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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139화 (139/712)

139화. 여요(女妖)

허칠안이 도착하자 방 안의 소리가 뚝 그치더니 이내 송정풍이 경계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누구냐.”

“나야.”

허칠안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나와. 급한 일이 있네.”

송정풍이 욕설을 내뱉더니 이내 안에서부터 구시렁대는 소리가 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소 단정하지 못한 옷차림의 송정풍이 문을 열고 나왔다.

“지금 즉시 관아로 돌아가 당직을 서는 금라에게 직접 교방사로 오라고 통지하게. 청지원에 요족이 있다고 알려야 해.”

허칠안이 간추려 말했다.

“반드시 금라를 불러와야 해. 내가 망기술이 서툴러서 상대방의 실력이 어떤지 가늠할 수가 없어. 청지원 안에 9명의 기녀가 있는데 그녀들은 모두 어린 양으로, 자기 보호 능력이 없어. 맞다, 만약 당직을 서는 금라가 주씨면 노선을 바꿔 사천감으로 가서 송경을 찾아야 해.”

허칠안은 구태여 쓸데없는 말은 하지 않았다. 송정풍이 그대로 상황을 설명하기만 하면, 금라의 풍부한 경험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 거라고 믿었다.

송정풍의 안색이 점점 굳어졌다. 조금 전의 불만과 분노는 연기처럼 사라진 듯했다. 그는 방으로 돌아가 패도, 동라를 챙기고 법기를 묶으면서 마당으로 뛰쳐나왔다.

* * *

허칠안은 서둘러 청지원으로 돌아왔다. 그는 입가에 방정맞은 미소를 짓고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문을 밀치며 말했다.

“미인 언니들, 나 왔소.”

그는 눈을 내리깔고, 모시는 아가씨에게 술을 따라주는 여요(女妖)를 곁눈질로 힐끗 보다가 이내 시선을 옮겼다.

허칠안은 상대방의 실력을 가늠할 수 없어 함부로 나설 수 없었다. 상대방이 도망치는 건 둘째치고, 무고한 기녀들이 다치는 건 원치 않았다.

허칠안은, 아무렇지도 않게 먹을 것을 먹고 마실 것을 마시며 놀았다.

허칠안은 기녀들과 화권을 하고, 주령을 하고, 주사위를 던지며 아주 만족스러워했다.

하지만 허칠안은 전혀 기쁘지 않았고, 오히려 초조한 심정이었다. 한 시간이 지났지만 송정풍은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다.

이때, 그 여요(女妖)가 고개를 들어 허칠안을 바라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밤이 깊었으니 낭자들께선 돌아가시지요. 허 공자님께서는 오늘 밤 저희 낭자의 거처에서 쉬실 건가요?”

좋았던 분위기는 한순간에 깨졌고 기녀들은 웃음을 거두었다. 기녀들은 방금 전까지만 해도 너 좋네, 나 좋네 하던 자매에서 마치 전장에 나가는 여군처럼 변했다. 그들은 서로 어여쁜 자태를 뽐내는 데에 여념이 없었다.

명연이 애교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언니들, 허랑께서 오늘 기왕 제 청지원에 왔으니 부끄럽지만 쉬고 가시라 할게요. 사정 좀 봐주세요.”

기녀들이 사정을 봐줄까? 당연히 아니었다!

교방사에 자매지간의 정이 어디 있겠는가? 있어봤자 얕디얕은 정일 뿐. 평범한 여인이 기녀로 승진하기 위해 남몰래 들이는 노력과 땀은 대단했다. 여기에 더해서 원만하고 지혜로운 처세와 감히 남의 것을 빼앗고 쟁취할 수 있는 태도까지. 이 모든 것들은 그녀들을 쉽게 굴복시키지 않는 법이었다.

반면 허칠안에게 이건 기녀들을 따돌릴 수 있는 기회였다. 그녀들이 계속해서 이곳에 머무르는 건 너무 위험했다. 싸움이 시작되기만 하면 기기가 뒤흔들릴 것이고 모두가 죽을지도 몰랐다.

게다가 하필이면 무사는 거침없이 달려드는 폭력광으로, 그럴싸한 법술이 그리 많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런 구음진경(*九陰眞經: 김용의 무협소설 사조삼부곡에 등장하는 무공비급)의 쾌감을 꽤 즐긴다. 전생의 여신들을 어장관리하는 것도 이런 느낌이겠지…….’

허칠안은 기침을 하며 모든 여인들을 둘러보았다.

“내 명연 낭자의 친절을 뿌리치기가 어렵소이다. 그럼 나는 오늘 밤 이곳에서 쉬겠소. 다른 낭자들은 먼저 돌아가시오. 다음에 본관이 하나하나 방문하겠소. 약속은 꼭 지키도록 하지.”

남자가 술자리에서 하는 말과 침대에서 하는 말은 같았다. 모두 믿어선 안 됐다.

하지만 허 공자께서 한 말이니 그녀들이 어찌할 수 있겠는가? 이런 일은 억지로 요구해서 되는 게 아니었다.

부향은 유독 슬프고 괴로운 얼굴로 허칠안을 바라보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허랑…….”

허칠안의 머리는 단호했지만 마음은 약해졌다. 본래는 고개를 숙이고 술을 마시며 외면하려고 했으나 그녀가 억울해하는 모습을 보자니 마음이 불편해서 말했다.

“먼저 돌아가시오. 내가 내일 찾아가겠소.”

부향이 그를 빤히 보더니, 얼굴을 가리고 흐느끼며 뛰쳐나갔다.

다른 기녀들도 잇달아 물러났다.

반면 명연 낭자는 기쁜 얼굴을 하고 사뿐하게 몸을 일으켰다. 그녀가 수줍어하며 말했다.

“날이 늦었으니 허 공자님께선 저를 따라오세요.”

* * *

허칠안은 명연 낭자의 규방에 들어섰다. 방 안에는 연기가 나지 않는 수금탄(獸金炭)이 피어오르는 중이었고 단향목 향이 가득했다. 부향 방의 운치와 비교했을 때, 이곳이 더 화려하고 풍성했다.

그 여요(女妖)는 허칠안을 향해 예를 갖추며 얌전하게 말했다.

“노비가 공자님의 목욕 시중을 들겠습니다.”

‘넌 가만히 있어. 감히 네가 날 시중들겠다고……?’

허칠안은 고개를 저으며 명연 낭자를 쳐다봤다.

“영매소각에 있을 때는 부향이 내 시중을 들었소.”

‘같이 목욕하자고?’

명연은 기녀로서 이런 경험이 없었기에 순간 부끄럽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했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나지막이 말했다.

“하아(荷兒), 내가 허 공자님의 시중을 들게.”

* * *

선정적인 원앙욕(*鴛鴦浴: 남녀가 함께 목욕하는 것을 일컬음)을 마친 허칠안은 도포를 걸치고 흰 비단 바지를 입었다. 속으로는 쌍욕을 하고 있었다.

‘개 같은 송정풍, 지금까지도 안 오다니.’

“허 공자님, 뭘 기다리시나요?”

명연은 둘둘 말아 놓은 이불에 웅크리고 있었는데 약간 기분이 언짢아 보였다.

그녀는 기녀였지만 어떤 말은 입 밖으로 꺼내기 어려워했다. 자칫하면 욕구불만의 여인으로 보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방에 들어와서 일각 동안 칼을 닦고, 일각 동안 차를 마시는 남자는 정말이지 본 적이 없었다.

‘둘둘 말아 놓은 이불도 다 녹여놨는데, 계속 오지 않으면 자버릴 테다.’

“기나긴 밤은 끝이 없으니 서두르지 마시오. 본관이 생각을 좀 하고 있소.”

허칠안은 고상한 척하며 영양가 없는 말만 늘어놓았고, 곁눈질로 여요(女妖)를 힐끗 봤다.

‘적도 움직이지 않고 나도 움직이지 않고 있군. 감히 나를 건드리면 칼을 꽂아주겠다.’

마침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허칠안은 갑자기 현기증을 느꼈다. 정신적으로 피폐한 것이, 마치 3일 동안 잠을 자지 않은 듯 눈꺼풀이 천근만근이었다.

‘중독됐다…….’

그는 간담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고, 급히 명연 낭자를 쳐다봤다. 그녀는 이미 깊은 잠에 빠져 어떠한 움직임도 없었다.

“허 공자님, 무엇을 기다리십니까?”

가볍게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앞서 눈을 내리깔고 순종하던 시녀는 이제 없었다. 그녀는 요사스럽고 방만한 눈빛으로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는데, 상당히 공격적이었다.

“넌 누구냐? 왜 독을 넣은 것이냐! 본관과 너는 아무런 원한이 없는데, 야경꾼을 독살하는 건 가산을 몰수당할 만한 큰 죄다!”

허칠안이 당황한 척 떠보았다.

“당연히 허 대인을 기다리고 있었지요.”

시녀는 깔깔거리며 앙칼지게 웃기 시작했고, 청초한 얼굴에 요사스러움이 더해졌다.

“날?”

허칠안이 의문스러운 듯 물었다.

그는 슬며시 호흡을 가다듬었으나, 단전 내의 기기가 꿀처럼 걸쭉해져 동원되지 않았다. 사지가 축 늘어지며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빌어먹을. 송정풍 그놈이 나를 해치는구나!’

그는 야경꾼 관아에 대한 믿음으로 남기를 선택했다. 이 여요(女妖)를 잡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보니 송정풍에게 틀림없이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선 이렇게 오래 걸릴 리가 없었다. 교방사와 관아를 수차례 왕복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지금까지 질질 끌 이유가 없다는 뜻이었다.

“기나긴 밤은 끝이 없고, 아가씨는 이미 잠들었으니 노비가 대신 허 공자님을 보살피지요.”

시녀가 천천히 걸어왔다. 그녀는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옷을 하나씩 벗었다.

허칠안은 깜짝 놀랐다.

이건 결코 에로틱한 좋은 일이 아니었다. 야경꾼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그의 경험과 지식도 빠르게 쌓여갔다. 그랬으므로 그는 많은 여요(女妖)들이 채보(*采補: 도교에서 타인의 피를 취하여 자신을 보신하는 것)에 능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들은 남자를 채보하여 약을 달인 뒤의 찌꺼기로 만든다고 했다.

약 찌꺼기의 말로(末路)는 통상적으로 비명횡사였다.

‘저 계집이 어느 곳에 독을 넣은 거지? 단향목? 술? 나는 독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고! 이게 문제의 핵심은 아니지만……. 진정한 핵심은 그녀가 진작에 나를 대적할 방법을 계획했다는 것이다……. 내가 오늘 교방사에 온 것은 순전히 일시적인 충동이라 그녀가 알 방법이 없는데.’

허칠안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요녀가 삼 척(尺)까지 다가왔을 때, 그의 눈에서 갑자기 날카로운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모든 감정이 가라앉았다.

쨍!

허칠안은 흑금장도를 꺼냈다. 실내에 가느다란 선 같은 도광(刀光)이 번쩍하더니 이내 사라졌다.

허칠안은 곧장 가까스로 남긴 힘을 뿜어내, 미친 듯이 달려 창문에 머리를 부딪쳤다.

그는 요녀가 더는 아무런 짓도 하지 못하도록 크게 인기척을 내어, 밖에 있는 사람이 이 상황을 감지하길 바랐다.

털썩…….

허칠안은 요란하게 바닥에 넘어졌는데 그러자 발밑에 무언가에 차였다.

그건 굵고 긴 회색 꼬리였다. 털이 덥수룩한 게 꼭 여우 꼬리 같았다.

허칠안이 뒤를 돌아보니 시녀의 모습은 이미 사라진 상태였고, 그 자리에는 두 동강이 난 종이 인형뿐이었다.

슈욱…….

축축한 혓바닥이 그의 얼굴을 핥았다. 허칠안이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시녀가 등 뒤에 나타나 있었다.

그녀는 호박색으로 변한 눈동자를 홉뜨며 사냥감을 노리는 것처럼 그를 쳐다보았고, 혓바닥으로 재빠르게 그의 얼굴을 핥았다.

“정말 왕성한 혈기야. 네 냄새를 맡고 있으니 감정 억제가 안 돼.”

그녀의 말은 진심이었다. 허칠안이 그녀에게 나타난 생리적 반응을 봤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여자에게 혐오감을 느꼈다…….’

허칠안의 온몸은 경직됐고, 위기감이 그를 극도로 초조하게 만들었다.

방금 뿜어낸 힘의 절반은 잠재력을 끌어올린 것이었고, 절반은 혓바닥 밑에 감춰두었던 대력완을 씹은 덕이었다.

허칠안은 불시에 허를 찔러 요녀에게 칼을 겨누려 했으나, 상대의 실력을 과소평가했다.

이제 어떡해야 할까? 소리를 지르면 한순간에 죽임을 당할 것이 분명했다.

‘힘껏 굴러버릴까? 어쨌거나 이리저리 구르면 파고들지 못할 테니……. 아니면 냄새가 코를 찌를 듯한 비료 첨가제를 뿌려서 저 계집이 구역질이 나게 하던가…….’

요녀가 빙그레 웃으며 손가락을 뻗어 허칠안의 비단 바지를 찢었다. 바로 그 찰나, 그녀의 표정이 갑자기 변하더니 옆을 쳐다보고 소리쳤다.

“누구냐!”

“내가 누구인지 네가 알 필요 없다. 내 이름을 아는 사람은 이미 모두 죽었거든.”

어느새 검은 그림자가 두 사람을 등지고 방안에 나타났다. 그의 백의는 눈보다도 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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