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화. 항원을 심문하다
야경꾼 관아, 지하감옥.
용의자 신분인 항원은 다행히도 모진 고문을 당하지는 않았다. 다만, 막 왔을 때 옥졸에게 채찍 두 번을 맞았는데, 그 이유는 구두쇠도 그처럼 이렇게 깨끗할 수는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털어서 먼지 하나 나오지 않는 얄미운 승려였다.
그때 감옥 문이 열렸고, 옥졸이 가쇄(*枷鎖: 죄인의 목에 씌우던 칼과 발목에 채우던 쇠사슬)를 쓰고 있던 훤칠한 승려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대인께서 물으실 말이 있다고 하니 나오거라!”
항원은 눈을 뜨고 일어나 옥졸을 따라 심문실에 왔다.
다소 어두운 심문실에는 남성적이고 준수한 외모의 동라가 늠름하게 의자에 앉아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
항원은 이 동라를 알고 있었다. 당초 열성적인 삼호가 그의 잠복을 도와 수색을 피했을 때, 이 동라를 본 적이 있었다. 그때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용마루에 서서 손을 칼자루 대고 있던 그의 모습은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겼는데 한눈에 봐도 뛰어난 인재였다.
“대사, 앉으십시오. 본관이 몇 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허칠안은 말하면서, 네모난 얼굴에 이목구비가 호방한 승려를 자세히 살폈다.
언뜻 보면 경솔한 사내 같아 보였지만, 자세히 관찰해보면 밝고 냉정한 눈빛과 생각이 깊고 내성적인 기질이 엿보였다.
항원은 두 손을 합장하고 예를 갖춰 인사한 뒤 앉았다.
“성명.”
허칠안은 고개를 숙여 차를 마시며 물었다.
“승려는 이름이 없습니다. 소승 항원입니다.”
“나이.”
“서른.”
허칠안은 깜짝 놀라 머리를 들어 그를 한 번 쳐다봤고, 개그 하나를 떠올렸다.
<아저씨, 어쩜 이렇게 젊음을 잘 유지하셨어요?
밤을 새웠거든.
그럼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시나요?
스물.>
‘항원은 마흔 중반, 오십에 가까워 보였는데……. 당신도 매일 밤을 새운 겁니까?’
허칠안은 속으로 비아냥거리며 심문을 이어갔다.
“출신.”
“청룡사 무승입니다.”
“수행품계.”
“8품 무승입니다.”
허칠안은 미간을 찌푸리며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렸다.
“잔꾀 부리지 마십시오.”
‘일개 8품 무승이 한밤중에 평원백부에 쳐들어가 사람을 죽이고, 아주 쉽게 연기경 동라 두 명에게 중상을 입히고, 자신은 어떠한 상처도 입지 않은 채 훌쩍 떠날 수가 있다고?’
항원이 나지막이 말했다.
“소승, 정말로 8품 무승입니다.”
‘8품 무승이라……. 내가 기억하기론 불문 수련 체계에 이상한 점이 하나 있는데, 9품 사미의 상위 품계가 7품 법사로, 8품 무승은 바로 건너뛴다는 거다.
설마 불문에 두 체계가 있는 건가? 기왕 두 체계가 있다면, 왜 또 하나로 합치려고 하는 걸까? 무승의 상위 품계는 무엇인가?’
허칠안은 마음속의 의혹에 대해 물었고, 항원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청룡사에는 상응하는 절학(絶學)이 없습니다. 서역행을 해야만 알 수 있지요.”
‘서역행을 해야만 알 수 있다고? 그럼 관아의 서고에도 관련 기록이 없겠군. 모두 대수롭지 않은 작은 문제이긴 해…….’
허칠안은 말을 이었다.
“항혜는 이미 입적했고, 평양군주의 유골도 찾아 폐하께서 오늘 고지를 내리셨습니다. 평원백, 병부상서 장봉과 호부 도급사중 손종명 세 사람은 종친을 음해한 죄로 삼족을 멸한다고 합니다. 이제 안심하셔도 됩니다.”
“아미타불.”
항원이 눈을 감고 낮은 목소리로 읊었다.
“본래 대사께선 우연히 이 사건에 잘못 엮이신 것뿐이니, 야경꾼도 대사께 어떠한 책임을 묻지 않을 겁니다. 허나 본관에게 이게 무슨 물건인지는 설명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허칠안은 품속에서 옥석경을 꺼내 쾅 하고 탁자에 내려놨다.
이 옥석경은 우물 아래에서 찾은 것으로, 항원이 가지고 있던 육호 파편이었다.
항원의 시선이 옥석경을 향했다. 이건 그가 우물 밑에 떨어뜨린 물건이었다. 항혜와 충돌하는 과정에서 뜻하지 않게 품속에서 떨어졌던 것이었다.
뒤이어 항혜의 이야기를 듣고, 그가 앉은 채로 죽는 걸 보면서 마음이 비통하여 지서 파편을 고려하지 못했다.
그 후에는 야경꾼들이 왔고, 자신이 지하 감옥에 들어갈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야경꾼들이 수색하다가 거울을 발견할까 봐 우물 밑에 두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이라 여겼던 것이었다.
항원은 만약 감옥에서 벗어날 기회가 오면, 다시 돌아가 지서 파편을 챙기거나 금련 도사에게 부탁할 요량이었다.
그것이 결국에는 야경꾼 손에 들어가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허칠안은 항원을 주시하며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옥석경은 위연이 오늘 아침에 그에게 건네준 물건이었다. 다른 분부는 하지 않았지만, 허칠안은 위연이 그의 손을 빌려 지서 파편을 육호에게 돌려주고자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승려는 오랫동안 침묵을 지켰고, 허칠안은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느릿느릿하게 말했다.
“이 거울은 우물 아래에서 발견한 것이니 대사의 것이거나 항혜의 것이겠지요. 그것의 진짜 이름은 지서이고요.”
항원이 갑자기 고개를 들어 그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허칠안은 웃으며 자신만만한 어조로 말했다.
“세상에 그것의 존재를 모르는 자는 많습니다. 허나 저희 야경꾼은 포함되지 않지요.”
항원은 다시 고개를 숙이고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
“이건 빈승의 것입니다.”
“이건 도문 지종의 법보(法寶)라고 알고 있는데, 어찌하여 스님이 가지고 계셨던 겁니까?”
항원이 대답했다.
“빈승은 우연히 인연이 닿아 이 법기를 얻게 됐습니다. 대인께 돌려주시길 청합니다.”
허칠안은 고개를 저으며 옥석경을 거둬들였다. 그러고는 손에 두고 만지작거리며 웃더니 말했다.
“대사, 본관이 생각하기엔 이뿐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만? 도문 지종의 법보를 우연히 인연이 닿았다는 한마디로 설명할 수 있단 말입니까? 대사께서 허심탄회하게 유용한 말씀을 해주신다면, 본관도 바로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대사께서는 남은 반평생을 야경꾼의 지하 감옥에서 보내셔야 할 겁니다.”
항원은 잠시 침묵하더니 몸을 일으켜 가려 했다.
허칠안이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어디 가십니까?”
“빈승 지하 감옥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육호 인품이 그런대로 괜찮군. 천지회를 팔지 않았어. 물론, 고문을 당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지. 하지만 이건 내가 원하는 그림이 아닌데.’
허칠안은 나지막이 말했다.
“단지 법보일 뿐이라면, 대사께서 이러실 이유가 있습니까? 세상에 자유보다 더 귀한 것이 있습니까?”
항원이 몸을 돌리지 않은 채 말했다.
“대인께서는 빈승에게 가쇄(*枷鎖: 죄인의 목에 씌우던 칼과 발목에 채우던 쇠사슬)를 다시 채워주십시오.”
허칠안은 기록을 담당하는 하급 관리를 보고 말했다.
“자네는 먼저 나가있게.”
하급 관리는 종이와 붓, 벼루를 챙겨 심문실을 떠났다.
허칠안은 목을 가다듬고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대사, 앉으세요, 앉으세요.”
그는 몸을 일으켜 항원의 팔을 끌어당기며 공손한 자세를 취했다.
항원은 아무 생각 없이 탁자로 돌아와 앉았고, 태도가 180도로 변한 이 동라를 쳐다봤다. 무슨 심산인지 종잡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대인, 소생은 아무것도 모릅니다. 지서는 정말 공교롭게 인연이 닿아 얻은 것입니다.”
항원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이렇게 꽉 막힌 채로 얘기하지 마. 출가한 사람은 거짓말하지 않잖아. 이따가 난감해질 거라고!’
허칠안은 웃는 듯 마는 듯 넌지시 말했다.
“대사께서는, 천지회 육호이지요?”
항원은 눈을 크게 뜨고 놀라면서도 멍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담담했던 기색이 사라지더니 표정엔 적개심과 경계심이 가득 들어찼다.
그는 마치 허칠안이 천지회에 불리한 신호를 내비치기만 해도 목숨 걸고 이 동라를 손바닥으로 때려죽일 것 같은 모습이었다.
허칠안은 목소리를 낮추고, 지하에서 접선하는 듯한 말투로 탁자 위로 몸을 기울이며 말했다.
“소생 허칠안, 운록서원에서 야경꾼 관아에 심어 놓은 첩자입니다.
지서 파편은 관아에서 찾은 것이 아니라 제가 우물 밑에서 건져 올린 것이며, 제가 사람들을 이끌고 두 분을 찾은 것입니다. 또한, 이 모든 것은 삼호가 명령을 내려 제가 수행한 일이며, 그는 제 상급자입니다.”
‘삼호?!’
항원은 깊은 충격에 빠졌는데 눈앞에 있는 동라의 말을 바로 부정하고 의심하지는 않았다. 이 순간 무언가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삼호는 운록서원의 서생으로, 그가 운록서원에서 조정 각 관아에 사람을 심어 놓았다는 정보를 한두 번 흘린 것은 아니었다. 조정의 유가를 관장하는 정통 학원으로서 이런 행위는 실제로 지극히 정상이지…….
상백 사건이 발생한 후에 삼호 역시 천지회 내부의 전서에서 상백 사건의 자세한 내막을 언급한 적이 있었다. 야경꾼 관아에 정말로 운록서원의 첩자가 있을 줄이야…….
하지만 삼호가 내 위치를 어떻게 안 것이지? 맞다, 금련 도사께서 우리 모든 이들의 신분을 알고 있지. 당시에 항혜와 내가 같이 있었으니 금련 도사께서는 분명 항혜와의 충돌을 피하려 했을 테고, 그렇다면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했을 것이다. 야경꾼에서 상백 사건을 담당하고 있고, 야경꾼 관아 내부에 첩자를 심어 놓은 삼호가 도움을 청하기 가장 적합한 대상이었을 터.
내가 또 삼호에게 목숨을 하나 빚졌군. 삼호는 지식인답게 의협심이 강하고 의리 있다. 믿을 만한 친구야. 이번 빚은 앞으로도 갚기 어려울 것 같군.’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항원은 심호흡을 했다. 허칠안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경계심과 적개심이 사라졌다. 그가 부드러운 어조로 물었다.
“삼호가 또 무슨 얘기를 했습니까?”
“그가 말하길 춘시가 곧이라 운록서원을 벗어날 수 없어, 앞으로 만약 비슷한 문제를 맞닥뜨리면 도울 수 있는 여유가 없을 가능성이 많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본관에게 대사님과 접촉해 보라고 지시한 것입니다. 앞으로 도움이 필요하시면 얼마든지 저를 찾아오셔도 됩니다.”
허칠안은 마음속으로 한 마디 덧붙였다.
‘도움이 필요하면 나 역시 대사를 찾아갈 수 있고, 또 삼호의 신분을 노출할 일도 없다. 적어도 당분간은 그렇다. 지금의 그는 얼마간은 자신을 노출하고 싶지 않을 테니까. 첫째로 앞서 했던 잘난 체는 과장된 부분이 없지 않아, 천지회 구성원들이 모두 그는 운록서원에서 제일가는 엘리트이자, 학식이 풍부한 재자(才子)로 여기고 있으니까.
결국 삼호가 일개 동라일 뿐이란 걸 알게 되겠지만.
둘째로 무릇 모든 일에는 여유를 두어야 한다. 진짜 신분을 드러내지 않는 건 매우 큰 여지를 남기고, 조작할 공간을 많이 확보하는 것과 다름없다.
어쨌든 육호 항원에게는 내가 야경꾼이든 운록서원의 서생이든, 큰 차이가 없다. 내가 그를 속여 필요한 것만 얻으려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항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준수한 외모에 비범한 기세를 가진 동라가 건넨 지서 파편을 받아들며 말했다.
“앞으로 소승의 도움이 필요하시면 대인께선 얼마든지 말씀하십시오.”
허칠안은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대사, 제가 지금 바로 모시고 나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