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타경-120화 (120/712)

120화. 순조롭게 풀리는 사건

허칠안은 임안공주가 가지도 않고 소리치지도 않자, 응급 처치를 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갑자기 기뻐져 정중하게 말했다.

“이렇게 마마의 앞길을 막아 송구합니다만, 소직 마마에 대한 충성심으로 가득합니다. 절대 딴마음은 없습니다.”

임안공주가 거칠게 고개를 돌리더니 코웃음 치며 말했다.

“허칠안, 본 공주를 데리고 노니 좋더냐?”

‘이 회경의 충견이 겉 다르고 속 다르게 굴더니, 이제는 양다리까지 걸치려고 하네? 정말 역겹기 그지없구나. 그가 시를 잘 짓지만 않았어도, 또 회경의 눈에 들지만 않았어도 이런 쓰레기 같은 놈은 상대하기도 귀찮았을 텐데!’

허칠안에 대한 임안공주의 평가는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어쩌면 둘째 공주마마의 눈에 소직은 만사가 마음먹은 대로 순조롭게 풀리는 파렴치한 놈으로 보일지도 모릅니다.”

허칠안이 탄식하며 말했다.

“소직, 반박할 수 없습니다. 이 옥패는 공주마마께서 도로 가져가 주십시오. 이렇게 좋은 옥패가 저와 함께 묻힐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둘째 공주는 허칠안이 밉살스러웠고, 옥패를 거둬가려는 참에 마지막 한 마디를 듣고는 멍해졌다.

“뭐라는 것이냐?”

허칠안은 답하지 않은 채, 고개를 숙이고 옥패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둘째 공주마마께서는 참 통이 크시지요. 지금껏 어떤 큰사람도 몸에 지니는 옥패를 제게 하사하신 적이 없었기에 소직 실로 감동했습니다. 둘째 공주마마께서 진심으로 대해주시는데, 소식이 어찌 좋고 나쁨을 모르겠습니까.”

그는 실의에 찬 한숨을 내쉬며, 옥패를 다시 건넸다.

“아마 저는 둘째 공주마마와 인연이 없는 듯합니다, 도로 가져가 주십시오.”

둘째 공주는 잠시 동요했으나 결코 그를 용서하지 않기로 했다. 어쨌거나 원경제가 가장 총애하는 공주로서 아첨하는 말은 수도 없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단지 이 남자의 눈빛에 진정성이 가득해 보였고, 어조도 간절했기에 둘째 공주는 그의 변명을 좀 더 듣고 싶었다.

“네가 방금 말한 매장은 무슨 뜻이냐?”

허칠안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둘째 공주마마께서 저에 대해 조사하셨을 줄 알았는데요…….”

‘그러고 보니 그런 적은 없어…….’

임안공주는 잠시 제 발 저려하더니 이내 무언가 떠오른 듯 의아해하며 말했다.

“요참죄?”

회경이 그를 추천하던 그날, 임안도 자리에 있었다.

‘회경의 말에 의하면 그가 상급자에게 칼을 휘둘러 요참형을 선고받았다지…….’

임안공주는 붉은 입술을 오므리며, 이 기회를 틈타 눈가의 눈물 자국을 닦아냈다. 그리고 전보다는 약간 유한 어조지만, 아직은 화가 덜 풀려 ‘흥’ 코웃음을 치고는 말했다.

“이것이 회경과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장공주마마께서는 상백 사건에 대해 궁금해하시고, 최신 정보를 파악하고 있길 원하십니다. 제가 정시에 보고하기만 하면, 사건이 해결된 후에 제가 공을 세워 죄를 면할 수 있든 없든 공주마마께서 저를 위해 폐하께 청해주시겠다 약조하셨습니다.”

허칠안은 진심을 담아 둘째 공주를 바라보았다.

“소직, 둘째 공주마마께서 저를 진심으로 대해주시는 것을 압니다. 허나 저는 죄인이라 둘째 공주마마의 총애에 보답할 길이 없어 장공주마마를 선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죄명을 벗게 된 후에 모든 힘을 다해 마마께 충성을 바치겠습니다.”

만약 진정성을 계량화할 수 있다면, 허칠안의 눈에 담긴 진정성은 마치 해조와 같아, 둘째 공주의 마음을 적잖이 누그러뜨릴 수 있었다.

그녀는 화를 내며 말했다.

“너는 왜 내게 말하지 않았느냐? 아바마마께서는 나를 가장 예뻐하시니, 내가 너를 위해 청하는 게 회경보다 훨씬 더 확실하지 않겠느냐?”

말을 마치자 그녀는 허칠안의 표정이 격하게 동요되는 것을 목격했다. 감동한 것 같기도 하고, 놀란 것 같기도 했다.

이어서 이 동라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마마……. 안 지 얼마 되지 않은 일개 동라를 위해 폐하께 용서를 청해주시겠다니요!”

‘알고 보니 그가 스스로 돕지 못할 것 같으니, 회경을 목숨을 구할 수 있는 지푸라기로 삼았던 거구나…….’

임안공주는 화가 나면서도 우습다고 생각했다. 사실 방금은 홧김에 한 말이었는데, 말꼬리를 잡아 여기까지 얘기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물론이지! 본 공주는 여태껏 내 사람을 박대한 적이 없거든.”

허칠안은 그녀를 한참 응시하더니, 읍하며 한 글자, 한 마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전하, 소직 지금은 땅을 사고 싶을 뿐입니다.”

임안이 알아듣지 못하고 놀라서 되물었다.

“땅을 산다고?”

허칠안이 정중하게 말했다.

“이름하여 변함없는 땅(*死心榻地: ‘땅 지’자를 활용한 언어유희)입니다!”

임안공주는 멍해졌다. 이어 살짝 감동하기도 했다. 이건 그래도 제법 식견이 있는 그녀가 들어본 적이 없는 아부였다.

단숨에 허칠안에 대한 혐오감은 말끔히 사라졌다. 전에는 회경과 장난감을 놓고 다툴 생각이었다면, 지금은 진심으로 이런 부하가 있다는 게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동라가 방금까지 자신을 울렸던 걸 생각하니 괘씸한 마음이 들어, 그녀는 유한 어조로 욕 한마디 내뱉었다.

“개자식!”

‘……됐다!’

허칠안은 무거운 짐을 벗어 버린 것 같아 속이 한결 홀가분해졌다.

이렇게 두 가지 중에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을 맞닥뜨리면, 문제를 해결할 생각을 할 것이 아니라, 문제를 만든 사람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생각해야 하는 법이었다.

허칠안이 생각해낸 핵심 요소는 ‘그녀들을 분리시켜 하나하나 격파한다’였다.

장공주는 성격이 강하고 포악한 사람인데다 총명하기까지 해서 공개된 장소에서는 그녀의 편을 들어 체면을 살려줘야 했다.

둘째 공주는 떼쓰길 좋아하고 제멋대로인 천덕꾸러기에 교활해서 도발하고 문제를 일으키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총애를 받는 공주라 심술부릴 때가 많았고, 또 그런 반면 마음의 벽이 낮고 달래기 쉬운 편이다.

언변으로 그럴듯하게 꾸며대기만 하면, 분노를 기쁨으로 바꿀 수 있었다. 감언이설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두 공주의 다른 성격에 기인해 허칠안은, 아수라장에서 완벽하다고 할 만한 대응책을 재빠르게 생각해낼 수 있었다.

위험에서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둘째 공주가 그를 위해 용서를 청하겠다는 확답도 받았으니 미래를 위해 비즈니스 보험 하나 든 셈이었다.

‘그리고 한 푼도 안 들였잖아.’

허칠안은 둘째 공주를 마주 보며, 마치 진귀한 보물 인양 조심스럽게 옥패를 품속으로 거둬들였다.

둘째 공주의 눈빛이 금세 온화해졌다.

“그럼 소직, 이만 먼저 물러가보겠습니다.”

허칠안은 갈 생각이었다.

“급할 게 뭐가 있느냐!”

임안공주가 벌컥 짜증을 내며 그를 쳐다봤다.

“너는 본 공주의 부하이니, 본 공주가 너를 차견(*差遣: 사람을 시켜서 보냄)해야 한다.”

그녀는 회경의 사람을 뺏은 바였다. 당연히 다른 형제자매가 모두 볼 수 있게 해야 체면이 서고 회경의 체면을 깎을 수 있었다.

“마마, 분부하십시오.”

허칠안이 어쩔 수 없이 말했다.

아무런 근심 걱정 없는 둘째 공주는, 자신이 그에게 시킬 만한 것이 딱히 없다는 걸 알고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음, 오늘 날씨도 좋고 회경 그 밉살스러운 계집도 없어졌으니, 영룡을 보러 가야겠다. 네가 본 공주를 따라와 호위하거라.”

* * *

원경제는 높은 단상에 서서, 물가에 엎드려있는 영룡을 자세히 살펴보고 있었다. 영룡의 그 흑단추 같은 날렵한 두 눈도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어찌 된 일이냐? 임안이 어릴 때부터 너를 데리고 놀지 않았느냐. 전일 왜 아무런 까닭 없이 그녀를 물속에 빠뜨린 것이지?”

원경제가 영룡을 훈계했다.

영룡 같은 상고 시대의 기이한 짐승은 상서로운 기운을 먹고 태어나, 요족과는 달랐다. 만약 굳이 ‘같은 류’를 찾겠다면 상고 시대의 기이한 짐승인 고신이 있었다.

영룡은 그 수가 극히 적었고, 수명은 길어서 예로부터 황실과 공존하는 신수(神獸)로서 존재했다.

대봉이든 전(前) 조정이든, 궁 안에서 이런 기이한 짐승을 길러온 것이었다.

“에취……!”

영룡은 듣기 싫다는 듯이 킁킁거리더니, 물가에 맥없이 엎드려 원경제의 꾸짖음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영룡이 흑단추 같은 눈으로 원경제를 쳐다봤다.

‘그래서 올라탈 거야 말 거야?’

옆에 있던 태자는 영룡을 관찰하다가, 그때 영룡도 지금처럼 물가에 엎드려 있던 것이 기억났다.

‘하지만 지금보다 그때가 더 예의 바르고, 더 전전긍긍하는 것 같은 느낌?’

당시에는 비교적 멀리 떨어져 있어 영룡의 표정과 태도가 또렷하게 보이지 않았다. 대략적인 모습만 기억할 뿐이라, 태자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

영룡은 역대 황제의 수중 탈것이었다. 상고 시대에는 요족과 인족의 영역이 지금처럼 뚜렷하지 않았고, 상대적으로 혼재된 상태였다고 전해졌다.

이러한 이유로 어떤 인족은, 요족에게 먹히거나 혹은 요족이 인족의 사냥감이 되는 경우도 잦았다.

인류는 물에 약해 강 속의 요괴에는 속수무책이었다. 유독 인황만이 손쉽게 입수하여 요족을 죽일 수 있었다.

인종이 의지한 것은 바로, 영룡이라는 수륙양용(水陸兩用)의 기이한 짐승이었다.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대봉의 황제가 입수하여 요족을 죽일 필요가 없게 되어, 수중 탈것은 관상용 생물이 되었다.

도를 닦기 시작한 후로 여러 해 동안 영룡을 보러오지 않았던 원경제는, 자신도 모르게 제위에 오를 때 영룡을 타고 경하(京河)를 누비던 풍경을 떠올렸다.

“짐이 여러 해 동안 너와 가까이하지 않았구나. 생각건대 너도 쓸쓸했겠지.”

원경제는 북받쳐 올라 영룡 등의 갑옷에 가뿐하게 뛰어오른 후, 두 손으로 뿔을 잡았다.

영룡이 즐거워하며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영룡은 사지로 노를 젓고, 상체를 가뿐하게 흔들거리며 원경제를 태우고 호수를 헤엄쳤다.

‘……정말 부럽다!’

태자는 이 장면을 부러워하며 바라보았다. 자신도 영룡에 올라타, 황자와 황녀들이 물가에 서서 간절한 눈빛으로 자신을 관망하고 있을 모습을 상상했다.

바로 이때, 호수에서 헤엄치며 즐겁게 노닐던 영룡이 별안간 포효하기 시작했다. 무슨 자극이라도 받은 것처럼 머리를 높게 쳐들고는, 고막을 찢을 듯한 포효와 함께 목을 털어 원경제를 내던졌다.

영룡이 몸을 털어 원경제를 떨어트리는 순간, 호숫가의 몇몇 고품 강자들이 반응하여 날카로운 화살처럼 위로 솟구쳤다. 그들이 수면 위에 발바닥을 대니 빙글빙글 소용돌이가 생겼다.

원경제는 허공에 몸을 가눈 채 수면 위에 발끝을 가볍게 대고, 마치 기러기 털처럼 물가로 흩날려 갔다.

그는 황실의 대를 잇기 위해 일찍이 아들을 낳으면서 무도를 끊었지만, 최근 몇 년간 국사를 따라 도를 닦아 도문 체계의 많은 기술을 연마해온 터였다. 그러지 않았으면 희끗희끗했던 머리가 흑발로 바뀔 수 없었을 터였다.

원경제는 분노하면서도 의아하게 여겼다. 영룡이 자신을 이렇게 대할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르렁!”

원경제를 떨쳐낸 후에도 영룡은 분노가 가시지 않자, 정면에서 다가오는 고품 무사를 곧장 들이받았다. 기기가 허공에서 폭발하여 호수 전체가 출렁였다.

시위들이 잇달아 나서서, 아무 이유 없이 발광하는 영룡을 굴복시켰다.

“영룡을 다치게 하지 마라!”

원경제가 소리쳤다.

우르르 쿵쾅……. 수면에서 십여 개의 물기둥이 솟구쳐 올라와 공중에 떠 있거나 호수를 밟고 있는 시위들에게 정확히 명중했다. 그러나 일찌감치 동피철골경에 들어선 그들은 부상을 면할 수 있었다. 다만 물기둥에 의해 몸이 솟구쳐 허둥대느라, 포위망을 형성할 수가 없었다.

영룡은 물을 자유자재로 다루었기에 호수에서 더 날뛰었다.

다만 이 영수가 머리를 높이 쳐들고 포효한 뒤 갑자기 호수에서 나와 물가를 향해 돌진할 거라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어찌 된 일이지? 영룡이 뭔가 자극을 받은 것 같은데…….’

원경제는 이상함을 느끼고 침착한 목소리로 지시했다.

“막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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