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화. 오백 년 전의 비밀 (2)
[삼: 한 가지 까먹은 것이 있네. 상백 밑의 봉인에 문자들이 새겨져 있는데, 아주 재밌더군. 자네들에게도 공유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구먼. 음, 이건 무료일세.]
그는 “여러분, 이게 무슨 글자인지 아십니까?” 식의 질문은 하지 않았다. 그건 너무 어리석은 짓이었기 때문이다.
만일 이 글자가 단순히 고대의 문자라면, 그의 문화 수준이 낮다고 까발리게 되는 꼴이 아니던가. 운록서원의 서생이라는 타이틀도 달 수 없게 될 터였다.
그리하여 허칠안은 옥석경 거울에 ‘구불구불한 두 개의 글자’라고 적었다.
[삼: 구불구불한 두 개의 글자였네.]
[구: 이건 불문이야.]
‘불문?’
허칠안은 어리둥절했다.
[오: 불문이 어떻게 상백의 봉인된 법진(法陣)에 나타날 수가 있지?]
‘단체방에 지능이 낮은 구성원이 있는데 그래도 좋은가……?’
허칠안은 웃었고, 조용히 기다리던 어느 형님이 분석을 내놓았다.
[사: 이치대로라면 안 되는 일이네. 황실에서 이렇게 은밀한 일에 불문의 사람들이 개입하게 했을 리 없어.]
다른 자들도 연이어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참이 지나도 얘기를 꺼내는 사람 없이, 각자 저마다 추측하고 있었다.
허칠안이 물었다.
[삼: 근래에 육호가 발언하는 걸 본 적이 없구먼.]
[구: 육호한테 무슨 일이 생긴 것 같네. 동성의 양생당을 떠난 지 이미 수일이 흘렀어. 빈도가 책임지고 그를 찾을 것이네.]
‘이 빡빡머리도 모자란가? 어째 맨날 일이 생겨…….’
허칠안이 비아냥거렸다. 일 주향의 시간을 더 기다린 후에야, 그는 구성원들이 모두 접속을 끊었다는 걸 알았다.
‘나갔으니 하는 말이다. 에라이, 이 교양 없는 놈들아!’
등잔불을 불어 끈 허칠안은 침상에 누웠다. 베개 밑에는 옥석경을 둔 후, 칠흑 같은 천장을 바라보며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만약 상백 밑에 봉인된 것이 전 황실의 강자의 것이라면, 일이 성가셔진다. 이 은밀한 비밀을 아는 나는 틀림없이 참수될 거야……. 아니지. 만약 상대가 떳떳하게 소란을 피우고, 신분을 공표한다면, 내가 도리어 원경제에게 멸구 당할까 두려워할 필요는 없어.
위연이 말했잖아. 봉인된 물건을 규명하는 임무는 다른 자들이 수행하니까 내가 개입할 필요 없다고. 내 임무는 상백 사건의 첩자를 찾아내는 걸 거야……. 하지만 주 백호가 도망쳐서 단서가 끊겼으니 이호에게 희망을 걸 수밖에 없어. 음, 아니, 아니야.’
어둠 속에서 허칠안의 눈이 갑자기 번뜩 떠졌다. 그는 한 가지를 놓치고 있었다.
낮에 의사당에서 여청과 사건 경위에 대해 토론했을 때 도달한 결론은, 아홉 명의 실종자가 모든 사람을 감쪽같이 속여 화약을 영진산하 사당으로 몰래 운반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또한, 주 백호는 금오위 소속, 금오위는 경비만 책임지지 제사 대전을 책임지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 그는 근본적으로 영진산하 사당에 진입할 기회가 없었다는 점이다. 금오위의 주 백호는 배후의 주모자가 아니고, 사건의 일환으로 화약을 궁으로 보내는 데 일조한 것이었다. 영진산하 사당에 화약을 숨긴 건 다른 자였다.
‘그의 배후에는 더 높은 단계의 검은손이 있다. 배후의 검은손과 요족이 손을 잡고 상백 사건을 주도하여 영진산하 사당에 봉인된 물건을 빼낸 거야. 그리고 나의 진정한 임무는 이 검은손을 잡는 것!’
허칠안은 몸을 돌려 앉아, 주먹을 불끈 쥐었다.
* * *
대봉 경성에는 134개의 크고 작은 관아가 있다. 편제되지 않은 하급 관리들과 군사 체계의 하급 관리를 제외하고도, 관밥을 먹는 관원만도 많게는 만 명에 달한다.
이 중에서도 조례에 참석할 수 있는 건 1/10밖에 되지 않으며, 금란전(金鑾殿)에 출입하여 황제와 직접 대화할 수 있는 관원, 훈귀(*勳貴: 공로가 있는 귀족), 종친은 기껏 해봤자 백 명이 좀 넘는다.
인시(寅時)에 오문(午門) 밖에서 기다리던 문무백관들이 삼삼오오 한곳에 모여 집안의 자질구레한 일에 대해 떠드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 웃음 속에는 칼을 감추고 있었다.
“요즘 폐하께서 점점 더 부지런히 정사를 돌보시는 것 같군.”
“경찰 기간이 곧 다가오고 있지 않은가.”
“작년 경찰 기간에는 이리 부지런하시지는 않았는데.”
“당연히 상백 사건 때문이겠지. 아이고, 참 다사다난하네. 오늘은 폐하께서 역정을 내실 게 뻔하지 않나! 자네들 불똥 튀지 않게 조심하라고.”
“본관은 일개 문신이지 않던가? 우리 모두 상백 사건과는 관련이 없단 말이지.”
“아, 그럼 누구와 관련이 있단 말인가?”
관원들이 서로 쳐다보며 웃었다.
당연히 경성 오위의 통솔자와 관련이 있었다.
‘또한 경성과 황실의 안위를 책임지는 야경꾼과도 관련이 있고말고.’
물론, 야경꾼 관아의 수령인 위연, 위청의와도 연관되어 있었다.
오문 앞, 청의 한 벌을 걸치고 있는 위연은 주변의 문무백관들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고 홀로 외로이 서 있었다.
위연은 아주 특별한 사람이었다. 현 조정에서, 그보다 더 큰 권력을 행사하는 관리는 없었다. 황제를 곁에서 모시는 대태감도 쥐고 있는 권력이 그리 크지 않았다.
하지만 위연은 유독 남달랐다. 그는 아경꾼 관아의 수령이자 도찰원의 도어사(都禦史)였다. 이 두 관아 모두 백관을 감찰할 수 있는 권력을 갖고 있는 것이었다.
원경제의 뜻은 아주 명백했다.
‘위연은 내 칼이다. 너희 중 누구라도 말을 듣지 않는다면, 그자의 목에 칼이 꽂힐 것이다.’
위연은 백관을 견제하고 균형을 잡기 위해 원경제가 내세우는 칼이자, 총대를 메는 역할이었다.
문무백관이 감히 황제를 적대시할 수는 없겠지만, 위연에게는 불만을 토로할 수 있었다.
현재, 영진산하 사당이 파괴되지 않았는가. 정사를 게을리한 지 오래인 원경제가 오늘은 가슴 속에 가득 찬 분노를 터뜨리려 조회를 연 의도는 뻔했다.
위연이 가장 먼저 공격을 받을 거라는 건 자명한 일이었다.
‘문무백관들은 기뻐하며 관망만 할 테지.’
* * *
묘시 초(初), 묵직한 종소리가 칠흑 같은 밤하늘에 메아리쳤다. 밤하늘은 아득하고 적막해 보였다.
천천히 열린 동문으로부터 문무백관들이 들어왔고, 서문에서는 종실 왕친들이 들어왔다.
원경제는 높은 곳에 위치한 용평상(龍椅)에 앉아 있었다. 그는 문무(文武)가 갈린 채 오문을 통해 질서 정연하게 들어오는 수백 명의 관원들을 무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백여 명의 관원, 훈귀, 종실이 금란전에 들어왔다.
답신(奏对)을 마친 후, 형부의 급사중 하나가 성큼성큼 나아가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난밤, 도둑 하나가 상백에 침입하여 영진산하 사당을 폭발시켰습니다. 실로 저희 대봉의 수치입니다. 위연은 야경꾼 수령으로서 황성의 보위에 미흡했습니다. 이자를 참수하시어 민중의 분노를 가라앉히시길 소신, 폐하께 청하옵니다.”
“소신 재청하나이다!”
“소신 재청하나이다!”
급사중 무리 중 선동자들이 여럿 튀어나와, 원경제에게 위연의 목을 베어달라고 요구했다.
조당에서의 정치 싸움과 채시구(*菜市口: 청나라 때 야채시장)에서 장을 보는 건 그 성격이 비슷했는데, 좀 과장해서 얘기하자면 ‘참수해라, 재산을 몰수해라’ 하기 일쑤였다. 일이 크든 작든 상관없이 목을 베는 게 옳다는 것이다.
황제가 만약 동의하지 않는다면 흥정에 들어갈 터였다. 참수에서 유배로, 유배에서 파면으로.
어쨌든 파면을 입에 올릴 수는 없으니 황제에게 흥정할 여지를 주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황제가 얼핏 보기에는 ‘이 어린놈들이 내게 흥정할 기회도 주지 않는다?’라고 여길 것이며, 그렇게 된다면 무죄였다.
그러나 백관들의 예상과 달리 원경제는 위연을 겨냥한 탄핵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오히려 위연에게 포상을 내렸다.
백관들은 이해할 수 없는 처사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고, 서로 속닥거리기 시작했다.
“정숙하시오!”
원경제 곁에서 시중을 드는 대태감이, 채찍을 후려쳐 날카로운 소리로 백관들에게 경고했다.
이 일은 이렇게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위연을 겨냥한 탄핵은 결코 그치지 않았다. 다만, 대상이 바뀌었을 뿐이다.
형부의 또 다른 관원이 성큼성큼 나와 말했다.
“야경꾼 허칠안이 형부 관아 앞에서 공공연하게 수위를 살해하고, 황권을 경시하였습니다. 이에 소신, 그 반역자를 엄하게 다스려 온 집안의 재산을 몰수하고 참형에 처할 것을 폐하께 간청하는 바입니다.”
분명 자신이 탄핵당할 때는 조금의 동요도 없이 침착하게 있던 위연이, 눈을 가늘게 뜨고는 몇 발자국 앞으로 나왔다.
“폐하, 형부에서 시위에게 야경꾼의 사건 처리를 방해하라고 사주한 걸로 아옵니다. 무슨 속내인지 헤아리기 참으로 어렵습니다. 소신 형부 손 상서와 악당들이 결탁하여 상백을 폭발시킨 것이 아닌가 의심스럽습니다. 폐하께 청합니다. 그들을 파면하고 감옥에 가두어 직접 심문하게 해주십시오.”
도찰원의 어사(禦史)들이 잇달아 동의를 표했고 형부에서는 반발했다.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폐하, 형부는 문제가 많습니다. 소신들도 재청을 드리옵니다! 형부의 모든 관원들을 파직하고 조사한 뒤 처벌하여 주시옵소서!”
양측은 즉시 공방전을 펼치기 시작했다. 다른 당파의 관원들이 이따금 거들며 부채질했고, 조당에서는 각 파벌이 치열한 논쟁에 돌입했다.
당조 재상, 육부 상서, 위연 등 몇몇 대신들은 눈을 감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원경제는 조금도 노하지 않고, 관원들이 얼추 다 싸운 것 같이 보이자, 그제서야 대태감에게 큰소리로 호통쳤다. 금란전은 다시 조용해졌다.
“동라 허칠안은 본래 죄를 지은 몸으로 일 처리가 다소 과격한 면이 있으나, 서로 방해할 것이 아니라 사건 처리를 위해 협력해야 한다. 만약 다음번에도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짐이 가차 없이 엄벌에 처할 것이다.”
원경제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눈을 뜬 위연은 이상한 기색을 감지했다.
허칠안이 무사하리라 예상하기는 했지만, 원경제가 직접 그 동라의 편을 들어줄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원경제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백관들을 둘러보며 계속해서 말했다.
“오늘부터 성문의 봉쇄령을 해제한다. 다만, 6품 이상의 조정 관리들은 경성을 벗어나서는 안 될 것이다.”
“퇴청!”
* * *
묘시 초, 허칠안은 제시간에 일어나 씻고 옷을 입은 뒤, 숙부의 집에 아침밥을 먹으러 갔다.
예전에 장락현아에서 쾌수직에 있을 때, 그는 묘시 초에 관아에 도착해 점호를 해야 했다. 지금으로 치면 출근 도장을 찍는 것과 비슷한 일이었다.
야경꾼 관아에서는 동라 허칠안이 집을 살 돈이 없는 가난뱅이임을 고려해 점호 시각을 묘시 초에서 묘시 삼각(三刻)으로 변경했다.
그에게 한 시간 반이라는 출근 시간을 준 것이다.
‘이 점을 보면 야경꾼 관아가 그래도 상당히 깨어있는 조직인 것 같기도 하고.’
겨울이 되니 아침 기온이 낮아져, 몇 시간을 따뜻한 이불 속에 파묻혀 있기 마련이었다. 아리따운 숙모도 침상에 꼭 붙어 일어나지 않았고, 어여쁜 여동생도 이불 속에서 뒹굴뒹굴하고 있었다.
“네가 가서 큰 소리로 깨우거라. 어릴 때 버릇 들면 다 커서도 고치기 어렵잖니.”
숙부가 말했다.
허칠안은 혹여 숙부가, 시끌벅적하지 않은 식사 자리가 싫어서 그런 건 아닌가 의심했다. 왜냐하면 허신년이 묘시가 되기도 전에 운록서원으로 돌아갔기 때문이었다.
오늘 아침에 운록서원 원장의 수업이 있어, 묘시 초에 성을 나가야만 한다고 했다.
이렇게 보니 식탁에서 밥을 먹는 건 숙부 허평지와 허칠안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