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타경-114화 (114/712)

114화. 상백 사건에 연루된 세력

세 사람의 노비 허칠안은 해 질 무렵 황성을 떠나 말을 몰아서 야경꾼 관아로 돌아왔다.

관리들은 이미 퇴청했고, 당직을 서는 야경꾼과 하급 관리들만 남아있어 낮보다 훨씬 더 고요하고 적막했다.

허칠안이 막 관아에 들어서자, 코가 높고 이마가 넓은 금라 한 명이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주성주의 부친 주양이었다.

원수를 마주쳤으나 눈에 불을 켜지는 않았다. 그들은 단지 서로를 차갑게 쳐다볼 뿐이었다.

“주 금라, 아드님 부상은 어떠한지요?”

허칠안은 웃으면서 요패를 꺼내 들고는 허리춤에 차며 저력을 과시했다.

주양이 금패를 힐끗 쳐다보더니 아무런 내색 없이 담담하게 말했다.

“명이 길어 죽을 리는 없소이다. 그저 허 대인이 한발 앞서갈까 걱정일 뿐이오.”

허칠안은 손을 내저으며 선량하게 웃었다.

“제가 먼저 길목에서 그를 기다릴 것입니다. 아는 사이지 않습니까.”

주양은 그를 몇 초간 응시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사건 조사 잘하시오.”

“안녕히 가십시오, 주 금라.”

* * *

춘풍당 편청에 들어서자 이옥춘 수하의 동라와 부아의 포졸 몇몇이 자리하고 있었다.

발자국 소리를 들은 이옥춘이 춘풍당에서 나와 말했다.

“조 현령의 죽음에 윤곽이 좀 잡혔습니다. 음, 꼭 도문의 소행이라고 할 수는 없는 듯합니다.”

허칠안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편청에 들어가지 않고 이옥춘을 따라 춘풍당에 들어왔다.

“오늘 오후에 진 부윤이 사천감의 백의를 청해 야간에 당직 섰던 옥졸과 하급 관리들을 심문했는데, 그들에게는 문제가 없음을 확인했습니다. 나아가 조 현령이 새벽녘에 소리소문없이 옥사한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이옥춘은 부하이자 상사인 허칠안에게 차를 한 잔 따라주며, 계속해서 말했다.

“도문의 음신(陰神)이라면 수위와 옥졸을 따돌리고 소리 소문 없이 이 일을 해낼 수 있습니다. 허나 오늘 자료를 조사해 본 후 이 일을 할 수 있는 체계가 하나 더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허칠안은 차를 마시며, 인내심을 갖고 경청했다.

이윽고 이옥춘이 말했다.

“주술사입니다!”

“주술사?”

“무신교(巫神敎)에 대해 들어본 적 있으십니까?”

“무신(巫神)은 대장님께서 품계를 벗어난 신선급 인물이라고 말씀하신 걸 들은 적이 있습니다. 무신교가 무신이 창립한 종파입니까?”

이옥춘이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말을 이었다.

“무신은 동북 제국에서 공동으로 믿는 신으로, 무신교는 동북에서 지고지상(至高至上)한 권력을 갖고 있습니다. 마치 서방 열국의 불문과도 같지요.”

대봉은 황권이 최고였고, 북방의 부족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서역과 동북은 신권이 최고이며 종파야말로 진정한 지배 세력이었다.

“주술사가 원신(元神)의 영역에서 도문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나요?”

허칠안이 겸손한 자세로 가르침을 청했다.

“아닙니다. 원신 영역에는 도문과 견줄 수 있는 어떠한 체계도 없습니다.”

이옥춘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하지만 주술사 4품은 몽무(夢巫)라고도 불리는데, 꿈속 세계를 만들어 꿈속에서 사람을 죽일 수 있습니다.

70년 전, 북방 요족과 무신교가 영토를 놓고 전쟁을 벌인 적이 있지요. 야경꾼 첩자가 전해온 정보에 따르면 이천 명이 넘는 요족 병사가 군영에서 소리 소문 없이 죽었다고 합니다. 그들의 몸에는 어떠한 상처도 없었고, 모든 이가 창을 베고 휴식을 취하다 잠이 들었는데 다시는 깨어나지 못했다고 하고요.”

‘4품 주술사라. 어째서 또 주술사가 연루된 것이란 말인가……. 이 사건 너무 어려운데. 인종은 현재 대봉의 국교(國敎)고, 도수는 국사(國師)다. 이는 더할 나위 없이 특별한 영예인데, 그들이 진북왕을 도와 황위 찬탈 음모를 꾸며서 얻는 게 뭔데? 더 이상 위로 올라갈 데가 없어. 만렙이라고.

따라서 무신교가 개입했을 가능성이 더 크다. 만약 조 현령을 죽인 것이 몽무라면, 상백 사건의 배후 세력은 배후의 검은손 진북왕, 북방 요족, 동북 무신교다!’

허칠안은 차를 한 모금 마시며 피곤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아무런 수확이 없었던 것은 아니네요. 적어도 현재 단계에서 인종을 배제할 수 있게 되어 사건에 조금은 진척이 생겼습니다.”

허칠안이 말했다.

“대장, 이 일은 위 공께 보고해주세요.”

이옥춘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수심에 찬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경자년 말(末)은, 대란의 시작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저희는 사건 해결만 신경 쓰면 됩니다. 목숨 버릴 생각 마시고, 종묘사직에 마음 쓰지 마십시오.”

허칠안은 그의 어깨를 툭툭 치고는 관아를 떠났다.

* * *

집에 돌아오니 날이 이미 캄캄해진 시간이었다. 하루 종일 굶었더니 허칠안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진동을 했다. 그는 취사부가 데워준 밥과 반찬을 다 먹은 후, 동생 영월이 받들고 온 우유를 마셨다.

별채로 돌아온 허칠안은 베개에 머리를 대자마자 잠이 들었다.

셋째 날, 허칠안은 날이 어렴풋이 밝아오자 말을 타고 관아로 향했다. 마침 길 건너편에서 노란색 치마를 입은 저채미가 말을 타고 다그닥다그닥 달려오는 게 보였다.

그녀는 한 손으로는 말고삐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기름종이로 된 봉지를 품에 껴안고 있었는데, 그 안에 흰 찐빵이 들어있는 게 보였다. 찐빵은 말이 흔들릴 때마다 튀어나오려고 애를 썼다.

“너도 먹을래?”

저채미가 자연스레 찐빵 하나를 건네며 덧붙였다.

“고기 속이야.”

허칠안은 속으로 감동했다. 허영음이 오라버니 걱정에 죽 한 그릇만 먹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보다 더 감동이었다.

‘이 먹보가 나를 자기 사람으로 여기고 있구나.’

허칠안은 찐빵을 받아 입에 물고, 그 김에 말고삐를 문어귀에 있는 하급 관리에게 건넸다.

두 사람은 나란히 찐빵을 먹었고 허칠안은 안으로 들어가며 물었다.

“무슨 단서라도 찾았소?”

저채미가 답했다.

“내가 물어봤는데. 송경(宋卿) 사형이 말하길 궁중의 일부 법기와 사천감의 법기를 제외하고, 경성 관내에서 망기술을 차단할 수 있는 법기는 불문만 갖고 있는 것 같대. 음, 그런 평범한 자들의 사찰이 아니라 청룡사라고 있어.”

‘청룡사?! 그 보탑사가 계승된…….’

허칠안은 놀라면서도, 한편으로는 놀랍지 않다고 생각했다.

‘역시나 불문과 이번 상백 사건은 떼려야 뗄 수 없던 거다.’

사천감, 황실, 무신교, 북방 요족, 진북왕, 불문……. 아주 작은 발단인 상백 사건은 뜻밖에도 어마어마한 세력들과 연루되어 있었다.

* * *

찐빵을 다 뜯어 먹은 허칠안은 주광효와 송정풍에게 대오의 다른 자들더러 앞마당에 집결하라는 통지를 전하라고 했다.

허칠안의 현재 대오는 금옥당, 진사당, 춘풍당, 사천감 저채미, 부아의 포졸 6명으로, 총 24명이었다.

민산과 양봉 두 은라는 공부의 화약 생산과 사용 기록의 실태를 조사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가장 번거롭고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다.

사실 허칠안은 화약이 공부 출처가 아님을 굳게 믿고 있었다. 단지 신중을 기하기 위해 공부에 대한 조사를 멈추지 않는 것뿐이었다.

그는 오늘 경성을 떠날 작정이었다. 상백 사건에 이렇게 많은 세력이 연루된 것을 안 이상 허칠안은 마음의 소리에 따라 최대한 많은 인원을 데리고 움직이기로 했다.

* * *

허칠안은 먼저 황성에 갔는데, 다른 이들은 황성 밖에서 저지당했고 그와 함께 손을 잡고 갈 수 있는 사람은 먹보 저채미밖에 없었다. 이 아가씨는 오고 싶으면 오고, 가고 싶으면 가는 황성의 단골손님으로, 지위가 아주 보통이 아닌 듯했다.

“장공주마마께서 옥패를 하사하신 거요?”

허칠안이 묻자 저채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있거든.”

허칠안이 임안공주가 하사한 요옥(腰玉)을 꺼내 거들먹거리며 뽐내자, 저채미는 궁금증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좀 낯이 익는데……. 엇, 임안공주마마 거?”

“맞소, 나는 지금 임안공주마마의 사람이오. 나를 총애하시지. 장공주마마가 나에게 옥패를 하사하지 않으신 걸 알고는 급히 하나 주시면서 장공주마마보다 나를 더 중시하고, 또 의지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씀하셨소.”

“그녀도 참 어리석구나.”

저채미가 깔깔대며 웃기 시작했다. 임안을 비웃는 것이었다.

‘누가 누굴 보고 웃는 거지? 무슨 자신감으로 임안공주, 그 여우를 비웃는 거야……?’

허칠안이 맞장구쳤다.

“그러게 말이오. 모든 이들이 그대처럼 청아하고 똑똑한 건 아니니까.”

저채미의 웃음이 점점 더 달콤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드디어 회친왕부(淮亲王府)에 도착했다. 진북왕의 봉호가 회친이자 원경제의 친동생이기도 하여 저택의 명칭이 회친왕부가 되었다.

문 앞에는 한백옥 사자 두 기(*基: 무덤, 비석, 탑 따위를 세는 단위)가 있고, 2장(*丈: 1장에 약 3m 길이) 높이의 중문에는 금색의 장식용 못이 질서정연하게 배열되어 있었다. 초도(椒圖) 문고리마저 일반 왕공 귀족의 저택보다 커다랬다.

그곳을 본 허칠안은 고급스럽고, 기품 있으며, 격조 높다는 말 외에 다른 형용사를 떠올리지 못했다.

문 앞에는 아주 날카로워 보이는 갑사가 일렬로 서 있었는데, 표정이 엄숙하고 경건했다.

“본관 허칠안, 폐하께서 직접 임명하신 상백 사건의 수석 수사관으로, 왕비마마를 알현하여 드릴 말씀이 있으니, 속히 전해주시게.”

갑사 하나가 허칠안을 힐끗 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왕비마마께서는 아무도 만나지 않으시니 돌아가게.”

허칠안이 눈꼬리를 치켜들고 따지려던 참에, 갑사가 코웃음을 치며 덧붙였다.

“이는 폐하의 명령이기도 하네. 설사 장공주마마께서 왕비마마를 뵙고 싶다해도 왕비마마의 심기를 살펴야 하네. 일 크게 만들지 마시고 썩 꺼지시게.”

허칠안은 문득 모든 걸 깨달았다는 듯 ‘아’ 하고는 웃으며 말했다.

“알고 보니 폐하께서 하사하신 금패가 닭털이었군……. 이자가 폐하를 모독했다. 불경죄를 저질렀어!”

허칠안은 한 손으로 허리 뒤에 있는 칼자루를 누르며 섬뜩한 웃음을 지었다.

“본관이 이제 범인을 체포하려 하니 누구든 감히 방해하면 가차 없이 죽이겠다!”

쨍!

흑금장도가 반 촌 정도 칼집에서 나왔고, 기의 파동이 느껴졌다.

허칠안을 비웃던 시위는 자신이 잘못 말했다는 걸 알고는 안색이 창백해졌다.

시위대 우두머리는 입을 잘못 놀린 부하를 향해 눈을 부라리더니 허칠안을 향해 걸어왔다. 걸어오는 사이 갑옷이 절거덕절거덕 소리를 냈다.

“대인, 왕비마마께서는 저택에 계시지 않습니다.”

“어디 가신 거요?”

허칠안이 말 등에 앉아 그를 내립떠봤다.

“소직은 단지 문을 지키는 사람이온데, 왕비마마의 행적을 어찌 알겠습니까. 허나 마마께서는 정말로 저택에 계시지 않습니다. 대인 일행과 반 시진 정도 차이로 오늘 아침 막 성을 떠나셨습니다.”

시위대 우두머리가 사람 좋게 말하자, 허칠안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강경한 태도로 답했다.

“본관은 현재 범인을 체포해야 하오. 그대들이 만일 동료의 죄를 은폐한다는 판결을 받고 싶지 않으면, 이자의 체포를 도우시오.”

그는 비웃은 갑사를 가리켰다.

“대인!”

시위대 우두머리는 속이 바싹 타들어 갔다. 마음속으로는 화가 나 죽을 지경이었지만, 감히 화를 내지는 못하고 애원하며 말했다.

“왕비마마께서는 정말로 저택에 계시지 않습니다.”

당당한 친왕부의 시위대, 그들은 왕공 귀족이 와도 체면을 세워주지 않았다.

그러나 상대방이 손에 금패를 쥐고 있고, 부하의 약점을 잡았으니, 시위대 우두머리는 원만하게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허칠안은 그제야 믿는가 싶더니, 말머리를 돌려 저채미를 데리고 떠났다.

“우리 왕비마마께서는 좀 재미있으시네. 장공주마마도 볼 수 없다니.”

허칠안이 웃으면서 저채미를 떠보았다.

저채미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녀는 허칠안의 의중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채 고분고분하게 대답했다.

“왕비마마께서는 신분이 좀 특별하셔.”

“어떻길래?”

“이건 비밀인데.”

저채미는 덧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이 일에 대해선 알아보려고 하지 마. 너한테 좋을 게 없어.”

다 말하고 나자, 그녀는 정색하며 경고했다.

“나한테 뇌물로 먹을 걸 주지는 마.”

“왜요?”

“내가 참지 못할까 봐…….”

그녀는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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