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화. 오백 년 전의 비밀 (1)
[구: 이는 확실히 세상을 뒤흔들 만한 정보일세.]
[삼: 도사님, 고신이 깊은 잠에 빠진 원인이 봉인되어 그런 것입니까?]
허칠안은 고신의 정보에 대해 에둘러 물었다.
[구: 모르지. 고신이 존재했던 시대는 아주 까마득하네. 고신은 인류가 문자를 사용하는 법을 아직 배우기 전부터 존재했었지. 오호에게 한번 물어보시게. 하지만, 고신이 회생한 이 일 자체만으로도, 자네가 얘기한 상백 사건의 가치를 뛰어넘을 것 같네.]
‘내 상백 사건의 가치를 뛰어넘는다고?’
허칠안은 속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오: 하하, 삼호. 자네가 고신의 다른 정보에 대해 알고 싶다면, 나와의 거래를 선택해도 되네.]
[삼: 자네는 무엇을 원하는가?]
[오: 내 오라버니가 아직 장가를 들지 못했네. 듣자 하니 대봉의 진북왕비가 세간의 제일 미인이라고 하던데, 진북왕비를 내 새언니로 삼고 싶네.]
‘꿈도 크다……. 나한테 이런 재주가 있다면 내가 독차지했겠지. 뭐하러 미인을 네 오라버니에게 양보하겠니……?’
허칠안이 대답했다.
[삼: 왕비 한 명으로는 부족하지. 장공주 역시 절세 미인이고, 또 우리 대봉의 국사까지! 내가 그녀들을 한 데 모아 자네에게 보내주겠네.]
[오: 좋지, 좋지!]
[일: 만약 이렇게 쓸데없는 소리나 할 거면, 나는 먼저 쉬러 가겠네. 그러니 둘 다 그 입 다물고 말을 삼가시길 청하네.]
일호가 튀어나와 말을 끊었다.
오호는 더 이상 소란을 피우지 않았다. 그녀도 상백 사건의 경과에 대해 알고 싶었기 때문에, 문자를 보내 말했다.
[오: 나는 단지 고신이 고사 체계의 근원이자 세간의 모든 독충의 원천이라는 것만 알고 있네.]
오호가 발언을 마치자 허칠안은 잠시 머릿속으로 어휘 선택을 한 후, 자신이 파악하고 있는 상백 사건의 경위를 공유하기 시작했다.
[삼: 상백 밑에 봉인되어 있는 물건이 어쩌면 요족과 관련이 있을 수도 있네. 현재 대봉 관아에서는 이미 상백을 폭발시킨 세력이 요족일 가능성이 높다고 우선적으로 확정을 지은 상태네. 하지만 북방 요족인지 만요국 잔여 세력인지는 모르고.]
허칠안은 정보를 누설함으로써 다른 자들이 자신의 신분을 추측하게 되는 것이 결코 두렵지 않았다. 당시 의사당에서 회의에 참여한 관원들이 아주 많았기 때문이다. 형부, 예부, 야경꾼 모두 그 자리에 있었다. 운록서원이 정보를 얻는 경로도 꼭 야경꾼 관아인 건 아니었다.
‘요족? 어째서 또 요족과 엮인 것일까. 요족은 왜 상백 밑의 봉인된 물건을 폭파하려 했을까.’
천지회 구성원들은 그저 그렇게 생각하며 얼떨떨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내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그건 바로 상백 사건의 배후에 얽힌 내막이 결코 단순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이 모든 것을 풀려면 상백 밑에 봉인된 것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아내야만 했다.
[일: 불가능해. 상백의 경비는 빈틈없다고. 고품 강자라 해도 잠입할 방법이 없는데, 요족이 어떻게 상백을 폭발시킨 거지? 화약은 어디에서 가져온 거야?]
[삼: 이 일은 조정에서 이미 조사를 마쳤네. 태강현 경내 대황산에서 초석광을 발견하였지. 하지만 이미 남김없이 채집되었고, 채집자는 바로 요족이었지. 일호, 자네의 정보통은 안 되겠구먼! 이외에 요족과 사사로이 내통한 첩자도 찾아냈네. 금오위의 백호 주적웅인데, 지금은 가족을 데리고 잠적한 상태일세.]
[일: 그럼 이 단서는 끊긴 셈이군.]
[삼: 하, 꼭 그런 것만도 아니야. 얼마 후면 조정에서 분명 지명 수배령을 내릴 것이야. 주적웅은 대봉을 벗어났거나 안전한 곳에 숨어있겠지. 자네들은 그가 어디에 숨었을 거라고 생각하나?]
이호가 앞다투어 대답했다.
[이: 말할 것도 없지. 틀림없이 운주일 걸세.]
지서 천지회에서 그(그녀)보다, 운주의 상황을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여기서 허칠안은 목적을 달성했다. 그는 이번 기회를 빌어 이 얘기를 확장시켜, 이호가 그 대신 운주를 주시하여 주 백호를 잡을 수 있는지 없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이미지대로라면, 도주범 하나에 이렇게 신경을 쓰면 안 됐다.
‘애국? 이 이유는 너무 가식적이다.’
[일: 이호, 자네 운주에서 세력이 막강하다고 들었는데, 나를 도와 주적웅을 주시해줄 수 있겠나?]
‘잘했다…….’
허칠안은 순간 고조됐다.
‘일호의 마음속에 이호가 관부보다 더 믿을 만하다는 건가?’
[이: 자네를 돕는 걸 거절하겠네.]
[일: 내가 사례금을 챙겨주지.]
[이: 아니, 거절하겠네!]
일호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고, 지서 단체방에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일호와 이호는 관계가 그다지 좋지 않군. 다른 자들도 설득하려 들지 않고 말이야……. 내가 들어오기 전에 둘이 갈등이나 원한이 있었나? 윽……. 이러면 안 되는데. 이호가 돕지 않으면 그렇게 큰 운주에서 주적웅을 어떻게 붙잡을 수 있겠어. 내가 나서야겠다. 이렇게 하면 일호의 호의를 팔아 이호가 진 빚을 받아낼 수 있겠어. 아주 가치 있군!’
허칠안이 정보를 입력했다.
[삼: 이호, 자네가 나를 대신해 주적웅을 주시하면 지난번의 빚을 갚은 셈 쳐주지. 일호에게는 미안하네. 자네는 또 내게 호의를 빚졌어. 두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알겠네. 삼호의 얼굴을 봐서 내가 대신해 주시하도록 하지. 운주 바닥에서는 내가 면이 좀 서거든. 사람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아. 주적웅이 운주에 있기만 하다면, 그자를 끌어낼 수 있네.]
‘이렇게 자신만만하다고?’
허칠안은 이호가 조정 사람이 아님을 더욱 확신했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 그, 혹은 그녀는 매일 원경제가 승천하라고 저주했다. 둘째, 운주는 도적의 난이 끊이지 않아 유랑민이 도처에 널렸고 관부의 힘이 미약했다. 만약 이호가 조정 사람이라면 감히 이렇게 단언하지 못할 것이다.
‘씁……. 관부 사람이 아닌데도 매일같이 도적 토벌에 열을 올리다니. 이호는 의협심이 강한 자로구나.’
[일: 좋소.]
거래는 성사됐고, 갈등이 해결됐다.
그렇게 천지회 구성원들은 한숨 돌렸다. 삼호는 역시 지식인답게 수완이 뛰어났다. 평소대로라면 일호와 이호는 싸우려 들었을지도 몰랐다.
금련 도사가 삼호를 천지회로 끌어들인 건 정말 좋은 수를 둔 것이었다.
삼호가 천지회에 들어온 후, 지서가 빈번하게 소환되며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구성원들의 정보 교환 횟수도 점차 늘어난 터였다.
구성원들이 기쁘게 반길만한 현상이었다.
[사: 요족이 왜 상백 밑에 봉인된 물건을 노리는 거지? 음, 아마도 북방 요족의 짓일 게야. 역사적으로 보면, 대봉과 남강의 만요국은 별다른 충돌이 없지 않았는가.]
북방 요족은 대봉과 상극이고, 남강 만요국에게는 서역의 불문이 영원한 적수였다.
‘대장에게 들은 얘기로는 북방 제부와 북방 요족이 요 근래 시시때때로 변방의 요새에서 소란을 피워 전쟁이 다시 발발할 징조가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북방 요족이 암암리에 흉계를 꾸며 경성에서 이런 짓을 벌인 게 말이 되지…….’
허칠안의 마음이 무거워졌다.
[오: 상백 밑에 도대체 무엇이 봉인되어 있길래 북방 요족이 그리 오랫동안 흉계를 꾸민 것인가?]
‘이봐, 아가씨. 물음표가 너무 많은 거 아니야? 이 아저씨도 답을 해줄 수가 없어. 왜냐? 나도 알고 싶거든…….’
허칠안은 속으로 비아냥거렸다.
[구: 어찌 되었든 대봉 황실을 애먹이는 물건이라는 건 분명하네. 경성 내 평민들에게까지 화가 미치지 않길 바랄 뿐이야.]
허칠안은 이 기회를 틈 타 문자를 전송했다.
[삼: 사천감 감정이 병이 났다던데, 자네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운록서원에서 얻은 은밀한 정보에 의하면 상백호 밑에 진법이 쳐져 있었다고 하는데, 내 판단에 의하면 사천감이 설치한 것 같군.]
[이: 거짓이지. 일품 고수가 어찌 병이 날 수 있단 말인가.]
이호는 딱 잘라 부정했다.
[오: 음, 일품 고수는 인간 세상의 꼭대기에 우뚝 서 있는 존재라 병에 걸리는 건 불가능해. 하물며 술사 체계에 속한 자인데 말이야.]
사천감 술사 체계의 기원이 바로 치료사(醫者)이기 때문이었다.
사호도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사: 감정이 내비친 태도를 봤을 때 이 일에 개입하고 싶지 않다는 것일 수도 있네.]
‘사호는 똑똑한 자이다. 내 생각도 사호와 비슷해. 감정은 이 일에 엮이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이런 애매한 태도는 대체 뭐야? 마땅히 경성을 수호해야 하는 거 아냐?’
허칠안은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일: 내가 지금 빚의 일부를 갚을 수 있을 것 같군. 상백에 관한 정보인데, 그리 큰 가치가 없을 수도 있네. 삼호, 들어보겠나?]
‘가치가 크지 않으나 지난번의 빚은 갚고 싶다라……. 일호, 좀 심한 거 아니냐? 나를 이용해 손쉽게 정보를 얻으시겠다?’
허칠안은 약간 화가 났다. 이번 거래는 그의 손해였다. 다만, 그는 현재 상백과 관련된 정보가 매우 필요했다.
주 백호의 흔적이 끊겼기 때문에 돌파구를 다시 찾아야만 하는 것이다.
허칠안은 어쩔 수 없다는 태도로 문자를 전송했다.
[삼: 한번 들어보도록 하지.]
[일: 내가 상백에 관한 권종을 열람했는데, 아주 눈에 띄는 시점을 발견했다네. 어쩌면 상백 밑에 봉인된 물건이 그 시점과 관련이 있을 수도 있네.]
일호는 잠시 멈칫하더니 문자를 전송했다.
[일: 오백 년! 약 오백 년 전, 당시 태자가 상백에서 뱃놀이를 하다가 부주의로 그만 호수에 떨어졌네. 그때부터 정신에 이상이 생겨 얼마 지나지 않아 상백에서 익사한 채로 발견됐지. 하지만 오백 년 전 큰 사건이 하나 더 있었는데, 사서(史書)에는 몇 줄 적혀 있지도 않고, 조정과 재야에서는 이 사건을 쉬쉬하며 은폐하였네. 아마 삼호도 기억났으리라 생각되는구먼.]
‘아니? 나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아……. 나는 심지어 사서를 읽어 본 적도 없다고!’
이 세계에는 검색 엔진이 없다는 사실에, 허칠안은 괴로운 감정이 솟구쳤다.
‘손으로 클릭 한 번이면 의식주와 교통 등등 모두 해결할 수 있었는데. 질병도 포함해서……. 음, 내 손안의 클릭은 다음 생에나 다시 만나보게 될지도!
맞다, 신년이를 찾자. 신년이는 사서를 통독한 공부벌레잖아.’
허칠안의 머릿속에 동생의 웃고 있는 모습이 떠올랐다. 동시에, 그는 사호가 앞다투어 대답한 사실에 깜짝 놀랐다.
[사: 자리 다툼?!]
여기까지 보니 허칠안은 안심됐다. 그는 다른 자가 자신을 대신해 물어볼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단체방에서 사호와 일호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9년 간의 의무교육을 다 받지 못한 열등생이기 때문이었다.
[이: 자리 다툼?]
[오: 자리 다툼?]
[사: 오백 년 전, 대봉 황실에서 반란이 일어났네. 반란군 수령은 평해왕(平海王)으로 후대의 무종(武宗) 황제이기도 하지. 비록 무종은 줄곧 ‘청군측(*清君側: 임금 측근의 간신을 몰아냄)’으로 자신이 황위를 찬탈했다는 사실을 덮고자 했지만, 필경 영예로운 일은 아니었지. 후세의 사관들은 이 사실을 발설할 수 없어 이렇게 쓸 수밖에 없었네. 하늘이 기운 그 해, 괴이함과 불길함이 한데 뒤엉켰고, 무종(武宗)이 동방에서 궐기하여, 대란을 평정했네!]
[사: 지금의 대봉 황실은 모두 그 무종(武宗)의 후손이지.]
[오: 이게 상백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건가?]
‘얘는 확실히 머리가 나쁜 것 같다…….’
허칠안이 그렇게 생각하는데, 이호가 말을 이었다.
[이: 일호는 영진산하 사당에 억눌려 있는 봉인된 물건과 오백 년 전의 황실이 관계가 있다고 의심하는 건가?]
[일: 자네들은 이상하다고 생각되지 않나? 감정이 왜 꾀병을 부려야 하겠나?]
‘상백 아래에 봉인되어 있는 오백 년 전 황실의 어느 중요한 인물 혹은 물건……. 지난 황위 찬탈 사건까지 연관됐다는 건 황실이 언급하기를 원치 않는 금기라는 것이고, 따라서 원경제 한 사람만 알고 있다는 뜻이지. 그렇다면 오백 년 전 그 태자의 죽음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 보복을 당한 것이다?
감정도 황실의 구성원이고, 이는 집안일인 셈이니 고의로 꾀병을 부려 엮이지 않고자 하는 건가?
북방 요족이 이런 일을 벌인 이유가 이건가? 대봉 경성을 혼란에 빠트리고, 조정의 정세를 뒤흔들고자 이 기회를 틈타 북방에서 수작을 부린 것?’
허칠안은 숨을 들이키며 자연스레 등허리를 꼿꼿하게 세웠다. 상백 사건의 수심은 상상 이상으로 깊은 듯했다.
‘젠장, 아무래도 도망치는 게 낫겠어. 도망치는 게 이 사건에 개입하는 것보다 리스크가 적을 것 같은 느낌이야.’
허칠안은 쫄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