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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111화 (111/712)

111화. 과거사

자리에 있던 황자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내비치며, 돌연 시선을 옮겨 허칠안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한때 세상에 널리 알려졌던 그 <면양정에서 양공을 송별하다-청주행>의 원작자가 눈앞에 있는 저자라고? 그 시는 운록서원 어느 서생의 사촌 형이 지었다고 알려졌건만, 방금 회경이 말하길 이 동라의 사촌 동생이 운록서원의 서생이라고 하니…….’

삼황자는 이 소문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었기에, 회경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곧장 알 수 있었다.

‘회경을 따르는 이 충견이 바로 <암향부동월황혼>을 쓴 시인이라니…….’

둘째 공주는 어여쁜 눈을 한순간도 깜박이지 않고 허칠안을 바라보았다. 이 동라가 조금 다르게 보였다.

허칠안은 깜짝 놀랐다. 자신이 명기 부향과 잠자리를 하는 행위조차도 장공주에게 빈틈없이 감시당하고 있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이내 빠르게 납득했다. 애당초 야경꾼이 자신을 미행했던 게 바로 장공주, 회경 공주가 지시한 일이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그와 관련된 정보도 장공주는 자연스레 알게 된다는 뜻이었다.

태자가 물었다.

“하지만 나는 교방사의 그자는 성이 양이고 이름이 ‘릉’인 장락현의 서생이라고 들었네.”

장공주가 대답하지 않았으므로, 허칠안은 스스로 해명할 수밖에 없었다.

“소직의 가명입니다.”

태자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삼황자가 캐물었다.

“방금 그 시 아주 좋았네. 취후불지천재수(*醉后不知天在水: 술에 취하면 하늘이 물속에 있다는 것도 모르네)……. 정취가 살아있어. 다음 구절을 들어보고 싶어 참을 수가 없네.”

황실 출신의 훌륭한 자손들은 최고의 교육을 받곤 했다. 둘째 공주가 그렇게 꾸미기만 좋아하고 독서를 좋아하지 않는다 한들, 어린 시절에는 몇 년간 성현(聖賢)의 지혜가 담긴 책을 읽어야만 했다.

문화적 소양이 밝고, 감상 수준이 나쁘지 않은 삼황자가 참견한 덕에 관심이 다시 시로 옮겨갔다. 허칠안의 신분을 알게 되자 도리어 모두의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다.

허칠안은 천천히 대답했다.

“취후불지천재수(*醉后不知天在水: 술에 취하면 하늘이 물속에 있다는 것도 모르네), 만선청몽압성하(*滿船淸夢壓星河: 조용한 꿈에 가득 찬 배가 은하수로 인도하네).”

둘째 공주는 나지막이 그 시구를 여러 번 낭독했다. 이 두 시구는 동요 속에만 존재하는 아름다운 장면을 그려냈다는 느낌을 받게 했다.

예를 들어 고요한 밤, 그녀가 예쁜 치마를 입고 작은 배의 뱃머리에 누워 있는 장면. 머리 위에는 수많은 별이 반짝반짝 빛나고, 수면에는 은하수가 비치고 있다.

작은 배는 호수를 둥둥 떠다니며 잔잔한 물결을 일으키고, 그녀는 평온하게 잠이 든다.

거기까지 상상해본 둘째 공주 임안의 마음이 미친 듯이 쿵쿵 뛰었다.

장공주의 눈빛이 반짝거리더니 무의식적으로 목덜미를 움직였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허칠안을 보고 싶어 하는 듯했으나, 꾹 참고 고고한 자태를 유지했다.

사방에는 기이한 적막이 흘렀다. 모든 황손들이 이 두 시구를 음미하고 또 음미했다.

둘째 공주와 다르게 황자들은, 속세에서 벗어나 기쁨과 만족함으로 가득한 기운을 어렴풋이 느꼈다.

분위기는 여유로웠고 하늘 아래의 자연과 맞닿아 아무런 근심 걱정이 없었다. 공문서 처리에서 해방됐고, 시끄러운 관현악기 소리에서도 벗어났으며, 숨 막히는 암투에서도 해방됐다. 꿈에서 깰 무렵 가슴속에는 약간의 서운함이 밀려올 지경이었다.

“좋은 시야, 좋은 시…….”

삼황자는 탁자를 치며 감정이 격앙된 모습을 보였다. 자신이 명작의 탄생을 함께 지켜봤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는 어떤 지식인도 거스를 수 없는 영예였다.

“이 시는 칠절(七絕)인가 아니면 칠률(七律)인가?”

허칠안과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칠황자가 물었다.

“없습니다. 이 두 구절 밖에…….”

“!!!”

모든 황자들은 어리둥절해하며, 복잡하고 이상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농담하지 마시게.”

삼황자가 분노하며 소리쳤다. 그리고는 다소 절박하게, 다소 걱정스럽다는 듯 덧붙였다.

“뒤는! 뒤 구절은!”

그의 그런 모습은 마치 연재가 중단되어 괴로움에 시달리다 미쳐버린 독자가, 드디어 작가를 직접 만날 기회가 생겨, 언제라도 터질 것 같은 감정을 억누르고 “제가 당신에게 마지막으로 기회를 드릴 테니, 어서 가서 글을 쓰세요!”라고 하는 것과 비슷했다.

“즉흥적으로 지은 시라 정말 없습니다…….”

허칠안은 조금 송구스러워졌다. 이 시는 9년 동안의 의무교육 교과과정에 등장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물론, 그는 문화인으로서 교과서 안의 시를 열심히 공부하지는 않았다. 평소에는 우수한 시작품을 망라하곤 했으나 다 기억하지는 못했고, 가장 알짜배기 몇 구절만 기억할 수 있었다.

지금 이 시가 바로 그 시였다.

“자네, 자네…….”

삼황자는 허칠안을 가리키며 분노에 차 말을 잇지 못했다.

다른 황자들은 차가운 시선으로 방관하고 있었으나, 절필한 놈에게 맞서는 삼황자를 은근히 지지했다.

장공주가 이때 몸을 일으켜 구원의 손길을 보냈다.

“허칠안, 본 공주를 보필해 산책을 가도록 하지.”

“어찌 이럴 수가…….”

두 사람의 떠나는 뒷모습을 바라보던 삼황자는 분노가 가시지 않아 탁자를 쳤다.

“안타깝구려.”

태자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 저 생각났어요.”

둘째 공주가 갑자기 소리치며 말했다.

“아직 그에게 상백 사건 조사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묻지 않았어요.”

‘그로구나!’

태자가 눈을 가늘게 떴다. 어쩐지 허칠안이라는 이름이 귀에 익다고 생각했는데, 둘째 공주가 일깨워준 덕에 그 인물에 대해 기억이 난 것이다.

* * *

장공주는 시위와 궁녀를 물러가게 한 후, 허칠안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호숫가를 걸었다.

허칠안은 직감적으로 반걸음쯤 뒤로 물러섰다.

“본 공주를 무슨 일로 찾은 것이냐?”

장공주는 잔잔한 호수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물었다. 얼음 조각에 부딪히는 듯한 질감과 부드러운 매력이 공존하는 목소리였다.

“소직이 사건을 조사하던 중 문제에 봉착했습니다. 현재 모든 단서가 끊긴 상황입니다.”

허칠안은 장공주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녀가 그다지 개의치 않는 걸 보자, 저도 모르게 말투가 훨씬 간절해져서, 초석광과 기관 멸구 사건에 대해 장공주에게 알렸다.

“이 내용들은 본 공주도 이미 알고 있네.”

장공주는 청초한 얼굴로, 아무런 표정 없이 호수의 풍경을 느긋하게 감상했다.

‘이미 알고 있었다고? 음, 장공주의 능력이라면 내가 조사해서 얻은 이 정보들을 알기란 결코 어렵지 않겠지.’

허칠안은 이를 악물고 내막을 좀 더 털어놓기로 했다.

“요족이 왜 영진산하의 사당을 폭발시켜야 할까요? 이것이 의문점이자 이 사건의 돌파구입니다.”

우선 초대 감정인지 검증해야 했고, 만약 초대 감정이라면, 요족과 결탁한 대상의 대략적인 범위를 확정할 수 있었다.

장공주는 호수에서 시선을 거두고, 아름다운 눈으로 허칠안을 바라보며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영진산하 사당 밑에는 무서운 강자나 물품이 봉인되어 있다. 그리고 이 비밀은 아바마마께서만 알고 계시지.”

“…….”

허칠안은 하마터면 표정 관리를 하지 못할 뻔했다.

‘장공주가 이마저도 알고 있다고?’

장공주는 이미 영진산하 사당 밑에 봉인된 물건이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다.

‘그렇다. 내 조사 권종만 봐도, 장공주의 총명함과 지혜로움으로는 이 점에 대해 추측해낼 수 있다. 이상할 거 없다.’

단지 허칠안은 장공주가 그와 이 일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얘기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뿐이다.

영진산하 사당의 비밀에 대해 알고 싶었지만, 원경제 한 사람만 알고 있었다.

“너는 아주 드문 인재다. 본 공주를 위해 일하고 싶으냐?”

장공주는 허칠안을 보고 퍽 감동적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그의 가슴이 떨리고 있다는 걸 알고는 가볍게 웃으며 스카웃 제의를 했다.

이게 바로 허칠안이 원하던 바였다. 가슴은 원했으나 감히 말하지 못하고 있었다. 기왕 장공주가 이렇게 제안해줬으니. 허칠안도 즉시 대답했다.

“소직, 공주마마께 목숨 바쳐 충성하겠나이다.”

이 수법은 허칠안도 잘 알고 있었다. 전생에 경찰서에서 근무할 때도 상사에게 이렇게 복종하곤 했으니 말이다.

‘물론, 업무적인 맹우(盟友)로 서로 이익을 주고받는 관계지, 황권의 개가 되겠다는 것이 아니야…….’

그가 마음속으로 한 마디 덧붙였다.

허칠안은 장공주의 EQ와 IQ를 믿었다. 비교적 떳떳한 관계를 유지하는 건 어렵지 않을 터였다.

장공주가 밝게 웃었고, 호수에 비치는 빛은 점차 어두워졌다.

“말해보거라. 뭘 조사해냈다고?”

그녀의 어조와 태도가 확 바뀌자, 남아있던 희미한 장벽이 사라진 듯했다.

허칠안은 잠시 생각하다가 사실대로 전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유는 이제 막 장공주와 ‘맹우’ 관계를 결성했기 때문에, 자신의 가치를 보여줘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장공주가 이 동생을 강하고 좋은 놈이라고 생각하게끔 말이다.

또한, 상백에 봉인된 물건이 뭔지 확실히 하려면 장공주의 도움이 절실했다. 게다가 장공주가 먼저 이 주제를 꺼내, 이 비밀은 원경제만 알고 있다고 아무런 거리낌 없이 알려주지 않았는가.

“소직의 조사에 따르면, 주적웅의 배후에는 이 모든 것을 조종한 검은손이 있으며, 그자는 요족과 결탁한 듯합니다.”

허칠안이 말했다.

장공주의 눈에 이상한 기운이 번뜩였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지?”

“태강현 조 현령이 오늘 아침 부아의 지하 감옥에서 사망했습니다. 저는 그자가 멸구를 당했다고 의심하고 있습니다.”

장공주는 눈을 떨구고 생각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허칠안은 계속해서 말했다.

“소직, 요족이 왜 상백을 폭발시켜야 했는지, 또 배후의 검은손은 왜 요족과 결탁해야만 했는지 줄곧 의혹을 갖고 있었습니다. 제가 사람을 보내 상백과 관련된 모든 공문서를 조사해 본 결과 아주 기이한 일을 발견했습니다. 그 시점은 바로 오백 년 전이었습니다!”

그는 여기까지 얘기한 후, 잠시 멈추고 장공주에게 놀랄 시간을 주었다.

하지만 그는 실망했다. 장공주가 잠시 양미간을 찌푸리더니 그 정보를 곧장 소화했기 때문이다.

‘신년이 한 말이 맞아……. 이 여인의 심계에는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골짜기가 있어.’

“오백 년 전 당시, 태자가 부주의로 호수에 떨어진 후 정신적 질환에 시달리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상백에서 익사한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허칠안은 말했다.

장공주는 문득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본 공주도 그런 과거사를 기억하네.”

허칠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해서 말했다.

“또한 오백 년 전, 무제가 조정을 다시 일으켜 악인을 숙청했는데, 그가 피하지 못한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초대 감정입니다!”

여기까지 들은 장공주의 꽃다운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허칠안은 장공주의 아름다운 무결점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연이어 질문했다.

“감정은 왜 꾀병을 부리는 걸까요? 폐하께서는 어찌 상백에 봉인된 물건에 대한 비밀을 공개하지 않을까요? 밑에서 오백 년 동안이나 억눌려 있었는데도 어떻게 아직까지도 죽지 않았을까요? 사천감 술사는 왜 초대 감정의 과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걸까요?”

‘이건 도대체 인성의 왜곡인가 아니면 도덕의 상실인가…….’

허칠안은 덧붙여서 말했다.

“물론 이건 소직의 추측일 뿐입니다. 굳이 오백 년 전의 조건에 부합하는 강자를 찾아야 한다면, 초대 감정밖에 없습니다.”

장공주는 몹시 놀란 듯 보였고, 한참 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바람이 불어와 호수에 주름이 일었다. 그녀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래서 자네가 본 공주를 찾아온 건…….”

“소직, 외부에서 찾을 수 없는 권종을 조사해 보고 싶습니다.”

허칠안이 말했다.

“소직이 상백에서 봉인된 진법을 발견했습니다. 진법이 설치된 돌기둥에는 불문이 새겨져 있었고요.”

“불문?”

장공주는 소매 안에 넣은 손을 무의식적으로 쥐었다 폈다 하며, 몇 초 동안 허칠안을 주시하다가는 시선을 돌리고 차분하게 말했다.

“좋다. 연회가 끝나면 본 공주가 너를 문연각(文淵閣)에 데려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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