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타경-148화 (148/712)

148화. 원숭이와 비밀

“왜 저를 선택하려 하십니까?”

허칠안이 물었다.

“누군가 저를 당신이 있는 곳으로 데려왔습니다.”

젊은 승려가 말했다.

“우리는 같은 부류의 사람이니까요.”

“뭐가 같은 부류의 사람이라는 겁니까? 대사께 가르침을 청합니다.”

“제 본능이 그렇게 느낍니다. 그 이상은 기억나지 않습니다.”

‘기억나지 않는다라…….’

허칠안은 입을 삐죽거리더니 다시 물었다.

“누가 대사님을 데리고 온 것입니까?”

젊은 승려는 화면을 구현해냈다. 화면에는 검은 옷을 입고 도포에 달린 모자를 쓴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비단 주머니 하나를 펼치더니, 매우 정중하게 단수를 그 안에 넣었다.

비단 주머니에는 하얀색 동물이 수놓아져 있었다. 그 형상이 마치 여우 같았는데, 민첩하고 예뻤으며 등 뒤에는 병풍 같은 흰 꼬리가 달려있었다.

‘여우, 병풍 같은 여우 꼬리…… .구미호? 음, 교방사 회색 여우의 자백에 따르면 상백 사건에 가담한 것은 바로 만요국 잔당. 그리고 만요국 원락(隕落)의 여황(女皇)이 바로 구미호? 씁, 만요국 사람이 내가 있는 곳으로 단수를 데리고 온 것이군. 왜일까? 그들이 나를 주시하기 시작했다.’

허칠안은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걱정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 * *

눈을 뜬 허칠안은 자신이 차디찬 바닥에 누워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옅은 달빛이 적막한 방에 한 줄기 희미한 빛을 비추는 중이었다.

그는 탁자 옆으로 와 등잔에 불을 붙인 후, 등잔을 들고 구리거울 앞으로 갔다. 거울 속에 비친 그의 얼굴은 야성미가 넘치는 상태였다. 입가에 말라붙은 핏자국을 부드럽게 닦아내니 상처가 남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도리를 지키지 않는 원숭이 신수 승려에 의한 상처는 이미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물시계가 인시 일각(*새벽 3~5시 15분)을 가리켰다.

허칠안은 구리거울 앞에 앉아 확산적 사고를 펼치며, 자신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따져봤다.

목전의 문제는 그가 어떻게 단수를 처리해야 하는지였다.

‘이 일을 위 공에게 알려야 하나?’

‘위연이 나를 높이 사는 건 맞지만 내가 그의 친아들은 아니니 아무리 총애한다 해도 한계가 있어. 게다가 이 일은 상백의 봉인물과 관련되어 있으니…….

그가 만약 나 대신 단수를 빼낼 수 있다면 문제는 없다. 만약 불가능하다면 그는 나를 감싸줄까, 아니면 나도 함께 상백에 봉인시킬까?’

‘게다가 나는 일개 연기경 동라일 뿐인데,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은 채 오백 년 동안 죽지도 않는 건 불가능하다.

감정은 분명 나 대신 단수를 빼낼 수 있겠지? 어쨌거나 1품 술사이니까. 문제는 나는 그와 전혀 친분이 없다는 것이다……. 허칠안아, 허칠안. 너 또 타락하여 부향의 따뜻한 품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했구나. 저채미가 네가 들이대길 기다리고 있다는 걸 잊은 거야? 진작에 사천감의 사위가 됐으면, 감정은 네 사람이 됐을 텐데.

감정 이 늙다리가 나의 기이한 운명을 알고 있고, 나는 그를 무조건 신뢰할 수는 없다. 그가 암암리에 무언가를 계획하고 있기 때문이겠지.’

그리고 또 하나 요원한 문제가 있었다.

만요국이 천신만고 끝에 봉인물을 내보낸 것이니, 그에게 혼례복이나 지으라고 줬을 리는 없었다.

단수를 남몰래 그한테 데리고 온 건 틀림없이 목적이 있을 터였다. 이 점은 발가락으로 생각해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 목적은 나에게 이로울까 해로울까? 신수 승려가 말하길 내가 그의 팔과 원신을 온양할 수 있다고 했다……. 이것이 만요국이 나한테 그걸 가져온 이유인가?

그럼 앞으로 언젠가는 그들이 단수를 가지러 오는 것 아니야? 그때 나의 말로가 죽음인지 생존인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이때, 신수 승려의 온화한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렸다.

“비밀을 지키십시오!”

허칠안의 얼굴이 굳어졌다.

* * *

다음날, 허칠안은 처마 밑에 쪼그리고 앉아 이를 닦고 세수를 했고, 머릿속에서 신수 승려를 불렀다.

“신수 대사?”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대사? 대사께서 어젯밤에 제가 대사와 같은 부류의 사람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제가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대사께서도 매일 은자를 주우시나요?”

이번에도 역시 침묵이었다.

‘그는 평소에 깊이 잠들어 있겠지, 어쨌거나 봉인물이니까……. 이따가 다시 불러봐도 여전히 대답이 없으면 불같이 뜨겁고 부드러운 내 몸뚱이로 얼음같이 찬 그의 몸을 녹여야겠어. 나도 그럭저럭 받아들일 수는 있겠군.’

허칠안은 은근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멋드러진 차복을 입고 장발을 잘 빗은 허칠안은, 흑금장도를 허리에 차고 높은 담을 넘어 본채로 아침을 먹으러 갔다.

손을 칼자루에 대니 문득 감정이 애초에 그에게 이 칼을 선물한 게 일종의 비위를 맞춘 셈인가 하는 짐작이 들었다.

“……내가 너무 들뜬 거야. 1품 고수가 나한테 비위를 맞출 일이 뭐가 있어. 하지만 이 칼과 나의 <천지일도참>은 아주 잘 맞아. 감정에게 감사할 따름이지.”

‘응?’

허칠안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제자리에 멍하니 섰다.

‘흑금장도는 감정이 준 것이고, <천지일도참>은 사천감에서 선물한 것이니 흑금장도와 <천지일도참>은 더없이 잘 맞는다. 게다가 감정은 마침 내 몸에 서린 기이한 운명을 알고 있잖아.’

새벽녘의 차가운 바람에 허칠안은 몸서리를 쳤다.

이 순간 그는 ‘다른 세계의 체계가 깊으니 나는 지구로 돌아가야겠다’라는 절박함을 느꼈다.

‘그때그때 생각하자. 우선 실력과 지위를 높인 후에 나중 일은 나중에 다시 얘기하지 뭐.’

마음을 추스린 허칠안은 바깥 대청에 이르렀다. 날이 어슴푸레 밝아 있었고, 숙모와 허평지가 식탁에 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 녹아도 탁자에 앉아 허벅지에 콩알이를 앉히고 있었다.

“큰 오라버니!”

허영음이 반갑게 인사를 하고선, 고기만두와 유조를 살며시 자신의 품으로 옮겼다.

‘……남매의 정이 정말 얕디얕구나.’

허칠안은 앉아서 죽을 한 그릇 담고는 숙모를 힐끗 쳐다봤다.

“숙모, 일찍 일어나셨네요?”

일찍 일어난 숙모는 기분이 좋지 않아 조카를 별로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하얗고 가녀린 손가락으로 도자기 숟가락을 비비고, 쌀죽을 휘저어 섞으며 담담하게 말했다.

“영월의 몸이 좋지 않아, 방금 가서 살피고 오느라.”

“왜요?”

허칠안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어리고 속되지 않은 여동생을 꽤 신경 쓰는 편이었다.

“여자아이 일이야…….”

숙모는 설명하기 싫다는 듯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아, 월경이구나……. 그런데 월경이라고 해서 숙모가 살피러 갈 것까진 없잖아. 월경통인가?’

명탐정 허칠안은 그런 결론을 내렸고, 아침 식사를 마친 후 말했다.

“저 영월을 살피러 갈게요.”

허평지와 숙모는 별다른 의견이 없었다. 무사 집안의 장점이 바로 선비 가문의 번거로운 규율이 없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선비 가문에서는 남매간에 대화할 때라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했다. 또, 만났을 때 반드시 먼저 인사를 해야 하며, 사적으로 만날 때는 여러 형제자매가 함께 모이지 않는 이상 일정 시간을 넘기면 안 된다는 것 등등 규칙이 많았다.

“큰 오라버니, 큰 오라버니……! 저도 언니 보러 갈래요.”

허영음이 녹아의 허벅지에서 뛰어 내려와 허칠안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허칠안은 느리게 걷는 허영음이 싫어, 아이를 겨드랑이 밑에 끼고 아주 빠르게 허영월의 규방 문 앞까지 갔다. 그가 문을 두드리고 말했다.

“동생아? 숙모가 말씀하시길 몸이 안 좋다면서?”

방안에서 허영월의 힘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는 괜찮아요…….”

“괜찮으면 큰 오라버니가 들어가도 되겠니?”

허칠안은 마음속으로 말했다.

‘헝겊은 좀 치워 놓으련?’

이내 여종이 문을 열고 허칠안과 콩알이를 맞이했다.

허영월은 침상에 누워 몸을 옆으로 기대고 있었다. 그녀는 손을 배에 올린 채 정교한 눈썹을 찌푸리고 있었고, 얼굴은 다소 창백했다.

‘좀 심각해 보이는데……, 정말 그렇게 아픈가…….’

허칠안은 위로의 말을 건넸다.

“월경이지? 약은 먹었니?”

허영월은 잠시 어리둥절하더니 창백한 얼굴에 홍조를 띠며 고개를 저었다.

“어머니가 버티면 좋아진대요…….”

그녀는 좀 억울해하는 것 같았다.

허영월은 그저 어린 여자아이일 뿐인데, 곁에서 여종이 시중들긴 해도 침상에 누워 외로이 고통을 삼키고 있지 않던가?

이 시대에 월경통의 경우, 보편적으로 그냥 참았다. 어쨌거나 병이 아니니 그 순간만 지나면 자연스레 좋아지니까. 그리고 대부분의 중하층 평민들은 죽을병이 아니면 진찰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내 기억에 흑설탕 생강차가 월경통에 좋다고 했던 것 같은데. 아니다, 이따가 저채미를 불러 좀 봐달라고 해야지…….’

허칠안이 궁리하는 동안 허영음은 침상 곁으로 갔다. 그리고 굵고 짧은 손가락을 내밀어 눈살을 찌푸리고 있는 언니의 미간을 펴주며, 애처로운 표정으로 큰 오라버니를 쳐다봤다.

“언니 죽어요?”

“……언니는 죽지 않아.”

허칠안이 아이를 위로했다.

“그럼 언니가 왜 이래요?”

허영음이 겁에 질려 물었다.

‘월경통이 뭔지 모를 테고……, 월경도 뭔지 모를 테고…….’

허칠안은 잠시 생각하더니, 허영음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무렇게나 소탈한 언어로 설명했다.

“언니가 너무 철이 든 나머지, 말썽 피우는 법을 몰라서 몸이 아픈 거란다. 나중에 말썽꾸러기가 되면 배도 안 아파질 거야.”

월경통은 장차 시집가게 되면 나아지거나 심지어 없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따라서 이 뒤처진 시대에는 완벽하진 않지만 비교적 정확하고, 통속적이며, 이해하기 쉽게 요점을 집어낸 드문 설명이라 할 수 있었다.

허영음처럼 이렇게 멍청한 아이도 알아듣고선 갑자기 모든 것을 깨친 듯 고개를 끄덕였고, 조그마한 얼굴이 매우 진지해졌다.

“나도 말썽꾸러기 될래요. 그렇게 되면 나중에 배가 안 아플 거잖아요.”

“큰 오라버니……. 영음이한테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허영월은 알아듣지 못했고 허칠안이 하는 말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넌 잘 쉬거라.”

허칠안은 허영월의 볼을 살짝 꼬집고는, 허영음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바깥 대청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는 허영음이 화원으로 뛰어가 흙을 한 줌 쥐고선 손바닥에 몰래 숨기는 걸 봤다.

‘뭘 하려는 거지?’

허칠안은 어리둥절했다.

* * *

바깥 대청에 돌아오니 허평지와 숙모가 아직 식사 중이었다. 허평지가 물었다.

“영월이는 좀 괜찮아졌더냐?”

“아파해요…….”

허칠안이 말하고 있을 때, 허영음이 걸상에 기어 올라와 조그마한 몸을 탁자 가장자리에 기댄 채, 허평지와 숙모 면전에서 검은 흙을 솥 안으로 던졌다.

그런 후 그녀는 걸상에 서서 무거운 짐을 벗어 버린 듯 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하면 나는 배가 아프지 않을 테니까.’

숙모와 허평지의 얼굴이 굳어지더니 천천히 고개를 돌려 어린 딸을 쳐다봤다.

“너…… 뭐하니?”

“말썽부리고 있어요!”

허영음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저는 나중에 꼭 제대로 말썽 피울 거예요. 언니처럼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항상 폐를 끼칠 수는 없으니까요!”

말을 마친 허영음은 두 손을 허리춤에 얹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칭찬을 기다렸다.

숙모는 문득 바퀴벌레 사건을 떠올렸고, 순간 쌓이고 쌓인 분노가 북받친 나머지 그녀를 번쩍 들어 올려 허벅지에 놓고 엉덩이를 찰싹찰싹 때렸다.

허영음도 지려 하지 않고, 울면서 변명했다.

“어머니, 저를 왜 때리시는 거예요?”

숙모는 쉴 새 없이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때리며 말했다.

“죽에 진흙을 넣고도 이리 떳떳한 것이냐?”

“큰 오라버니가 제게 가르쳐 준 거예요. 큰 오라버니가 제대로 말썽 피우면, 배가 아프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고요……! 엉엉엉…….”

숙모의 화가 폭발했다! 그녀가 고운 눈썹을 치켜올리며 꾸짖었다.

“허칠안! 너 또 영음이에게 이상한 걸 가르쳤구나!”

“오늘 날씨가 정말 좋네요. 숙부, 숙모님. 저는 먼저 관아에 가보겠습니다!”

허칠안은 꽁무니가 빠져라 달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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