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화. 대답
허칠안은 상백 사건단을 이끌고 병부상서 저택에 도착했다. 금패를 하인에게 내보인 후 저채미, 이옥춘 등 세 명의 은라와, 육선문 총포두 여청을 데리고 상서부로 들어왔다.
상서부의 대문과 주변의 담장은 마치 철거된 것처럼 모두 부서져 있었는데, 이 광경은 보기만 해도 섬뜩했다.
“상서부는 정말 웅장하군요.”
저택에 들어서자 여청이 낮은 목소리로 감탄했다.
“이 저택은 아무래 못해도 백은 만 냥은 하겠지…….”
이옥춘이 넘겨짚자 앞장서던 하인이 비웃었다.
‘백은 만 냥? 세상 물정 모르는 촌뜨기야. 고작 백은 만 냥으로 우리 상서부를 사고 싶다니. 저속한 무사 같으니라고.’
허칠안은 발로 그의 엉덩이를 걷어차며 욕지거리를 했다.
“길이나 똑바로 안내하거라, 종놈아.”
하인은 고개를 떨구고 총총 발걸음을 재촉했다.
‘종놈아’라는 세 글자에 대해 얘기하자면, 허칠안은 둘째 공주가 떠오르곤 했다.
‘오늘도 회경 공주를 도발했다가 된통 당했는지는 모르겠지만.’
* * *
허칠안은 응접실에서 병부상서 장봉을 마주쳤다. 차분하고 근엄한 이 남자는 머리가 희끗희끗했고. 염소 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그곳에 앉아 침묵을 지키는 중인 그는, 오랫동안 높은 지위에 몸담고 있던 사람답게 위엄이 서려 있었다.
“상서 대인을 뵙습니다.”
허칠안이 읍을 올리자, 장봉은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궁 안의 공공에게 듣기로, 허 대인이 사건 처리 속도가 빠르고 그 능력이 뛰어나다고 하더군. 상백 사건이 빠른 진전을 보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평원백 일가 전멸 사건의 진범도 밝혔다고?”
“상서 대인, 과찬이십니다.”
허칠안은 상대방의 말속에 또 다른 뜻이 들어 있음을 느꼈다.
“자네는 본관과 그 악당이 무슨 관련이 있길래 그자가 한밤중에 원수를 찾아 집에 찾아온 것이냐 묻고 싶은 게지?”
장 상서가 말했다.
“바로 그러하옵니다.”
허칠안은 상대가 이렇게 협조적일 줄 생각지도 못해 내심 당황한 상태였다.
장 상서는 아무런 감정도 싣지 않은 채 허칠안을 쳐다보다가 갑자기 굳은 표정을 짓더니 탁자를 치며 큰소리로 호통쳤다.
“본관 역시 알고 싶네! 또한 본관은, 평원백 살인 사건이 일어난 지 이미 수일이 지났음에도 야경꾼은 왜 아직도 살인범을 잡지 못한 것인지 더욱 알고 싶네! 또한 본관은 야경꾼이 왜 살인범을 몇 번이고 놓친 것인지도 알고 싶고!”
‘초장에 날 잡으려고 하는군…….’
허칠안은 어쩔 수 없이, 또 읍을 올리며 말했다.
“상서 대인, 노여움을 가라앉히십시오.”
장 상서는 표정을 억누르고 탄식하며 말했다.
“비록 오늘 조회에 참석하지 않았으나 어젯밤에 있었던 상황의 후속 조치에 대해 알고 있네. 다섯 명의 고품 무사가 힘을 합쳤음에도 상대를 제압하지 못하고, 도리어 금라 넷이 부상을 입었다지.
조정에 대한 야경꾼의 절대적인 충성심은 당연히 본관도 잘 알고 있네. 안타깝게도 감정의 병이 위독하여 나설 수가 없어 우리도 불안에 떨고 있고, 자네들도 명을 받들어 사건을 해결하느라 지치지 않았는가.”
그의 표정에는 상급자의 엄숙함이 묻어났으나, 온화하고 아랫사람을 배려하는 듯한 말투는 알게 모르게 호감을 불러일으켰다.
허칠안은 병부상서에게 약간의 호감을 느꼈지만 이내 그 진의를 알아차렸다.
‘처음에는 먼저 말로 자극하여 초장에 날 잡으려 하고, 그다음에는 태도를 바꾸어 동정심과 공감을 끌어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인정받는 듯한 느낌에 감격하게 만드는 거다.’
2품이 되어 정치를 하는 사람은 확실히 단순하지 않았다.
허칠안은 기침 소리를 내며 목을 가다듬고 상대방을 떠보았다.
“평원백 일가 전멸 사건의 진범과 어젯밤 상서부를 습격한 놈은 동일인입니다. 그는 청룡사의 승려로 법호는 항혜이지요.”
“항혜?”
병부상서가 미간을 찌푸렸다.
“본관은 그자를 모르네. 왜 본관의 저택을 야간에 습격해야만 했던 것이지? 청룡사의 승려라면, 허 대인은 어찌 청룡사에 사람을 찾으러 가지 않고 본관의 저택에 온 것인가?”
“항혜는 보잘것없는 승려로, 응당 상서 대인께서 아실 가치가 없지요. 하지만 일 년여 전에 그와 여성 참배자가 사사로이 도망쳤고, 그 이후로 소식이 끊겼습니다. 그 참배자는 평양군주이고요.”
“평양군주?”
장봉은 놀란 기색이 역력했는데 영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평양군주가 도피 행각을 벌였다니 뜻밖이로군…….”
허칠안은 줄곧 그를 관찰하며 그 미세한 표정 변화를 통해 상대방의 속마음을 분석하고 싶었으나 실패했다.
전혀 빈틈이 없었다.
허칠안은 다시 몇 가지 질문을 던지며 목표를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장역, 장 공자는 계십니까?”
이에 장봉이 하인을 시켜 장역을 불러오게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혈색이 매우 나쁘고, 눈 밑이 시커먼 장역이 응접실에 왔다.
‘……송경과 누가누가 다크서클이 더 심한지 겨뤄도 되겠네.’
허칠안이 물었다.
“장 공자님, 항혜라는 승려를 아십니까?”
“모르네만.”
장역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 항청은 아십니까?”
“모르네.”
“항원은 아시는지요?”
“모르네.”
“평양은 아십니까?”
“모르네…….”
장역은 말을 하다가 갑자기 반응했다.
“평양군주 말인가? 당연히 알지.”
‘완전히 건성건성이구먼…….’
허칠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다 여쭤봤습니다. 장 상서님과 장 공자님의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 * *
상서부에서 나온 허칠안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방금 질의하는 과정 중에, 어떤 말이 진실이고 어떤 말이 가짜일까?”
저채미가 눈을 희번덕이며 말했다.
“참말은 하나도 없었어.”
허칠안이 멍해져 물었다.
“누구 말하는 거지?”
저채미가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부자(父子) 둘 다. 아, 마지막 말은 진짜야. 그 신장이 허한 놈이 평양군주를 안다고 했던 그 말.”
‘장봉이 눈을 부릅뜨고 거짓말하는 건 이해할 수 있겠는데……, 왜 장역도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지? 그렇다면 장역이 항혜와 평양군주의 도피 행각에 가담했다는 한 가지 가능성밖에 없다.
생각해 보자. 만약 장역이 사정을 모르는 자라면 장봉이 아무 이유 없이 이런 기밀을 아들에게 누설할 리가 없지. 때로는 모르는 것이 최선의 보호이고.
게다가 시간관리대사로서 장역의 이미지는 누가 봐도 믿음직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내가 만약 장 상서라면 절대로 믿음직스럽지 않은 사람에게 멸문당할 만한 사건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것이다. 설령 그가 아들이라고 해도 말이야.
재미있는 것은, 그날 밤 항혜가 평원백 적자를 죽이면서 했던 말이다.’
<나는 원수를 갚으러 왔다.>
‘이 사건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지고 있고, 점점 더 재밌어지고 있어. 그리고 나는 이미 진상에 바짝 접근한 것 같은 느낌이야……. 음, 항혜와 평양군주 도피 사건의 진상. 그 둘의 일을 확실히 해야만 상백 사건도 계속해서 조사해나갈 수 있을 거야.’
허칠안은 순간 마음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 * *
바쁜 하루를 보내고 퇴근할 때, 허칠안은 저채미와 여청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두 사람이 간 후에는 송정풍과 주광효가 사이좋게 편청에서 걸어 나왔고, 세 사람은 사이좋게 말에 올라 사이좋게 교방사로 들어갔다. ‘
며칠간 강도 높은 사건 때문에 바쁘게 뛰어다닌 허칠안은 긴장을 풀고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풀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잠을 자는 건데, 집에서 자나 부향 침상에서 자나 큰 차이는 없었다. 그리고 부향도 여러 번 사람을 보내 허칠안을 보고 싶어 했고, 영매소각에서 차를 마시고 싶다는 소식을 전해온 터였다.
기왕 이렇게 된 거 허칠안은 약속을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때는 아직 해가 지지 않은 상황이었고 관아는 마침 퇴근으로 혼잡할 때라 교방사에는 오히려 손님이 많지 않았으며, 골목에도 사람이 별로 없었다.
“나는 어린 기생과 방에 들어갈 예정이야.”
송정풍이 말했다.
“어린 기생과의 밤은 수지가 맞지 않아. 부르는 몸값이…… 좀 높지.”
허칠안이 간곡하게 제안했다.
대봉의 어린 기생은, 진정으로 기예만 팔지 몸은 팔지 않았다. 어린 기생은 과대광고에 가까웠다. 교방사에는 성년 여성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자아이도 많이 있었는데, 이 여자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거문고와 바둑, 서예와 그림을 전수받으며 다재다능한 기녀로 길러지곤 했다.
이렇게 서서히 자라 용모와 기예가 보통인 아이는 초보 무희나 가녀를 맡게 됐다. 그리고 용모가 아름답고 기예가 출중한 아이는 어린 기생이 되었다.
어린 기생의 명성이 어느 정도 쌓이면, 남자의 마음을 흥분시키는 경매에 부쳐지게 되곤 했다.
“이건 결코 수지가 맞지 않아.”
허칠안이 설득했다.
“내가 말했잖나. 나 같은 남자는 장가를 가 아이를 낳는 게 어울리지 않아. 은자를 모아둬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송정풍이 태연하게 말했다.
“나는 장가를 갈 건데.”
주광효가 간단명료하게 덧붙였다.
하지만 부향 뜰의 다도회 가격은 너무 비쌌고 기녀는 허칠안의 연인이라 그는 영매소각에 남아 시녀와 잘 수밖에 없었다.
광효는 이제 부자가 됐으니, 더 예쁜 여자와 밤을 보내고 싶었다.
세 사람은 각자 흩어졌고, 허칠안은 영매소각으로 들어갔다.
* * *
“허 공자님이십니까?”
허칠안은 뒤에서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헐, 청루에서 누군가 날 알아봤다고?’
그는 속으로 욕을 퍼부으며 몸을 돌렸는데 이윽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곳엔 푸른색의 바지를 입은 빼어난 용모의 소년이 있었는데, 영매소각 문 앞을 지키고 있는 소년의 차림새와 일치했다.
“허 공자님, 저희 명연(明硯) 낭자가 공자님께 차를 대접하고 싶다고 합니다.”
빼어난 용모의 소년이 몸을 굽히고 웃는 얼굴로 알랑거렸다.
‘명연……?’
허칠안은 잠시 머리를 굴렸다. 곧 이 명연 낭자가 누구인지 떠올랐다. 그녀는 무희(舞姬)로 명성이 자자한 기녀로, 예전의 부향과 같은 등급이었다.
물론 부향은 현재 성공적인 마케팅 덕에 옛날의 부향이 아니었다. 지금은 교방사의 모든 기녀를 제치는 기녀가 되었다.
춤을 배웠다라……. 허칠안은 눈을 반짝이곤 웃으며 말했다.
“길을 안내하거라.”
빼어난 용모의 소년은 얼굴에 웃음꽃이 확 피더니, 쉴 새 없이 허리를 굽혀 절했다.
“허 공자님 저를 따라오세요. 이쪽으로, 이쪽으로…….”
허칠안을 데리고 가면, 명연 낭자는 틀림없이 미친 듯이 기뻐할 테고, 그러면 은자를 주는 데 인색하게 굴지 않을 테지만, 하지만 만약 빈손으로 돌아간다면 한바탕 꾸짖었을 것이었다.
영매소각 문 앞에 마침 허칠안을 마중 나오려던 어린 문지기는, 이 광경을 보더니 얼굴빛이 변하면서 입을 떡하고 벌렸다. 그는 허 공자를 되찾고 몰래 빼내려던 동료에게 큰소리를 치고 싶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자신의 신분과 지위가 이 일에 끼어들기엔 부족했고, 허 공자의 미움을 살 수도 있다는 판단도 들었다.
그는 이를 악물고 문을 닫았다. 그리고 몹시 초조한 마음으로 뜰에 뛰어 들어갔다.
* * *
“누님들! 큰일 났어요.”
그는 주옥(酒屋)에 들어가 문 앞에 서서, 안에서 탁자를 닦고 냉채(冷菜)를 상에 올리던 여종들을 향해 큰소리로 경고했다.
이윽고 한 시녀가 눈살을 찌푸리며 돌아보더니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허둥지둥대기는. 무슨 일이니?”
어린 문지기가 다급한 얼굴로 불평했다.
“허 공자님을 다른 사람한테 뺏겼어요. 여기 뜰 밖에서 대기하고 있었는데, 명연 낭자 뜰의 사내종이 도중에 낚아챘어요!”
“뭐라고?”
“이 망할 놈이 감히 우리 아가씨의 남자를 뺏다니!”
모든 여종들이 화내며 경악했다. 맨 처음 대꾸하던 시녀는 젖은 수건을 내던지더니 치맛자락을 잡고 마치 군사 상황을 보고하려는 듯이 안방으로 내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