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타경-138화 (138/712)

138화. 요족의 칼

허칠안은 술을 마시며 가볍게 웃곤 답했다.

“근래에는 창작력이 고갈되어 신작이 없네. 어쨌거나 본관도 사나흘마다 시 한 수를 지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의 말에 모든 기녀들은 처음에는 실망하여 섭섭함을 보이다가 이내 이 말이 이상하다는 걸 알아차렸다.

‘사나흘만에? 허 공자의 최근 신작은 부향에게 바치는 그 영매(*咏梅: 매화를 시로 읊다)가 아닌가? 더 이전으로 가면 자양거사에게 바치는 <천하수인불식군>이 있고.’

권학시(勸學詩)의 존재는 그녀들도 몰랐다.

시 두 수는 시간이 흐르면서 널리 퍼졌지만, 열기도 서서히 사그라들고 있었다. 그런데 사나흘만이라는 건 어떻게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이 말대로라면 그가 사나흘 전에 또 신작을 냈다는 뜻이었다.

아아는 궁중에서 전해진 반수칠언을 떠올렸다. 궁중의 시사가 교방사에 퍼지려면 당연히 시간이 좀 걸렸다. 이렇게 계산해 보니 시간이 얼추 들어맞았다.

그녀는 아름다운 눈을 크게 뜨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비단 손수건을 꽉 쥐었다. 이 순간, 그녀는 감격스러운 마음에 연약한 체구가 조금씩 떨렸다. 그녀가 허칠안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허 공자님……, 공자님의 신작이…….”

부향의 반응이 가장 빨랐다. 그녀는 고개를 획 돌려, 촉촉한 눈동자에 허칠안의 모습을 담았다.

그건 말이 나오지 않는 흥분과 긴장이었다. 갑자기 특별히 아끼는 물건이 생겼는데, 뜻밖에도 내 곁에 있다는 희열과 기대감 같았다.

담소 소리가 갑자기 멈췄고, 금청 안은 조용해졌다. 지혜롭고 영리한 기녀들은 무언가를 깨닫고는 잇달아 고개를 돌려 복잡하고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빛을 보냈다.

기대감, 혹은 의아함, 혹은 막연함이었다.

허칠안은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술잔을 내려놓고 미인들을 둘러보며 해탈한 듯한 말투로 말했다.

“그날 회경 공주마마를 모시고 연회에 참석했다가 느낀 바가 있어 이 반수칠언을 지었네.”

그는 하찮아서 말할 가치도 없는 작은 일이라는 듯이 털털한 말투로 얘기했지만, 몇몇 기녀들은 이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였구나…….’

추측이 사실로 밝혀진 지금 이 순간, 아아는 물이 흐르는 곳에 도랑이 생긴다는 느낌이 바로 이런 느낌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봉에는 시가 사라진 지 오래였고, 회경 공주는 예전에 널리 퍼질 만한 가작(佳作)을 지은 적이 없었는데 갑자기 걸작이 하나가 등장했다는 게 왠지 이상하기는 했다.

다만 소식을 들었을 때, 허칠안과 한데 연결 짓기가 쉽지 않았다. 아아는 그저 그가 방금 한 말을 듣고는 그의 야경꾼 신분과 범상치 않은 시재(詩才)를 떠올리며 대담하게 떠본 것인데, 정말 들어맞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현재 이 시를 누가 지었는지 교방사 쪽에서는 아직 모르고 있었고, 바깥에는 궁금해하는 자가 넘쳐났다. 단지 이 소식만으로도 이야깃거리가 되기엔 충분했다.

“허랑…….”

부향이 애틋하고도 그윽하게 그를 바라보는 눈빛은 참 아름다웠다. 시사(詩詞)를 즐기는 그녀에게 있어 이 사실은 어떠한 달콤한 말보다도 끌렸다.

다른 기녀들은 허칠안의 시재(詩才)에 놀라거나 감탄하는 것 외에도, 시사(詩詞) 그 자체를 넘어선 다른 한 가지 때문에 설레했다.

‘……그가 뜻밖에도 황성에 들어갈 수 있다니! 황자 전하와 공주마마들의 연회에도 참석할 수 있다니!’

이는 허칠안이 어느 황자나 황녀의 심복이라는 걸 의미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를 연회에 데리고 갈 리가 없으니 말이다. 이렇게 보니 그의 가치는 시사(詩詞)뿐만이 아니었다.

허칠안은 외모도 훤칠한 편이었고, 야경꾼인데다가 권력을 손에 쥐고 있었다. 물론 기녀들은 지위와 명성이 높은 고관들을 수도 없이 봐왔으니 야경꾼의 권력이라 해봤자 별거 아니긴 했다. 그러나 만약 이 야경꾼이 지식인 사회를 깔볼 만큼의 재능이 있고, 만약 어느 황자나 황녀가 이 야경꾼을 중시한다면?

이런 후광이 합쳐지면, 나이가 지긋한 영감의 첩 노릇을 하는 것보다 훨씬 더 끌리게 되는 것이다.

‘부향만 득을 보게 할 수는 없어. 그를 뺏어와야 해! 지금도 부향은 교방사 최고의 기녀인데, 만약 그녀가 시 한 수를 더 얻게 되면 자매들이 더는 출세하지 못할 거야…….’

여기까지 생각이 이른 기녀들의 웃음은 점점 진실해졌고, 말을 걸 엄두는 나지 않아 그윽한 눈빛으로 허칠안을 꼬셨다.

순식간에 응접실의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주령이 끝난 후 술기운이 감도는 가운데, 기녀들은 호방하게 화권(劃拳)을 했다. 그들은 소매를 걷어 올려 매끄럽고 가느다란 팔뚝을 드러낸 채 고상한 주먹을 연신 내밀었다.

허칠안은 개의치 않고 그녀들에게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 * *

날이 점점 어두워지자 교방사에 손님들이 많아지면서 이상한 기류가 감지됐다.

오늘 많은 기녀들이 문을 걸어 잠근 채 손님을 만나지 않고, 다도회를 열지도 않는 것이었다.

어떤 이는 불공평하다고 느끼며 기생 어미를 찾아갔고, 기생 어미는 속으로 ‘이 계집애들이 반란을 일으키는 건가? 영업을 하지 않고 어떻게 은자를 버니!’라고 생각했다.

기생 어미가 사람을 시켜 알아본 후에야 알게 된 사실은 다음과 같았다. 손님을 만나지 않는 그 기녀들이 모두 청지원에 가 있는데 총 8명이라는 것. 다시 말해서 청지원에 무려 9명의 기녀가 있다는 것이었다.

기생 어미와 손님, 하인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게 어찌 된 일이냐?”

“목소리를 들어보니……, 그녀들이 아주 즐거워하는 것이 거물급 인사를 접대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그럴 리가. 경찰 기간에 어떤 거물급 인사가 감히 이렇게 놀아. 누가 멍청하게 자신의 약점을 직접 적에게 선물하겠니.”

“혹은, 그녀들끼리 모여 장난치는 것일 수도 있고요.”

“멋대로 추측하지 말고 가서 물어보면 될 것 아니냐.”

그렇게 손님은 청지원의 문을 두드렸고, 그러자 문을 지키는 푸른 옷을 입은 소년이 문을 열어주었다. 손님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청지원의 마당 문 앞을 손님 열댓 명이 둘러싸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안에 낭자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 건가?”

화려한 옷차림의 젊은이가 마당 안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손님을 접대하고 있습니다.”

푸른 옷을 입은 소년이 대답했다.

마당 문 앞엔 적막이 흘렀고, 몇 초가 지나자 어떤 사람이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어, 어느 대인께서 안에 계시길래……? 말하기 곤란하면 말하지 않아도 되네.”

푸른 옷을 입은 소년은 잠시 생각했다. 마당 안에 있는 손님은 허 공자로, 결코 손님들이 생각하는 거물급 인사가 아니었다. 소년은 딱히 숨길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여 태연하게 말했다.

“어르신들께서 생각하시는 그런 건 아닙니다. 안에 손님으로 있는 이는 허 공자님입니다.”

‘허 공자?’

모든 이들은 서로 쳐다보면서 각자 머리를 굴려보았지만, 딱 들어맞는 인물을 떠올리진 못했다.

‘본조(本朝)에 허씨 성을 가진 훈귀나 고관이 있던가?’

문을 두드렸던 그 젊은이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어느 허 공자?”

“허칠안 공자입니다. 부향 낭자에게 시를 바친 그 허칠안, 허 공자 말입니다.”

푸른 옷을 입은 머슴은 은자 세 전(錢)을 상으로 받아 기분이 좋은 상태였다. 이 모든 건 허 공자님께서 주신 것이니, 기꺼이 그를 대신해 이름을 날려준 셈이었다.

‘그자라고?’

그 자리의 있던 몇몇 지식인들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우리도 여기서 좀 기다리지. 자손 대대로 전해질 시 한 수가 탄생할지도 모르는 일이야.”

그 말에, 분노하고 질투하던 사람들도 감정을 억눌렀다.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지위가 있는 사람들로, 설령 장사꾼일지라도 문화 활동에 끼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기녀 9명이 시중을 들 정도라면 어떤 풍채일까. 역대 장원랑들도 이런 대접은 받아본 적이 없겠지.”

“장원랑은 오히려 이렇게 허풍 떨며 사치스럽게 낭비하지 못할 걸세.”

* * *

탕탕탕…….

낭랑한 목소리 사이로, 화살촉이 없는 화살 몇 개가 3장(丈) 밖에 있는 단지 속에 정확하게 떨어졌다.

눈을 가리고 돌아 서 있던 허칠안은 가늘고 긴 헝겊을 벗었다. 그리고 하하 크게 웃으며 소아(小雅)와 명연 두 기녀를 끌어안고선 그녀들의 얼굴을 깨물며 말했다.

“기꺼이 패배를 인정하고 술을 마시거라.”

기녀 둘은 허칠안에게 뾰로통한 태도로 밉다고 외치면서도 얌전하게 잔을 들어 술을 마셨다.

“그만하련다, 그만. 적이 없으니 너무 무료하구나.”

허칠안이 두 기녀를 밀어내며 말했다.

“낭자들,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면, 내가 나갔다 와서 낭자들과 300번 대전을 펼치겠소.”

그는 변소에 갈 거라는 표시로 배를 어루만졌다.

기녀들이 뒤에서 소리쳤다.

“나리! 빨리 갔다가 빨리 돌아오셔야 해요.”

* * *

허칠안이 방을 나와 문을 닫자 살을 에듯 찬 바람이 얼굴에 스쳐왔다. 그는 우쭐대던 표정을 거두고 가볍게 탁한 공기를 내뱉었다.

허칠안은 사방을 둘러본 후,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고 가뿐하게 담벼락 위로 뛰어올라 망기술 책 한 장을 찢어 기기로 불을 붙였다.

솨~

그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두 줄기의 환한 빛이 밤하늘을 가르고 나니, 이내 환한 빛이 눈동자에 배었다.

허칠안에겐 교방사에 온 목적이 하나 더 있었다. 근거리에서 이곳의 명운을 관측하여 요기(妖氣)를 색출해내기 위해서였다.

항혜가 이미 현신하여 두 번이나 내성에서 살생을 저질렀음에도, 성 안에 요족이 잠복해 있지 않았다는 걸 그는 믿지 않았다.

‘항혜는 분명히 요족의 칼이다. 요족은 그를 이용해서 어떤 목적을 달성하고 있다. 요족이 몹시 애를 써서 봉인물을 풀어줬으니, 절대로 항혜가 멋대로 굴게 내버려 둘 리가 없지. 나라면 반드시 항혜를 주시하고 있을 거야…….

지난번에 내가 교방사에서 요기를 관측했었는데, 만약 그때 어쩌다 그랬던 거라면 상관없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교방사는 요족이 잠복하는 거점 중 하나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허칠안은 눈 속의 청기(淸氣)로 교방사의 구석구석을 천천히 훑어보았으나, 각양각색의 명운만 보일 뿐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코앞에 있는 청지원, 기녀들이 있는 주옥으로 시선을 돌렸다.

청록색의 요기가 마치 푸른 연기처럼 하늘하늘 흩날렸다.

‘쒯…….’

허칠안은 하마터면 참지 못하고 욕지거리를 할 뻔했다. 순간 간담이 서늘해지면서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요족이 가옥 안에 있다고? 방금 나랑 술도 마셨다고?’

불현듯 그는 한 이야기를 떠올렸다. 공포스러운 이야기의 주인공이 산에서 남의 집에 묵게 되었고 정성 어린 대접을 받았는데, 이튿날 깨어나 보니 자신이 황폐한 산속 공원묘지에 있었다는 섬뜩한 이야기를.

“요족이 기녀들 중 하나인 건가? 아니면 여종? 어쨌든 부향일 가능성은 없다. 내가 그녀와 그렇게 여러 번 잤는데, 그녀가 요족일 가능성은 없어……. 게다가 내가 요기를 관측했던 그날 이미 그녀를 봤었다고.”

허칠안은 아무런 기척도 내지 않고 담벼락 아래로 뛰어 내려와, 발소리를 죽이고 살금살금 주옥으로 다가갔다. 주옥 문이 제대로 닫혀 있지 않아 그는 문틈 사이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그는 청록색 요기가 넘쳐흐르는 여인을 목격했다. 기녀들 중 하나가 아니라, 명연 낭자의 시중을 드는 여종이었다.

‘그녀였군…….’

허칠안은 빠르게 추측을 펼쳤다.

‘왜 지난번에 송정풍 일행을 이끌고 요기를 관측했을 때는 발견하지 못했지? 당시에는 무슨 방법으로 요기를 감춘 거냐고? 그리고 명연 곁에 무슨 목적으로 잠복해 있는 것일까…….

음, 명연이 결백하다고 할 수는 없지. 요족과 같은 패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해 보니 내가 교방사에 들어가자마자 그녀가 사람을 보내 나를 초청한 것이 단지 나의 비위를 맞추고 싶었던 것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는 판단이 서는군.’

허칠안은 즉시 결정을 내렸다. 그는 다시 담을 넘어 청지원을 벗어나, 송정풍이 있는 작은 뜰로 내달렸다.

방금 망기술을 시전하여 관측할 때, 허칠안은 송정풍과 주광효의 위치를 기억해둔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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