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이야기 (1)
허칠안은 즉시 양연을 찾아갔다. 안면마비인 양 금라가 신창당에 있는 것이 보였다. 양연은 궁금증 가득한 눈빛으로 위연의 친서를 건네받았다.
양연은 다 읽은 뒤 조각처럼 굳은 얼굴로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인가? 의부께서 왜 모든 금라를 소집하시는 거지?”
“항혜 승려의 은신처로 추정되는 곳을 발견했습니다.”
허칠안이 말했다.
양연의 눈빛이 별안간 날카로워졌다. 그는 몸을 일으키더니 손을 뻗어 나무 선반에 놓여 있는 은색 장창을 ‘휙’하고 손에 쥐었다.
“양 금라…….”
허칠안이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관아를 지키는 금라가 없으면 위 공의 안전에 위협이 되지 않겠습니까?”
“모르겠네.”
양연이 고개를 저었다.
‘모른다고?’
허칠안은 어이없다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그의 설명을 들었다.
“의부님 신변을 보위하는 자가 얼마나 있는지, 또 얼마나 센지 아는 사람이 없네.”
‘보안이 비밀이라고? 허와 실을 종잡을 수가 없구먼……. 위연은 정말이지 계략에 능한 늙은 음모가다.’
* * *
이내 사무를 보던 금라들이 한곳에 소집되었고, 모두들 관아 앞마당에 모였다.
동시에 30명의 은라도 함께 모였는데, 동라만 없었다. 일단 충돌이 발생하면, 동라가 얼마나 있든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허칠안은 야경꾼 관아 문을 뛰쳐나와 사방을 두리번거렸고, 멀지 않은 혼돈(餛飩)을 파는 노점에 있는 황갈색 고양이를 발견했다.
“금련 도사, 오세요, 오세요…….”
허칠안이 손짓했다.
그러나 황갈색 고양이는 그를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황갈색 고양이는 커다란 솥을 눈이 빠져라 바라보며 안에서 피어오르는 향기를 맡고 있었다.
‘도사님이 어찌 된 일이지? 배고프신가?’
허칠안이 어리둥절해하고 있는데,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 여기 있네.”
뒤를 돌아보니 회색 고양이 한 마리가 서서, 조용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째서 고양이를 바꾸신 거예요?”
허칠안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건 암컷 고양이었는데…….”
회색 고양이는 한 마디 하더니, 더는 말하기 싫다는 듯 화제를 돌렸다.
“내가 자네들과 함께 한다고 하니 위연이 무슨 태도를 보이던가?”
“위 공께서는 도사님과 협력하길 원하십니다.”
허칠안의 답에 회색 고양이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허칠안의 어깨로 유연하게 뛰어올랐다. 회색 고양이가 그의 귓가에 대고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위 공……, 위 청의에 대한 자네의 존경심은 원경제보다도 훨씬 깊네그려.”
“현재로서는 사람이 싫어지게 만드는 결점이나 품성이 보이지 않거든요.”
허칠안은 걸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육호가 동성에 있는 양생당에 잠시 머물렀는데, 그곳은 남루하기 그지없습니다. 조정에서 은자를 갚지 않아 원내의 노인과 아이들이 끼니를 때우지 못할 지경이었지요. 제가 육호의 정보를 위 공께 털어놓았더니, 그는 육호를 건드리지 않고 도리어 자선금을 추가로 내셨습니다. 허나 양생당은 야경꾼이 관할하는 영역이 아닙니다.”
“허, 아니나 다를까. 자네, 그에게 천지회 내부 소식을 누설하고 있었던 게로군.”
금련 도사가 웃는 듯 마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이건…….’
허칠안의 표정이 굳어졌다. 현장에서 우두머리에게 내부 첩자질을 딱 들킨 것 같은 부끄러움이 들었지만 이내 회복하고 어깨를 으쓱였다.
“제가 위 공의 신임을 얻으려는 건 더 많은 정보를 얻어 저희 천지회의 정보 체계를 풍부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출발은 좋은 의도였는데……. 도사께서는 왜 말씀을 하지 않으십니까?”
“너무 염치가 없어서 말을 하고 싶지 않군.”
회색 고양이가 비웃으며 말했다.
“자네, 벼슬길에 오르는 게 꽤 어울리겠어.”
“허나 위 공께서는 제가 관리 사회에 어울리지 못할 거라고 하셨습니다.”
“염치는 없어도 선은 있으니, 손해 보기 십상이겠군.”
금련 도사가 평론했다.
“갑자기 한 가지 일이 떠올랐습니다. 국사가 저를 만났을 때 제 특수함을 감지하고선 제게 사주팔자를 물었지만 점치지는 못했습니다.”
허칠안이 어이없다는 듯 말하자, 회색 고양이가 잠시 생각해 보더니 물었다.
“자네 생각은?”
허칠안도 잠시 고민하다 답했다.
“제 특수함은…… 지서의 댓글을 보십시오.”
“…….”
* * *
허칠안은 말을 타고 앞서 갔고, 금라와 은라들이 뒤따랐다.
회색 고양이는 그의 어깨에 쭈그려 앉아 방향을 가리켰다.
이주향의 시간이 지나자, 고양이가 갑자기 말했다.
“멈추게. 앞에 바로……, 그 작은 뜰인가? 지서 파편의 기운이 바로 이곳에 있네.”
허칠안이 말고삐를 잡아 말을 멈추니 뒤따르던 금라, 은라가 동시에 말고삐를 잡아 말을 세워 부대가 멈춰 섰다.
그는 뒤를 향해 손짓을 하며 전방의 작은 뜰을 가리켰다.
금라 열 명이 소리 없이 서로 마주 보더니, 손발을 맞춰 말 등에서 사라졌다. 그리곤 각자 작은 뜰의 각기 다른 위치에 나타나, 도망칠 수 있는 경로를 다 막아버렸다.
은라들은 더 바깥쪽을 포위하였다.
허칠안은 잠시 조용히 기다렸음에도 금라들이 움직이지 않는 걸 발견하자. 도리어 눈살을 찌푸리며 뜰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지? 도망갔나?’
그는 옆집 용마루로 뛰어올랐다. 그 각도에서는 뜰 내부의 모습을 훤히 볼 수 있었다.
크지 않은 뜰에 버드나무 두 그루가 심겨 있었고, 승려 둘이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그중 하나는 두 손을 합장한 채 낮은 소리로 경을 읊는 중이었다.
다른 하나는 몸에 검은 도포를 걸치고 고개를 떨군 채,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바로 항혜와 항원 사형제(師兄弟)였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허칠안이 어깨 위의 회색 고양이를 보자니, 그 눈에도 같은 궁금증이 서려 있었다.
“가서 좀 보시게.”
회색 고양이는 작은 머리에 든 큰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허칠안을 재촉했다.
이때 그는, 양연이 창을 들고 다가가는 것을 보았다.
“여러분, 한발 늦었습니다. 그는 이미 극락에 갔습니다.”
기쁨도 슬픔도 없이 공허한 항원의 목소리는 오히려 매우 슬프게 들렸다.
‘죽었다고?’
이 결말에 허칠안은 어찌할 바를 몰랐고, 무의식적으로 이는 모두 음모고 허상이며 시간을 끌기 위함이라고 생각했다.
양연이 창끝으로 항혜의 두건을 들추니, 눈을 감고 있는 거무스름한 얼굴이 드러났다. 생기가 사라진 채였다.
양연은 모든 금라를 향해 고개를 살짝 끄덕여 항혜가 이미 죽었다는 걸 확인시켰다.
“저와 죽음 사이에서, 그는 후자를 택해 마수(魔手)에게 생기를 빼앗겼습니다.”
항원이 낮은 목소리로 법호 한 구절을 읊었다.
“양연, 그의 오른팔을 한번 보게나.”
강율중이 침착하게 말했다.
양연이 창끝을 돌려 기기로 검은 도포를 비틀어 찢었다. 항혜의 오른팔은 휑했고, 그 마수는 종적을 감춘 듯했다.
‘사라졌다…….’
허칠안은 동공을 수축해 경계하는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이 더는 안전하지 않고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광경을 지켜보는 은라들도 마찬가지로 순식간에 칼을 빼 들어, 주변의 행인들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이미 사라졌습니다…….”
항원 승려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저는 여기에 남아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육호가 우리가 올 걸 확신했다고? 맞다, 금련 도사가 지서 파편을 감지할 수 있었지. 그래서 그가 기다리고 있었군…….’
허칠안은 문득 깨달았다.
“스님, 무슨 말을 하고 싶으십니까?”
남궁천유는 한 손으로 칼을 세게 쥐며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그는 결코 복수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그 짐을 제게 떠넘겼을 뿐이지요.”
항원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여러분에게 이야기 하나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일 년 전에 일어난 일을요.”
‘일 년 전의 이야기라…….’
허칠안의 감정은 상실감에서 흥분으로 바뀌었다.
‘항원이 말하는 이야기라 하면 두말할 나위 없이 항혜와 평양군주의 이야기일 테지.
두 사람에게 일어난 일은 상백 사건을 푸는 열쇠다. 지금까지 요족은 나타나지도 않고 항혜만이 봉인물에 의지하여 소란을 일으키고 있으니, 만요국 잔당이 도대체 무엇을 하려는 건지 심사숙고하게 만들잖아.
파괴? 지금까지 평원백 일가 전멸 사건만이 큰 영향을 미쳤지, 실질적인 상해는 크지 않았다. 항혜는 아무것도 고려하지 않은 채 사방을 전멸시켜 경성에 막대한 사상자를 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봉인물? 만약 목표가 단지 봉인물이라면, 항혜는 진작에 경성을 떠났어야 했어.
항혜 승려와 평양군주 사건이 지금에 와서는 주객이 전도되어 오히려 상백 사건을 가리고 있다……. 어째 배후에 있는 사람이 고의로 항혜를 노출시키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군.’
양연은 창끝의 기기로 항혜 승려의 소매를 비틀어 찢었다. 탄탄한 근육의 팔뚝은 강한 힘을 지니고 있었지만, 결코 요물은 아니었다. 이번에는, 단수(斷手)가 그의 몸에 있을 거란 가능성을 배제해도 괜찮았다.
“항혜는 확실히 죽었습니다. 일 년 전에 이미 죽었지요. 살아 있던 건 단지 산송장일 뿐이었지만, 그마저도 이미 이승을 벗어났습니다. 이건 결코 음모가 아닙니다.”
항원이 지척에 있는 사제를 바라봤다. 그의 눈은 마치 먹구름이 드리운 듯 어두웠다.
순식간에 항원의 눈 속 구름 덩어리가 흩어졌고, 그의 입에선 지난 일들이 폭우처럼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 * *
항혜는 6살에 부모에 의해 청룡사에 보내졌다. 눈에 영기(靈氣)가 서린 그 아이는 한눈에 주지인 반수 스님의 마음에 들어, 제자로 받아들여졌다.
항혜의 교육은 사형 항원의 주도하에 이루어졌다. 장대한 기골에 고생한 흔적이 가득한 외모의 사형은 그에게 독서와 글을 가르쳤다. 또한 좌선하여 독경하는 법을 지도하는 동시에 사람 된 도리도 가르쳤다.
그는 사형을 아버지처럼 존경하고 사랑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몇 년이 흘렀고, 총명하고 지혜로운 어린 승려는 자라서 수려한 승려가 되었다. 그는 원래 자신이 사부, 사형과 마찬가지로 불문의 제자로 세월을 보낼 줄 알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한 소저를 만나게 된다…….
햇볕 찬란한 봄날, 그는 개울에서 빨래를 하던 중 손수건 한 장이 시냇물을 따라 흘러 내려가는 것을 보고 무의식적으로 건져 올렸다. 그러자 귓가에 꾀꼬리 소리처럼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스님, 그건 제 손수건입니다. 돌려주시겠습니까?”
항혜가 시선을 높여 보니, 상류의 푸른빛을 띤 응회암 옆에 호리호리한 여인이 서 있었다. 그녀는 소박한 차림에 옅은 자색의 긴 치마를 입고, 출가하지 않은 여인을 뜻하는 긴 머리를 하고 있었다. 햇빛 아래에 비친 화장기 없는 얼굴은 아주 고왔고, 미소를 머금은 눈망울을 지니고 있었다.
“시주님……께서는 절의 참배자이십니까?”
“왜요? 제가 참배자가 아니라고 하면 손수건을 돌려주지 않으시렵니까?”
그녀는 두 손을 허리춤에 얹고, 일부러 모르겠다는 듯 되물었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소승은 단지 여 시주님이 낯설어 그랬습니다.”
그는 해명하면서 양손으로 손수건을 받쳤다.
“스님께선 매일 고개를 숙이고 일을 하시거나 경서를 읽기만 하시니, 한낱 참배자가 눈에 들어오겠습니까?”
“그걸 어찌 아십니까.”
“제가 스님을 오랫동안 지켜봤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