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타경-145화 (145/712)

145화. 사건의 경과

[사자(死者): 항혜]

[사인(死因): 예리한 칼이 심장을 관통함(여러 해 묵은 오래된 상처)]

[검시 결과: 육신, 오장육부가 흑자줏빛을 띰. 시고(尸蠱)가 육신의 부패를 막는 역할을 함. 사망한 지 1년이 넘음.]

[사자(死者): 무명 시체]

[신장 5척(尺) 4촌(寸). 여성. 골격이 고르고 골절 없음. 약물 중독 흔적 없음. 지골(指骨)이 고르고 육체노동에 능하지 않음.]

관아 내부. 허칠안은 검시 보고서를 다 본 후, 그것들을 검시관과 교환하고서 뒤돌아 검시실 옆 바깥 대청으로 들어섰다.

금라 열 명이 한자리에 모여 있었고, 위연은 상석에 앉아 엄숙한 표정으로 차를 마시고 있었다.

허칠안은 말없이 위연 뒤로 갔다. 금라들이 시신의 정체와 평양군주 그리고 상백 사건의 연관성에 대해 논의하는 목소리들이 들렸다.

‘현재로서 평양군주 사건은 일단락된 셈이다. 후속 조사는 아마도 내가 개입할 수 없을 것이다……. 이는 군주와 연관된 살인 사건이라 나 같은 일개 동라가 관여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지.

하지만 상백 사건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어. 내가 평양군주 사건에서 세운 공으로 내 요참죄를 상쇄할 수 있는지는 모를 일이다……. 만약에 안 된다면, 이 몸이 원경제 나리를 콱!’

그가 속으로 불평불만을 하고 있는데, 하급 관리 하나가 문 앞에 서서 말했다.

“위 공, 대인 어르신들, 예왕 전하께서 오셨습니다.”

‘예왕이 왔다…….’

금라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고, 일제히 위연을 쳐다봤다.

양쪽 귀밑머리가 희끗희끗한 청의 환관이, 마지막 차 한 모금을 마신 후 하급 관리를 향해 온화하게 말했다.

“예왕을 검시실로 모시거라.”

그는 말을 마친 후 잔을 내려놓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먼저 검시실로 향하니, 편청 안의 모든 이가 그를 따랐다.

검시실 밖에 도착한 금라들은 들어가지 않는 대신 문 앞에 두 줄로 갈라섰고, 위연 한 사람만 들어갔다.

예왕이 다가왔다. 이 비실비실한 남자는 무표정으로 걸어오는 중이었다. 그는 분명히 아무런 표정도 짓고 있지 않았는데, 그랬으므로 오히려 모든 표정이 한데 섞인 것처럼 보였다.

그의 발걸음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았지만, 마치 뒤에서 악귀가 쫓아오는 것 같다고 느껴졌다.

검시실 문밖에 이른 그는 몇 초 동안 움직이지 않다가 다리를 들어 문턱을 넘었다.

검시실은 채광이 아주 뛰어났다. 찬란한 햇빛이 격자창을 통과해 바닥에 균등한 백반(白斑)을 남겼다.

예왕은 목재로 된 침상에 놓인 유골을 보는 순간, 이곳에서 도망치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아버지로서의 집념을 가지고 천천히 다가갔다.

검시실 안에는 위연 한 사람뿐이었다. 그는 소매 속에서 금비녀를 꺼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건 그녀의 몸에서 찾은 것으로, 자결할 때 사용한 것입니다. 아는 물건인지 한번 보십시오.”

예왕의 눈빛을 마치 점점 풍화되어가는 조각상처럼 굳었고, 그의 표정도 굳었다.

“내 딸의 것이 맞네.”

예왕이 조용한 목소리로 긍정했다.

넓디넓은 방안에 적막이 감돌았고, 두 중년 남성은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뒤, 고개를 숙이고 금비녀를 바라보고 있던 예왕이 목이 쉰 채로 물었다.

“누구의 짓이더냐.”

“세 사람만 밝혀진 상태입니다. 평원백, 병부상서 장봉, 호부 도급사중입니다.”

위연이 그를 응시하며 말했다. 심오한 눈에는 세월에 씻긴 온갖 풍파가 어려있었다.

“세 사람의 맨 처음 계획은 아마 그녀를 속여 경성을 빠져나오는 것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 공자들이 여색을 보더니 악의를 품은 듯합니다. 예왕부 시야에서 벗어난 군주를 살려서 돌려보낼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이지요.”

“내 딸이, 모욕을 당했다고?”

차분한 예왕의 목소리는 오히려 더 무섭게 느껴졌다.

“그 전에 그녀가 비녀를 삼켜 자결하였습니다.”

위연은 고개를 저으며 말을 마치고, 예왕을 지그시 바라봤다.

“하지만 저희는 여전히 그녀가 군주님인지 확신할 수 없습니다. 금비녀 하나만으로는 증명할 수 없습니다.”

“내 생각에는, 자네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을 것 같네만.”

그 말을 남긴 뒤 예왕은 떠났다. 그는 검시실에 들어설 때를 제외하면 다시는 유골을 쳐다보지 않았다. 무슨 공포스러운 물건인 양 단 한 번도 보지 않았다.

착각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그가 떠나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허칠안은 예왕이 한순간에 많이 늙었다는 생각을 했다. 뒷모습에서 노년의 쓸쓸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날 예왕은 손에 혈서를 받쳐 들고 입궁했다.

* * *

예왕이 떠난 후, 본래는 평양군주 사건이 끝나길 묵묵히 기다렸다가 상백 사건과 관련된 중요한 단서를 얻으려 했던 허칠안은 장공주 회경의 부름을 받았다.

말을 전달한 건 수려한 용모의 차야로, 다시 말해 환관이었다.

“장공주마마께서 나를 무슨 일로 찾는 것이냐?”

“모릅니다.”

허칠안의 물음에 환관은 말을 아꼈다. 그는 궁에서 살아남는 법에 정통하여 국화꽃보다도 더 굳게 입을 다물었다.

‘……8할은 평양군주의 일 때문이겠지.’

허칠안은 짐작이 갔다.

* * *

빠른 속도로 황성에 도착한 허칠안은, 궁 안에 들어가자마자 환관에게 이끌려 회경 공주의 아원으로 곧장 향했다.

화원 안 정자에는 회경 공주와 둘째 공주, 태자, 그리고 회경 공주의 친오라버니인 사황자가 있었다.

“소직. 여러 마마, 전하께 문안 올립니다.”

허칠안이 정자 밖에 서서 읍하며 말했다.

임안공주는 손을 흔들며 기쁨에 겨워 소리쳤다.

“이 개자식! 들어와서 앉거라!”

‘언제부터 개자식이 내 애칭이 됐지?’

허칠안은 어이없다는 듯 태자와 회경 공주를 쳐다봤으나, 회경 공주가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가릴 필요 없다. 허 대인에게 자리를 내어주거라.”

궁녀가 의자 하나를 가져와 마마와 전하들 맞은 편에 놓았다.

장공주 회경이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예왕 전하께서 혈서를 들고 입궁하셨고, 부황께서 소견하신 후에 아직까지 나오지 않고 계시네. 자네가 평양군주의 사건을 조사하고 있던 걸로 기억하는데 진전이 있는 겐가?”

태자와 사황자, 임안공주 모두가 허칠안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평양군주는 그들의 사촌누이로, 어릴 적부터 함께 자라 정이 두터웠다.

이는 단순하고 소박한 사랑 이야기였지만, 그들은 평범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이야기의 여주인공은 신분이 고귀한 군주인데, 그녀가 절대로 사랑하면 안 되는 남자와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다.

사랑의 감정은 그렇게도 미묘하여 그녀는 기꺼이 모든 걸 버렸다. 부귀영화를 버리고, 종실의 신분도 버리고, 그와 경성을 떠나 여생을 함께하고자 했다.

하지만 모든 사랑에 결말이 있는 건 아니었다. 화본 속의 재주 있는 남자와 아름다운 여자는 사랑하는 연인에서 부부가 될 수 있지만 그건 화본일 뿐이었다. 현실은 예측할 수 없는 변화가 너무나도 많았다.

그들은 결국 정치 싸움의 희생양이 되었다. 어쩌면 역경이 닥치기 전만 해도 이 연인은 같이 눈 뜨고 같이 잠드는 미래를 상상했는지도 몰랐다.

허칠안은 차분하게 이야기를 하면서 몇 년 전에 들었던 노래를 떠올렸다.

<원앙과 나비는 짝을 지어 날고, 완연한 봄기운은 취하게 만드네.

스님께 조용히 묻네. 제가 어여쁜가요, 제가 어여쁜가요.

권세나 부귀영화가 무엇이고, 계율을 무서워하면 뭐 할까.

그저 영원히 내 정인과 변치 않고 함께 할 수 있길 바랄 뿐.>

그는 평양군주를 본 적이 없었지만, 마치 눈앞에 이 아리따운 소저가 보이는 것 같다고 느꼈다. 웃음기 가득한 눈을 지닌 그녀가 수려한 승려 곁에 씩씩하게 서서 들꽃 한 송이를 귀에 꽂고는, 꽃이 예쁜지 자신이 예쁜지 그에게 묻는 장면을.

허칠안은 탁한 숨을 내뱉고, 몸을 일으켜 읍을 올렸다.

“사건의 경과는 이러합니다. 허하신다면 소직은 일이 있어 먼저 물러가겠습니다.”

회경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허칠안이 빠른 걸음으로 나오는데, 뒤에서 임안공주의 울음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황성을 나와서야 그는 처진 기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 * *

마차 한 대가 쏜살같이 달려와 관성루 아래에서 멈췄다. 하얀 얼굴에 수염은 없지만 눈가에 다소 주름살이 있는 유 공공은 시종이 사다리를 가져오기도 전에 황급히 마차에서 뛰어내렸다.

유 공공은 관성루로 뛰어들어 손에 있는 성지를 높이 치켜들었다.

“폐하께서 감정 대인께 즉시 입궁하라 전하셨습니다.”

그는 연이어 세 차례 큰소리로 외쳤다.

본조에서는 사천감 술사와 관원들이 결탁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4품 이상의 관원은 망기술의 효과를 보지 못한다고 규정에 명시해 둔 터였다.

하지만 한 사람만은 예외였다. 감정!

“소리 지르지 마시게. 스승님께서는 이미 황궁에 가셨네.”

옆에서 돌연히 소리가 들려와, 유 공공이 고개를 홱 돌려 보니 백의 차림의 양천환이 뒷짐을 진 채 서서 그를 등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양 대인, 자네 언제 경성에 돌아온 것인가.”

유 공공이 깜짝 놀라 물었다.

“경성이 나를 필요로 할 때 돌아왔네.”

양천환은 침착한 어조로 답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얼빠져서는, 잘 좀 말할 수는 없겠나?”

유 공공은 불쾌하다는 듯 한 마디 내뱉더니 뒤돌아갔다.

“…….”

‘양천환!’

* * *

야경꾼 관아, 유실.

가부좌를 틀고 토납하던 허칠안은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밤샌 후, 메시지 알람 소리를 들었을 때의 그 두근거림과 흡사했다.

이는 지서 파편에만 있는 ‘메시지 알림’이었다. 그는 토납을 중단하고 옥석경을 꺼냈다.

[구: 육호는 이미 찾았네. 현재 야경꾼 관아에 있으니 모두들 안심해도 되네.]

이 문자를 본 허칠안은, 눈살을 찌푸리며 속으로 생각했다.

‘도사님, 이 말은 즉 야경꾼 관아에 천지회의 첩자가 있다고 적나라하게 말하는 거랑 다름없잖아요.’

[오: 육호를 찾았다고? 하지만, 육호가 야경꾼 관아에 있으면 더 위험하지 않겠나. 대봉의 야경꾼은 전부 악랄하고, 감정이 없는 냉혈한이라고 들었네만.]

[일: 소문을 다 믿어서는 안 되지. 도사님, 도사님께서 육호를 찾아내신 겁니까?]

[구: 예상대로 육호는 봉인되어 있었네. 그를 봉인한 것은 검은 도포를 걸친 강자였어. 그는 온몸에서 위험한 기운을 내뿜어 빈도도 감히 경거망동할 수 없기에 이 일을 야경꾼 관아에 알렸지.]

‘어휘 선택이 괜찮았어. 이렇게 하면 내 정보의 근원도 설명이 되겠군. 만약 일호가 조정에서 높은 지위에 있다면, 평양군주의 사건에 대해 이미 알고 있을 거야.

역으로 추리해보면, 항혜의 종적을 발견한 나도 의심스러워진다. 하지만 도사의 말은 나까지 커버쳐줄 수 있어. 만약 누군가 물어보면, 나는 열성적인 차오양 군중(*朝阳群众: 범죄나 불의를 예리한 눈빛으로 감독하는 평범한 시민들을 일컬음)으로서 고발했다고 말하면 되니까. 이렇게 나와 삼호의 관계를 깨끗하게 정리할 수 있다.’

[일: 내가 한 가지 정보를 들었네. 상백 사건이 일 년 전 평양군주의 실종 사건과 연관되어 있다네. 곧 경성에 큰 폭풍이 몰아칠 것이야.]

[사: 무슨 상황인가?]

사호가 튀어나와 거들기 시작했다.

일호는 천지회 구성원들에게, 평양군주 사건에 대해 간단하게 몇 마디로 간추려 말해줬고, 이는 모든 이들의 마음속에 피비린내 나는 살육이 빈번한 보이지 않는 당정(黨政)을 그려낼 수 있게 했다.

이들에게 충분히 상상의 여지를 남기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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