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화. 진상(眞相)
허칠안은 금패를 거두고 격한 기침을 몇 차례 했다. 그러자 목구멍 깊은 곳에서부터 비린내가 올라왔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평원백부에서 자객의 습격을 받았네. 본관이 폐하의 명을 받들어 사건을 조사하던 중 자객과 정면으로 부딪쳤네. 자객이 매우 험악하니 자네들은 경거망동하지 말고 서둘러 경보를 발령하게!”
‘평원백부에서 또 자객이 소란을 피우다니…….’
두 명의 동라는 서로 쳐다보더니, 이내 선혈이 낭자한 허칠안의 손아귀와 미세하게 떨리는 팔을 발견했다.
그들은 굳은 얼굴로 허리춤의 가죽 주머니를 더듬어 아기 팔뚝 굵기만 한 동관(銅管)을 꺼내, 손가락으로 신관(信管)을 살짝 비틀어 기기에 불을 붙였다.
슈…….
검붉은색의 불길이 하늘로 솟구쳐 고공에서 폭발했다.
이 상황을 목격한 허칠안은, 무거운 짐을 벗어 버린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나는 먼저 돌아가 상처를 치료할 것이니 자네들은 이곳에서 지원을 기다리게. 만약 검은 도포를 입은 자와 마주친다면……, 나를 제외하고 말이야, 반드시 피해야 하네.”
“알겠습니다.”
그때 허칠안은 저 멀리 지붕 위에, 황갈색 고양이 한 마리가 그윽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
‘……도사님, 어디서 난 고양이인가요. 무사하실 줄 알았습니다.’
허칠안은 다시 숨을 내쉬더니 지붕 위를 껑충껑충 뛰었고, 황갈색 고양이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그 뒤를 쫓아갔다.
“도사님, 저 아까는 전투력을 완전히 상실했었습니다.”
적막한 골목에 멈춰선 허칠안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말했다.
그는 금련 도사의 계략을 믿었다. 만약 자신 없었다면, 틀림없이 그보다도 더 빨리 빠져나갔을 것이다.
황갈색 고양이는 사람의 언어를 내뱉었다. 말투에서 지친 게 느껴졌다.
“일반인이 벌레를 보고 도망가는 것은 본능적인 반응이네. 자네와 그 사이의 간극이 고양이와 벌레와의 간극보다도 더 컸지.”
‘도사님, 이렇게 비유하는 게 정말 괜찮습니까?’
허칠안이 황갈색 고양이를 쳐다보며 말했다.
“제 추측이 맞다면, 그가 바로 상백에 억압되어 있던 봉인물입니다.”
허칠안은 말하면서 한편으로는 금창약(金瘡葯)과 붕대를 꺼내 손아귀를 감쌌다.
아주 많은 대력완을 까먹은 탓에, <천지일도참> 이후의 허약함이 많이 회복되어 기가 빨리는 강한 피로감은 없었다.
“어떻게 알았는가?”
금련 도사가 놀라며 물었다.
“영진산하 사당이 폭발하던 그날, 주변을 순찰하던 삼백 명의 금군이 전부 사망했었는데, 죽은 모습이 판에 박은 듯 똑같이 미라로 변해 있었습니다.”
허칠안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금련 도사는 문득 깨달았다는 듯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
“그럼 자네가 잘못 생각했네. 상백 밑에 봉인되어 있던 건, 초대 감정이 아니네.”
‘……만약 초대 감정이라면 보잘것없는 사람을 죽이지 않을 것이다. 평원백 적자가 죽기 전에 놀란 모습이 마치 검은 도포의 남자를 아는 것 같았는데. 금군을 죽인 자가 상백에 침입해 영진산하 사당을 폭발시킨 자일 가능성은 진작에 배제했었다. 고수가 상백에 침입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없다…….’
허칠안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저는 알고 있습니다. 게다가 어렴풋이 짐작이 가기는 하나, 검증이 필요할 뿐입니다.”
황갈색 고양이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말했다.
“내 음신이 심한 타격을 입어 질경(跌境)할 가능성이 매우 농후해. 빈도, 자네의 도움이 필요하네.”
“도사님, 말씀하십시오.”
허칠안은 마침 목숨을 구해준 은혜를 어찌 갚을지 고민하고 있던 찰나였다.
“빈도를 대신해 낙옥형(洛玉衡)을 찾아가, 취원단(聚元丹) 한 알을 구해주시게.”
황갈색 고양이가 사람의 언어로 말했다.
“낙옥형?”
허칠안이 막연히 되물었다.
“인종 도수, 억지스럽긴 하나 빈도의 후배라고 할 수 있네.”
금련 도사가 말했다.
‘도사가 지종에서의 서열이 의외로 꽤 높네……. 기백 있는 인종 도수가 후배……, 미숙녀(美熟女) 여도사라고?’
허칠안은 좀 곤란해했다.
“증표라도 있습니까?”
“지서를 그녀에게 보여주면 되네.”
황갈색 고양이는 인간적인 쓴웃음을 지었다.
“가지고 올 수 있을지 없을지는, 그녀의 기분에 달렸네.”
‘그녀의 기분에 달렸다고?’
허칠안의 얼굴에서 활기가 사라졌다.
“인종과 천종은 물과 기름 같지. 지종과 두 종의 관계가 팽팽하다고 할 수는 없으나 좋다고 할 수도 없네.”
황갈색 고양이가 설명했다.
‘당신들 도문도 참 뭐 같구먼……. 서로 사랑하고 서로 죽이는 동족인가?’
허칠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알겠습니다. 바로 가서 시도해 보겠습니다.”
황갈색 고양이가 고개를 끄덕이곤 말했다.
“내가 내일 다시 자네를 찾아오겠네.”
* * *
강율중은 어두운 표정을 하고 뜰에 쭈그리고 앉아, 잘게 부서진 살점을 쥐고 있었다. 말라버린 살은 마치 바람에 말린 납육(*臘肉: 소금에 절인 훈제돼지고기)이 가루로 갈린 것 같았다.
바닥에는 옅은 갈색 분말이 깔려있었다.
수십 명의 동라가 평원백부를 빈틈없이 둘러쌌고, 일고여덟 명의 은라는 협동 조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들이 달려왔을 때 평원백부 일가는 전멸해있었다. 평원백의 가족은 물론이고, 저택의 하인들까지 살아남은 자가 아무도 없었다.
여러 해 동안 바람에 말린 납육처럼 시신의 형태는 모두 일치했다.
강율중은 초조하고 불안하여 심호흡을 했다. 평원백이 살해당할 때, 그는 당직을 서고 있었다.
“강 금라, 집 안에 생존자가 한 명 있습니다.”
은라 한 명이 집에서 나와 큰 소리로 외쳤다.
강율중이 굳은 얼굴로 문턱을 넘어, 집 안으로 들어가 쭉 훑어보았다. 그러자 솜이불을 꼭 껴안고 새하얀 어깨를 드러낸 채 놀란 기색이 역력한 여인이 보였다.
그녀는 두려움에 가득 찬 눈으로 야경꾼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강율중이 낮은 목소리로 묻자 여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저, 저는 평원백의 첩이옵니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들으셨습니까?”
강율중이 다시 물었다.
여인은 이미 그녀를 깨운 은라로부터, 사건의 경과를 들었다. 이 역시 그녀가 불안에 떨며 하루도 버티기 힘든 이유였다. 자신의 목숨이 걱정되기도 했고, 구차하게 목숨을 연명하여 다행인 마음도 있었다.
여인은 고개를 가로저었고, 순순히 말했다.
“저는 당시에 대랑과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 후에는 바로 깊은 잠에 빠졌지요…….”
강율중은 그녀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아들이 부친의 업을 물려받는 경우는 첩실에게도 마찬가지로 보편적이었다. 당조에 지위와 명성이 높은 고관들은 첩을 두는 경우가 빈번했고, 나이 차가 매우 커 부친이 죽고 나면, 첩실들은 두 가지 선택지밖에 없었다. 여종처럼 일을 하든가 새로운 상속자에게 들러붙든가.
물론, 이런 일을 정면에 내세우면 질타를 받을 게 분명했다.
단지 진담으로 여기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제안하지도 않았으며, 따지기도 귀찮아했다.
“그녀에게 옷을 입으라고 한 뒤 야경꾼 관아로 데리고 가거라.”
말을 마친 강율중이 방을 나서자, 한 은라가 황급히 보고했다.
“강 금라, 평원백 적자의 시체를 찾지 못했습니다.”
강율중은 마당의 갈색 분말을 보더니, 탁한 눈빛을 했다.
“찾을 필요 없다.”
“대인, 바깥 창문 쪽에 무언가 있습니다.”
강율중은 그 말을 듣고선 침실과 바로 마주하고 있는 창문 쪽을 살펴보았다. 창호지에는 두 개의 구멍이 뚫려 있었고, 그 구멍을 통해 보니 공교롭게도 침실 안이 다 보였다.
또 고개를 숙여 한번 훑어보니, 바닥에 두 줄로 옅은 흔적이 나 있었다.
“살인자 외에도 당시에 다른 사람이 현장에 있었군…….”
강율중이 한참을 망설이다가 물었다.
“누가 먼저 평원백부가 심상치 않다는 걸 발견한 것이냐.”
“당직 서던 동라 둘입니다.”
“그들을 부르거라.”
그는 명이 떨어지자마자, 두 명의 동라를 아주 빠르게 데리고 왔다.
강율중이 물었다.
“자네들이 이 상황을 발견했을 때, 근처에 의심할 만한 인물이 있었는가?”
두 동라는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대답했다.
“의심할 만한 인물은 없었습니다. 사건도 저희가 발견한 것이 아닙니다.”
강율중이 어리둥절하다가 황급히 물었다.
“자네들이 발견한 것이 아니라면…… 누구인가?”
“동라 허칠안입니다.”
‘허칠안…….’
강율중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 * *
작은 뜰로 돌아온 허칠안은 옷도 벗지 않은 채 드러누워 잠들었다. 그리고 세 시간 후에 저절로 깨어나 가부좌를 틀고 좌선하면서 연기를 토납했다.
주천을 두 번 운행하고 난 그는 원기왕성한 상태로 눈을 떴다. 안색이 약간 창백한 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면에서 상태가 괜찮았다.
그는 작은 뜰에서 나와 말을 타고 바로 성문 앞으로 내달렸다.
성문을 열기까지는 반 시진이 남은 시각이었다. 외성은 야간 통행 금지를 실행하지 않고 있었고, 성문 통행 금지도 느슨한 편이라 허칠안은 금패에 의지하여 성을 지키는 장병에게 문을 열라고 명령했다.
한 시진도 안 되어 그는 청룡사에 도착했다. 마침 승려들이 일어나 조과(*早課: 아침에 드리는 염불)를 하는 시간으로, 새벽종이 유유히 천지를 울리고 있었다.
말을 잘 매어 놓고, 돌계단을 따라 청룡사에 다다른 허칠안은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반수 주지 스님께서 서역에 가셨다고요?”
그때 그 매끈한 얼굴의 항청 감원이, 무표정으로 말했다.
“시주께서 그날 떠나신 후에 주지 스님께서 바로 떠나셨습니다. 빈승 이번에는 정말 연고를 알지 못합니다.”
‘……나 때문에 트라우마가 생겼나 보네?’
허칠안은 씩 웃었다.
반수 주지가 말하길, 청룡사의 역할은 상백 밑의 봉인물을 지켜보는 것이라고 했었다. 그날 그는 서역행에 대한 계획을 내비쳤다.
‘노승려가 도중에 겸사겸사 원숭이 한 마리를 제자로 삼을지도 모르는 일이겠군. 그러면 정말 재미있겠다. 헤헤.’
“본관 대사께 한 가지 부탁드릴 일이 있습니다.”
허칠안이 상냥한 어조로 말하자, 항청 감원은 경계하는 눈빛으로 그를 응시했다.
“항혜의 초상화를 봐야겠습니다. 만약 절에 없다면, 즉시 사람을 구해 그려주시길 청합니다.”
허칠안은 자신의 요구 사항을 말했다.
항청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잠시만 기다리라고 말했다.
차 한 잔 마실 시간이 지나자, 그는 두루마리 그림 한 폭을 쥐고 와 허칠안에게 건넸다.
허칠안은 이를 건네받아 천천히 펼쳐보았다. 두루마리 그림에는 푸른빛의 평민복을 입고 있는 한 승려가 있었다. 이목구비가 준수하고 외모가 출중한 남자였다.
‘역시 그였다…….’
허칠안은 어젯밤의 그 검은 도포의 남자가, 바로 항혜 승려임을 확인했다.
물론 풍격에 큰 변화가 있었지만, 이목구비는 그대로였다.
청룡사의 항혜 승려는 본인 그 자체가 상백 사건에 연관됐을 것이었다. 또 육호 항원이 사제는 인신매매범에게 납치당했다고 굳게 맹세한 적이 있었다.
또 어젯밤 평원백 적자와 검은 도포의 남자와의 대화를 근거로 비추어 보자, 허칠안은 별안간 퍼즐이 짜 맞춰지는 것을 느꼈고, 한시라도 빨리 검증하고 싶었다.
만일 어젯밤에 휴식을 필요로 하는 형편없는 몸 상태가 아니었다면, 그는 바로 성을 나갔을 것이다.
‘정말 항혜야. 젠장, 정말 항혜야……. 어떻게 그자일 수 있지? 그와 상백 밑에 봉인된 물건이 어떤 관계가 있는 거지? 이렇게 보니 초대 감정이 아니다. 어쩐지 현(現) 감정이 전혀 초조해하지 않고 꾀병이나 부린 거였군.
하지만, 초대 감정이 아니면 뭐라는 말인가?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건 봉인물을 항혜가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는 건데. 보잘것없는 승려 하나가 세상을 뒤흔들 만한 큰 사건을 꾸몄을 리는 없어. 그자 배후에 다른 이가 있는 거야. 진북왕?’
허칠안은 이런저런 생각에 잠긴 채 청룡사를 떠났다.
* * *
경성의 야경꾼 관아로 돌아온 허칠안은, 목표를 명확히 하고 호기루로 직행했다. 이 진상을 위연에게 알릴 작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