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타경-156화 (156/712)

156화. 오랜만의 일기

허칠안은 발소리를 죽이고 살금살금 이옥춘의 방을 향해 갔다. 그러다 마찬가지로 모퉁이에 몰래 숨어 있던 송정풍과 주광효와 마주쳤다.

허칠안은 눈빛으로 말했다.

“자네들도 몰래 엿들으러 온 건가?”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고 눈빛으로 답했다.

“대장은 연신경이니 조심하시게. 호흡을 절제해…….”

그들은 드디어 느린 걸음으로 움직여 이옥춘 방의 창문 아래에 도착했다. 침상이 흔들리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안에서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나리, 저 이미 다 씻었어요. 나리께서도 씻으세요.”

“그래…….”

이옥춘이 나지막이 대꾸했다.

한참 후 그가 다 씻었을 때 즈음,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리, 이불도 다 데워졌는데, 왜 방안에서 거닐고 계시는 거예요?”

“방안의 장식품이 너무 지저분하구나. 어수선해, 어수선해. 이 방에 있으면 본관은 바늘방석에 앉은 것 같네.”

이옥춘이 불평불만을 늘어놓았다.

“네?”

여인은 어리둥절했다.

“깔끔하기만 한걸요? 저는 매일 방을 청소한답니다.”

“아니야…….”

이옥춘이 진지하게 말했다.

“탁자 위의 찻잔은 찻주전자를 둘러싸고 특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해……. 창가의 분재는 왼쪽으로 두 촌(寸) 더 가 있어……. 걸상은 너무 지저분하게 놓았네. 찻주전자를 둘러싼 찻잔과 동일하게 배열해야 하지……. 벽에 걸려 있는 그 그림은 가운데에 걸 수는 없었나……? 병풍이 비뚤어져 있어서 내가 방금 바로 놓았네……. 음, 자네의 수놓인 신도 가지런히 놓여 있지 않고 말이야…….”

“……이, 이것들을 어떻게 한결같이 할 수 있단 말이에요, 그 일을 누가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여인이 부드럽게 말했다.

“나리, 저 나리를 한참 동안 기다렸어요.”

이옥춘은 그 말을 듣자마자 기분이 상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누가 할 수 없다고 한다더냐. 너는 보고 배우거라. 본관이 어떻게 방을 정리하는지 가르쳐주겠다.”

창문 아래의 허칠안을 포함한 세 사람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들은 발소리를 죽인 채 조용히 떠났다. 불현듯 허칠안이 몹시 안타까워하며 물었다.

“대장은 장가들지 않았던가?”

“장가들었지.”

“그런데 어째서 초짜 같은 느낌이 드는 건가?”

허칠안이 말했다.

“처음 교방사에 온 건 아닐 걸세.”

송정풍은 좀 믿기 어려웠다. 이옥춘 수하에서 수년간 일했지만, 그의 사생활은 잘 알지 못했다.

허칠안은 생각하더니 말했다.

“이따가 우리 방에 돌아가서 좀 시끄럽게 굴어 봄세.”

“좋은 생각이네.”

송정풍과 주광효도 이 방법이 좋다고 생각했다.

오늘 밤 영매소각에는 침상이 흔들리는 소리가 유난히 격렬했다.

* * *

이튿날, 휴가였다.

허칠안과 그 일행 모두 다소 늦게 일어나 몸을 푼 다음, 각자 방에서 아침 식사를 했다. 그런 뒤 그들은 바깥 청에서 삼삼오오 모였다.

강율중은 어젯밤에 풍만한 기녀와 즐길 수 있었기에 오늘 아침에 허칠안을 아들처럼 대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다도회 때 기녀는 보통 무사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 또한, 강율중은 야경꾼 관아의 금라씩이나 되는 입장이었으니 어찌 장사치 심부름꾼들과 찻잔을 기울일 수 있겠는가.

그리고 교방사는 예부의 근거지라 여태까지 야경꾼과 문관은 상대하지 않았으므로, 기녀와의 잠자리를 강행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높은 관직의 야경꾼일수록 교방사에 오는 걸 더 꺼렸다. 모두 다른 청루에서 빈둥거리기나 했다.

“자네가 기녀 도둑이라는 소문이 도는 이유가 있군그래.”

강율중이 허칠안의 어깨를 치며 환한 얼굴로 웃었다.

‘기녀 킬러? 나한테 언제 이런 이상한 호칭이 생겼지?’

허칠안은 멍하니 되물었다.

“뭐라고요?”

“구여쟁남(*九女爭男: 기녀 아홉 명이 허칠안을 두고 쟁탈을 벌였던 일) 이야기가 경성에 다 퍼졌네.”

강율중이 말했다.

‘이 몸의 평가에 타격을 입었구먼……. 그래도 까짓것 기녀 킬러 하지 뭐. 어쨌든 허 색마보다는 듣기 좋으니까…….’

허칠안은 여우 요족을 잡은 그 날, 아홉 명의 기녀가 그를 찾아온 밤을 떠올렸다.

이때, 이옥춘이 나왔다. 그는 기력이 아주 충만해 보였다.

“대장, 어젯밤에 어찌 주무셨습니까?”

송정풍이 그를 맞이했다.

이옥춘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말했다.

“괜찮았네만 좀 시끄러웠어.”

허칠안은 조용히 속으로 빈정댔다.

* * *

부향이 잠에서 깼을 때는 여색을 조금도 좋아하지 않는 그 못된 남자가 이미 떠난 뒤였다. 그녀는 이불을 껴안고 몸을 일으키며 늘어지게 하품을 한 뒤, 여종의 시중을 받아 목욕했다.

“명연 낭자께서 방금 사람을 보내 점심때 청지원에 와서 술 한 잔 기울이자고 하셨어요.”

여종이 말했다.

‘세상에 공짜가 어딨겠어, 뭔가 꿍꿍이가 있겠지…….’

부향은 속으로 생각하면서 담담하게 답했다.

“알겠어.”

그녀는 새하얗고 부드러운 몸을 닦은 후 옅은 백색의 긴 치마로 갈아입었다. 그런 다음 그녀는 여우 가죽으로 안을 댄 외투를 걸치고, 후끈후끈한 침실에 앉아 잠시 책을 잃으며 점심까지 시간을 때웠다.

* * *

청지원의 명연 기녀가 연회를 크게 베풀었다. 그녀는 예닐곱 명의 기녀를 초청했는데 부향도 그중에 하나였다.

각양각색의 미녀는 제각기 자기만의 장기를 지니고 있었다.

예쁘다고 해서 다 기녀가 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예쁜데 재능까지 있으면 무조건 기녀가 될 수 있었다.

“듣자 하니 허 공자께서 황성에서 시를 한 수 지어 형부 손 상서를 신랄하게 비판했다고 하더라. 언니 동생들도 이 일은 들었지?”

부향이 술을 마시며, 어젯밤 연회에서 들었던 재미있는 일을 끄집어내며 한담을 나눴다.

“허 공자께서 또 시를 지었대?”

기녀 몇몇이 바로 관심을 보였다.

소아 기녀는 밤에 자리에 함께하여 이 일을 들었던 터라 바로 화제를 이어받았다. 그녀는 감복한 얼굴을 한 채 눈웃음을 치며 끼를 부렸다.

“허 공자께서는 재주가 출중할 뿐만 아니라 대담하기까지 하셔. 황성에서 형부상서를 정면으로 들이받아 그의 체면을 깎아 먹었다지.”

“그의 체면을 깎아내리는 데 그치지 않고, 이 시를 내놓았으니 손 상서의 명성은 아마도…….”

이 화제는 이쯤 해도 된다. 국영 기업의 접대원들이 장관들에 관해 함부로 논하는 건 별일 아닌 듯하면서도 별일이었다. 게다가 모두가 얕디얕은 정을 나눈 자매지간이라 믿음을 기반으로 한 교류는 불가능했다.

그래서 화제가 허칠안으로 넘어갔다. 자리에 있던 기녀 아가씨들 대부분이 허칠안의 시재를 탐냈다. 그의 몸이 어떠한지는 부향 말고 아는 사람이 없었다.

“부향 언니, 그 허 공자는…… 밤에 어떠한가요?”

기녀들이 슬며시 웃기 시작했다.

부향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에게 이런 말을 하게 하는 일은 불가능했다…….

정말 말을 꺼내기라도 하면, 이 요염한 물건들이 그 얘기를 밤에 다 퍼트릴 터였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다른 이들은 촌스럽게 명성을 더럽혔다면서 그녀를 비웃을 것이다.

부향은 이런 생각을 하니 마음이 동요했다.

부향은 이 모든 걸 마친 뒤, 아름답게 웃었다.

* * *

12월 29일, 오랜만에 일기를 쓴다. 예전의 일기는 내가 이미 태워 버렸다. 어째 허 모 씨도 정직한 자는 아닌 듯하다. 음, 오늘 원경, 나는 그래도 폐하라고 존칭한다. 불경죄를 저지른 증거를 남기면 안 되니 다 썼지만 며칠 지나고 태웠다.

폐하께서 내 죽을죄를 면해 주셨다. 듣자 하니 예부상서가 형부의 지하 감옥에서 형벌이 두려워 자살했다고 한다……. 허, 이는 모두가 원했던 결말이다. 그런데 왕 재상에게는 관대한 편이다. 그 대신 온 가족이 유배 가는 걸로 형을 받아 낸 덕에 전 재산을 몰수하는 일도 삼족을 멸하는 일도 당하지 않았다.

내가 위연에게 왜 불난 집에 부채질하지 않는지 물으니, 대를 끊는 건 군자가 하는 일이 아니라고 했다.

당신도 없으면서 군자는 개뿔, 위연은 괜찮은 사람이다.

* * *

12월 30일, 오늘은 서원에 신년을 보러 갔다. 신년이 나에게 산더미처럼 얘기했으니, 내가 핵심 내용만 뽑아 본다.

<이 머저리 같은 선생 놈들, 오늘은 책론(*策论) 시험, 내일은 시사(詩詞) 시험, 모레는 사서(四書)를 시험 본다. 당신이 시험을 치든지 그가 시험을 치든지 하는 건데 도대체 뭘 시험 치는 건가?>

보아하니 허신년은 학업 스트레스가 심해 견디기 힘들어하는 것 같다. 그는 고3 2학기 때의 내 상태에 놓인 것 같다…….

회상하고 싶지 않다. 그때는 내 인생의 암흑기다. 매일 시험을 봤고, 뭘 시험 보는지도 몰랐다.

* * *

12월 31일, 부향이 내게 점점 더 부드럽고 자상하게 대하는 듯하다. 이게 바로 전설 속에 나오는 시간이 지날수록 정이 쌓인다는 말인가? 안 된다, 안 돼. 나는 그녀를 며칠간 푸대접해야겠다. 내일 기녀를 바꿔야지.

* * *

1월 1일, 명연 낭자는 정말 최고다. 무예를 익힌 기녀답다.

그녀도 마찬가지로 나를 우러러보고 숭배한다.

* * *

1월 2일, 오늘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화본을 써서 영월에게 보여주기로 약속했다. 내 기억에 첫 시작은 이렇다. ‘예전에 흰 머리가 일찍 난 죽마고우가 있었는데…….’

* * *

1월 3일, 오늘 임안공주와 함께 뱃놀이를 했다. 임안공주는 여리면서도 교활하고 제멋대로다. 하지만 꾀를 부리지 않고 속이기 쉽다. 그녀는 나에 대한 믿음이 깊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서 황금 이십 냥 가치의 명화를 받아 내는 데 성공했고, 돌아서서 위 아버지에게 선물했다.

* * *

1월 4일, 오늘 회경공주와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상백 사건이 조당의 정세에 미친 영향을 얘기하던 중, 그녀가 나에게 시합을 청했다. 그녀는 뜻밖에도 연정경 전봉이었다……. 나는 뭔가를 발견한 것 같다. 모두가 알다시피 연정경은 순결을 잃으면 안 된다. 이 점은 남녀 모두 똑같다.

음, 내가 말하려는 일은 회경공주가 아니라 동정에 관한 문제다. 출가하지 않은 공주가 동정임은 당연지사고. 내 말뜻은 그녀의 타고난 자질로는 연정경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녀는 시집가지 않으려고 일부러 그러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 공주의 야심을 보았다. 만약 그녀가 내가 살던 시대에 태어났다면 틀림없이 포악한 여총재였을 테지.

* * *

1월 5일, 듣자 하니 내가 어제 장공주를 찾아간 일이 문제가 된 모양이다. 임안공주는 마치 남자친구가 바람을 피워 분노하기라도 한 듯한 얼굴을 하고, 나를 지칭하여 개자식이라는 등 배은망덕하다는 등 욕을 퍼부었다고 한다. 분명 얼마 전에는 내게 명화 한 점을 상으로 줬는데 말이다.

나는 그녀에게 장공주가 내게 백은 이백 냥을 하사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듣자마자 뜻밖에도 돈을 더 얹어 주었다……. 참 지혜롭다. 나도 그녀를 등쳐먹지는 않았다. 궁 안에는 제기가 없어서 내가 그녀에게 제기를 만들어 주었다. 여우는 아주 즐거워했으며, 나를 잡아끌고 해 질 무렵까지 놀았다. 정말 공허한 하루였다.

* * *

1월 6일, 허영음과 저채미를 데리고 계월루에 가서 밥을 먹었다. 무시무시한 두 여자는 은자 다섯 냥 어치를 먹어 치웠다. 나는 빈혈이 온 것 같았다. 그동안 왕래하면서 그다지 아름답지 않은 사실을 발견했다. 저채미는 올해 18세인데, 아직 사랑에 눈을 뜨지 못한 것 같다. 그녀는 애정 방면으로 아주 우둔하다. 내가 그녀를 힐끗 보면 얼굴이 빨개졌다가 돌아서면 까먹는다.

내가 충분히 잘생기지 않았거나 그녀가 아직 눈을 뜨지 못했거나 둘 중 하나인데, 내 생각에는 후자다. 나는 나보다 잘생긴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남궁천유와 신년은 예쁘지만, 잘생긴 건 아니다.

계속해서 노력해야겠다. 예전 경험이 내게 알려주듯이 만약 내가 좀 더 일찍 저채미를 꼬셨다면, 그렇게 많은 골칫거리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공주를 꼬시는 일도 마찬가지지만, 후유증이 너무 크다. 회경공주는 급(級)은 물론 난이도도 좀 높다. 반면 임안공주는 한번 시도해 볼 만하다. 하지만 그 끝은 아마 온 집안의 재산 몰수 및 참형이겠지?

어쨌거나 이 시대 스타일로 말하자면, 다 된 밥이 아니라 공주의 남첩(男妾)이라고 해야 한다. 인권은 어디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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