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화. 청룡사 (1)
‘자, 오늘의 임무는 세 가지이다. 조 현령의 사망에 관한 수사는 이미 어제저녁에 비교적 정확한 결과를 얻었다. 나머지 두 가지 임무 중 왕비와의 만남은 달성하지 못했다.’
시작이 순조롭지 못했던 허칠안은 뭔가 잘못돼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빈틈없이 착실하게 업무에 임하는 사람이었다. 왕비의 미색이 궁금해 아리따운 미모를 보고 싶었는데 보지 못해 기분이 나쁜 것은 절대 아니었다.
‘왕비가 특별하다고? 이 특별함은 뛰어난 외모가 아니라 다른 것을 가리키는 것이 틀림없다. 그녀가 그렇게 특별하다면, 원경제가 그해 절세미인을 진북왕에게 양보했을 리가 없어. 아무래도 그 특별함 때문에 원경제가 미인을 양보한 것이다.’
허칠안은 마음을 분산시켜 잠시 생각하고선, 왕비의 일은 뒷전으로 미뤘다.
사건이 처리하기 어렵게 됐으니, 이런 중요하지도 않은 사소한 일로 뇌세포를 낭비하면 안 됐다.
* * *
대봉의 서쪽 교외에는 백봉산이 있었다. 서쪽 성문에서 출발하여 반 시진 남짓 걸려 도착했다.
백봉산의 명칭은 산속에 서식하는 흰 들새로부터 유래되었다. 꼬리깃이 긴 것이 마치 봉황과 같아 보여 붙여진 이름이었다.
하지만 현재 산에 백봉(白鳳)은 거의 자취를 감춘 상태였다. 말하자면 사천감 책임이었다.
모년 모월, 사천감의 한 치료사가 백봉산에서 약초를 캐는 김에 백봉을 몇 마리 잡아서 집에 가져가 연구했고, 백봉의 고기가 양기를 북돋아 준다는 걸 발견하게 된 것이었다.
백봉산의 산기슭에 도착하니 박학다식한 여청이 웃으며 이 얘기를 해주었다.
송정풍은 마음이 동요되어 주저하다가 입을 뗐다.
“대장, 제 친구가 몸이 좋지 않아 그에게 백봉을 몇 마리 잡아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민산, 민 은라가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지금이 어느 시기인데, 짐승을 사냥할 생각을 하느냐. 업무가 막중한데 만일 사건 해결이 지체되면 누가 책임질 텐가?”
이옥춘은 눈살을 찌푸리며 대답하지 않았다.
허칠안이 웃으며 말했다.
“이번에 백봉산에 온 건 케케묵은 지난 일에 대해 알아보기 위함이네. 긴박한 것은 아니니 정풍이 너는 속히 갔다 속히 돌아오고.”
잠자코 듣던 민산의 얼굴이 빨개졌다.
“허 대인, 차라리 서로 돌볼 수 있게 제가 송 동라와 함께 가게 해주십시오.”
‘새 하나 잡는데 서로 돌봐야 한다고?’
허칠안이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민 은라도 친구가 있소?”
민산은, 뭇 남성들이 이상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민 은라는 마음이 좀 조급해져 한참을 참고 있다가 한 마디 던졌다.
“양기를 북돋고 아니고는 상관없습니다. 곧 멸종될 새가 어떤 맛인지 먹어보고 싶은 마음이 컸을 뿐입니다.”
모든 이들이 떠들썩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윽고 허칠안이 웃음을 그치고 정색하며 말했다.
“방금은 농담한 거요. 상백 사건의 배경이 아주 복잡하오. 경성에서는 자네들이 어디를 가든 상관하지 않겠으나 경성을 벗어나면 대오에서 이탈하지는 마시오.”
* * *
구불구불한 산 계단이 산속 깊은 곳까지 이어져 있었고, 산기슭에는 ‘청룡사’가 쓰인 편액(*扁額: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써서 방 안이나 문 위에 걸어 놓는 액자)이 걸린 거대한 패방(*牌坊: 문짝이 없는 대문 모양의 건축물)이 자리하고 있었다.
청룡사에는 참배자가 구름처럼 모여들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스산하다고 할 수도 없었다. 길을 따라가다 보면 이따금 무리를 지어 산에 올라 향을 피우는 근처의 백성들을 볼 수 있었다.
패방 옆에는 호화로운 마차가 한 대 세워져 있었고, 군장을 찬 십여 명의 갑사들이 호위 중이었다.
허칠안은 왠지 이 마차가 낯익었다. 금사남목으로 만들어졌고, 차체의 세세한 부분까지 옥판과 금박으로 감싸고 있었다. 그가 처음 교방사에 갔을 때 봤던 그 마차였다.
마차의 주인은 허칠안에게 투호를 부탁하기도 했고, 황금 사백 냥을 삼보리 팔가락지로 바꾸기도 했다.
‘맞다, 금련 도사님께서 말씀하시길 마차 안의 여인은 나와 한동안 인연이 있었다고 했지……. 누구일까? 금사남목은 황실 전용인데, 장공주와 둘째 공주의 마차는 이렇지 않다. 종실 중 어느 군주? 아니면 황제의 비? 음, 아니다, 확실히 비는 아니야. 스스로 놀라게 하면 안 되지. 설령 비라고 해도 숙모 레벨 정도의 미인이어야 해…….’
허칠안은 말을 패방 옆 말뚝에 묶고, 부아의 쾌수 하나만을 남긴 채, 동라 하나에게는 말을 보게 했다. 허칠안은 야경꾼들을 데리고 산에 올랐다.
몇 걸음 가지 않아, 허칠안의 발밑에 물렁물렁한 향낭(香囊)이 밟혔다.
‘오늘은 은자를 줍지 말고 향낭을 주워봐?’
그는 자연스레 허리를 굽히고 주웠다. 손바닥에 쥔 향낭을 자세히 살펴보니 복잡한 운문(雲紋)이 수놓아져 있었는데, 그 기법이 매우 정교하고 사용된 재료가 비싼 것이, 결코 보통 부잣집 아가씨가 아니고선 쓸 수 없는 물건인 듯했다.
향낭의 한 면에는 ‘남(南)’자가, 다른 한 면에는 ‘치(栀)’자가 수놓아졌고 금술이 보기 좋게 촘촘히 매듭지어져 있었다.
향수 같기도 하고 단향목 같기도 하면서, 또 여자들만의 향기 같기도 한 좋은 향기가 풍겼다.
“앞에 계신 나리들, 잠시 기다려주세요.”
뒤에서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옅은 푸른색 옷을 입은 소녀가 쫓아오고 있었다. 소녀는 야경꾼의 차복(差服)을 보고도 무서워하지 않고, 허칠안 손의 향낭을 가리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건 저희 마마님께서 떨어뜨리신 거예요.”
그녀는 여종들이 하는 땋은 머리를 하고 있었으나, 입고 있는 옷의 옷감은 보통 부잣집 소저보다도 좋아 보였다.
허칠안은 무의식적으로 산기슭의 호화로운 마차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희 마마님?”
“더는 묻지 마시옵고, 어서 향낭을 돌려주셔요. 소녀, 곤란합니다.”
소녀가 독한 말투로 말하자, 허칠안이 향낭을 품속에 넣으며 능청맞게 물었다.
“무슨 향낭?”
“아…….”
소녀는 그를 표독스럽게 노려보다가 말했다.
“기다리셔요.”
소녀는 두꺼운 치맛자락을 들고서 돌계단을 따라 쿵쿵거리며 뛰어 내려갔다. 허칠안은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서서 그녀가 마차에 다가가 창가에서 말을 전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문제를 일으키는 건 곤란한데. 저건 황실 전용 마차니까.”
이옥춘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허칠안은 단지 황제의 명을 받들어 사건을 조사하고 있는 것일 뿐, 이옥춘에게 그는 여전히 자신의 부하였으니 말이다. 이옥춘은 허칠안이 사건 조사 기간에 너무 많은 사고를 일으키지 않길 바랐다. 이렇게 되면 설령 공을 세워 죄를 면할지라도 밉보이지 않아야 할 사람에게 죄를 지어 지금의 노력이 모두 수포로 돌아가게 될 터였다.
‘나는 저 여인과 나는 인연이 있다고!’
허칠안이 고개를 저었다. 그는 다른 설명 없이 계속해서 마차 쪽의 상황을 주시했다.
결말은 허칠안에게 실망감을 안겨다 주었다. 마차 안에서 창문 틈새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마차의 캄캄한 내부가 보이지 않았다.
창문이 아주 빠르게 닫혔다. 조금의 빈틈도 없었다. 몇 초 후, 마차는 서서히 움직였고 점점 멀어져 갔다.
‘아직은 인연이 아닌가 보군…….’
허칠안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가세. 청룡사의 주지 스님을 만나 뵈러 가지.”
* * *
차복(差服)을 입은 야경꾼 무리가 절 안으로 밀려 들어오자, 즉시 집사 한 명이 나와 접대를 했다.
이 집사는 매끈한 얼굴의 뚱뚱한 중으로, 자비롭고 인자한 모습에 40대 초반 정도 돼 보였다. 그가 두 손을 합장하며 말했다.
“빈승은 청룡사의 감원(*監院: 사찰 관리자)으로 법호는 항청(恒淸)입니다. 대인 어르신들, 안으로 드시지요.”
그는 허칠안 일행을 절로 안내하며, 청룡사의 역사에 대해 열성적으로 소개했다. 자칭 서방의 정통을 계승하여, 사찰 중에서도 대승불법(大乘佛法)을 정수(*精修: 정밀하고 자세하게 학문을 닦음)하고, 부처를 모신다고 했다.
허칠안은 웅장한 전우(*殿宇: 신불을 모셔 놓은 집)를 훑어보고는 손짓했다.
“주지 스님을 불러주십시오. 본관이 여쭐 것이 있습니다.”
청룡사는 대봉 경성 관내에서 유일하게 법도를 닦는 사찰로, 이 감원이 말한 것처럼 서방의 대승불법에서 전승되었다.
이곳에 오기 전 허칠안은 예습을 좀 했다. 청룡사의 주지 스님은 5품 율사(律者)로 그들 중 어느 누구보다도 가장 강했다.
하지만 허칠안은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불문 체계 전기(前期)에는 8품 무승(武僧)을 제외하고선 전투에 능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불문 9품은 사미(沙彌)라고 하는데, 이 경계가 아주 흥미로웠다. 핵심 비결은 수계(守戒)로, 3년 안에 파계(破戒)하지 않으면 승진할 수 있었다. 처음은 간단해 보이나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불문 계율은 엄격하고 복잡하여 어쩌면 무의식중에 계율을 범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8품은 무승인데, 무사와 큰 차이 없이 싸움에 능했다.
그 아래로 7품 법사(法師), 6품 선사(禪師)는 싸움에 그리 능하지 않고, 5품 율사에 이르러서야 질적 변화를 겪게 되는 셈이었다.
언급할 만한 건, 허칠안이 관아에서 자료를 열람할 때 아주 흥미로운 점을 하나 발견했는데, 9품 사미의 다음 품계가 법사라는 점이었다.
8품 무승을 바로 건너뛴 것이다.
자료에는 그 이유가 쓰여있지 않았다. 시간이 촉박하기도 했고, 허칠안 역시 불문 체계 연구에 시간을 할애하기 귀찮아서, ‘불문 체계에는 완전히 다른 두 갈래의 길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 정도의 추측에서 그쳤다.
“주지 스님께서는 좌선하고 계시니 지금은 방해하시면 안 됩니다. 빈승에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항청은 모두를 이끌고 다실로 들어와, 사미에게 차를 내오라고 명령했다.
“절 안에 사천감 망기술을 차단하는 법기가 있습니까?”
허칠안은 부들방석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대인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요?”
항청은 두 손을 합장하고,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절 안에 그런 법기는 없습니다.”
“대사, 출가한 사람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허칠안의 눈빛이 날카로웠다.
항청은 고개를 숙이고, 허칠안과 시선을 마주치지 않은 채 말했다.
“빈승이 드린 말씀은 전부 사실입니다.”
“9품 사미경을 뛰어넘으면, 아무런 거리낌 없이 거짓말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까?”
허칠안이 거짓 웃음을 지었다.
항청은 고개를 숙이고 대꾸하지 않았고, 주위 야경꾼들의 차가운 시선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폭력을 쓰지 않으면 협조하지 않으시겠다?’
허칠안은 점점 성질이 났다.
“휴, 보아하니 이번에는 수확 없는 여정이 되겠구먼.”
허칠안은 절에 들어와 처음으로 차를 한 모금 마신 후, 탄식했다.
“대사, 최근 경성을 뜨겁게 달구는 상백 사건에 대해 아십니까?”
항청 대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허칠안은 동료들에게 기다려보라는 눈짓을 보낸 뒤 계속해서 말했다.
“제가 폐하께서 직접 임명하신 이 사건의 수석 수사관입니다. 폐하께서 저를 알아보시고 총애하셔서 임명된 것이 아니라…….”
허칠안은 깊은 한숨을 쉬더니, 말을 이으려다 멈췄다.
항청 대사는 참지 못하고 그를 쳐다봤다.
“마침 잘됐습니다. 이 일을 제가 마음속에 오래 담아두었는데, 기왕 절에 왔으니 대사께 다 말씀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