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타경-116화 (116/712)

116화. 청룡사 (2)

허칠안은 잠시 단어를 고르다 선택하고는 말했다.

“얼마 전, 명령을 받들어 한 부정 관리의 집을 수색하여 몰수했던 적이 있지요. 인자하신 폐하께서는 저택의 식솔들까지 연좌하지 않으셨습니다. 허나 집을 몰수하던 중 동료 몇몇이 저택에 남아있는 부녀자의 미모가 출중한 걸 보고는 나쁜 마음을 품고 강제로 모욕하려 들었고요……. 그중 한 여자아이는 겨우 열두세 살밖에 되어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 일을 참을 수가 없었기에, 즉시 그들을 저지했습니다. 그러다 상급자와 충돌이 생겨 자칫하면 상급자를 죽일 뻔했지요. 이러한 까닭에 저는 요참형을 판결받았습니다. 때문에 폐하께서 상백 사건의 처리를 제게 맡기시면서, 공을 세우면 죄를 면해주신다 하셨고요.

저의 벗이 말하길 저는 너무 충동적이라며, 옳은 방법은 우선 참았다가 사후에 관아에 신고했어야 한다고 말하더군요. 허나 그렇게 하면 여자아이는 이미 끔찍한 일을 당했을 겁니다…….”

허칠안은 괴로움이 뒤섞인 표정을 지었다.

“모두가 불법(佛法)은 끝없고, 중생을 제도(濟度)한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대사께 여쭙니다. 저는 도대체 잘한 겁니까, 잘못한 겁니까?”

여청은 매우 놀라 의아한 기색을 보였다. 허칠안의 사형 선고 배후에 이러한 일이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역시 그는 다른 남자들과는 달라…….’

여 포두의 눈빛이 무심결에 상냥해졌다.

항청 대사는 조금은 감동한 듯했다.

‘이 조정의 앞잡이가 가슴에 열정이 가득한 인간이라니’.

그가 염불을 외며 말했다.

“시주께서 마음에 물어 부끄러운 바가 없으면 될 뿐, 인과에 관여하지 않습니다.”

“대사께서도 제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시는군요.”

허칠안이 암담하다는 듯 중얼거리자, 항청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했다.

“시주께서 선한 마음으로 자비를 베풀어 사람을 구했는데 어찌 잘못이 있겠습니까.”

허칠안이 캐물었다.

“그런데 조정에서는 왜 제가 죽어 마땅한 죄를 지었다고 판결한 것입니까?”

항청 대사가 위로하며 말했다.

“인간 세상은 고해(苦海)와 같습니다. 그 안에 속해 있다는 건 자기의 몸을 뜻대로 할 수 없다는 걸 의미하죠. 선한 마음이 선한 결실을 맺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비록 늦을지라도 늪에 빠질 일은 없습니다. 상백 사건이 바로 그러합니다. 어둠 속에 천운이 있기 마련이고, 이것이 시주의 전화위복이 될 수 있는 것이지요.”

“깨달았습니다!”

허칠안이 문득 깨달음을 얻고선, 고개를 돌려 모든 이들에게 말했다.

“모두 들었겠지! 항청 대사 말씀이 대봉은 고해(苦海)고, 상백 사건은 황실의 업보라 하셨다. 멍하니 뭐 하고 있느냐, 잡아야지.”

스르릉.

모두 즉시 일어나 칼을 빼드는 소리가 유실(*幽室: 조용한 곳에 있는 방)에 울려 퍼졌다.

* * *

선실.

청룡사 주지 스님인 반수(盤樹) 대사는 62세의 고령으로, 민머리는 이미 젊었을 때만큼 반짝반짝 빛나지 않았고, 흰 수염은 가슴까지 자란 채였다.

5품 율사로서 그는 이 경지에 이십여 년을 머물러 있었다.

불문 체계는 ‘오(悟)’자를 중시하여, 어떤 고승(高僧)은 수십 년을 참선하다가 원적(*圓寂: 승려의 죽음)에 이를 때까지 더 나아가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다.

일부 승려들은 문득 밤사이 봄바람이 부는가 싶더니 찰나에 만법동(萬法同)을 깨닫고, 바로 수십 년의 고행을 생략하기도 했다.

반수 대사는 전자일 수도, 후자일 수도 있었다.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누구도 자신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지 없는지 확신하기 어려웠다.

“주지 스님, 주지 스님……!”

한 집사가 마당 밖으로 와 마당을 사이에 두고 애타게 외쳤다.

“사찰에 야경꾼 무리가 와서 항청 대사를 체포했습니다. 조정을 비방하고 황실을 멸시하여 하옥시키겠다고 합니다.”

반수 주지가 눈을 뜨고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

“알겠다.”

유실의 문이 저절로 열렸고, 그 안의 반수 주지는 이미 사라져 있었다.

* * *

야경꾼이 항청 감원을 절 밖으로 압송했고, 그 길을 따르는 승려들이 점점 더 많아졌다. 적대하는 눈빛으로 슬그머니 포위망을 형성해, 누군가 나서기만 하면 바로 이 조정의 앞잡이들을 에워쌀 기세였다.

하지만 야경꾼은 도가 지나친 권세를 누리고 있어 이 작은 무리를 에워싸면, 내일은 더 큰 무리가 와서 청룡사를 초토화 시킬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렇기에 아무도 경거망동하지 않았다.

“대사, 겁내지 마시고 야경꾼 관아로 가시죠. 순순히 협조하기만 하면 곧 풀려날 것입니다.”

허칠안이 그를 달랬다.

이때 허칠안의 웃음은, 항청 대사의 눈에는 마치 악마의 미소처럼 보였다. 전혀 위로되지 않았다.

“아미타불!”

인자한 목소리가 쩌렁쩌렁 들려오더니, 어느새 모든 승려의 적대심과 노여움을 가라앉혔다.

허칠안은 적황색 승려복을 걸친 노승이, 터무니없이 전방 3장(약 9m) 앞에 나타나서는 야경꾼들의 길을 가로막는 것이 보였다.

“빈승 반수입니다.”

“반수 주지 스님!”

허칠안이 경건하게 두 손을 합장하고 답배하며 말했다.

“본관 허칠안, 주지 스님께 여쭐 일이 있습니다.”

“빈승을 따라오시오.”

반수 주지가 탄식하며 말했다.

* * *

그들은 다시 유실로 들어왔다. 이번에는 허칠안을 제외한 은라 셋과 다른 야경꾼들은 들어오지 못했다.

5품 고수를 대하는 허칠안의 태도는 매우 정중했다. 5품의 율사는 무사 체계의 5품 화경경(化勁境)에 상응했다.

이는 동피철골경을 뛰어넘는 고수라는 뜻이었다.

“주지 대사, 본관 황명을 받들어 상백 사건을 조사하고 있던 중, 뜻밖에 금오위의 한 백호가 사천감의 술사를 속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리하여 수소문 끝에 청룡사에 비슷한 법기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허칠안이 일깨우며 말했다.

“이 사건은 매우 중대합니다. 청룡사를 위해 주지 대사께서는 반드시 사실대로 말씀해주셔야 합니다. 본관은 결코 대사를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본 사찰에 기운을 숨길 수 있고 어떠한 정탐법(偵探法)도 감출 수 있는 법기가 있기는 합니다.”

반수 주지가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그 물건은 아직도 절에 있습니까?”

“없습니다!”

주지 스님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허칠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그가 설명해주기를 기다렸다.

반수 주지는 몇 초 멈추었다가, 탄식하며 말했다.

“항청이 대인을 기만한 것은 모두 이 일이 본 사찰의 추문과 관련되기 때문입니다. 밖으로 퍼져나간다면 본 사찰에 큰 화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빈승에게 제자 한 명이 있었습니다. 법호는 항혜(恒慧)로 타고난 자질이 총명하여 본래 그에게 큰 기대를 걸었으나 육근청정(*六根淸淨: 눈·귀·코·혀·몸·생각이 청정함)에 이르지 못해, 산에 들어온 참배자와 사사로운 감정이 생겼지요. 서로 손을 잡고 그 법기를 훔쳐 몰래 도망쳤고, 경성에서 벗어났을 겁니다.”

허칠안은 눈을 가늘게 뜨고 주지 스님을 주시하며 입에서 나오는 대로 물었다.

“그 참배자의 신분이 무엇입니까?”

반수 주지가 두 손을 합장하고, 낮은 목소리로 염불을 외더니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평양(平陽)군주입니다.”

“!”

허칠안은 벼락이라도 맞은 듯 딱딱히 굳었다.

대봉 왕조에서 군주라 칭하는 여인은 모두 다음과 같다. 황제의 서녀(*庶女: 첩이 낳은 딸), 황태자의 여자, 친왕녀, 왕녀가 그러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황후가 낳은 장공주를 제외한 다른 세 명의 공주는, 모두 서녀이다. 하지만 원경제는 이번 생에 딸이 넷뿐이라 아주 귀하게 여겨 모든 공주에게 봉호를 내렸다. 그래서 그녀들을 칭할 때는 앞에 ‘군(郡)’자가 없는 것이었다.

태자에게 딸이 있기는 했으나, 아직 너무 어린 나이라 사랑의 도피와 같은 일과 연관됐을 가능성은 없었다.

따라서 허칠안은 이 평양군주가 종실 왕녀일 것으로 추측했다.

‘이 사건은 조사할수록 복잡해지는군. 군주와 사랑의 도피를 한 승려는 이 사건에서 또 무슨 역할을 맡은 것인가?’

허칠안이 물었다.

“언제 일입니까?”

“1년 좀 넘었습니다.”

반수 주지가 대답했다.

“대사의 해혹(解惑)에 감사드립니다. 본관, 한 가지 더 여쭐 것이 있습니다.”

“시주님, 말씀하시지요.”

“청룡사는 당초 서역의 승려가 세운 보탑사를 계승한 절이 맞습니까?”

반수 주지는 말없이 묵인했다.

“영진산하의 사당이 폭발된 후 본관이 호수 밑에서 진법을 발견하였는데 그곳에 불문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 진법은 오백 년 전에 설치된 것이죠. 그런데 보탑사도 오백 년 전에 생기지 않았습니까. 더 재미있는 건 무종 황제도 오백 년 전에…….”

허칠안이 주지 스님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재차 물었다.

“당초 그 일에 관하여 서역 불문에 관련 기록이 있습니까?”

허칠안이 말을 마치자, 득도한 고승의 태연함은 사라지고 안색이 창백한 반수 스님의 모습만이 남아있었다.

“대인, 빈승이 딱 한 가지 일만 여쭙겠습니다…….”

반수 주지는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말하고 싶지만 말할 엄두가 나지 않아 오랫동안 뜸을 들이다 겨우 운을 뗐다.

“상백 밑에 있던 것이 정말…… 도망쳤습니까?”

“정말이고 말고요!”

허칠안은 확신에 찬 답을 주었다.

반수 주지는 매우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그의 두려움에 찬 눈빛은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는 두 손을 떨며 합장한 후 절제되지 않는 감정을 감추려 했다.

‘이 반응은 뭐야?’

허칠안은 좀 의외라고 생각했다. 노승의 반응이 다소 과격해지자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상백 밑에 봉인된 것이, 초대 감정 아닙니까?”

노승은 자신이 고개를 숙이고 염불을 외며 흰 눈썹을 부들부들 떨고 있다는 걸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듯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반수 주지의 감정은 비로소 차분해지기 시작했다.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빈승은 상백 아래에 봉인된 것이 어떤 물건인지 모릅니다. 허나 보탑사 때부터 전해오는 말이 있습니다. 상백에 마물(魔物)이 나오면, 천하 대란이 일어날 것이다.

그해의 보탑사는 상백에 봉인된 것을 지키기 위해 세워졌습니다. 후에 조정에서 불문의 번성을 두려워해 멸불 정책을 시행한 것이죠. 불문의 고승들이 뿔뿔이 흩어져 서역으로 돌아가서 청룡사만이 이 맥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떠나기 전에 고승들께서 거듭 당부하길 상백의 동정을 빈틈없이 살피고, 이상한 낌새가 보이면 바로 보고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거 듣다 보니, 어째 불문이 대봉 황실보다 상백 봉인을 더 의식하는 것 같은데? 음, 초대 감정은 1품이기 때문에 천하 대란 어쩌고저쩌고가 과장은 아니다. 어쨌거나 1품은 인간 세상의 최고봉이니까.’

“빈승, 이 내용들이 알고 있는 전부입니다. 대인께서는 더 물으실 게 있으십니까?”

“없습니다.”

반수 주지는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홀연히 사라졌다. 마치 어색하게 편집된 것 같았다.

허칠안은 눈을 휘둥그레 뜨다가 문득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이동 하는 거 좀 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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