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사교의 3가지 요소
옥졸이 몇 번 더 고함쳤으나, 조 현령은 여전히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허칠안의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문을 열게.”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옥졸이, 열쇠를 꺼내 문을 열고서 손을 뻗어 조 현령을 잡아끌었다.
“귀가 먹었나?”
조 현령의 몸이 축 늘어지자, 옥졸도 이상함을 감지하고 콧김을 확인해 보더니 이내 얼굴을 굳혔다.
“죽, 죽었습니다…….”
‘한발 늦었군…….’
허칠안은 속으로 탄식했다.
태강현령은 어젯밤에 붙잡혀 하옥됐다. 그가 오늘 아침에 소식을 듣고 바로 왔으나, 한발 늦어버린 것이다.
‘살인자는 부아 내부 사람이거나 조 현령의 동향을 계속 감시해왔던 자일 거다. 그렇지 않고서는 제때 사람을 죽여 멸구하기란 쉽지 않아…….’
허칠안은 조 현령의 눈꺼풀을 들추고, 입을 비틀어 열어 설태를 살펴본 후 조 현령의 죄수복을 벗겨 시체를 검안하였다.
‘약물 중독의 흔적도, 죽기 전에 몸부림친 흔적도 없네. 사후 반점이 막 형성된 지도 얼마 되지 않은 걸 보니, 사망 시간은 5시간을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사인은 잠시 보류해두지…….’
허칠안은 속으로 판단을 내린 후 말했다.
“두 사람은 남아서 시체를 지켜보고, 나머지는 나를 따라 부윤을 만나러 간다.”
‘범인이 부아에서 죽었으니 진한광 부윤 나리께서 뒤집어쓰게 생겼군.’
* * *
내당을 찾아온 허칠안은 진 부윤이 아직 자고 있다는 걸 알고는, 아역에게 전하라고 일렀다. 바깥에서 반 주향의 시간을 기다리니, 단정한 차림새의 진한광, 진 부윤이 보였다.
진 부윤은 평소와 다름없는 얼굴이었다. 전혀 방금 잠에서 깬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허 대인께서 어인 일로 본관을 찾으십니까?”
조회 시간은 묘시 초. 통상적으로 문무백관들은 인시에 오문에서 기다리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 새벽 네다섯 시 경이었다.
따라서 조회를 마친 후 관아에 돌아와 잠을 보충하는 건 대봉 관료 사회에서 관례적인 행동이었다.
“제가 태강현 조 현령을 심문하러 왔는데, 그가 오늘 아침에 옥사한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허칠안은 단도직입적으로 본론을 꺼냈다.
“뭣이라?!”
진 부윤이 찻잔을 두 손으로 받쳐 들었다.
“멸구 당했습니다.”
허칠안의 말에 진 부윤의 손이 떨려 뜨거운 차가 엎질러졌다. 그는 전혀 개의치 않고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멸구 당했다?”
‘진씨가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게 매우 티 나는군…….’
허칠안이 설명했다.
“대인께서는 요족이 어떻게 초석광을 발견했다고 생각하십니까? 대황산은 평범하기 그지없는 곳으로 근처의 탄광민조차도 초석광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는데, 요족이 어떻게 발견할 수 있었을까요?”
진 부윤이 놀라 몸을 일으켰다.
“대인의 말씀은…….”
허칠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태강현령과 관련이 있다 생각해 오늘 심문하러 온 것인데, 한발 늦었네요. 그가 이미 멸구 당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이 사건의 실마리가 또 끊긴 겁니다. 휴, 폐하께서는 보름 내에 진상을 밝혀내라고 명하셨는데 정말 너무 어렵습니다. 아, 사천감에서는 오늘 제게 환관을 보내시어 제때 사건의 진행 상황을 보고하라고 하셨습니다.”
진 부윤은 허칠안의 말을 듣는 내내 표정을 여러 번 바꾸다가, 읍하며 말했다.
“허 대인, 부아는 대인께 협조하길 원합니다. 부아의 삼방육부(三房六部) 모두 대인께서 지휘하셔도 됩니다.”
허칠안은 웃으며 대답했다.
“진 대인 참으로 후하십니다. 조 현령이 옥사한 것은 뜻밖의 사건이에요.”
한낱 사형수의 생사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만약 이 사형수가 상백 사건과 관련이 있다면? 더욱이 경찰 기간이 임박한 이 시점에.’
이렇게 큰 약점이 밖으로 드러난다면, 진 부윤은 강직될 것이다. 하지만 허칠안 입장에서는 사람이 이미 죽었으니, 진 부윤을 추궁해봤자 큰 의미가 없었다. 말하냐 말하지 않냐의 차이일 뿐이었다.
그리하여 막 총포두로 진급한 여청이 소리치며 들어왔을 때, 진 부윤은 엄숙하게 말했다.
“오늘부로 허 대인을 따라다니며 대기하고 있거라.”
‘허 대인을 따라다니며 대기하고 있으라니……. 부윤 대인께서 며칠 전, 그가 만약 사건을 해결할 수 있다면 이는 내각(內閣)에 들어갈 수 있는 한 번의 기회라고 말씀하셨는데 나더러 허칠안의 곁에 잠복해서 첩자가 되라는 건가?’
여청은 의아하게 생각했다.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허 대인을 성심껏 보좌하거라.”
진 부윤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진심인 건가? 그가 부윤 대인을 복종하게 만들었다고?’
여청은 허칠안을 몇 번 쳐다보다가 조용히 답했다.
“소직 명 받들겠나이다.”
* * *
조 현령의 검시 보고서는 아주 빠르게 나왔다.
결과는 자연사였다.
‘허점이 없을수록 구린 데가 있다는 걸 의미한다……. 우선 무사가 멸구했다는 사실은 배제할 수 있게 됐군.’
허칠안은 양미간을 찌푸리며 깊은 생각에 빠졌다.
폭력은 무사의 대명사였다. 조 현령을 죽이는 건 개미를 집는 것처럼 간단한 일이나 소리 소문 없이 어떠한 허점도 남기지 않고 죽이는 건 절대 불가능했다.
그래서 허칠안이 제일 먼저 생각한 것은 도문의 은신(陰神)이었다. 왜냐하면 고대에 도문의 은신은, 꿈꾸고 있는 사람의 목숨도 앗아갈 수 있다고 하여 저승사자라고도 불렸다.
‘우선 금련 도사 그 늙은이는 배제한다. 그가 만일 상백 사건과 어떠한 연결고리가 없다면, 인종밖에 없는데…….’
허칠안이 조급한 마음에 머리카락을 움켜쥐니, 헤어 라인이 조금씩 뒤로 밀리는 느낌이 들었다.
‘어떻게 인종을 끌어들이지? 인종은 내가 조사할 수 있는 단체인가? 인종 도수가 국사의 신분인 건 둘째치고, 지종 도수가 2품이니 인종 도수도 별 차이가 나지 않겠지? 두 다리를 꼬았다가 내가 끼어 죽게 생겼네!
그래, 음, 도문이 아닐 수도 있어. 다른 체계에 대해서는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많지 않으니, 지금 너무 섣부르게 결론을 내려서는 안 돼……. 자, 금패가 내게 있을 때 짬을 내어 각 체계의 기밀과 내막을 좀 자세히 살펴봐야겠어.’
허칠안은 여청이 자신을 몰래 관찰하고 있는 걸 발견했다.
“여 포두, 근래에 제대로 쉬지 못했나요?”
여청은 웃었다.
“공무가 바빠서요.”
그녀는 이미 진 부윤이 위협받는 이유에 대해 알고 있었다. 비록 허칠안이 거져먹기는 했으나, 이게 또 쉽게 거저먹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만약 그가 태강현령에게 문제가 생겼다는 걸 제때 알아차리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이 일은 고스란히 부윤 대인이 뒤집어썼을 터였다.
“여 포두는 여인이나 사내에게 뒤지지 않지요.”
허칠안이 치켜세우며 말했다.
그녀는 대략 25~30세 사이로, 아주 젊은 나이에 수도 공안청(公安廳) 수사대의 대대장이 된, 앞길이 창창한 젊은이였다.
허칠안의 전생에는 주변에 이렇게 앞날이 밝은 여사친이 없었으니, 여청이 특별하게 느껴질 따름이었다.
* * *
허칠안이 부아를 나설 때는, 그의 곁에 파견된 부아의 쾌수가 여섯이나 늘어나 있었다. 수련의 경지가 모두 비슷했는데, 둘은 연기경, 넷은 연정경이었다.
그는 말 등에 올라,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골똘히 생각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보름이라는 시간 동안, 단서를 쫓아 사건을 해결해야 한다. 급해서는 안 된다.’
도리어 위연의 태도가 허칠안을 곤혹스럽게 했다.
‘너무 냉정한 거 아닌가? 위연은 뭔가를 알고 있는 게 틀림없어. 원경제의 태도도 모호하고, 감정은 죽은 체를 하고……. 합리적이지 않아. 거물들 사이에 무슨 거래라도 있는 것은 아닐 테지. 초대 감정이 곤경에서 벗어나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야. 나는 그들이 침착하다고 해서 안심할 수 없어. 높은 자리에 계신 분들이 꼭 평범한 서민들의 생사를 신경 쓰는 건 아니니까.
안 되겠어. 초대 감정의 일에 대해 확실히 알아봐야겠다. 위연이 내가 그 일에 연루될까 봐 개입하는 걸 원치 않는 것 같기는 하지만, 간접적인 방법으로 나라를 구하면 되겠어. 이 일을 장공주에게 은밀하게 털어놓는 거야……. 폭로하는 게 아니라 힌트를 주는 거지.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힌트를 줘서 그녀 스스로 연상하고 알아차리게 해야겠어.’
여기까지 생각이 이른 허칠안이 더는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너희들 우선 관아에 가서 나를 기다리거라. 궁에 다녀오겠다.”
모든 이들이 미심쩍다는 듯 쳐다보자, 허칠안이 설명했다.
“장공주마마를 뵈러 가려 하네.”
‘장공주마마’라는 단어에 여청의 가슴이 쿵쿵 뛰었다.
‘장공주마마를 만날 수 있다고? 허칠안이 사천감의 술사와 관계가 좋은 것뿐만이 아니라 장공주마마와도 친분이 있다니…….’
다른 사람들 모두 의심하고 놀랐지만, 이옥춘은 차분했다. 그는 알고 있었다. 허칠안이 야경꾼 관아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도 전부 장공주의 추천 덕이었으니 말이다.
허칠안은 사람들에게 작별 인사를 고하고 말을 채찍질하여 황성으로 향했다.
* * *
장공주는 진작에 성년이 되어 황성에 자신의 관저가 있었다. 허칠안은 장공주부, 즉 회경부에 도착해 수위에게 묻고 나서야, 장공주가 평소에는 궁성에 머무르고, 한가해지기 전에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또 황성으로 내달렸다.
황성은 내성의 축소판 같았다. 성안에는 종묘, 관아, 내정(內廷) 복무기관, 창고 그리고 성방(城防) 건축물 및 식물원과 동물원이 갖춰져 있었다.
외성에는 평민 백성이 거주했고, 내성에는 지위가 높은 고관(高官)들이 거주했다. 그리고 황성에는 왕과 귀족들, 대신들이 살고 있었기에, 금패가 없다면 허칠안은 들어오지도 못했을 터였다.
궁성으로 말할 것 같으면 황궁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황제의 집으로, 황후, 비빈들과 황제의 자식들이 살고 있었다. 물론, 성년이 된 황자와 황녀는 필히 궁성에서 나와 황성으로 옮겨가야 했다.
단지 원경제가 요 몇 년간 수도(修道)에 정진하느라 황후 및 비빈들에게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아 이 방면의 규율이 해이해진 터였다.
현재 성년이 된 수많은 황자와 황녀들은 여전히 궁성에 살고 있었다.
궁성은 설령 원경제가 하사한 금패가 있다고 해도 허칠안이 들어갈 수 없었다. 그래서 그가 마침 수위에게 부탁해 말을 전하려던 차에 갑자기 차륜이 덜커덩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머리를 내밀어 궁성 안을 바라보니, 위풍당당한 마차 행렬이 보였다.
황실 전용 금사남목과 노란 비단으로 만든 덮개는 금과 옥석이 박혀 화려하고 기품이 넘쳤다.
‘천편일률적인 최고급 스포츠카구먼…….’
허칠안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의 쇄은자를 받은 수위가 상황을 살피더니, 대뜸 웃기 시작했다.
“두 번째 마차에 계신 분이 장공주마마일 것이야. 마차의 노란 비단에 수놓인 ‘경(庚)’이란 글자를 보시게. 보아하니 말을 전할 필요가 없겠군.”
수위는 쇄은자를 허칠안에게 돌려주었다.
“괜찮습니다, 괜찮습니다…….”
허칠안이 수위의 손을 물렸다.
“이후 형님에게 부탁할 때가 또 있을 겁니다.”
그는 장공주의 줄을 탈 계획이었다. 이 두꺼운 다리를 껴안고 있으면, 추후에 시도 때도 없이 달려와 ‘정을 나눌’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때문에 사전에 수위와 관계를 잘 쌓아놓을 필요가 있었다.
옛말에 ‘담배는 남자의 입을 열게 할 수 있고, 돈은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으며, 같이 먹는 해산물은 당신과 그가 동지가 되게 만든다’라는 말이 있지 않던가.
‘사교의 3요소!’
수위는 허칠안을 아주 좋게 보았는지 넌지시 일러주었다.
“첫 번째 마차에는 태자 전하께서 계시고, 두 번째 마차에는 둘째 황자, 네 번째 마차에는 둘째 공주께서 계시네……. 짐작하건대 어디선가 연회를 베풀 모양이네. 자네가 만약 참석할 수 있게 된다면, 잘 보이도록 노력하시게. 단번에 출세하는 건 당연지사일 테니.”
“장공주마마, 소직 허칠안 뵙기를 청하옵니다!”
허칠안이 큰 소리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