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타경-131화 (131/712)

131화. 국사 (2)

붉은 담장에 검은 기와, 높고 넓은 대문.

이곳은 매우 기품이 넘치는 도관(*道觀: 도교의 사원)이었다.

두 꼬마가 문 앞에 멍하니 서서는, 말을 타고 다가오는 허칠안을 주시하고 있었다.

“소생 허칠안, 야경꾼 관아의 동라로, 황제 폐하의 명을 받들어 상백 사건을 철저히 조사하고 있사옵니다. 국사님을 뵙길 청하니 두 도사님께서 전해주시길 바라옵니다.”

허칠안이 먼저 입을 열며 금패를 내보였다.

두 꼬마 도사는 정중한 태도를 보이며 읍을 올렸다.

“대인,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왼쪽에 있던 꼬마 도사가 빠른 걸음으로 사원 안으로 들어갔다. 허칠안이 십여 분을 기다리자 꼬마 도사가 되돌아오더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도수께서는 무공을 연마하고 계셔서 사람을 만나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부디 돌아가 주십시오.”

‘만나지 않는다라……. 보아하니 황제의 금패가 정말 무용지물이구나. 어쩔 수 없이 지서의 존재를 드러내야겠군.’

허칠안이 이어서 말했다.

“두 도사님께서 다시 한번 제 말을 전해주십시오.”

오른쪽에 있던 꼬마 도사가 조금도 틈을 주지 않고 말을 끊었다.

“안 만나겠다 하시면 못 만나시는 겁니다. 대인께서 입이 닳도록 말씀하셔도 도수께서는 대인을 만나지 않으실 겁니다.”

허칠안은 아무 말 없이 숨을 내쉬더니 몸을 돌려 말에서 내렸다. 그리고선 잠시 두리번거리더니 품에서 준비한 금자 두 덩어리를 꺼냈다.

이 순간만큼은 침묵이 소리를 압도했다.

꼬마 도사가 다시 사원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아이고, 돌아오십쇼. 아직 말을 다 하지 못했습니다…….”

이에 허칠안이 꼬마 도사를 불러 세워 귓속말로 한 마디 하였다.

말을 전하러 갔던 꼬마 도사는 십여 분 뒤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꼬마 도사는 친절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대인, 도수께서 들라 하십니다.”

* * *

허칠안은 꼬마 도사를 따라 전전(前殿)과 광장, 또 누각과 화원을 지나 영보관의 가장 깊은 곳에 이르렀다.

이곳은 아늑하고 고요한 작은 정원으로, 화초와 나무는 이미 시든 지 오래인 듯했고, 우뚝 솟은 석가산과 정자 그리고 푸른 물결이 넘실대는 연못이 있었다.

경국지색의 외모를 가진 국사가 연못 위에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몸에는 태극포(太極袍)를 걸친 채, 머리에는 연꽃관을 쓴 차림이었다. 미간에는 진홍색의 주사(朱砂)가 찍혀있는 것이, 청아하고 수려하면서도 매혹적이었다.

새하얀 얼굴, 오뚝한 콧날, 도톰한 입술, 눈을 감았을 때 촘촘하게 엇갈리는 속눈썹까지. 마치 결점 없는 얼음 조각 같았다.

허칠안은 화원에 들어서자마자 그녀를 바라봤다. 그는 걸으면서도 그녀를 계속 관찰했지만 나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

국사는 막 서른이 된 젊은 여자 같기도 했고, 꿀이 뚝뚝 떨어질 만큼 성숙한 여자 같기도 했다.

‘내가 이 여인을 아내로 맞이할 방법을 생각해 내야 한다는 느낌이 드는 건, 너무 오랫동안 여색을 가까이하지 않아서인가, 아니면 인종에 특수한 수련 법문인…… 유혹 같은 게 있는 건가?’

허칠안은 문득 이런 생각을 했으나 겉으로는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금련 도사가 나를 찾아오라고 시킨 것이냐?”

낙옥형이 눈을 떴다. 동공과 흰자의 비율이 딱 적절한 빼어난 눈이었다.

“그렇습니다. 금련 도사의 음신이 중상을 입어 육신도 다쳤습니다. 이에 제게 취원단 한 알을 구해오라고 부탁하셨습니다.”

평소의 허칠안이라면 ‘두 알을 구해오라고’ 말한 뒤, 한 알은 심부름 값으로 본인이 꿀꺽했을 터였다.

하지만 그는 낙옥형이라는 인종 도수를 잘 알지 못했고, 생명의 은인인 금련 도사에게 보답하기 위해 꼬박꼬박 사실대로 말했다.

이런 거물 앞에선 절대로 자만하거나 개성을 드러내서는 안 됐다. 그렇게 하면 일이 틀어지기 십상이었다.

“자네가 천지회의 구성원이라면, 지서 몇 호를 손에 쥐고 있는가?”

낙옥형의 목소리는 아주 듣기 좋았다. 생동감 넘치며 자성(磁性)이 있어 전생의 성우를 떠올리게 했다.

“삼호입니다.”

허칠안이 답하자, 낙옥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녀는 아름다운 눈동자로 허칠안을 뚫어지게 바라볼 뿐,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갑자기 그녀가 고민하는 소리를 내더니 당혹스러워하며 말했다.

“자네의 명이 이상하군……. 사주팔자를 알려주게.”

‘내 이상함을 간파할 수 있다고?’

허칠안은 곧장 사주팔자를 알려주었다.

낙옥형은 섬섬옥수를 뻗어, 영롱하고 고운 손가락을 꼽아보며 잠시 셈을 하더니 버들잎 같은 눈썹을 찌푸렸다. 마치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를 맞닥뜨린 사람의 얼굴 같았다.

허칠안은 다소 긴장했으나, 또 기대감이 서린 어조로 물었다.

“국사, 왜 그러십니까?”

“원숭이!”

그녀가 외쳤다.

‘원숭이? 그녀가 말하는 건 내 사주팔자와 우연히 일치하는 대표 이미지인 듯한데. 마치 전생의 별자리 같은…….’

허칠안은 마음속의 사념이 꿈틀거리는 것을 발견했다.

‘이 여인은 나도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남성과 여성의 문제를 탐구하고 싶게 만든다……. 이는 틀림없이 내가 문제 있는 게 아니라 그녀가 나의 마음을 오염시킨 거겠지. 인종 고유의 특징인가? 음, 나중에 금련 도사에게 물어봐야겠다.’

낙옥형을 고개를 젓더니 생동감이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평범하기 그지없구나.”

그녀는 더 이상 얘기하길 원치 않았다. 그녀가 소매에서 도자기 병을 꺼내 손가락을 구부려 가볍게 튕기니 도자기 병이 날아와 허칠안 앞에 떨어졌다.

“감사합니다, 국사!”

허칠안은 도자기 병을 받고선 읍하며 감사를 표했다.

‘그녀도 나의 구체적인 상황을 꿰뚫어 보지는 못하는군. 다만 금련 도사처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을 뿐이야…….’

허칠안은 더는 미련을 두지 않고 작별 인사를 고한 뒤 떠났다.

* * *

황성으로 들어온 마차가 궁성 입구에서 멈췄다. 마차를 몰던 강율중이 마차에서 뛰어내리더니 나무 사다리를 꺼내 마차에서 내리는 위연을 맞이했다.

황실 사람을 제외하면, 신하는 궁성 안에서 마차를 몰거나 말을 탈 수 없었다.

위연이 강율중을 데리고 궁성으로 들어갔다. 어서방(御書房)에 가까워졌을 때 맞은편에서 유 공공이 걸어왔다.

“위 공, 드디어 오셨습니까.”

유 공공이 푸념을 늘어놓았다.

“폐하께서 저를 보내시어 이곳에서 위 공을 기다리라 하셨습니다. 서둘러 가십시오. 폐하께서 어서방에서 노발대발하고 계십니다.”

위연은 침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하늘이 무너져 내려도 전혀 동요하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를 풍겼고, 유 공공의 말에도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

유 공공과 위연은 같은 편으로, 위연은 모든 환관 집단의 정신적 지주였다. 어떠한 조정의 대신도 황궁에 스파이를 심기 어렵겠지만 위연은 아주 쉽게 할 수 있었다.

위연이 어서방 문 앞에 이르니, 안에서 원경제가 욕설을 퍼붓는 소리가 들려왔다.

“쓸모없는 놈, 전부 쓸모없는 놈들이다! 상백 사건을 지금까지도 해결하지 못하고, 너희 둘이 파악한 단서가 일개 동라만도 못하다니, 조정에서 너희 둘을 키우는 게 무슨 소용이더냐? 짐이 너희 둘을 기용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냔 말이다!”

어서방 안에는 형부상서와 대리사경, 그리고 부윤 진한광 세 사람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서 고개를 숙인 채 원경제의 훈계를 듣고 있었다.

세 사람 외에도 당조 재상, 각 부의 상서, 훈귀 몇몇이 양옆으로 쭉 늘어서 시선을 내리깔고 있었다.

평원백부 일가 전멸 사건은 오늘 대봉 경성 전체에 두루 퍼진바였다. 왕후 귀족들은 알 수 없는 공포에 떨며 위연을 탄핵하고 살인범을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는 상서를 올리는 한편, 은밀히 저택의 호위 병력을 강화하고 있었다.

한순간에 인심이 흉흉해졌다. 거리에는 요족 강자가 경성에 침입해 조정의 중신들을 마구잡이로 살해하여 조정의 기강을 어지럽히려 한다는 말이 나돌았다.

또 불문이 중원(中原)에 불문을 전파하고, 대봉 황조를 핍박하여 굴복시키기 위해 암암리에 교란을 피웠다는 설도 퍼져나갔다.

“폐하, 감정은 왜 이 시점에 병이 난 것입니까?”

“허, 병이 났다니? 분명히 수수방관하는 것이다.”

“폐하께서는 어젯밤 흉악범의 도주와 야경꾼의 독직에 대해 반드시 위연에게 엄벌을 내리셔야 합니다.”

몇몇 대신이 쉴 새 없이 간언했다.

위연은 그 요란함을 가르고 어서방으로 들어갔다.

“위연!”

원경제는 그를 보더니 공문서 한 묶음을 움켜쥐고선 내리쳤다. 종이가 바닥 여기저기로 흩어졌다. 그는 노발대발하며 소리쳤다.

“삼일이다! 삼일 내에 범인을 색출하지 못한다면, 짐은 너를 파면할 것이다!”

위연은 바닥에 흩어진 공문서를 침착하게 줍더니 탄식하며 말했다.

“폐하께선 어찌 대노하십니까. 도를 닦는 것이 곧 정신을 수양하는 것이니 마음을 어지럽히지 마십시오.”

원경제는 코웃음을 쳤다.

형부상서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폐하, 야경꾼이 두 번이나 범인의 도주를 방임하였습니다. 소신, 위연이 악의를 품고 외족(外族)과 결탁한 것이 아닌가 의심되옵니다. 부디 바라옵건대 폐하께서는 엄중히 조사해주십시오.”

원경제는 대답하지 않은 채,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진한광을 바라보며 물었다.

“진 부윤의 생각은 어떠하오?”

부윤은 비록 4품이나 경성 주변의 24개 현을 관할하고 있어, 육부 상서 못지않게 권력이 막강하였다.

능구렁이 진한광은 양쪽 모두에게 미움을 사지 않게끔 말했다.

“상백 사건이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현재 또 평원백부 일가 전멸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폐하께서는 노여워 마시고, 마음을 가라앉히신 후에 위 공께서 어떻게 말씀하시는지 한번 들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책임을 전가해버린 것이었다.

원경제는 차가운 눈빛으로 위연을 바라보았다.

“폐하, 평원백 사건과 상백 사건은 동일한 사건입니다.”

위연이 말했다.

원경제를 포함한 어서방 내 모든 이들의 얼굴빛이 변했다.

위연은 군중의 눈치를 살피지 않고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소신, 이미 평원백 일가 전멸 사건의 범인이 누구인지 알아냈습니다!”

“누구인가?”

어떤 이가 무의식적으로 말을 가로챘다. 병부상서 장봉(張奉)이었다.

위연은 그를 힐끗 훑어보더니, 대답 대신 원경제에게 말했다.

“폐하께서 좌우를 물러주십시오.”

위연은 이 말을 할 때, 문득 허칠안을 떠올렸다.

원경제는 위연을 빤히 쳐다보더니 날카로운 눈빛으로 모든 신하를 훑으며 말했다.

“경들은 물러가시오.”

신하들은 의아한 얼굴로 읍을 하고 어서방에서 물러났다.

위연은 반 시진을 서재에 머물렀지만, 그가 원경제와 무슨 말을 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 * *

“위 공, 위 공…….”

위연은 유 공공의 수행하에 어서방을 나섰다. 몇 걸음 채 가기도 전에 누군가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옆으로 돌려 보니, 붉은 관복을 입은 남자가 보였다. 수척한 생김새의 병부상서 장봉이 웃는 얼굴로 말했다.

“위 공, 평원백부 일가 전멸 사건의 범인이 어느 요괴요?”

위연이 고개를 저었다.

“장 상서, 이 사건은 상백과 관련되어 있어 말씀드리기가 곤란합니다. 진상이 명백히 밝혀진 뒤엔 상서 대인께서도 자연스레 알게 될 것입니다.”

그는 공수(*拱手: 왼손을 오른손 위에 놓고 두 손을 마주 잡아 공경의 뜻을 나타냄)하며 읍한 후에 성큼성큼 자리를 떠났다.

장 상서는 완곡한 거절을 당하고도 노하지 않고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조심히 가시게.”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