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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141화 (141/712)

141화. 사제가 한 가지 일을 청하고 싶습니다

부향은 미간을 찌푸리며 야경꾼들을 맞이했다. 그녀는 곱디고운 자태를 뽐내며 예를 갖췄다.

“대인 어르신들, 명연 낭자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나요?”

송정풍이 발걸음을 멈추고 헤벌쭉 웃으며 말했다.

“명연 낭자가 암암리에 요족과 결탁하고 은신처를 제공했소. 어젯밤 허 대인이 은밀히 조사하여 그녀의 몸종으로 위장한 요녀를 색출해냈소. 요녀는 처형될 것이고, 현재 그녀를 데리고 가 심문할 예정이오.”

기생 어미는 가슴을 치고 발을 동동 굴렀다.

“이건 누명입니다. 명연은 연약한 여자인데 어떻게 요족과 결탁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그녀를 키우느라 얼마나 많은 돈과 정성을 들였는지 너희는 알 것이야! 예부에 고하러 가야겠습니다! 예부의 대인들께 처리해달라고 부탁드려야겠습니다!”

주광효가 나지막이 말했다.

“나는 지금 자네 역시 요족과 한패가 아닌지 의심스러운데.”

기생 어미는 공연히 소리를 질렀다가, 살고자 하는 강한 욕구로 뒷걸음질 쳤다.

송정풍은 눈을 가늘게 뜨고 부향을 향해 고개를 끄덕인 후 떠났다.

부향은 그들이 떠나는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추측을 펼치기 시작했다…….

‘명연이 요족과 결탁했다고? 허 공자가 어젯밤에 은밀히 조사를 해? 그가 어젯밤에 청지원에 머무르길 선택한 이유는 내가 싫증 나서가 아니라, 공무를 처리하기 위해서였나? 그런데 내가 생트집을 잡으며 성질부렸던 거구나.

그가 어젯밤에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왔을 때 나는 보았어. 나는 그때 그가 명연과 그렇고 그런……. 내가 그를 오해했던 거야. 그래서 오늘 아침에는 떨떠름한 얼굴로 그에게 화풀이까지 했는데……. 하지만 왜 설명하지 않는 거지? 맞아, 그는 해명할 수가 없지. 이건 관아의 공무고, 사건은 비밀 유지가 필수니까.

설령 이렇다 해도 오해받고 있는 걸 뻔히 알고 억울할 텐데……. 추호도 미워하는 기색 없이 묵묵히 내 분노를 감내하고 있었다니…….’

부향은 별안간 치맛자락을 붙들더니 영매소각으로 내달렸다.

“아가씨, 어디 가세요, 조심하세요……!”

여종이 깜짝 놀라 그 뒤를 따랐다.

* * *

부향은 한걸음에 영매소각으로 내달려 문을 열고 침실로 들어와 그를 불렀다.

“허랑!”

그러나 방안은 텅 비어 있었고, 허칠안은 이미 떠난 뒤였다. 이 순간 그녀는 문득 자신이 귀중한 물건을 잃어버린 것 같단 생각이 들어 마음이 공허해졌다.

“아가씨, 아가씨…….”

여종이 쫓아와 보니, 아가씨가 넋이 나간 채 문에 등을 기대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 힘들어, 좀 부축해줘.”

부향이 가느다란 목소리로 말했다.

여종은 그녀를 침상으로 부축했고 그녀를 보며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부향을 방해할 수 없어서 몸을 돌려 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병풍 옆에 있는 탁자 위에 문방사우가 놓여 있는 것을 보고, ‘엇’하는 소리와 함께 탁자 옆으로 걸어갔다.

“아가씨, 이곳에 시가 한 수 있어요……. 아마도 허 공자님이 남기신 것 같아요.”

부향은 단숨에 활력을 되찾고 맨발로 탁자 옆으로 내달렸다. 그러고는 보물을 빼앗는 것처럼, 여종 손에서 종이를 낚아채 찬찬히 읽었다.

“아름다운 여인이 구슬발을 걷고서 홀로 앉아 고운 눈썹을 찌푸리네. 멀리서도 눈물 자국이 어른거리니 누구를 원망하고 있는 것일까. 하! 허랑, 허랑…….”

조용히 웃던 부향은 이내 울기 시작했다. 눈물방울이 떨어져 바닥에 스며들었다. 종이를 가슴에 받쳐 들고 울며 웃는 모습마저 참으로 아름다웠다.

“나, 그를 찾으러 갈 거야.”

부향이 눈물을 훔치며 일어나더니 종종걸음으로 문어귀를 향해 달렸다.

여종이 아연실색하며 아가씨의 부드러운 허리를 껴안고 말했다.

“안 돼요, 안 돼. 아가씨는 기녀예요! 교방사에서 가장 잘나가는 기녀인데, 이 일이 퍼져나가면 어떻게 하시려고요! 어렵사리 쌓아 올린 명성 다 사라진다고요! 어떤 기녀도 아가씨처럼 이렇게 없어 보이게 굴지 않아요!”

부향이 화를 내며 말했다.

“이거 놔!”

“못 놔요!”

* * *

허칠안은 길가에서 고기소 만두 6개를 사서 말 등에 앉아 뜯어먹으며 유유자적하게 관아로 가고 있었다.

‘교방사의 기녀들은 다 예쁘게 생겼단 말이야……. 각자 개성이 있고, 장점이 많아 이루 다 볼 수가 없어. 음, 상백 사건이 해결되면 그녀들과 교감하여 나중에 《대봉 기녀 가이드》를 한 권 내야겠어.

유일한 문제는 자금이다. 매일 은자 3전(錢)밖에 줍지 못하는데, 기녀의 몸값은 하룻밤에 최소 삼십 냥이니 말이야.

9년간의 의무교육에 감사할 따름이다. 시사(詩詞)를 헛되이 공부하지 않았어……. 하, 정말 시간 여행자로서 부끄럽다. 남들이 표절자가 되려는 건 벼슬길에 오르기 위함인데, 나는 여색을 위해서라니.

음, 따져보면 나도 곧 스무 살이다. 다행히 숙모가 우리 엄마는 아니라서 내 혼사를 독촉하지 않으니 나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채미는 감정의 제자라 뒷배가 아주 튼튼해.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는 건 반(半) 공주를 아내로 맞이하는 것과 다름없지만, 마음대로 나가서 놀지는 못하겠군…….

아무튼 서둘러 결혼할 필요는 없다. 교방사의 기녀 24명과 몇 년만 더 놀아야지. 하하. 내가 이렇게 헛된 꿈을 꾸고 있는데, 감정의 제자가 나를 마음에 들어 할지 모르는 일이지.’

허 백표(*白嫖: 여색을 즐김)는 속으로 자조하며, 들뜬 생각을 다시 사건으로 옮겨왔다.

명연은 그가 송정풍에게 잡으라고 일렀던 사람이었다. 물론 어젯밤에 그녀가 무고한 사람임을 확인했지만, 여전히 묻고 싶은 일이 있었다. 예를 들면, 그 시녀가 교방사에 어떻게 들어오게 된 것인지 평소에는 누구와 친하게 지내는지 등등.

* * *

으슥한 작은 뜰 안. 나뭇가지만 앙상하게 남은 버드나무는 다소 처량해 보였다.

방 안에서 투닥투닥 하는 소리와 함께, 고통에 울부짖는 남자의 나지막한 고함이 들려왔다. 그리곤 삽시간에 모든 인기척이 사라졌다.

이윽고 방문이 열리더니 검은 도포를 입은 항혜가 아무 말 없이 걸어나와 곧바로 뜰 안의 우물가로 향했다.

그는 깊숙한 우물을 몇 초 동안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곧 손을 휘둘러 우물 입구에 옅은 금색의 ‘만(卍)’자를 밝혔고, 이내 사라졌다.

봉인을 해제한 항혜는 뛰어들었다.

어두컴컴한 우물 바닥의 흙탕물은 옅은 물비린내를 풍겼다. 중년의 승려는 우물 벽에 등을 기댄 채 가부좌를 틀고 좌선하고 있었다.

활기가 없는 얼굴, 말라서 터진 입술로 보아 그가 중상을 입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기골이 장대하고 담청색의 아래턱을 가진 중년의 승려는 괴로운 기색이 역력했다.

허칠안이 이곳에 있었다면, 기골이 장대한 이 승려가 한시도 마음을 놓지 못하고 열심히 추적 중인 항원임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사형…….”

항혜가 쉰 목소리를 냈다.

항원은 그를 거들떠보지 않고, 반듯하게 가부좌를 튼 채로 침묵했다.

“저 부상 입었습니다. 단수(斷手)가 제게 해를 입혔어요.”

항혜가 말했다.

항원이 눈을 뜨고 친절하게 말했다.

“항혜, 회개하면 구원받을 수 있단다.”

항혜는 고개를 저었다.

“사형, 제가 여섯 살에 청룡사에 들어가 그때부터 사형 곁에 있었습니다. 사형께서 제게 좌선을 가르쳤고, 독경을 가르쳤고, 제 의식주를 돌봐주셨습니다. 제겐 사형이 형이자 아버지 같은 존재입니다. 지금 사제가 사형께 한 가지 일을 청하려 합니다.”

항원은 탄식했고 고개를 끄덕였다.

항혜는 고개를 들어 피풍 아래, 흰자가 없는 새카만 두 눈으로 흉악하게 웃으며 말했다.

“사형을 잡아먹겠습니다.”

항혜는 검은 도포 아래의 손을 자발적으로 뻗어 손바닥으로 회오리바람을 일으켰다. 그러자 항원 승려는 사정없이 날아올라 죽음의 회오리바람으로 빨려 들어갔다.

항원은 고통스럽게 눈을 떴다. 피부는 빠르게 말라갔고, 혈기가 빨려 나가 육안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안색이 급격히 나빠지고 있었다.

이 익숙한 얼굴이 눈앞에서 조금씩 말라가며 죽음으로 치닫고 있었다……. 항혜는 잔혹한 얼굴로 이 광경을 지켜보며 조금은 동요되는 듯했고, 시커먼 눈동자는 더 이상 냉혹하게 굳어 있지 않았다.

쿵……. 항원이 내동댕이쳐지면서 우물 벽에 세게 부딪혔다.

항혜의 왼손은 필사적으로 오른팔을 누르고 있었다. 그가 이를 악물며 말했다.

“그를 죽이면 안 돼, 내 사형을 죽이면 안 돼…….”

그런데 갑자기 그의 표정이 냉혹해지더니 어디선가 꾀어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항원은 혈기 왕성한 무승이야. 네 상처를 치료하기에 딱이라고……. 복수하고 싶지 않은 거야? 복수하기 싫어진 거야?”

이어 냉혹한 표정이 사라지고, 고통에 몸부림치는 표정이 그의 얼굴에 나타났다.

“안 돼, 그를 죽이면 안 돼. 그는 내 사형이야!”

“세상에 그 누구도 죽일 수 있어. 왜 그를 죽이면 안 되지?”

“세상에 어느 누구든 죽일 수 있지만, 그는 안 돼! 그는 내 사형이고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야!”

“그럼 평양은?”

“평양…….”

그는 냉혹한 표정과 고통스러운 표정을 오가며 혼잣말을 했다. 마치 서로 다른 두 인격이 몸싸움을 벌이며 계속 대치하고 있는 것 같았다. 굵고 단단한 오른팔 혈관에 붉은빛이 번지고 쉴 새 없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 호흡을 하고 있는 듯했다.

항혜의 주체 인격은 제압당했고, 냉혹함이 점점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항혜…….”

항원이 지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해 네게 가르쳤던 첫 번째 구결을 기억하나?”

‘정심(淨心) 주문……’.

항혜는 통제 불능의 오른팔에 맞서 우물 벽에 등을 대고 천천히 앉았다. 그는 정심(淨心) 주문을 두 손을 합장한 채 낮은 소리로 읊었다.

한참이 흐른 뒤 그는 악기(惡氣)를 평정했고, 오른팔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눈을 뜬 항혜는 여전히 흰자가 없는 검은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어두컴컴한 우물 바닥에서 항원을 주시하며 쉰 목소리로 말했다.

“사형, 사형께선 일 년 전에 제가 무슨 일을 당했는지 알고 싶으신 거 아닙니까? 제가 지금 말씀드리겠습니다.”

* * *

“시녀의 이름이 무엇이오?”

심문실 안.

허칠안은 차를 마시며 맞은편에서 안절부절 못 하는 기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아(荷兒)…….”

명연은 순순히 대답했다.

그녀는 쉴 새 없이 허칠안을 훔쳐보는 동시에 굳게 닫힌 방문을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교방사 기녀로 적잖은 고관들을 만났기에, 야경꾼 관아가 어떤 곳인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무릇 갇혀 들어온 관리는, 죽지 않더라도 큰 상처를 입기 마련이었다. 게다가 그녀처럼 연약한 여자라면 죽기보다 무서운 일을 당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녀가 언제부터 당신 곁에 있었던 것이오?”

허칠안의 표정은 진지했다.

“아마, 아마도 3~4년은 된 것 같아요.”

그녀는 두려움에 떨며 허칠안을 바라봤다.

“3년 반 정도요, 구체적인 시간은 기억나지 않아요.”

이 남자가 무표정을 하고 저곳에 앉아 엄숙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으니, 그녀는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심리적으로 어마어마한 압박을 받는 중이었다.

‘사람이 어찌 이렇게 변할 수 있어? 어젯밤에는 부유한 집안의 자제 같았는데.’

‘3년 반이라……. 그동안 또 어떤 여자가 교방사에 들어왔는지 이따가 사람을 시켜 조사해봐야겠군.’

허칠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평소에 누구와 친하게 지냈소?”

명연은 한참 동안 생각하더니, 기억을 더듬으며 연거푸 이름을 말했다.

허칠안은 몇 마디를 더 물어본 후에 기록을 담당하는 하급 관리를 쳐다보았고, 그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명연 낭자, 협조해주어 고맙소. 가도 괜찮소.”

“네?”

행복이 마치 회오리바람처럼 너무 빨리 찾아와서, 그녀는 순간 믿기지 않았다.

“내가 교방사로 데려다 드리겠소.”

허칠안이 몸을 일으켜 청하는 손짓을 했다.

명연 낭자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그를 따라나섰다. 그녀는 관아 입구에 도착해 밖에 세워둔 마차를 보고 나서야 마음이 홀가분해졌고, 자신이 정말 교방사로 돌려보내진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었다.

그녀는 순식간에 예전의 모습을 되찾았고, 고운 자태로 예를 갖췄다.

“감사합니다, 허 대인.”

허칠안이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움켜쥐며 말했다.

“크나큰 은혜는 고맙다는 말로 될 게 아니지. 응당 행동으로 표현해야 하는 법.”

‘이 남자, 태도를 바꾸는 게 여인보다도 빠르네…….’

명연 낭자는 조금은 민망하고 조금은 두려운 마음에, 가만히 마차를 쳐다봤다.

허칠안은 눈썹을 치켜올리더니 마차를 보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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