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타경-151화 (151/712)

151화. 천 리길 둑이 개미굴에 의해 무너지다

모두가 얼추 대화를 마친 듯 보이자, 허칠안은 눈을 가늘게 뜨고 붓 대신 손가락으로 문자를 보냈다.

[삼: 내가 궁금한 점이 있는데, 오호 자네는 은자를 줍는 것이 나라는 걸 어떻게 알았지?]

‘오호의 지능 지수로는 남을 속이기란 불가능하다. 다시 말해 그녀는 내가 은자를 줍는 이유를 정말로 안다는 뜻이다. 적어도 그 내막을 조금은 알고 있다는 뜻이겠지.’

이게 바로 허칠안이 간절히 알고 싶었던 부분이었다.

그는 자신의 기이한 운이 늘 신경 쓰였다.

[오: 나는 말할 수 없네. 약속했거든……. 다른 사람, 어느 누구에게도 누설해서는 안 되네. 설령 자네라 할지라도 안 돼.]

오호는 똑 부러지게 거절했다.

[삼: 등가 교환.]

[오: 교환하지 않을 걸세. 사람이란 본디 신용을 지켜야 해.]

‘어리석은 계집아이 같으니라고. 이 몸은 너를 블랙리스트에 올려놓고, 나중에 쓰레기 짓을 한 번 한 후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모르는 사람 취급할 거야. 믿든 말든 너에게 달렸어.’

허칠안은 속으로 비아냥거렸다.

사고를 전환해서 생각해 보면, 지금은 운영자인 금련 도사의 부상이 아직 낫지 않아 일대일 채팅 기능을 개시할 수 없었다.

그러니 확실히 묻기에 좋은 시기가 아니었다.

나중에 일대일 채팅이 가능해지면, 그는 다시 남강의 어리석은 계집아이 오호와 인생과 이상에 관해 제대로 대화를 나눌 것이다.

조작의 여지가 여전히 많았다.

* * *

어서방, 조례에서 원경제는 도포 차림으로 상석에 앉아 부윤 진한광이 올리는 상주(上奏)를 듣고 있었다.

그는 채시구에서 사람 머리가 여기저기 굴러다닌 일에 대해 노하지도 기뻐하지도 않고 담담히 반응했다.

“병부상서와 호부 도급사중의 직위에 대해 경들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원경제가 아무렇지 않은 듯 한마디 내뱉었다.

즉시 대신들이 앞으로 나서서 자기 사람을 천거했다.

원경제는 관리들이 진부한 말로 격렬한 논쟁을 벌이는 모습을 무표정하게 지켜봤다.

관리들은 공석이 된 실세 직위를 차지하고 싶어, 상대의 머리를 쳐내지 못해 안달이었다.

두 우두머리, 위연과 재상 왕정문도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지만, 그들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눈앞의 충돌이 갈수록 격렬해졌다. 성미가 조급한 몇몇 대신은 이미 소매를 걷어붙였다.

원경제가 탁자를 두드릴 때까지 논쟁은 지속됐다.

“상(尙) 경, 이부(吏部)상서로서 의견이 어떠하오?”

상현(尙賢)은 성큼성큼 걸어 나와 고개를 숙이고 읍을 올리며, 곁눈질로 재상 왕정문을 힐끗 쳐다봤다.

그는 티 안 나게 고개를 가로젓는 왕정문의 모습을 본 후에야 말했다.

“소신 황공하오나 생각해둔 인물이 없사오니, 폐하께서 지시를 내려 주십시오.”

원경제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 일은 다시 논하도록 합시다.”

과연…… 모든 대신들이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증오의 눈빛으로 서로를 쳐다봤다.

이때 위연이 대열에서 나와 우렁찬 목소리로 고했다.

“폐하, 소신이 아뢰겠사옵니다.”

원경제가 고개를 끄덕이자 위연이 말했다.

“동라 허칠안이 평양군주 사건에 혁혁한 공을 세웠으니 폐하께서 상을 하사하시길 청하는 바입니다.”

그는 어제 이미 상응하는 청을 대전(大殿)에 올렸다.

원경제는 사건의 경위는 물론, 동라 허칠안이 세운 공도 분명히 알고 있었다.

평양군주 사건을 다시 수면 위로 올리고, 항혜 승려의 행적을 발견하고, 나아가 시신까지 찾아낸 일 모두 그 동라의 공이었다.

하지만 원경제는 여전히 좀 망설여졌다.

그는 그 동라가 싫었다. 딱히 이유는 없었지만, 굳이 따져보자면 그자는 원경제에게 협조적이지 않았으며 어쩐지 편안하지도 않았다.

그는 그자를 보면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싫어하는 감정이 올라왔다.

그날 황성에서 그를 봤을 때, 그가 휘두른 칼에 땅이 갈라졌다. 그걸 본 순간, 영룡이 너무 놀란 나머지 앞으로 조금도 다가가지 못했다. 그 순간 원경제는 그를 미워하는 마음을 제어할 수 없었다.

위연이 말을 하려던 그때였다. 형부 손 상서가 갑자기 큰 소리로 말했다.

“폐하, 소신 아뢸 말씀이 있사옵니다!”

그는 대열에서 성큼성큼 걸어 나와 읍을 올린 다음 당당하게 말했다.

“소신 명을 받들어 상백 사건을 조사하며 연일 매우 공을 들였고, 한순간도 태만하지 않았습니다. 소신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요족과 결탁하여 안팎에서 음모를 꾸며 상백을 폭발시킨 인물은 대리사경 상언(常言)입니다. 폐하께서는 이자를 제거하시고, 소신에게 철저한 조사를 맡겨 주시길 바랍니다.”

대리사경 상언이 눈을 가늘게 뜨고 손 상서를 쳐다봤다.

그는 제당(齊黨)의 핵심 구성원 중 하나였다.

그리고 제당의 또 다른 핵심 구성원인 공부상서는 화약 건으로 이미 한 번 줄타기한 적이 있었다.

공부상서가 코웃음을 치며 걸어 나왔다.

“폐하, 형부에서 상 대인을 물어뜯고 모함하며, 함부로 죄를 뒤집어씌우고 있습니다. 소신은 예부상서도 마찬가지로 혐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부상서도 즉시 대열에서 걸어 나와 큰 소리로 외쳤다.

“소신 억울하옵니다!”

위연은 탄식했다. 그는 약간 실망스러웠다.

아니나 다를까 원경제는 말했다.

“상백 사건이 끝나지 않았으니 동라 허칠안이 계속해서 이 사건을 처리할 것을 명하겠네. 보름 기간 중 이미 절반이 지났으니 만약 진상을 밝혀내지 못한다면 짐은 원래대로 그의 목을 벨 것이야.”

“폐하!”

위연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읍했다.

“허칠안이 설령 사건을 해결하지 못할지라도 평양군주 사건에 공을 세운 사실은 변하지 않사온데, 어찌하여 사형에 처하신단 말입니까?”

모든 대신이 저도 모르게 위연을 쳐다봤다. 그들의 눈빛에서 각자 다른 감정이 엿보였다. 어떤 이는 위연의 불행을 즐겼으며, 어떤 이는 의아해했고 어떤 이는 쾌감을 느꼈다.

손 상서는 재상 왕당(王黨)으로서 겉으로는 대리사경을 공격했지만, 내심 위연에게 불의의 화살을 날렸다. 상백 사건 분쟁이 계속되는 한, 그 동라는 야경꾼 관아의 수석 수사관으로서 관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재차 수렁에 빠지는 셈이었다.

같은 맥락으로 대리사경도 용의자 딱지를 붙여야 했다. 사건이 해결되지 않으면 그 딱지를 뗄 생각은 접어야 했다. 평소에는 별일이 아니지만, 경찰 기간에 이런 큰 오점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었다.

그때가 돼서 팔법(*백성을 다스리는 통법) 안에 편입되면 그더러 손을 떼고 꺼지라고 할 수 있었다. 더는 쓸모가 없으니 상서 자리에서도 내려와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같은 왕당인 예부상서도 연루되었으니 하나를 얻고 둘을 잃어도 손해는 아니었다.

위연이 일개 동라에게 지나치게 관심을 보이지 않나? 모든 대신이 아주 예리하게 이 점을 포착했다.

따라서 그들은 형부 손 상서의 수작에 더욱 공감하였다. 비록 문관들의 암투가 격렬하긴 하지만, 문관 집단 최대의 적인 위연을 정신 못 차리게 하는 일이라면 그들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짐이 피곤하오. 다들 물러가시오.”

원경제는 손을 내저었다.

모든 대신이 일제히 읍하며 질서정연하게 어서방에서 물러났다. 대신들은 경계를 지키며 떠났다. 이내 그들이 오문을 나서자 분위기가 금세 확 달라졌다.

마치 한바탕 쇼를 한 것처럼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돌던 분위기는 사라졌다. 그 시간은 마침내 무거운 짐을 벗어버린 듯 끝을 맞이했다.

그들은 여전히 서로 적대적이긴 했지만, 어서방 안에서만큼 그렇게 과장스럽지는 않았다.

희끗희끗한 머리에 위엄이 풍기는 외모를 지닌 왕 재상은, 붉은 도포 차림을 한 채 미소 띤 얼굴을 위연에게로 향했다.

“위 공은 그 동라를 아주 많이 신경 쓰는 것 같더군. 공교롭게도 큰 공을 세우다니, 정말 보기 드문 인재일세.”

위연이 온화하게 웃으며 말했다.

“안타깝게도 사람 구실을 못 합니다. 미움을 사면 안 되는 사람의 미움을 샀지 뭡니까.”

왕 재상이 깜짝 놀랐다.

“위 공은 어찌 그런 말을 하는가. 우리가 종묘사직을 위해 바친 인재는 응당 보호해야지, 어찌 도중에 요절하게 할 수 있단 말인가? 만일 위 공이 지켜 내지 못한다면, 본관이 대신 수고하게 해 주시게.”

위연이 그를 빤히 쳐다봤다. 그는 여전히 온화한 표정으로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은 채 말했다.

“재상 대인께 폐를 끼칠 수는 없지요.”

* * *

위연은 마차를 타고 관아로 돌아와 하급 관리에게 명령을 전했다.

“허칠안에게 나를 보러 오라고 전하거라.”

그때 허칠안은 마침 연무장에서 주광효 그리고 송정풍과 격투하며 검술을 연마하는 중이었다.

“송 형, 최근에 교방사 안 갔나? 기운이 예전보다 훨씬 깊어졌네.”

허칠안이 두 동료의 합동 공격을 막아내면서 그들을 놀리기 시작했다.

“녹봉을 대체로 교방사의 여인들을 먹이는 데 쓰던데, 절제를 몰라.”

주광효가 나지막이 말했다.

“칠안, 오늘의 그는 미래의 자네야. 본보기로 삼아야 하네.”

젊은 남자 셋 중에는, 죽으라고 일에 매진하는 주광효가 가장 절제할 줄 알았다. 그렇다고 금욕하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그는 돈을 모아 장가를 가고 싶어 했다.

허칠안과 송정풍은 신공표(*申公豹: 《봉신연의》에 나오는 인물로 도제 제도를 따르지 않는 선계의 이단아)를 가장 좋아했다. 허칠안은 여색에 빠져 있었고, 송정풍은 세상에 얽매이지 않은 채 자유롭게 살고 있었다.

연정경에 이르면 무사는 금욕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그래도 결국에는 절제해야 한다. 천 리길 둑이 개미굴에 의해 무너지고, 백 번의 전투를 치른 자는 혈이 부족한 법이다.

이때, 검은 옷의 하급 관리 하나가 황급히 뛰어와 연무장 가장자리에 멈추더니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허 대인, 위 공께서 부르십니다.”

* * *

호기루 7층의 다실 안, 위연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반듯한 자태의 허칠안이 진중한 걸음을 내딛으며 들어와 읍을 올렸다.

“위 공.”

위연은 마침 차 한 잔을 따라 맞은편에 두었는데 손을 들어 지시했다.

“앉게.”

허칠안은 어색하게 앉아서 형식적으로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위연을 주시했다. 그는 위연이 자신을 부른 이유가 평양군주 사건 때문이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평양군주 사건은 끝났으나 상백 사건은 계속해서 조사해야 하네. 폐하께서 내 제의를 부정하셨네.”

위연은 차를 마시며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어조로 말했다. 그는 마치 시시콜콜 수다 떠는 듯 편하게, 어서방에서 발생한 일을 허칠안에게 얘기했다.

허칠안은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형부 손 상서와 호부시랑 주현평과는 오랜 친분이 있는데, 처음부터 저를 싫어했죠…….”

위연은 크게 손을 내저으며 불쾌하다는 듯 그의 말을 잘랐다.

“이런 건 다 작은 일일세!”

그는 다소 한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폐하께서 자네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큰일이지.”

허칠안의 낯빛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참 공교롭다. 나도 그가 싫다. 제사 지낼 당시, 도포 차림인 원경제를 보고 좀 역겹다고 생각했지.’

당시에 그는 상대가 봉건 황권을 대변하기 때문이라고 짐작했다. 하지만 그도 나중에 영룡 사건을 겪으며 가까운 거리에서 접해 보니 원경제를 향한 자신의 혐오감이 상당히 순수한 감정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다른 이유 없이 오직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혐오감이었다.

‘아마도 나와 늙은 황제의 사주팔자가 상극인가 보군……. 나는 원숭이 띠고 그는 양 띠인가?’

허칠안은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소직의 어느 점이 폐하께 미움을 산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호감이 가지 않으신 게지.”

위연이 미간을 문지르며 말했다.

“자네는 우선 마음을 놓고 기다리시게. 조사하러 갈 필요도 없네. 지금까지 모은 모든 단서는 이미 전부 지워 버렸네. 자네는 아무것도 찾아낼 수 없을 게야. 기한이 지난 후에 폐하께서 굳이 자네의 목을 베겠다고 하시면, 내가 자네 대신 사형수를 안배하겠네. 하, 걱정 말게. 일개 동라의 신분에 특별히 관심 가지는 사람은 없을 걸세.”

‘그런 후에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빛을 보지 못하는…… 네 졸개가 되겠군.’

허칠안이 말했다.

“만약 주적웅을 잡을 수 있다면요?”

위연이 웃었다.

“이 일을 평정하는 것이지.”

그는 거듭 고개를 가로저으며 실소를 터뜨렸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