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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117화 (117/712)

117화. 장공주의 부름 (1)

이야기를 마치니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곧 점심시간이라, 허칠안과 그 일행은 청룡사에 남아 사찰음식을 맛보기로 했다.

“청룡사 절밥 진짜 맛있다.”

저채미는 단숨에 두 그릇을 먹고, 세 번째 그릇을 받쳐 들고서 아주 만족스러워하며 칭찬했다.

청룡사의 사찰음식은 흑미, 쌀, 옥수수를 섞어 안치기 전에 참기름을 뿌린 모양새였다. 그러면 밥알이 옹골지고 윤기가 흐르며 향기로워지는 법이었다.

나물도 정성을 들여 무쳐 색과 향과 맛이 모두 완벽했다.

허칠안은 저채미의 옆에 앉아, 그녀가 행복해하며 먹는 모습을 보고선 웃으며 말했다.

“여 시주님, 혼자만 먹지 마셔요. 소승 동냥하러 왔습니다.”

저채미가 밥그릇을 감싸고 눈을 부라리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너랑 나랑 다른 거 먹니?”

허칠안은 고개를 저었다.

“소승은 밥을 동냥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뭘 동냥하는 건데?”

“소승, 청천백일(*靑天白日: 푸른 하늘에 쨍쨍하게 빛나는 밝은 태양이란 뜻으로, 세상에 아무런 부끄럼이나 죄가 없이 결백함 또는 심사가 명백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입니다.”

* * *

모두가 청룡사의 사찰음식에 매우 만족했다. 다만 백봉으로 몸보신하지 않았다는 점이 유일하게 아쉬웠다.

감원인 항청 대사는 사찰 입구까지 배웅하러 나왔다. 도시인들이 수작 부린 일로 화가 나 있었기 때문에, 그는 가는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허칠안은 갑자기 한 가지 일이 떠올라 물었다.

“대사, 항원(恒元)이라 하는 스님과 알고 지내시는 건 어떠합니까?”

그러자 항청 감원의 안색이 대번에 변했다.

항청 감원이 우물쭈물하다가 물었다.

“대인께서는 어찌 압니까?”

항원이란 법호는 허신년이 알려준 것이었다. 허신년에게 양생당에 가서 육호를 찾으라고 했던 당시, 육호가 진작에 떠났다는 사실을 전해 들을 때의 이야기였다.

‘하급 관리가 말하길 항원 대사가 이미 떠났다고 합니다. 듣자 하니 사제의 소식이 생겨 떠난 것이라 합니다.’

“제가 어떻게 안 것인지는 신경 쓰지 마십시오. 지금 제가 대사께 여쭙고 있지 않습니까.”

허칠안의 표정이 굳었다. 그는 폭력을 행사하지 않으면 협조하지 않는 이 승려를 곱게 보지 않았다.

일대일로 싸운다면 이 청룡사 감원이 그를 땅바닥에 짓눌러 비빌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허칠안에게는 형제가 있고, 뒤에는 조정도 있지 않던가.

항청 감원이 약간 망설이더니 말했다.

“항원은 절의 무승이었습니다. 성격이 충동적이고 성미가 거칠었죠. 틈만 나면 동문에게 주먹질하여 상처를 입혔습니다. 결국 주지 스님께 벌을 받아 작년에 청룡사에서 쫓겨났습니다.”

‘육호가 청룡사의 승려, 무승? 어쩐지 체구가 크고 장대한 것이 노지심 같더라니. 그의 사제가 인신매매범에게 유괴됐다고 했던 육호의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육호가 찾는 사제가 항혜는 아니겠지?

하지만 항혜는 평양군주와 사랑의 도피를 한 건데, 그런데 항혜가 가져간 청룡사의 법기가 금오위 백호 주적웅에게서 나타났다는 건 그 항혜 승려가 이미 변을 당했다는 걸 의미하는 건가?

아니면 그도 상백 사건에 개입한 것이다. 만약 후자라면, 그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리고 평양군주는 또 어디로 사라진 건데.’

이번 청룡사 방문에서는, 그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많은 수확을 거두게 된 듯했다.

* * *

허칠안은 돌아오는 길에 전력을 다해 빠른 속도로 말을 몰았지만, 야경꾼 관아로 돌아오니 벌써 한 시진이 훨씬 지난 뒤였다.

허칠안은 대오의 인원들이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게 한 뒤, 자신은 문을 닫고 사건을 정리했다.

그러고 나서는 지서 파편을 꺼내 문자를 입력했다.

[삼: 육호는 아직도 소식이 없는가?]

대꾸하는 사람이 없었다.

한참이 지난 후에 금련 도사가 튀어나와 리플을 달아주었다.

[구: 아직 소식이 없네.]

허칠안은 자신만의 예리함으로, 육호가 어쩌면 무언가를 발견했거나 매우 위험한 처지에 놓였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지 않고선 이렇게 오랫동안 답장을 보내지 않을 리가 없었다.

[삼: 금련 도사님, 아직 지서 파편의 위치를 측정하지 않으셨나요?]

[구: 어떤 비법에 의해 차단된 게 틀림없네.]

[이: 빡빡머리는 어째 늘 말썽을 피우는 걸까?]

이호가 튀어나와 참견했다.

[구: 그는 줄곧 사제 실종 사건을 조사하고 있었네. 어쩌면 평원백 배후 세력에게 보복을 당했을지도 모르네.]

‘아니, 그는 사제와 관련된 단서를 발견한 거다. 하지만 결론은 같아. 어찌 되었든 간에 육호는 큰 곤경에 빠진 거야.’

[사: 만약 지서 파편이 다른 사람 손에 들어갔다면, 우리는 처음 그때처럼 어떠한 문자도 보내지 않아야 하네.]

[이: 만약 지종의 손을 거쳤다면, 우리 모두 위험에 처할지도 모르네.]

이쯤 되니 천지회 구성원들의 초조함과 심리적 압박감이 느껴졌다.

다들 육호의 안위가 걱정될 뿐만 아니라, 더 이상 지서로 문자를 보내지 못한다는 사실도 걱정됐다. 천지회가 어렵사리 구축한 정보 교환 모델이 유명무실해지게 생겼으니 말이다.

최악의 경우, 일단 지종의 손에 넘어간다 해도 지종 도인의 일반 구성원들은 무섭지 않았다.

‘그러나 만일 지종 도수가 직접 지서를 회수한다면?’

일호와 삼호는 경성에 숨어있으면 되니 그런대로 괜찮았다. 하지만 지종 도수가 조금이라도 신경 쓴다면, 다른 사람들은 위험해질 터였다.

[이: 맞다, 삼호에게 도움을 청하세.]

[사: 응, 만약 삼호가 운록서원과의 관계를 이용하여 은밀히 금련 도사님에게 협조할 수 있다면, 육호를 찾기가 훨씬 수월할 걸세.]

부지불식간, 삼호에 대한 천지회 구성원들의 의존도가 늘 염탐하기만 하는 일호를 넘어섰다.

무릇 대봉 경성 관내의 일이라면, 머릿속에 무의식적으로 삼호가 떠올랐다.

‘……내가 왜 호구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육호의 신원 및 현황은 내가 방금 얻은 가장 중요한 자료인데, 지금 퍼져나간다면, 신분이 노출될 위험이 크니 시간차를 좀 둬야겠어……. 천지회 구성원들 모두 육호의 내력을 알고 있지 않고서야.’

[삼: 자네들 육호의 신분에 대해 아는가? 내가 말하는 건 불문 제자라는 정보 말고 말일세.]

[이: 모르네. 육호는 자칭 방랑하는 불문 제자 아닌가. 경성에 한동안 오래 머물 예정이고.]

‘육호가 외지인 행세를 하는군……. 음, 승려의 머리가 노지심보다 낫네!’

허칠안은 다 계획이 있었기에, 문자를 입력했다.

[삼: 이 일은 자네들이 신경 쓸 필요 없네. 내가 금련 도사님과 교섭하겠네. 육호에 관한 상황은 내가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어. 도사님, 오늘 저녁에 제 거처로 오실 수 있습니까? 도사님과 상의할 일이 있습니다.]

“!!!”

삼호의 이 말을 본 순간,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천지회의 모든 구성원들은 위엄이 있다고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등에 가시가 박힌 느낌을 받았다.

‘뜻밖에도 삼호가 육호의 내력을 분명하게 파악하고 있다. 또한 그의 말을 들어보면 육호의 근황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은 분명 짧은 시간 교류한 것이 전부인데……. 역시나 운록서원의 지식인은 능력이 뛰어나다…….’

이호는 거리낌을 느꼈다.

‘삼호는 좀 재밌는 친구다. 가장 늦게 입회했는데, 보여준 수완, 능력 그리고 예리함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장차 경성에 돌아올 때 그와의 만남이 기대되는군. 그때가 되면 제대로 가르침을 청해야겠군…….’

한편, 사호는 진심으로 그를 높이 사고 있었다.

[오: 그럼 자네, 절대로 내 신분은 조사하지 마시게. 안 그러면 화낼 거야.]

오호는 바로 속마음을 말했다.

[일: 삼호, 상백 사건에 관해 자네 수중에 더 정확한 정보가 있는 것인가?]

[삼: 요 며칠간은 상백 사건에 관심을 두지 않았네.]

일호는 상황을 보고선 잠수했다.

* * *

그렇게 금련 도사와 만나는 시간을 정한 허칠안은, 편청을 빠져나와 위연을 만나러 곧장 호기루로 향했다.

위연은 탁 트이고 환한 다실에서 홀로 탁자 앞에 앉아 바둑을 두고 있었다. 왼손이 오른손을 대적하는 모습이 마치 쓸쓸한 일인극을 연기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위연은 고개도 들지 않은 채 웃으며 말했다.

“반평생 바둑을 두었지. 맨 처음에는 연전연패하다가 나중에는 할수록 실력이 늘어 국수(國手)도 이겼다네. 부지불식간에 적수를 찾을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어.”

‘지난번에 감정과 바둑 뒀을 때 비기지 않았나?’

허칠안은 속으로 비아냥거렸다.

“허나 바둑판 밖의 적은 너무 많아 골치가 아프네.”

위연이 바둑알을 내려놓고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무슨 일인가?”

“소직 위 공께 사건의 진척에 대해 보고드리려 합니다.”

잠시 머뭇거리던 허칠안이 말했다.

“어제 새벽 태강현의 조 현령이 하옥되던 날 밤 멸구를 당했습니다. 이 일은 부아에서 잠시 비밀에 부치기로 했습니다. 한데 조 현령의 죽은 모습이 기이합니다. 약물에 중독된 것도 아니고, 상처도 없이 자연스럽게 죽었습니다.”

위연의 표정이 갑자기 굳어지더니, 몇 초 후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소직, 자료를 열람해보고 이 일을 벌일 수 있는 건 도문의 음신 아니면, 동북의 무신교임을 발견했습니다.”

허칠안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상백 사건은 요족, 동북 무신교와 관련이 있습니다. 소직 머리를 쥐어짜고 이리저리 생각한 결과…… 조정의 그분을 제외하고 동시에 이 두 거대 세력과 결탁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퍽!

위연이 손바닥으로 바둑판을 내리치자 모든 바둑알이 떨렸다. 그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허칠안을 노려보며 말했다.

“여기서 나가면 방금 한 얘기를 누구에게도 해서는 안 된다.”

허칠안이 황급히 고개를 숙이고 설명했다.

“허나, 허나 소직은 더는 조사해나가기 어려울 듯합니다…….”

“물러가거라.”

위연이 냉랭하게 말하자, 허칠안은 그러겠노라 답하곤 다실에서 물러났다.

점점 멀어져 가는 발자국 소리를 듣던 위연은 일사불란하게 바둑알을 한데 모은 뒤 차반을 깨끗하게 씻었다. 그리곤 청의로 갈아입고 계단 어귀로 가서 당직 중인 하급 관리에게 분부했다.

“마차를 준비하거라. 입궁할 것이다.”

* * *

허칠안은 수중에 담배가 없다는 것이 문득 원망스러웠다. 생각할 때 무미건조하게 앉아 있을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그는 여청과 은라 셋이 사건의 경위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들으며 기절초풍했다.

“진북왕이 멀리 변방에 있지 않은가. 내가 변방으로 달려가 조사할 수는 없는 노릇이네. 게다가 조사할 엄두도 나지 않아. 폐하께서 친히 성지를 내리시지 않는 이상 금패에만 의존해서는 그 대신을 조사할 수 없어.”

“변방에 있다라……. 이봐, 본인에게 아주 완벽한 현장부재증명이 되겠구먼.”

“하지만 세상에 완전 범죄란 없어. 범죄를 저지른 이상 단서를 남겼을 걸세. 내가 이 단서들을 잡을 수 있느냐가 관건인데. 진북왕이 경성에 없으니 그는 대리인이 필요할 테고 그 대리인은 분명 조정의 아무개일 거야.”

진북왕에 관한 단서는 당분간 조사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위연이 그를 도우려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만약 위연이 성지를 청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될 터였다.

다행히 교활한 토끼는 한 굴만 파지 않는 법이었고, 총명한 자에게 한 가지 방법만 있을 리는 없었다.

오늘 청룡사 방문은 헛수고가 아니었다. 청룡사의 항혜 승려가 돌파구였다. 이 돌파구를 따라 계속 조사하여 육호를 찾을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

이것이 바로 허칠안이 금련 도사와 야회(夜會)하기로 한 이유였다.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여청과 은라 셋의 토론이 끊겼다. 그들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고는, 문밖을 쳐다봤다.

과묵한 주광효가 문 옆에 서서 말했다.

“허 대인, 장공주마마께서 들라 하십니다.”

다른 사람들이 몸을 돌려 허칠안을 쳐다봤다.

‘회경이 왜 나를 찾는 거지……. 내가 보고 싶나? 에휴, 어제도 만나지 않았나? 하루를 못 보니 3년을 떨어진 것 같나 보군!’

허칠안의 머릿속에 빼어난 미모의 고고한 장공주가 떠올랐다. 확실히 외모는 선녀처럼 고아했지만, 몸매는 매혹적인 마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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