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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134화 (134/712)

134화. 항혜 현신하다

깊은 밤. 내성의 넓디넓은 거리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찬바람이 나무 끝을 휘감으며 스산한 소리를 냈다.

그때 획일적인 발자국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성을 순찰하는 수위들이 거리 끝에서부터 걸어오고 있었다. 어젯밤 평원백 일가 전멸 사건이 발생한 후에 내성의 수비력이 단번에 몇 배로 뛴 바였다.

검은 그림자 하나가 내성을 왔다 갔다 하며 거리를 지나쳤다. 순찰하고 있는 야경꾼과 성을 지키는 어도위, 금오위를 피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사실 매번 이곳에 시선이 쏠릴 때마다 어떤 장애물에 몸을 숨겼는데, 때로는 담장이었고 때로는 처마이기도 했다.

그는 이렇게 가까스로 병부상서 저택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가 고개를 들어 편액을 쳐다보니 모자에서 아래 얼굴 절반 정도가 드러났는데, 보랏빛의 기괴한 입가에 흉악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누구냐?”

문을 지키던 부위(府衛)가 그제야 검은 도포의 남자를 인식하고는 큰소리로 호통치는 동시에, 제식검을 빼들었다.

그러자 남자가 피풍 아래의 오른팔을 들어 올렸다. 선홍색 피부에 돌출된 무시무시한 푸른 핏줄은 마치 마귀의 팔 같았다.

그는 손바닥을 부위(府衛)에게 겨누고, 대문을 겨누더니 돌연히 움켜쥐었다.

쾅!

그러자 대문도 부위도 가루로 변했다. 기기가 잔잔한 충격파를 일으켰고, 담장 등 주변의 모든 사물도 다 가루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병부상서 저택에 등이 켜지더니, 겁에 질려 부르짖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저택의 시위대는 칼을 쥐고 대문 방향으로 내달렸다.

검은 도포의 남자는 눈앞에 더는 장애물이 없자, 성큼성큼 병부상서 저택으로 들어갔다. 피풍 아래의 그윽한 검은 눈동자, 얼음같이 차고 기괴한 눈은 저택의 등불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가 상서부에 진입하자 주위의 풍경이 돌변했다. 검은 도포의 남자는 피풍 아래의 얼굴을 조금씩 움직여 주변 환경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이곳은 황량한 지역, 황폐한 거리였다. 주변에는 누렇게 시든 잡초가 무성했고, 아주 먼 곳에는 남루한 집이 어렴풋이 보였다.

빈민조차도 오기 싫어하는 황량한 지역이었지만 사실 경성 같은 곳에 적잖이 존재했다. 단지 대봉 경성이 너무 커서 이런 지역은 조정에 의해 선택적으로 잊힌 곳이기도 했다.

“내가 병부상서 저택에, 전송 진법을 설치했다.”

누군가 담담하게 말했다.

검은 도포의 남자가 몸을 돌리니, 십여 장(丈) 밖에 서서 백의를 휘날리고 있는 형체가 보였다. 그는 검은 도포의 남자를 등진 채 양손은 뒷짐을 지고 있었는데, 그의 장발과 백의가 펄럭였다.

높은 기개는 남다른 기시감을 주었다.

“너는 누구냐?”

검은 도포의 남자가 쉰 목소리로 묻자, 백의의 남자가 답했다.

“뜻밖에 경성에 내가 누군지 모르는 자가 있다니. 자네, 나의 주의를 끄는 데 성공했네.”

검은 도포의 남자는 콧방귀를 뀌더니 오른팔을 들어, 백의의 남자를 향해 손바닥을 가볍게 쥐었다.

기기 폭발로 인해, 백의 남자의 형체가 물속에 비친 그림자처럼 흩어져 사라졌다.

“자네는 내가 그곳에 있는 줄 알았겠지만 사실 나는 여기에 있네.”

백의의 남자는 다른 방향에서 나타났고, 여전히 검은 도포의 남자를 등지고 있었다.

“4품 술사?”

검은 도포의 남자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더니 이내 냉소를 지었다.

“보잘것없는 4품이 감히 나를 막다니.”

그의 말투는 지극히 방자하고 오만했다. 고품 강자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이었다.

‘보잘것없는 4품이 감히 나를 막는다라…….’

백의의 남자는 나지막하게 몇 마디를 읊조리더니 감탄하며 말했다.

“잘 얘기했군. 자네의 패기 넘치는 발언이 내게 큰 깨우침을 줬어. 너희들, 보잘것없는 4품 무사도 내 앞에서 강 건너 불구경할 셈인가?”

검은 도포의 남자는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어리둥절했으나, 이내 깨달았다. 동서남북 네 곳에서 각각 검은색 차복에 망토를 걸치고 가슴에는 금라를 수놓은 야경꾼이 나타난 것이었다.

동쪽의 금라는 냉혹한 얼굴에 무표정을 하고 있었고, 여인처럼 빼어난 외모의 서쪽 금라는 입가에 차가운 웃음을 머금은 채였다. 북쪽의 금라는 제식장검이 아닌 장검 한 자루를 품고 있었고, 칼처럼 날카로운 눈빛의 남쪽 금라는 눈가에 잔주름이 있었다.

그때 화살 소리가 들려왔다. 백의 남자의 왼쪽에는 어느새 상노(*床弩: 쇠로 된 발사 장치가 달린 활로 여러 개의 화살을 연달아 쏠 수 있음)가 줄줄이 나타나 자동으로 활시위를 조이고 있었다.

오른쪽에는 소형화포가 한 대 한 대 등장했다.

펑펑펑……!

쿵쿵쿵……!

쇠뇌살과 포탄이 동시에 검은 도포의 남자에게 발사됐다.

화포는 투명한 공기벽과 맞닥뜨려 공중에서 터졌고, 그 공기벽을 따라 화려하고 아름다운 불꽃 파도가 퍼져나갔다.

화포에 의해 공기벽이 흔들리자, 쇠뇌살에 새겨진 주문이 나타나 공기벽을 아주 가볍게 뚫고 검은 도포의 남자를 향해 날아갔다.

쇠뇌살 그 자체가 소형 진법에 속했다.

검은 도포의 남자는 느긋하게 오른팔을 들었다. 쇠뇌살이 팔뚝에 날아와 부딪히더니 하나하나 부러졌다.

피풍이 조각조각 찢겨 검은 도포 남자의 정체가 드러났다. 그는 준수하고 기괴한 외모의 젊은 승려로, 그의 오른팔은 정상인보다 더 굵고 단단했으며 징그럽고 소름 끼치는 모습이었다.

“……동피철골?”

시종일관 등을 지고 있던 백의의 남자가 의아하게 여기며 중얼거렸다.

이때 네 명의 금라가 동시에 손을 뻗자, 맹렬한 창의(槍意)와 검의(劍意)가 폭발하면서 검은 도포의 남자를 가장 먼저 공격했다. 남궁천유와 강율중은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근거리 육박전을 선택했다.

“부처님께서는 자비를 베풀라 말씀하셨다.”

검은 도포의 남자가 양손을 합장하더니 불호(佛號)를 읊었다.

맹렬한 창의와 검의가 잠시 주저하며 순간 날카로움을 잃었으나, 눈 깜짝할 사이에 정상으로 회복했다.

검은 도포의 남자는 일촉즉발의 순간을 기회로 삼아 연속해서 오른팔을 흔들어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는 창의와 모든 것을 꿰뚫는 검의를 격파시켰다.

이후에 그는 허리를 비틀어 되받아쳐, 강율중의 비할 바 없는 권의(拳意)에 맞섰다.

강율중은 컥컥거렸다. 입가에는 선혈이 흐르고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검은 도포의 남자는 이 기회를 틈타 몸을 돌려 남궁천유의 가슴을 한 방 갈겼다. 그의 짧은 피풍이 갈기갈기 찢겼다.

공포스러운 공격력에 남궁천유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남궁천유의 눈에서 선홍색 빛이 마구 솟구쳤다. 그의 준수한 얼굴이 흉악함으로 물들더니 목구멍에서 사람 소리 같지 않은 포효를 내뱉었다. 이윽고 망치 하나가 검은 도포 남자의 얼굴을 내리쳤다.

두 사람은 동시에 뒤로 물러났고, 지지 않으려 목숨을 걸고 싸웠다.

네 명의 무사와 내력이 불분명한 괴물은 황량한 지역에서 죽일 듯이 싸우며 가는 곳마다 폐허로 만들어 버리고 있었다.

기기가 겹겹이 폭발하여 사방을 휩쓰는 무시무시한 폭풍이 발생했다.

백의 술사와 그들은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근거리 격투에서의 무사는, 동(同) 경지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무적이었다.

술사의 전투는 당연히 더 우아하고 품격 있었다. 백의 술사는 땅을 밟으며 힘차게 외쳤다.

“지발사기(地發殺機)!”

진문(陳紋)이 그의 발밑에서 퍼져나가, 죽일 듯이 싸우고 있는 무사들을 감쌌다. 이미 엉망진창이 된 지면이 갑자기 흔들리더니 무서운 기세로 응결되기 시작했다.

백의 술사가 다시 땅을 밟으며 외쳤다.

“천발사기(天發殺機)!”

불현듯 밤하늘에 먹구름이 몰려왔다. 먹구름은 전기 뱀을 삼키고 내뱉었고, 세찬 천둥소리가 한곳으로 응집했다.

“인발사기(人發殺機)!”

백의 술사의 이 한 마디로 천세(天勢), 지세(地勢), 인세(人勢)가 한데 응결되더니, 알력을 일으키며 검은 도포의 남자를 향해 날아갔다.

그를 천하의 적으로 몰아세운 것이다.

그의 흉악하고 무시무시한 오른팔이 자극을 받은 듯 자발적으로 재생했다. 그리고 형용하기 어려운 위압적인 폭발로 돌출됐던 혈관이 이내 환하게 빛났다.

준수하면서도 기괴한 자태의 승려는 섬뜩한 웃음을 지으며 주먹을 쥐었다.

쾅!

기기가 폭발하는 커다란 소리는, 모든 것을 통째로 삼켰다.

충격파는 사나운 조수(潮水)로 변했다가 잔잔한 물결로 흩어졌고, 이는 먼 거리에 있던 가옥을 휩쓸어 많은 생명이 소리소문없이 소멸되었다.

금라 네 명은 씩씩거리며 각자 다른 방어 수단을 동원해 차력타력(*借力打力: 태극권에서 상대방이 공격하는 힘을 다시 되돌려주는 격투 기술)으로 멀리 날아가 폭발의 중심에서 벗어났다.

이내 모든 것이 고요해졌다. 검은 도포 남자의 모습은 사라진 지 이미 오래였다. 네 명의 금라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한편으로는 차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저놈 배경이 무엇인고? 저 팔 말이다.”

백의 술사가 갑자기 나타나, 모두를 등지고 말했다.

“팔?”

검을 다루는 금라가 되물었다.

“내가 관찰한 바로는 그 팔은 그의 것이 아니네. 그렇게 무시무시한 마기는 내 평생 본 적이 없어.”

백의 술사가 말했다.

강율중이 백의 술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말했다.

“양천환(楊千幻), 자네는 눈이 등에 달렸나?”

양천환이라 불린 백의 술사가 말했다.

“그자가 떠나기 전에, 뒤를 돌아 몰래 한번 봤네.”

“…….”

강율중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몸을 돌려서 제대로 얘기할 수는 없는가? 자네 예전에는 이러지 않았잖나.”

“내 거절을 너그럽게 받아주시게. 양 모 씨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하니까.”

그는 말을 마친 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내가 감정 스승님과 위연을 자세히 관찰해봤는데, 위연은 전망청에 서서 자네들과 등지고 있는 걸 좋아하는 것 같더군. 한 명은 늘 팔괘대에 앉아 우리와 등지는 것을 좋아하고 말이야. 그리고 우리는 위연과 스승님 모두, 명인다운 품격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동라 네 명의 머릿속에는 무언가 게워내고 싶은 것이 있다는 생각이 떠다녔지만, 끝내 게워내지 못했다.

강율중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고, 본 주제로 돌아와 말했다.

“보아하니 현재 가지고 있는 정보에 의하면 그 손이 바로 상백 아래의 봉인물인 듯하네.”

‘상백 아래의 봉인물이라…….’

양천환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전날 경성에 돌아왔는데, 마침 오늘 사천감을 대표하여 미친놈 하나를 토벌하러 온 것이었다.

물론 영진산하 사당이 얼마 전에 폭발했다는 건 알고 있었으나 그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모두가 알다시피 술사는 연약(練藥)실과 연금술 실험실만 갖춰져 있고, 제때 밥만 차려준다면 10년 동안 외출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 승려는 아마도 항혜일 것이네.”

검을 다루는 금라가 말했다.

금라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얘기하는 걸 듣고 있자니 양천환의 머릿속에는 물음표가 떠올랐고, 점점 더 궁금해졌다.

“만약 그를 잡을 수 있다면 평양군주의 행방을 알 수 있을 걸세.”

강율중이 말했다.

‘평양군주? 일 년여 전에 실종된 그 평양군주?’

양천환은 이 군주가 실종될 때, 사천감 술사의 병력이 거의 총출동할 정도로 큰 소란이 벌어졌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여기까지 듣자 그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등을 진 채로 물었다.

“상백 사건이 발생한 지 겨우 며칠밖에 되지 않았는데, 너희 야경꾼들이 사건을 이렇게 명확하게 조사했다고? 나는 어째서 사천감의 사제들이 말하는 걸 듣지 못한 거지? 자네가 그들에게 사건 처리 협조 요청을 하지 않았다는 말은 마시게. 그대 야경꾼들이 사건을 처리하는 능력이 그렇게 뛰어나지는 않으니 말일세.”

이 고품 술사는 전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이치대로라면 상백처럼 이렇게 큰 사건을, 사천감의 술사가 그에게 말하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어쨌거나 사천감은 조정의 사건 처리에 협조하여 내부적으로 정보를 주고받는 것이 다반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천환은 항혜, 평양군주 등의 정보에 대해 전혀 들어본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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