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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147화 (147/712)

147화. 마음이 동요하다

허칠안은 집으로 돌아와 저녁밥을 먹은 뒤, 허평지에게 상백 사건의 진전과 평양군주 사건의 진상에 대해 얘기했다.

허평지는 너무 놀란 나머지 한참 동안 한 숟갈도 먹지 않더니 웅얼웅얼 말했다.

“이 지식인들은 정말이지 죄다 나쁜 놈들이야. 비록 이 몸이 그해 적잖은 사람을 벴지만, 그들과 비교해 보면 정말이지 공명정대하단 말이지. 칠안, 기억하거라. 앞으로는 지식인들과 말도 섞지 말고, 칼을 쓸 수 있다면 망설이지 말거라. 그러지 않으면 내가 언제 함정에 빠졌는지도 모를 지경이구나.”

허칠안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속으로는 자신에게도 지식인 아들이 있다는 걸 설마 잊으신 건가, 생각했다.

밥을 다 먹은 그는 허영음을 좀 골려주고, 영월 동생과 몇 마디 얘기를 나눈 뒤에 자신의 뜰로 돌아가려 했다.

“콜록콜록.”

이때 숙모가 가식적인 기침 소리를 내더니, 허공을 쳐다보며 말했다.

“내가 사람을 시켜 네 옷 한 벌 지었으니, 이따가 영월이 네게 가져다줄 것이다. 몸에 맞는지는……. 나도 신경 쓰기 귀찮고 입든지 말든지 알아서 해라.”

“엇, 오늘은 해가 서쪽에서 떴나?”

허칠안이 놀라서 밖을 내다보자, 숙모는 격분하여 이를 갈더니 불그스름한 작은 입으로 한 마디 내뱉었다.

“꺼져.”

허칠안은 즉시 자신의 뜰로 꺼졌다.

* * *

방문을 밀어젖힌 순간 그는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지서 파편에 문자가 올 때 느껴지는 그런 진동이 아니었다. 털이 하나하나 곤두서고 닭살이 돋는 그런 두근거림이었다.

경직된 상태로 고개를 돌려 침상을 보니, 조용히 침대에 누워있는 진홍빛의 단수(斷手)가 보였다.

그는 순간 두피가 저려왔고, 아드레날린이 치솟으며 송골송골 맺힌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진홍색 피부의 단수(斷手)는 침상에 가만히 놓여있었다. 표피에는 짙푸른 혈관이 울룩불룩 튀어나와 있었다.

지금의 허칠안은 마치 방금 객실에서 산촌노시(*山村老尸: 홍콩 공포 영화)를 보고, 무서운 마음에 침실로 돌아가 잠을 청하려 문을 열었는데, 초인미(*楚人美: 산촌노시에 나오는 귀신)가 침상 옆에 서서 오싹한 흰 눈동자로 그를 쳐다보고 있는 것과도 같은 상황에 맞닥트린 상태였다.

마음속의 공포가 ‘펑’하고 터지면서 모든 신경이 그를 재촉하고 있었다.

‘얼른 도망쳐, 얼른 도망치라고…….’

이때, 단수의 검지가 살짝 움직이더니, 툭 하고 침상을 가볍게 두드렸다.

바로 다음 순간, 마치 공기가 끈적끈적해지는 것 같았고, 허칠안은 자신이 진흙 구덩이에 빠진 소 같다고 생각했다. 육신과 영혼이 텅 빈 느낌에, 한 발자국도 내딛기 어려웠다.

이어서 단수의 다섯 개 손가락이 움직이더니, 손가락이 발을 대신하여 침상에서 기어 내려왔고 바닥을 따라 허칠안에게까지 기어올랐다.

이 광경은 마치 공포 영화의 한 장면처럼 너무나도 섬뜩했다. 허칠안은 온몸을 움직일 수 없었고, 눈알만 굴리며 그것이 발등으로 기어오르는 걸 절망적으로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바짓가랑이를 따라 계속해서 올라왔다.

‘항혜 승려에게 기생했던 것처럼 내게 기생하려는 건가? 왜지? 왜 날 노리는 거지? 나는 그저 평범한 동라일 뿐인데…….’

공포스러운 생각이 허칠안의 머릿속에 스치는 순간 단수는 그의 가슴까지 기어왔고, 계속해서 올라와 엄지와 검지로 허칠안의 입을 비틀어 열었다.

허칠안은 저항 한 번 못한 채 두 눈을 번쩍 뜨고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곧이어 그의 입안을 억지로 벌린 단수가 거칠게 침투했다. 손가락과 손바닥이 목구멍 깊숙이 들어왔다.

허칠안의 입가가 찢어지면서 선혈이 뚝뚝 떨어졌다. 사람의 입에 어떻게 손이 들어갈 수 있단 말인가? 하물며 목구멍까지 찢기다니! 하지만 단수는 거기에 뜻이 있는 것 같았다.

이내 단수가 목구멍으로 들어왔지만, 허칠안의 목은 조금 불룩하게 벌어지고, 손가락 결이 선명하게 찍혀 보일 뿐이었다.

이 과정은 매우 빨랐다. 단수가 허칠안의 감당 능력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외계인처럼 거칠고 단순하게 입안과 목구멍을 통과했기 때문이었다.

단수가 몸 안에 들어가는 그 순간, 허칠안은 고통에 몸부림쳤고, 의식이 산산조각 나는 것을 느꼈다.

* * *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 얼마나 지났을까. 그의 눈앞에 사찰 하나가 보였다. 절은 불상을 모시고 있지 않았고, 부들방석에 가부좌를 틀고 있는 젊은 승려가 보였다.

허칠안은 있는 힘을 다해 그의 모습을 제대로 보고 싶었지만, 승려의 얼굴은 짙은 안개가 덮고 있는 듯 아무리 해도 잘 보이지 않았다.

‘나는 왜 여기에 있는 걸까? 나 죽은 건가? 죽어서 서방 극락세계에 들어온 것인가……. 불가능해. 부처님을 모시지 않는 나 같은 놈은 부처님이 내 머리를 문에 끼워 나를 극락세계로 걷어차 버리겠지…….’

그가 한창 자조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의 귓가에 젊은 승려의 온화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승, 시주님의 몸을 빌려 단비(*斷臂: 잘라진 팔)를 온양(溫養)하고 싶습니다. 시주님의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그가 바로 그 마물(魔物) 단수라고?’

허칠안은 매우 놀라며 은근슬쩍 떠보았다.

“제가 양해하지 못하겠다면요?”

조용히 가부좌를 틀고 있는 젊은 승려는 그에게 대꾸하지 않았다.

허칠안이 나지막이 물었다.

“당신 누구십니까. 왜 상백에 봉인되어 있었던 겁니까?”

“소승의 법호는 신수(神殊)입니다.”

젊은 승려는 여기까지 얘기하고 잠시 멈칫하더니 다소 주저하는 어조로 말했다.

“제가 왜 상백에 있는 건지는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제가 왜 그곳에 봉인되어 있었던 걸까요……. 제가 거기서 왔습니까? 저는 신수(神殊)입니다. 하지만 제가 왜 상백에 있는 겁니까? 저는 어디서 온 것입니까?”

처음에는 차분했지만, 그는 한 마디 한 마디 자신에게 질문하면서 점점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기 시작했다. 점잖고 온화한 기질은 사라지고, 공간 전체에 진동이 생겼으며,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공포의 기운이 승려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그건 마치 지옥의 기운 같아서, 허칠안의 머리카락은 곤두서고 심장이 격렬하게 뛰었다.

‘이 익숙한 기운…….’

허칠안은 이때 비로소 젊은 승려가 단수의 주인임을 확인했다.

“소승, 착상(*着相: 외상과 허상 또는 개체 의식을 고집하여 본질에서 벗어남)했습니다…….”

젊은 승려는 평정심을 되찾았고, 사람을 겁에 질리게 만드는 기운도 거둬들였다. 그리고는 온화한 어조로 말했다.

“제 원신이 불완전하여 과거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저는 제 법호만 알 뿐, 어디서 왔는지 예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기억하지 못합니다.”

말을 마친 젊은 승려의 어조에는 유감과 고통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온 힘을 다해 알고 싶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한 말투였다.

‘불완전한 원신? 단비가 한쪽뿐이라 그런 건가? 음, 신체가 불완전하니 원신도 불완전하다는 건 합리적이긴 해……. 이 승려 좀 짠한데…….’

허칠안이 슬쩍 떠보며 말했다.

“대사, 제가 한 가지 정보를 알고 있는 것 같긴 한데, 대사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젊은 승려의 기운이 별안간 요동쳤다. 짙은 안개 속에서 그 두 눈을 번뜩이며 허칠안을 주시하고 있는 것 같았다.

“대사께서 봉인된 진법은 대봉 황실, 사천감 및 서방의 불문이 함께 완성한 것입니다. 대사께서는 불문에 몸담고 계신 분이지만, 아마도 서역에서 오신 듯합니다.”

허칠안이 말했다.

그는 말하면서 스스로 추측을 펼쳤다.

‘단수의 주인은 승려이고, 그를 봉인한 세력은 각각 대봉 황실, 서역 불문, 사천감……. 청룡사에서 얻은 정보에 따르면, 불문이 상백 밑의 봉인물을 훨씬 더 중시하는 건 명백하다……. 잠깐!!’

허칠안의 눈이 갑자기 번쩍였다. 그는 상백 사건 때의 몇 가지 사소한 부분들이 떠올랐다. 영진산하 사당이 폭발한 셋째 날, 원경제가 성 금지령을 해제했다고 위연이 그에게 알려준바 있었다.

영진산하 사당이 폭발한 둘째 날, 그 늙다리 감정은 꾀병을 부리며 모든 걸 수수방관했다.

청룡사의 반수 주지 스님은 그의 입에서 단수가 세상에 나왔다는 사실을 검증받고선 즉시 서역으로 떠났다.

‘이 사소한 부분들을 통해 불문이 상백 봉인의 주동자임을 추측할 수 있다. 봉인된 젊은 승려는 십중팔구 서역 불문 출신인 거다.

어쩐지, 어쩐지 원경제가 성 금지령을 해제하고, 감정이 마침 꾀병을 부린 거구나……. 쓸데없이 남의 일에 관여하기 싫다는 태도를 분명히 표명한 것이다. 어쨌거나 자기 집 골칫거리는 아니니까.’

허칠안은 이미 다 지난 후에야 감정과 원경제의 생각을 파악하더니, 이내 또 한 가지 사소한 부분을 떠올렸다. 위연은 전부터 봉인물에 신경 쓰지 말고, 조정의 내부 첩자 조사에만 전념하라고 반복해서 강조했었다.

위연도 십중팔구 단수의 신분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을 터였다. 적어도 그것이 불문에서 비롯됐다는 건 알았을 것이다.

‘어쩐지. 그래서 경성 고위층에서 봉인물에 마음을 쓰지 않고, 모든 에너지를 첩자 색출에 쏟고 있었던 거군……. 하나 같이 약삭빠르다.

다행히도 내가 총명하고 기지가 넘쳐, 기관 멸구 사건과 주 백호의 망기술 차단 건을 통해 청룡사까지 추적해 가서 미스터리를 풀어헤친 거야.’

이때, 젊은 승려가 가볍게 탄식했다.

“빈승이 시주님께 한 가지 일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대사, 저는 단지 연기경 무사일 뿐입니다.”

허칠안은 완곡하게 거절하고 싶었다. 위연이 말하길, 봉인물의 품계는 적어도 2품이고 심지어는 1품일 수도 있다고 했다.

이 품계의 투쟁에서 허칠안은 참견할 저력도 없는 작은 파충류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허칠안은 금련 도사가 천지회를 세울 때의 초심을 잊지 않았다.

<지종 2품 도수를 밀어내자.>

‘내가 황제로 즉위하는 것보다는 난이도가 쉽다만, 만약 당신 일로 다시 불문의 원한에 연관되기라도 하면, 차라리 스스로 황위를 찬탈하고 그 자리에 오르는 게 낫지 않을까?’

허칠안이 속으로 말했다.

젊은 승려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며 말했다.

“빈승을 도와 과거의 일을 규명하여 기억을 되돌려주십시오. 그 과정에 빈승이 시주님께 어느 정도 힘을 실어드릴 것입니다.”

‘어느 정도 힘을 실어준다고?’

허칠안은 금라 넷이 붕대를 싸매고 있는 모습을 떠올렸고, 이내 마음이 동요했다. 만약 봉인물이 몸에 들어오면, 비장의 카드가 생기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렇다면 황권과 신권이 우선인 이 세계에서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었다. 적어도 일가가 전멸당하고 재산을 몰수당할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우리 가족 털끝 하나도 건드리면, 그자의 뇌를 뽑아버리면 된다. 게다가 주적웅을 잡으면, 분명 승진하여 연봉도 오르고 더 막강한 권력을 갖게 되겠지.

’하지만, 승려에게 대답하기 전에 두 가지 일을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 했다.

“대사, 대사께서는 항상 기혈을 통째로 빨아들여야 하는 겁니까?”

허칠안은 최대한 부드러운 어휘를 선택했다.

“시주님 몸 안에 있기만 하다면, 외부의 기혈로 보충할 필요는 없습니다. 물론 만약 제 힘을 사용하시려면, 그 후에 정혈을 온양하셔야 하는데 그러려면 수련자가 가장 좋지요.”

‘다시 말해 평소 내 몸 안에 있기만 하면 별다른 일이 없겠지만, 만약 너한테 일을 시키려면 밥을 먹여야 한다는 소리군…….’

허칠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등가 교환 방식은, 자신의 이념과 어느 정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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