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화. 삼호의 콘셉트가 무너지다?
허칠안은 항원을 보낸 후 춘풍당으로 돌아왔다. 부아의 여청 등 포졸들은 관아에 오지 않았다. 허칠안이 평양군주 사건으로 공을 세워 죄를 면할 가능성이 높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송정풍과 주광효는 편청에서 좌선을 하고 있었고, 이옥춘은 물건을 정리하고 있었다. 모든 진열품 하나하나가 질서정연하게 놓여 있어야 했다.
“대장, 제가 돕겠습니다…….”
“아니, 가만히 있게.”
이옥춘이 황급히 외쳤다.
“내가 하겠네. 나 혼자 해도 충분하네.”
허칠안은 한가로이 탁자에 앉아서 말했다.
“사건이 끝나면 같이 교방사에 가서 술 한잔해요. 제가 모두에게 한턱내겠습니다.”
“교방사라…….”
이옥춘은 망설였다.
“대장, 여태껏 교방사에 가본 적 없는 건 아니겠죠?”
허칠안은 맹점을 발견하곤 야릇한 눈짓을 보냈다.
‘이 시대에 신분이 있고 지위가 있는 남자가 교방사에 가본 적이 없다니…….’
이는 허칠안 전생의 여자 박사가 여전히 동정이고, 서른 살의 남자 박사가 단 한 번도 손으로 자위를 해본 적이 없다고 말하는 것만큼 보기 드문 일이었다.
전 세계를 통틀어서도 보기 드물었다.
“온통 뒤죽박죽인 그곳에 왜 가는 것인가?”
이옥춘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 세 사람이 오늘 오시에 참수당한다고 하는데, 구경하러 갈 텐가?”
허칠안이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안 갈 겁니다. 저는 그런 장면을 견디지 못합니다.”
이옥춘은 의혹의 눈초리를 보냈다.
대봉에서 목을 베는 일은 실로 정상적이었다. 경찰 기간에 한 무리의 관리가 채시구, 즉 형장에 이끌려 가 참수당하는 건 둘째 치고, 일반 백성들은 추수 후에 사형수들이 참수당하는 일에도 이미 충분히 익숙해져서 세 번째면 밥을 먹으면서 지켜보는 지경이었다.
심리적 압박감이 전혀 없었다.
“어쨌든 저는 안 갑니다.”
허칠안이 말했다.
수백 명이 참수당하는 현장은 허칠안에게 있어 너무 큰 충격이라 잠을 이루지 못할 터였다. 이도 그나마 그가 몇 년간의 형사 경력이 있고, 피비린내 나는 살인사건 서류들을 많이 봐서 그렇지, 보통 사람이었다면 트라우마로 남을 것이 분명했다.
* * *
오시, 채시구.
형을 집행하는 집행대에 백여 명의 사람이 꿇어앉아 있었다. 가장 맨 앞줄에 있는 두 명은 병부상서 장봉과 그의 자제 장역이었다.
흰 죄수복을 입고 검은 천으로 눈을 가린 그들은 눈앞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주위에는 천 명이 넘는 백성들이 모여 있었고, 여섯 겹으로 둘러싸 지켜보았다.
비록 백성들 눈에 참수당하는 자들이 모두 극악무도한 살인범이라 한들, 결코 모든 사람이 잔인하고 피비린내 나는 광경을 좋아하는 건 아니었다. 조정에서 ‘구경’하는 일에 반강제 반 장려 정책을 취하고 있는 게 주된 이유였다. 어떤 이들은 어쩔 수 없이 강요에 의해 보러 온 것이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조정의 위엄을 세우고 백성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참(斬)!”
집행관이 해시계를 보더니, 영첨(令簽)을 내던졌다.
죽음이 다가오자, 눈을 가리고 있던 친척들이 욕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들은 병부상서 장봉이 사람 잡는다며 귀신이 돼서라도 그를 놓아주지 않을 거라고 욕설을 마구 퍼부었다.
망나니가 도살용 칼을 추켜드니, 사람 머리가 하나하나씩 굴러떨어졌고, 선혈이 사방으로 튀었다. 외곽을 둘러싸고 있는 백성들조차 이 짙은 피비린내를 맡을 수 있었다.
이후 두 무리의 사형수들이 참수당했다. 평원백과 손종명의 가솔 및 친척들이었다.
군중 밖에 서 있던 항원 승려는 말없이 발길을 돌려 떠났다.
그는 두 가지 이유로, 형 집행 현장을 보러 온 바였다.
첫째는 사제 항혜 대신 인과를 달성하기 위해서였다. 일부러 원수가 참수당하는 모습을 보러 온 것이다. 둘째는 앞으로 마음의 마귀가 자라지 않도록 자신의 집념을 버리기 위함이었다.
항혜는 그가 손수 키운 사제로 동생이자 아들이었다. 치러야 할 죗값을 치렀으니 이 일은 이걸로 끝이었다.
* * *
“신수 대사…… 깨어나셨습니까?”
편청.
허칠안은 연기를 토납하며 신수 대사를 불렀지만, 여전히 그 고승의 대답을 듣지 못했다.
‘그는 마치 내 생각을 감지할 수 있는 것 같다. 불문의 타심통(他心通)인가? 타심통은 기억을 읽을 수는 없을 거야. 어떻든 간에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깊은 잠에 빠져있군. 좋은 일이다.’
허칠안이 마침 생각에 잠겨있는데, 가슴에서 진동이 울렸다. 동료 둘이 눈을 감고 토납을 하고 있었으므로, 그는 안심하고 옥석경을 꺼내 전서를 쭉 훑어봤다.
[육: 여러분, 나는 무사하네. 염려해주어 고맙네.]
[오: 육호 정말 육호인가? 야경꾼이 가장한 건 아니겠지?]
오호가 앞장서서 의문을 제기했다. 언뜻 보면 조심스럽고 신중한 것 같았지만 사실은 가장 어리석었다.
[사: 하, 만약 가짜라면 금련 도사가 진작에 우리에게 미리 경고해 주었을 것이네. 오호, 자네가 생각해야 할 건 육호가 야경꾼과 비밀리에 손을 잡았는지야.]
‘사호는 역시 지식인 출신다워. 그리고 큰 벼슬을 지낸 적이 있으니 사고가 예리해.’
허칠안은 쯧쯧댔다.
[오: 그럼 육호 자네 그들과 손잡았나?]
[육: 빈승은 잘 있네. 삼호와 금련 도사께 위험에서 구해준 은혜에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네.]
[구: 고마워할 필요 없네. 자네 사제는 자네를 죽일 마음이 없었어.]
[사: 상백 사건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허칠안은 상황을 관찰하며 잠시 기다렸고, 일호의 전서를 기다리지 않고 문자를 입력했다.
[삼: 상백 사건은 마무리됐으나 마무리되지 않았네.]
[사: 과연 그러하군.]
[오: 무슨 뜻인가? 뭐가 과연 그렇다는 거지? 상백 사건은 어째서 마무리됐으면서 마무리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는 건가?]
[사: 하, 아무래도 삼호에게 설명하라고 하는 것이 낫겠군. 그가 나보다 더 잘 설명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네.]
허칠안은 망설이다가, 사호의 부담을 이어받아 문자를 입력했다.
[삼: 간단해. 상백 사건의 진정한 목적은 평양군주 사건을 끌어내기 위함이었어. 항혜가 봉인물을 지닌 채로 내성에서 큰 소동을 벌이고, 평원백부를 전멸시킨 것이 가장 확실한 증거지.
오늘 오시, 그 사건에 연루된 관리 셋의 삼족을 멸했네. 채시구에서 참수당했지. 평양군주 사건은 이미 끝났지만, 배후에 있는 주모자는 그 목적을 달성했어. 그들은 아마 곧 봉인물을 챙겨 경성을 떠날 것이고, 그럼 이 풍파도 끝난 셈이지.
하지만 상백 사건 그 자체는 아직 끝나지 않았네.]
‘알고 보니 이런 거였군.’
오호는 문득 깨닫고는, 별안간 삼호의 등에 칼을 꽂았다.
[오: 삼호, 자네는 사기꾼이야. 매일 은자를 줍는 사람이 바로 자네이지 않은가.]
허칠안은 깜짝 놀랐다.
‘내가 언제 속였어? 정말 속인 적이 있다 해도, 그건 운록서원 콘셉트라고. 설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콘셉트가 망가졌나? 그럴 이유는 없는데. 더욱이 오호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와서는 안 되지. 일호나 육호가 비난해야 경우에 맞는 거지. 아무리 그래도 먼 남강에 있는 여자아이가 할 말은 아니야.’
그는 지서 파편을 움켜쥔 채로 중얼거리며 대답하지 않았다.
천지회의 다른 구성원들도 아무 말 없이 사태를 관전할 뿐이었다.
‘삼호가 사기꾼이라고? 그가 바로 은자를 줍는 사람이라니. 오호가 이 일을 어떻게 알았을까? 그 둘은 교류가 잦지 않았는데 말이야. 다시 말하면 삼호가 과거에 했던 발언 중에서 허점을 틀어쥐었다는 소린데. 그런데 무슨 허점이 있다고 해도 다른 사람이 알아냈겠지, 오호가 발견했을 리는 없는데…….’
사호는 이런 생각을 했다.
‘삼호는 성정이 어질고 마음이 따뜻한 좋은 사람이야. 모든 사람은 각자만의 비밀이 있는 법. 오호는 정말 어리석은 사람이야…….’
이호는 이렇게 생각했다.
‘삼호가 줄곧 은자를 주웠다니, 줄곧…….’
항원 승려는 일시적으로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랐다.
일호는 아무 말 없이 웃으며 조용히 염탐했다.
이때 금련 도사는 고양이 눈을 편안히 감은 채, 용마루에 엎드려 햇볕을 쬐며 축 늘어졌다.
오호는 사람들을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았다.
그녀는 삼호가 한 말이 진실하지 않다고 매섭게 비난했다.
[오: 자네가 말했던 자주 돈을 줍는 친구가 바로 자네 아닌가? 내가 물어봤네……. 내 정보는 정확해.]
허칠안은 말이 없었다.
[오: 네네, 할 말이 없으시겠죠.]
‘너도 오타쿠니?’
허칠안은 입을 삐죽거리며 한숨을 돌렸다. 맞다. 그는 속였다.
하지만 이런 일은 속였는지 속이지 않았는지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예를 들어 송정풍은 ‘나한테 몸이 안 좋은 친구가 있는데…….’라는 말을 자주 한다.
모두가 그 친구가 본인이라는 걸 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거짓말을 했다며 나무라는 사람이 있었던가?
아니나 다를까, 지서 채팅방에서 오호에게 호응하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가 제 나름대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삼호가 정말 부럽다. 매일 외출할 때마다 돈을 줍는다니…… 이 몸은 녹봉과 보급품을 주지 못할 지경인데 말이야…….’
이호는 진심이었다.
‘알고 보니 매일 돈을 줍는 게 삼호였구나. 음, 애초에 빈승이 의심한 적이 있었지……. 만일 빈승이 매일 돈을 주울 수 있다면, 더 많은 무의무탁자(無依無托者)를 구제할 수 있었을 텐데…….’
육호는 매우 부러워했다.
‘은자를 줍는 게 삼호 자신이라니. 어떤 사람이어야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은자를 주울 수 있을까? 운록서원의 유가 체계에 이런 신기한 부분이 있었던가…….’
사호는 깜짝 놀라며 어떤 가능성이 떠올라 서둘러 문자를 보냈다.
[사: 삼호, 언제 이런 현상이 나타났나?]
허칠안이 약간 주저하더니 대답했다.
[삼: 약 한 달여 전이네.]
그는 일부러 시간을 좀 줄여서 얘기했다.
혹여라도 누군가 나중에 이걸 근거로. 그가 세은 사건이 끝난 후에 이상한 모습을 보였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사호는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그는 황당하고 대담한 추측이 떠올랐다. 그래서 그는 온몸에 전류가 흐르는 것 같이 부들부들 떨었다.
그가 잘못 기억하는 게 아니라면, 운록서원에서 청기가 충천했던 기이한 현상도 한 달여 전에 발생했을 터였다.
그때는 삼호가 아직 천지회에 합류하지 않았을 때였다.
그래서 금련 도사가 천지회 내부의 일호에게 진지하게 조사를 의뢰했다.
모두가 알다시피 삼호는 유가 서원의 학자로 남들과 지극히 다른 면이 있다.
바로 삼호가 운록서원의 고위층만 아는 비밀을 지나칠 정도로 많이 알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는 실력이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그곳에 지나치게 많은 자원이 쏠려 있었기 때문에 그런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사호는 예전 지식인으로서 이런 상황이 좀 이상하다는 걸 진작에 감지했다.
물론 사호는 삼호의 운록서원 서생 신분을 의심하지는 않았고, 그저 그의 대우가 다소 과장됐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만약 삼호와 운록서원의 청기 충천 사건이 연관됐다면?
그렇다면 운록서원의 고위층에게 인정받는 편이 합리적이지 않나?
‘그런데 은자를 줍는 일과 청기 충천은 무슨 관련이 있는 거지…….’
사호는 이해하지 못했다.
‘보아하니 짬을 내서 경성에 한 번 다녀와야겠군. 조위 원장을 만나 봐야겠어.’
사호는 연말 전에 경성에 돌아가야겠다고 남몰래 마음먹었다.
사호는 이렇게 생각하니 삼호의 비밀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듯했다.
그래서 사호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문자를 보냈다.
[사: 재미있군. 내가 전에는 삼호를 과소평가했네. 보아하니 자네의 가치와 잠재력을 다시 평가해야 할 것 같구먼.]
‘사호는 삼호가 수시로 은자를 줍는 이유를 아나? 그 배후의 원인이 어떤 중대한 기밀과 관련된 일인가……? 그렇지 않으면 사호가 이렇게 평가할 리가 없다…….’
오호를 제외한 다른 이들은 사호의 말이 심상치 않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