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타경-130화 (130/712)

130화. 국사 (1)

허영음은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아이였다.

오늘 아침, 그녀는 비록 머리는 자고 있었지만 스스로 몸을 일으키더니 자신을 돌보는 여종을 흔들어 깨웠다.

그리곤 눈을 감은 채로 여종의 시중을 받아 옷을 입고, 세수를 하고, 이를 닦은 뒤 손에 이끌려 바깥 대청으로 갔다.

쌀죽과 고기만두 냄새에 눈을 번쩍 뜬 허영음은, 하다 하다 이제는 식탁에서 잠을 자고야 만 자신을 발견하곤 기뻐했다.

이때는 이미 날이 밝아서 허평지만이 바깥 대청 탁자에 앉아 아침밥을 먹는 중이었다.

숙모와 허영월은 솜이불에서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큰 오라버니는요?”

허영음이 두리번거렸다. 이맘때면 식탐이 많은 큰 오라버니가 진작부터 나와 식탁에 앉아 그녀의 고기만두를 노리고 있어야 했다.

“신경 쓰지 말거라.”

허평지가 말했다.

“큰 오라버니 고기만두도 네 것이야.”

그 말에 허영음의 작은 얼굴에는 순수한 웃음이 피어났다.

“와아! 맛있겠다!”

아이는 말을 마치자마자 코를 벌름거렸다.

“맛있겠다.”

“얼른 먹거라.”

허평지가 재촉했다.

“이게 맛있겠다는 게 아니라…….”

허평지가 알아듣지 못해 어리둥절하던 와중, 노란색 치마를 입은 달걀형 얼굴의 소저가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둥글고 큰 눈으로 대청 안을 훑어보더니 말했다.

“허칠안은?”

“자고 있네.”

허평지는 자연스럽게 답하면서도 속으로, 이 소저는 어째서 청하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찾아왔을까 생각했다.

“자고 있다?”

저채미는 고개를 저었다.

“방금 내가 허칠안의 뜰에서 온 건데.”

말을 마친 그녀는, 통통한 여자아이가 자신이 들고 있는 아침 식사 봉투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저채미는 오늘 당나귀 고기, 화덕 빵, 튀긴 어묵, 수정(水晶)떡, 돼지족발을 포장하여, 품속에 넣고 먹으면서 이동했던 터였다.

급하게 허칠안을 찾을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먹고 싶니?”

순수함이 가득한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고 있자니 저채미의 마음이 약해졌다.

허영음이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좀 나눠줄게.”

“콜록콜록…….”

허평지는 눈을 부릅뜨고 식탐 많은 어린 딸을 쳐다보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영음아, 언니는 손님이잖니. 손님이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먹어야 한단다.”

“알겠어요.”

먹을 것만 있다면, 허영음을 달래긴 쉬웠다.

“정말 착하네.”

저채미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렇게 그녀는 어젯밤의 일을 생각하며 끼니를 해결했다.

몇 분 후……. 그녀는 자신이 가져온 조식(早食)이 족히 서너 근은 됐음에도 불구하고, 벌써 남김없이 사라졌다는 걸 알아차리고 의아하게 생각했다.

‘이 조그마한 게, 내가 부주의한 틈을 타 몰래 훔쳐 먹었나?’

그녀는 자신의 식탐을 고려하지 못하고 의심의 눈초리로 옆에 서 있는 허영음을 쳐다봤다. 아이의 머리는 아직 탁자 높이보다도 작았다.

그때 허영음의 눈에 눈물이 고이더니 이내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했다.

“언니 나 놀리는 거야?”

“…….”

허평지는 다 큰 허영음을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 * *

호기루.

위연은 강율중의 보고를 듣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자네에게 인신매매 조직을 체포하게 해주면, 진척이 있겠는가?”

“줄곧 암암리에 조사해오며 어떠한 관아와 세력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습니다. 평원백이 죽은 후에 그들이 칩거하기 시작했으나 탄압받지 않았고, 아직은 모두가 경성에 남아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언제든지 최후의 행동을 개시할 수 있습니다.”

강율중이 대답했다.

“이렇게 보면, 평원백 적자가 인신매매 조직을 계승한 것이 되겠군.”

위연은 가볍게 웃더니 모든 것을 다 파악한 듯한 담담한 태도로 분부했다.

“그들이 아직 평원백 적자가 살해당한 것을 모르고 있는 지금, 최후의 행동을 개시하지.”

강율중이 읍하며 명을 받들었다. 그는 하고 싶은 말이 있었으나 더는 이어나가지 않았다.

위연이 이를 알아차리고 말했다.

“할 말이 있으면 하거라.”

“평원백 적자가 살해당할 때 허칠안도 그 자리에 있었다고 합니다. 그가 왜 평원백부에 침입했는지는 모르지만, 그가 살인범을 본 것 같습니다.”

강율중은 자신의 추측을 털어놓았다.

이때, 계단 어귀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검은 옷을 입은 하급 관리 한 명이 올라와 계단 입구를 지키고 있는 동료에게 귓속말로 몇 마디 건넸다.

계단 입구를 지키던 하급 관리가 즉시 다실로 들어오더니 몸을 굽혀 말을 전했다.

“위 공, 동라 허칠안이 만나 뵙기를 청한다고 합니다.”

위연이 웃으며 말했다.

“마침 잘 됐군. 그에게 올라오라고 전해라.”

하급 관리는 명령을 받들어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이내 야경꾼 차복 차림의 허칠안이 7층으로 올라왔다. 그는 강율중을 한번 쳐다보더니 읍을 올리며 말했다.

“위 공을 뵙습니다.”

“강 금라가 말하길, 자네가 어젯밤에 평원백부에 갔다던데?”

미소를 머금은 위연의 온화한 목소리에는, 조금의 추궁하는 기색도 없었다.

“소직, 상백 사건을 조사하러 갔었습니다.”

허칠안이 태연하게 대답했다.

강율중은 어리둥절해하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허칠안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의심했다. 평원백은 상백 사건이 있기도 전에 죽었고, 인신매매 조직을 제외한다면 평원백과 상백 사건이 관련 있음을 증명할 단서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무엇을 알아냈는가?”

위연이 눈을 가늘게 뜨며 묻자, 허칠안은 대답하지 않고 강율중에게 시선을 돌리며 잠시 멈칫했다.

“강 금라는 우선 내려가시게.”

위연은 주위를 물러달라는 이 동라의 요청이 익숙했다.

강율중은 허칠안을 빤히 쳐다보다가, 답답한 마음으로 자리를 떴다.

허칠안은 그의 발소리가 완전히 들리지 않을 때까지만 기다리려 했으나, 고품 무사의 청력을 고려하여 한참을 더 기다린 후에야 입을 열었다.

“위 공, 어젯밤에 습격자를 만난 것은 사실이며, 그의 신분도 확인했습니다.”

위연이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더니, 별다른 내색 없이 물었다.

“누구더냐?”

“청룡사의 항혜 승려로 청룡사의 법기를 훔치고, 평양군주와 도피 행각을 벌인 그 승려입니다.”

허칠안은 숨김없이 계속해서 말했다.

“저는 그가 상백의 봉인물을 가지고 있다고 의심 중입니다.”

“어찌 그렇게 생각하느냐?”

“평원백 적자의 죽은 모습이 그날 전사한 금군과 판에 박은 듯 똑같았습니다.”

위연이 웃으며 답했다.

“아주 잘했군. 이는 아주 유용한 단서가 되겠어.”

“그럼 소직 먼저 물러가겠습니다.”

‘위(魏) 아빠’가 자신을 ‘육성’하려고 한다는 걸 알게 되자마자, 허칠안은 더 이상 그의 도움을 무리하게 요구하지 않기로 했다.

일부 사장들이 바로 이러했다. 회사에 예쁜 여자가 들어오면, 알게 모르게 경제적으로 뒷바라지해서, 나중에는 자신의 여자로 만들어 출근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수행 여비서는 사실 안전한 직업은 아니었다. 근거 없는 소문이 너무 많기 때문이었다.

허칠안은 이런 처사를 거역한 참이었다. 그는 언제나 평온하게 출퇴근하고 싶었다.

허칠안은 계단을 내려가다가 하급 관리 한 명이 다급하게 위층으로 뛰어 올라가는 걸 보았다.

* * *

호기루를 나오니, 그 앞을 지키고 있던 강율중이 보였다. 그는 허칠안을 맞이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어찌 된 일인가?”

허칠안은 곧장 읍하며 말했다.

“평원백 사건을, 강 금라께서 처리하고 계십니까?”

강율중은 갑자기 왠지 모를 답답함을 느끼며 답했다.

“그 아버지, 그 아들, 모두 본관이 처리하네만.”

“거짓 없이 고하겠나이다. 평원백은 상백 사건에 연루되어 있습니다…….”

허칠안은 즉시 항혜 승려의 일을 강율중에게 알렸다. 그러자 강율중의 두 눈이 반짝였다.

“강 금라, 아무래도 저희가 힘을 모아 이 일을 처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면 강 금라께서는 평원백 사건을 해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상백 사건에도 참여하게 되는 겁니다.”

허칠안이 간절한 얼굴로 말했다.

“게다가 이 사건은 제가 이미 얼추 조사해놨으니, 공로를 나눠 가지실 수 있지요.”

강율중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일세.”

허칠안은 진심을 다해 웃기 시작했다.

‘고품 무사의 대가(大家)를 우리 진영까지 꼬드겨 냈다. 위연이 나를 돕지 않으니 스스로 활로를 찾는 수밖에.’

두 사람은 얘기를 나누던 와중에 청의 차림의 위연이 아래로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위연은 두 사람이 아직도 문 앞에 서 있는 걸 보더니 말했다.

“율중, 나를 따라 궁에 다녀오세.”

“예!”

허칠안은 두 사람의 멀어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아래턱을 쓰다듬었다.

‘아마 평원백 적자가 살해당한 일은, 원경제의 노여움을 사겠지.’

* * *

허칠안은 관아를 나선 후, 말을 타고 황성 방향으로 향했다.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벌기 위해 속도를 내지는 않았다.

‘어쩌면 내 가설이 틀렸는지도 몰라. 배후의 주모자는 근본적으로 진북왕이 아닌 거야. 진북왕이 반역을 꾀하기 위해 북방 요족과 동북 무신교와 한패가 되어 상백 봉인을 폭파하고 초대 감정을 풀어 경성에 대란을 일으키려 한다…….

하지만 현재 봉인된 것이 초대 감정이 맞는지는 확신이 들지 않는다. 게다가 만약 진북왕이 배후의 주모자라면, 항혜 승려와 관련된 일련의 사건은 납득이 가지 않아.

항혜 승려가 엮인 일은 문관 집단과 훈귀 집단의 이익 다툼이다. 이 문제를 진북왕과 연관시키는 건 다소 억지스럽긴 하지…….

지금 가장 시급한 일은 항혜를 찾아 체포하는 것이다. 그러면 모든 수수께끼가 풀릴 것이다. 항혜를 잡으려면 육호를 찾는 것이 관건이다. 육호는 항혜의 선배이니, 죽여서 멸구하려 들지는 않을 것이다.’

생각하며 가다 보니 어느새 황성의 윤곽이 눈앞에 나타났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 허칠안의 이름을 불렀다.

“허칠안…….”

허칠안이 고개를 돌려 보니 노란색의 긴 치마를 입은 미인이 서 있었다. 유난히 크고 생기 넘치는 눈은, 다른 이에게 발랄하고 귀여운 인상을 심어주었다.

“내가 오늘 아침에 허부에 널 찾으러 갔는데 없더라. 그래서 방금 야경꾼 관아에 갔는데도 네가 없었지. 송정풍은 네가 교방사의 부향과 뒹굴러 갔을지도 모른다고 했어.”

저채미는 말을 채찍질하여 따라붙었고, 허칠안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선 쌓였던 불만을 늘어놓았다.

“그자는 내 인격을 모독하는 거요.”

허칠안이 진지하게 말했다.

“난 교방사 같은 곳에 가지 않소. 흠흠, 망기술은 쓰지 말고. 내가 비록 성인군자이긴 하나 다른 사람이 망기술로 감시하는 건 원치 않으니까.”

저채미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그들이 말하길 부향은 네 연인이라던데.”

“아니오.”

“진짜 아니야?”

“부향은 사귄 지 얼마 안 된 친구이지, 결코 연인 사이가 아니오.”

저채미는 고개를 끄덕거렸고, 이내 본론으로 돌아왔다.

“사천감이 마기(魔氣)를 감지했어. 상백이 폭발하던 날과 같아서 너에게 알려주려고 특별히 온 거야.”

“그 일에 대해선 이미 알고 있소. 하마터면 상대 손에 죽을 뻔했지.”

그 일에 금련 도사도 관련되어 있다는 말은 하고 싶지 않아, 허칠안은 화제를 돌렸다.

“혹시, 그 대력완 아직도 갖고 있소?”

“다음에. 지금은 가지고 있지 않아.”

“다음 말고 오늘 필요한데.”

“알겠어. 특별히 해지기 전에 네 저택으로 갈게.”

저채미는 장공주를 찾으러 온 터였다. 저채미는 허칠안의 사건 처리 임무에 협조하는 것으로 일정이 잡혀 있었지만, 허칠안은 그녀를 이용하고 싶지 않았다.

저채미가 쓸모없다는 것이 아니라, 항혜 승려의 몸에 기운을 차단하는 법기가 있어, 사천감의 망기술이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허칠안은 저채미를 곁에 묶어 두지 않고, 장공주 궁에 가든 주루에서 방탕하게 즐기든 내버려 두기로 했다.

두 사람은 황성 문 앞에서 갈라졌다. 금패를 지닌 허칠안은 황성을 막힘 없이 지나쳐 아주 빠르게 전설 속의 영보관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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