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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108화 (108/712)

108화. 멸구(滅口)

그러나 위연은 찻잔을 집더니, 그 위에 새겨진 청화(靑花)를 주시하며 뜬금없이 화제를 돌렸다.

“요즘 단전에 창만통이 느껴지나?”

허칠안은 잠시 머뭇거리며, 위연이 어떻게 알았을까 속으로 생각했다.

‘그동안 연기를 토납하다 보니, 늘 단전이 부풀어 견디기 힘들고, 배에서는 불이 타고 있는 것 같아 좀 배출하고 싶었지. 후일에 부향 낭자에게 도움을 청하러 가려 했지만 시간이 안 났던 거고.’

“맞습니다.”

위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는 자네가 이미 연기경에 이르렀다는 걸 의미하네. 후에 이 창만통은 중단전으로 밀려온 다음, 상단전으로 갈 것일세. 그때는 연신경에 들어설 수 있다는 것이지. 내가 학문은 그럭저럭 괜찮은데, 무공 연마에는 소질이 없지. 그래도 경험이 좀 쌓여 한두 가지 정도는 지도할 수 있다네.

자네의 창만통이 중단전으로 옮겨가면, 내가 사람을 시켜 자네에게 관상법을 전수하겠네. 이렇게 되면 연신경에 들어서는 속도를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야. 연신경에 이르면 심신을 다시 단련하여 자신의 육체에 대해 제 손금 보듯 훤히 꿰고 있어야 해……. 이것들 모두 나중 일이기는 하지.”

‘더할 나위 없이 똑똑한 사람이, 무공 연마에는 별다른 소질이 없다? 허허, 마음이 좀 편해지는군…….’

허칠안이 감동받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위 공의 보살핌에 감사드립니다. 소직, 나라를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죽음도 마다하지 않을 것입니다.”

위연은 픽 웃으며 답했다.

“자네가 덜렁이는 아닌데, 어떨 때는 덜렁이보다 더 무모한 것 같네.”

‘이건 무모한 게 아니라 이 시대의 원칙이자 신앙이다.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좀 공부하셔야겠어요…….’

허칠안은 속으로 빈정대는 동시에, 이 역시 자신과 이 시대의 간극이라는 생각이 들어 좀 슬펐다.

“한 가지 더, 자네가 알아야 할 일이 있네. 폐하께서 오늘 성 봉쇄령 해제를 명하셨네.”

위연은 허칠안을 바라보며 기이한 미소를 지었다. 마치 비웃는 것 같기도 하고, 조롱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야유하는 것 같기도 했다.

허칠안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건 불합리해. 이건 불가능하다고!’

원경제의 태도에는 문제가 있었다. 초대 감정이 곤경에서 벗어나면 가장 먼저 공격받는 건 바로 당대 감정과 황실일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정상적인 조치는 적의 퇴로를 차단하고 쳐부숴 영원히 후환을 없애는 거 아냐? 성문을 여는 게 무슨 의도지? 초대 감정에게 호의를 표하고 모두 평화롭게 공존하자는 건가?’

이는 불가능했다. 원경제가 비록 황제에 적격한 인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얼간이는 아니었다. 게다가 당대 감정도 원경제를 배반하고 혁명을 일으키는 것에 동의하지는 않을 것이다.

‘맞다. 감정 그 늙은이의 태도도 이상해. 스승님께서 관을 열고 깨어나셨으니, 당신이 수하의 술사들을 데리고 가서 한 발로 관뚜껑을 밟고서, 스승을 도와 이 늙은이의 오래된 관짝을 단단히 눌러놓거라, 하고 외쳐야 하는 거 아니냐고. 결과적으로는 꾀병이라니!

이 속에 더 깊은 차원의 목적이 있는 건 아니겠지? 예를 들어 초대 감정이 오백 년 동안 봉인되어 있었기에 정점을 회복하지 못하여 모처에 숨어 요양하고 있다든지. 적을 유인하기 위해 고의로 성문을 열고, 마침 이 기회를 틈타 전쟁터를 경성 밖으로 옮기려는 건가?’

“꼬마 친구, 자네 궁금한 점이 아주 많지?”

호기루를 떠나려던 허칠안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습니다.”

* * *

허칠안은 일꾼들을 모집하여 세 가지 지령을 하달했다. 첫 번째 지령은 사천감의 저채미에게, 기운을 숨기는 법기의 소재 파악을 담당하라는 것이었다.

두 번째 지령은 민산과 양봉 두 은라에게 화약의 생산 및 사용 기록에 대한 조사를 계속해서 담당하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세 번째 지령은 부아로 가서 태강현령을 심문하라는 것이었다.

앞의 두 지령은 그렇다 치는데, 세 번째 지령에 대해서는 모두가 이해하지 못했다.

허칠안이 설명했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소? 요족이 대황산에 초석광이 있는지 어떻게 알았을까?”

이 말을 들은 모든 자들이 멍해졌다.

“그렇지 않소? 혹시 요족이 탄광민들 사이에 잠복하여 광물을 캔 건 아닐까?”

허칠안은 냉소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당연히 누군가가 요족과 공모했을 것이오. 대황산은 태강현 관내에 있으니 반드시 현령한테 문제가 있을 테고.”

세 명의 은라와 열댓 명의 동라들은 절로 고개가 수그러졌다.

‘허 동라는 용의주도하고 경험이 풍부하다. 아무런 까닭 없이 금패를 하사받은 것이 아니다.’

* * *

세 무리가 관아 앞에서 갈라져 제각기 길을 떠났고, 각자 임무를 완수하였다.

“대장, 폐하께서는 왜 사천감의 술사를 불러들이지 않으시고 조당의 대신들에게 하나하나 질문하신 겁니까?”

“허 대인이 방금 채미 소저에게 망기술을 차단하는 법기에 대해 조사해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옥춘은 원래는 부하였으나, 현재는 자신의 상사가 된 그 부하를 바라보며 덧붙였다.

“술사도 사람입니다.”

‘사람이니 매수당했을 가능성도 있다. 평범하고 작은 사건이면 상관없으나 모든 대신들과 관련되니 술사의 입에만 의지할 수는 없겠지. 원경제는 의심도 많고 권세욕도 강하니…….’

허칠안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옆에 있던 송정풍은 참견할 기회를 잡고는 말했다.

“칠안, 사천감의 저채미 소저와 잘 아시죠?”

허칠안은 고개를 끄덕였고, 송정풍은 어휘를 선택한 후 말했다.

“제 벗 중에 요즘 몸이 좀 허한 자가 있는데……. 그에게 보신하고 양기를 북돋아 주는 약을 좀 구해주고 싶습니다.”

‘지 얘기구먼…….’

허칠안은 까발리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

“자네 벗에게 러시안룰렛 좀 적당히 하라고 전해주시오.”

이옥춘이 양미간을 찌푸리며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러, 뭐?”

허칠안, 주광효, 송정풍은 서로를 쳐다보며 한바탕 웃었다.

* * *

운록서원.

원장 조수는 장장 두 시간의 수업을 마치고 모든 서생들에게 분발하라고 훈계한 후 가볍게 소매를 흔들었다.

“왔던 곳으로 오고, 왔던 곳으로 돌아가라.”

그리고는 돌연히 사라졌다.

서생들은 늘 보는 모습이라 진작에 습관이 되어 더는 신기해하지 않았고, 최근 경성에서 발생한 큰 사건에 대해 토론하기 시작했다.

“상백이 어찌 폭발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 대봉 개국황제께서 득도한 곳이 악한 무리에 의해 파괴되다니. 역시나 모두 폐물들일세. 만일 우리 운록서원에서 경성을 지켰더라면, 이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네.”

“절대로 용납할 수 없지.”

서생들의 분노는 하늘을 찌를 기세였다. 그들은 습관적으로 하늘과 땅에 불만을 토로하며, 모든 비 지식인들을 업신여겼다.

허신년이 서책을 다 챙겨 나가려던 참에, 뒤에서 한 서생이 소리쳤다.

“신년, 조금 있다가 산으로 봄나들이 감세.”

‘엄동설한에 봄나들이라니 얼어 죽을 일 있나?’

허신년은 고개를 젓고는, 뒤돌아보며 충고했다.

“흑발부지근학조, 백수방회독서지(*黑發不知勤學早, 白首方悔讀書遲: 젊을 때 분발하여 학식을 쌓지 않으면, 나이 들어 열심히 공부하지 않은 것에 후회함).”

그가 말을 마치고 떠나려는데, 뒤에서 괴상한 목소리가 들렸다.

“허신년은 현재 수신경에 이르렀네. 진작에 우리와는 달랐지. 아마 더는 우리 같은 사람들과 어울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걸 테지.”

허신년이 뒤를 돌아보니, 말한 이가 주퇴지임을 알 수 있었다. 청주에 가는 자양거사를 배웅하던 그때, 본래는 이자가 자양거사의 옥패를 받았어야 하는 거라 했다.

‘어찌하다가 신년에게 말려들게 되었지만.’

그리고 이자는, 신년과 관계가 좋지 않아 몇 년 전에 서로 욕지거리를 했었더랬다.

허신년이 냉소를 머금고 말했다.

“백주대낮에 남에게 누명 씌우지 마시게. 내가 언제 자네와 어울린 적이 있다는 말인가?”

주퇴지는 발끈했다.

“허신년, 8품이 되었다고 해서 안하무인으로 행동해도 된다고 착각하지 마시게. 꼴랑 한 걸음 앞서가는 것뿐이지 않나.”

허신년이 수신경에 이르러 진급을 한 것에 대해, 서원 서생들은 부러워하면서도 질투하고 있었다.

허신년이 말했다.

“나는 아주 쉽게 수신경에 이른 것이 아닐세. 내가 교만하게 굴었나? 며칠 전에는 장공주마마를 찾아뵈었는데, 공주마마께서 나를 예뻐해 주시더군. 내가 자랑했나? 잠시 뒤에는 스승님께 가르침을 청하러 가서 수련을 공고히 하고, 7품경의 신이(神異)함에 대해 새겨들을 것이네. 내가 거만한 건가?”

그는 주퇴지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갑자기 코웃음을 쳤다.

“뭘 웃어?”

주퇴지도 화가 난 눈으로 쏘아보자, 허신년이 경멸하며 말했다.

“어떤 자들의 얼굴은, 마치 억울한 사건을 당한 것처럼 추악하지.”

‘…….’

다른 서생들은 무례함을 느꼈다.

주퇴지는 그 자리에서 폭발하여 허신년에게 돌진해 결투를 벌이려 했으나 동문들이 한사코 저지했다.

“퇴지, 그와 논쟁할 필요가 뭐가 있는가.”

“허신년 저놈의 주둥아리는, 무사에게 저항하는 한 자루 칼이라 생각하고, 그와 언쟁하지 말자고.”

“……충동적으로 굴지 마시게. 입심이든 무예든 자네는 그의 적수가 되지 못하네.”

허신년은 거들먹거리며 운록서원을 나섰다.

‘이런 인간들은 한동안 상대해주지 않으면, 여기저기서 날뛰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법이지.’

참고로 싸움으로 말할 것 같으면, 허신년은 평생을 남에게 져본 적이 없었다.

* * *

경조부는 경성 주변의 15개 현을 관리했다.

태강현령이 부아의 지하 감옥에 수감되어 있었다.

허칠안은 사람들을 이끌고 부아에 들어가 곧장 소윤당(少尹堂)으로 달려갔으나 소윤은 자리에 없었다. 당내에 남아 지키고 있던 주사가 양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여러 대인들께서 어인 일이십니까?”

송정풍이 답했다.

“부정을 저지른 태강현 조 현령을 심문하러 왔네.”

주사가 또 물었다.

“부윤 대인의 친서가 있으십니까?”

송정풍은 고개를 가로저었고, 주사는 바로 무례하게 굴었다.

“돌아가시죠.”

‘친서도 없는데 범인을 빼내고 싶다니, 야경꾼들은 너무 오만방자한 것 아닌가. 바깥에서는 너희에게 3할을 양보해야 하겠으나 여기는 어쨌거나 부아다. 심문하겠다면 심문할 수 있는 곳인가?’

“이 무례한 놈을 봤나!”

때마침 돌아온 소윤이 대화를 듣고는 얼굴색이 약간 변하면서 총총걸음으로 왔다 갔다 하더니, 면전에 대고 한 차례 꾸짖었다.

이후 그는 허칠안과 그 일행을 지하 감옥으로 데리고 가라고 명했다.

“소윤 대인…….”

주사는 좀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이건 규율 위반입니다.”

“허튼소리, 목숨도 잃을 마당에 이런 것들을 신경 써서 뭐 하겠나.”

“대인,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자가 허칠안일세. 형부 문 앞 저잣거리에서 사람을 죽인 허칠안. 미친놈이야. 자네도 그자에게 매장당하고 싶나?”

“……목숨을 구해주신 대인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 * *

부아의 지하 감옥에는 허칠안도 머물렀던 적이 있었기에, 이곳의 걸서(傑瑞)와 소강(小强)과는 약간의 친분이 있었다.

옥졸의 안내에 따라 그는 조 현령이 수감되어 있는 지하 감옥에 도착했다.

“일어나거라. 대인께서 물으실 것이 있다.”

옥졸이 몽둥이로 철장을 쳤다.

낡은 멍석 위에 죄수복을 입은 조 현령은 모든 이들을 등지고 옆으로 누워 꿈쩍하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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