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화. 미라
야경꾼 차복으로 갈아입은 허칠안은 위풍당당하게 뜰을 나섰다. 가는 길에 어도위를 마주쳤는데, 그가 차복을 입고 있는 걸 보자 묻기도 귀찮아했다. 다만 이 야경꾼의 어깨 위에, 어째서 고양이 한 마리가 서 있는 것일까 궁금하기는 한 얼굴이었다.
허칠안은 유독 야경꾼 동료들과 마주칠 때마다 잠시 제지당하곤 했지만, 금패를 꺼내 황제의 명을 받들어 사건을 조사 중이라고 말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
허칠안은 애써 길을 재촉하지 않았지만, 오늘 그의 걸음으로 한 시간만에 평원백부 근처에 도착했다.
그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후, 으슥한 구석을 찾아 ‘마법서’의 한 페이지를 찢어, 일엽장목(*一葉障目: 작은 부분에 미혹되어 전체를 보지 못하다) 수법을 기록했다.
기기로 종이에 불을 붙이자, 무형의 힘이 허칠안과 검은 고양이를 뒤덮었다.
‘유가의 언출법수(*言出法隨: 법령이 공포되자마자 바로 집행하다)…….’
검은 고양이의 등황색 눈동자가 이 장면을 주시했고, 그 안의 금련 도사는 문득 여러 사소한 부분들이 떠올랐다.
‘어쩐지 삼호가 자신을 운록서원의 서생이라고 한 건, 그의 사촌 동생이 서원의 서생이기 때문이기도 하나 본인 역시 서원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선, 어찌 법술을 새겨 기록한 서적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금련 도사는, 이것을 사촌 동생이 줬을 거란 가능성은 바로 배제했다.
‘우선, 일반적인 서생은 대유에게 이렇게 후한 대접을 받을 수 없다. 둘째, 서생이 어찌 이런 지보(至寶)를 다른 이에게 쉽사리 줄 수 있겠는가. 사용하는 것조차 아까워할 것이다.
……운록서원의 지식인은 본래 무사를 괄시해왔는데, 왜 그에게 이런 보물을 주겠는가.’
금련 도사가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데, 허칠안이 지서 파편에서 망토를 잡아 꺼내 덮는 것이 보였다.
‘자네는 왜 이리도 능숙한 것이야…….’
검은 고양이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움직이기 전에 두 가지 사소한 일이 떠올라, 도사께 가르침을 청하고 싶습니다.”
망토로 얼굴을 가린 허칠안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말하시게!”
검은 고양이가 공기를 진동시키며, 입에서 사람의 언어를 내뱉었다.
“영룡은 황실 사람들에게만 친절하지요?”
“이론상으로는 그렇네.”
“이론?”
“영룡은 상서로운 기운을 빨아들이는 걸 좋아하는 것이지, 황실 사람들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네.”
검은 고양이가 설명했다.
허칠안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제가 황성에 사건을 조사하러 갔다가 영룡이 아무런 까닭 없이 미쳐 날뛰었다는 걸 들었습니다. 모든 시위들이 힘을 합쳐도 영룡을 저지하지 못하여 자칫하면 임안공주마마께서 다칠 뻔했습니다.”
검은 고양이는 한참 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도사님?”
사방을 경계하며 두리번거리던 고양이에게서, 금련 도사의 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상백 밑에 봉인된 물건이 성에 들어왔다…….”
“도사께서는 어찌 아십니까?”
“영룡은 천성적으로 망기술에 정통하네. 게다가 범상치 않은 연기술로 일반인이 감지하지 못하는 것들을 감지할 수 있지.”
‘어쩐지. 저채미의 망기술로는 이상함을 감지하지 못하던데, 그녀의 기예가 부족한 거였어……. 이게 바로 영룡이 내게 복종하려는 이유인가? 영룡이 내 몸에 흐르는 기이한 운을 볼 수 있는 거라면, 감정도 볼 수 있다는 뜻인가?’
이렇게 추측한 허칠안의 가슴이 철렁했다.
‘상백에 봉인된 물건이 성에 들어왔다. 영룡이 위협을 느껴 미쳐 날뛰고 합심하여 황성을 탈출하자고 한다……. 내일 이 일을 위연에게 털어놓을 방법을 강구해 봐야겠다.’
대화를 마친 허칠안은 담벼락에 붙어, 평원백부의 뒷마당 담 밖을 손으로 짚어본 후 몸을 날려 담벼락을 넘었다.
착지한 후에는 조심스럽게 좌우를 살펴보며, 방금 공중에서 떨어질 때 옷자락이 펄럭이는 소리가 저택의 고수를 놀라게 하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평원백부는 아주 넓었다. 주거 습관에 근거하여, 주인은 보통 동쪽의 가장 큰 마당에 살 터였다.
허칠안은 연이어 일엽장목의 법술로 저택을 순시하고 있는 여러 무리의 시위를 피해 동쪽의 가장 큰 마당으로 갔다.
막 마당에 발을 들여놓고 귓바퀴를 움직이자 격앙되고 꾸밈없는 신음과 남자의 무거운 숨소리가 들렸다.
‘……정말이지 잘못 맞춰 왔군.’
허칠안은 욕지거리를 하며 저도 모르게 발걸음을 빨리했다.
그는 창문 밑을 짚어본 후, 손가락으로 기기를 모아 부드러우면서도 빳빳한 창호지를 뚫어 아주 작은 구멍으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이 구멍은 마침 안방과 마주하고 있었다. 침상 위 두 사람이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 허칠안의 눈에 직관적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얇은 휘장에 가려 비단 이불이 왔다 갔다 하는 것만 보일 뿐이었다.
푹.
이때, 머리 위에서 가벼운 소리가 들려왔다. 고양이의 날카로운 발톱에 창호지가 찢어지는 소리였다.
허칠안이 고개를 들어보니, 검은 고양이가 자신의 머리 꼭대기에 뒷다리를 대고 선 채로 앞발톱은 창호지에 받치고, 얼굴을 구멍에 붙인 채 정신없이 구경하는 모습이 보였다.
‘도사여도 이런 건 좋은가 보군…….’
허칠안이 입가를 실룩거렸다.
“그가 평원백의 적자일 테니 바로 들어가시죠.”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들어가세. 그때가 남자가 가장 긴장을 늦추고 있을 때네.”
금련 도사는 허칠안의 제안을 거절했다.
‘아니, 후회할 텐데. 당신은 무사의 무서움을 전혀 모르는군. 어쨌거나 우리는 쩌는 강자란 말이야…….’
허칠안은 속으로 비아냥거렸다.
그렇게 이주향의 시간이 흘렀다.
금련 도사는 고개를 숙여 허칠안을 쳐다봤다.
“좋아. 자네 말이 맞다는 걸 인정하지.”
‘쯧쯧, 그렇다니까. 처음에 부향과 잤을 때, 나도 밤늦게까지 버텼었거든…….’
허칠안은 즐거운 상상을 하며, 막 앞문으로 돌아가 방안에 침입하여 매서운 솜씨로 상대방을 제압하려 했다.
그런데 이때 허칠안은 갑자기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느낌을 받았고, 소름이 돋았다. 마치 핏빛으로 물든 가시덤불이 그의 살을 찌르는 것 같았다.
허칠안은 알 수 없는 공포로 가득 찼다.
“무엇이 온 것이냐…….”
금련 도사의 목소리는 전에 없이 무거웠다.
그가 말을 마치자마자, 먼 곳에서부터 시위가 고함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냐, 감히 평원백부에 난입해……. 악……!”
그 목소리는 도중에 비명으로 바뀌었다.
곧이어 기기가 폭발하는 파동이 일고, 비명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더니 이내 다시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다.
한편 이미 현자 타임에 들어선 평원백 적자는 인기척을 듣고는, 옷도 미처 입지 못한 채 빠르게 침상에서 뛰어 내려, 벽에 걸린 검을 뽑아 굳은 얼굴로 방을 뛰쳐나갔다.
검은 도포를 휘감은 사람이 마당에 나타났다. 그의 얼굴은 도포에 달린 두건에 가려져 있었다. 그가 내뿜는 기운으로 인해 허칠안의 두 다리는 덜덜 떨렸고,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검은 고양이는 등을 구부렸다. 온몸의 털은 빳빳하게 섰으며, 수직형 동공은 재빠르게 수축했다. 그의 이상 행동은 어느 정도 금련 도사의 현재 정서를 대변하는 것이었다.
“너, 누구냐?”
평원백 적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의 두 다리, 그의 팔, 그의 안면 근육은 걷잡을 수 없이 떨리며 경련을 일으켰다.
“빚을 받아내러 왔다.”
모자 안에서 쉰 목소리가 들려왔다. 검은 도포를 입은 자는 고개를 들더니 창백한 얼굴을 드러냈다. 이목구비가 꽤 준수했다.
그의 그윽한 두 눈은, 흰자가 보이지 않아 마치 눈동자가 눈 전체를 차지하는 것만 같이 보였다.
허칠안은 그를 알지 못했으나 상대방의 모습을 확실히 새겨 어떤 신분인지 추측했다.
“너로군, 너야…….”
평원백 적자가 날카롭게 소리치며 두려움에 덜덜 떨었다.
“너는 이미 죽었다! 내가 두 눈으로 직접 네가 죽는 걸 봤는데…….”
“죽었었지. 하지만 지옥에서 다시 기어 나왔다.”
검은 도포를 걸친 남자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가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그 손은 마치 마귀에 씐 것처럼 온통 핏빛으로 물들어 있었고, 핏줄이 다 부풀어 오른 채였다. 이 손을 보자, 허칠안 마음속의 공포가 극에 달했다.
후……. 핏빛 손바닥으로 회오리바람을 일으킨 그는, 평원백의 적자를 그 가운데로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살, 살려줘! 누구 없느냐, 누구 없느냐!”
평원백 적자는 두 다리로 발버둥 쳤다. 별안간 그의 피와 살이 오그라들더니 삽시간에 미라가 되어버렸다.
방금 전까지 살아있던 사람이, 순식간에 목숨을 잃은 것이다.
‘미라?!’
허칠안의 머릿속에 번개가 번쩍이는 것 같았다.
검은 도포의 남자는 섬뜩하게 웃고는 분풀이를 하는 듯 기기를 운행했다. 이내 미라는 펑 소리를 내며 터져 가루가 되었다.
사람을 죽인 뒤, 검은 도포의 남자는 고개를 돌려 차가운 눈빛으로 허칠안이 몸을 숨긴 곳을 바라보았다.
그가 창문 아래를 향해 손바닥을 펴고 후 불자, 세찬 회오리바람이 다시 나타났다.
‘씨…….’
허칠안은 두 다리를 땅에 단단히 지탱하고, 몸을 뒤로 젖혀 조금씩 상대에게 다가갔고, 사람 목숨을 통째로 삼키는 깊은 못 같은 손바닥에 가까이 다가갔다.
허칠안은 손을 뻗어 품속에 넣어 저채미가 준 대력완을 집었고, 있는 힘껏 도자기 병을 깨트려 모든 환약을 입에 털어 넣었다.
이어서 그는 흑금장도의 칼자루를 누르고, 모든 감정을 가라앉혔다.
쨍!
캄캄한 밤. 짙은 금색의 빛이 번쩍였고, 선홍색의 팔에 눈부신 불꽃이 튀었다.
허칠안의 오른손 손아귀는 파열되었고, 검을 잡았던 오른팔 근육이 경련을 일으켰다.
‘이자는 단칼에 벨 수 없는 적이다……. 이런 적을 마주했을 때 비적에서 말하는 검의(劍意)는, 다시 칼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도망치는 것이다.’
“뛰어!”
검은 고양이가 입에서 사람의 언어를 내뱉는 동시에 뛰어올라, 검은 도포의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기기가 뒤흔들리는 가운데, 검은 고양이의 몸이 공중에서 사라지더니 금련 도사의 원신이 튀어나와 검은 도포의 남자를 들이받았다.
‘도사님, 몸 조심 하십쇼…….’
허칠안은 다시 돌아보지 않고, 이 기회를 틈타 회오리바람에서 필사적으로 벗어나 두세 걸음 만에 용마루로 뛰어올랐고, 담을 넘어 도망쳤다.
* * *
허칠안은 감히 돌아볼 엄두도 내지 못한 채 미친 듯이 내달렸다. 그는 지붕 위를 지그재그로 내달렸다. 처음으로 고품 강자를 마주친 허칠안의 마음속에는, 아직도 강렬한 두려움이 남아있었다.
만약 금련 도사가 목숨을 걸고 그를 구하지 않았다면, 다음 차례에 그는 두말할 것 없이 죽은 목숨이었다. 근본적으로 ‘마법서’의 법술을 시전할 시간이 없었다.
게다가 설령 금련 도사가 도와준다고 해도, 마법서 안의 법술로는 아마 상대와 필적할 수 없었을 터였다. 허칠안은 그렇게 살을 찌르고 에이는 두려움을 여태껏 느껴본 적이 없었다.
“누구냐?”
지붕 위에 올라 동태를 살피던 야경꾼 두 명이, 검은 도포 차림의 허칠안을 발견하고선 물었다.
“나일세.”
허칠안이 모자를 벗고 금패를 꺼냈다.
“허 대인…….”
허칠안은 현재 야경꾼 관아의 풍운아였다. 일전에 두 금라가 그 때문에 ‘사랑 쟁탈전’을 벌였고, 뒤이어 주 은라를 칼로 베어 분쟁을 일으키지 않았는가.
관아에 허칠안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