주머니를 손바닥으로 치더니 자신의 공을 생색내려 거만하게 말했다.
“우선 너와 다른 뜰의 풍수도 보러 가줄게. 그러고 나서 음, 저녁에 나는 계월루에 갈래.”
“좋습니다!”
허칠안은 두말없이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