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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103화 (103/712)

103화. 근심거리 (2)

식사를 마친 허칠안은 뜨듯한 우유 한 사발을 들고 걸어 들어오는 허영월을 보았다. 그녀는 붉은 입술을 오므린 채 온화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큰 오라버니, 우유 마시고 기력 보충 좀 하세요.”

“영월이가 오늘 점심에 직접 저잣거리에서 산 신선한 우유란다.”

숙부는 영월과 칠안의 사이가 점점 돈독해지는 것을 보고는, 진심 어린 웃음을 띠며 덧붙였다.

“영음이가 두 사발을 들이켜, 언니에게 한 대 맞았지 뭐니.”

그러나 허칠안은 우유 냄새를 맡고서 하마터면 토할 뻔했다. 우유에서 비린내와 노린내가 났기 때문이다.

이 시대의 신선한 우유란 다 이랬다. 이것저것 첨가제를 넣지 않은 생우유로, 기껏해야 열소독 정도나 했을 터였다.

사실 맛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비록 맛이 없어도, 귀족들이나 평소에 마실 수 있기 때문에 맛이 어떻든지 간에 인기가 있었다.

확실히 몸보신이 되었기에, 귀족 자녀들에게 우유는 매일 마셔야 하는 식품인 셈이었다.

‘내가 한번 우유를 개량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러고 나서 독보적인 비법으로 큰돈을 버는 거야. 아냐, 됐다. 근본적으로 이 냄새를 어떻게 없애는지도 모르고 학교에서 선생님이 가르쳐준 적도 없잖아…….’

허칠안은 여동생의 간절한 눈빛에 못 이겨 숨을 내쉰 후 우유를 단숨에 들이켰다.

‘정으로 먹는다!’

허칠안은 아직도 열기가 남은 사발을 어루만지다 문득 지난 일 하나가 떠올랐다.

중학교에 다닐 때였다. 부모님께서 그에게 우유를 주문해 주신 덕에 유리병에 담긴 우유가 매일 아침 집 앞까지 배달되곤 했다. 언제나 따뜻한 우유였다.

허칠안은 그것을 마시지 않고 주머니 속에 품고 가서는 좋아하는 여자아이에게 주었다. 그는 이게 바로 사랑인 줄 알았다.

나중이 돼서야 그는, 자신이 사실은 비위를 맞추는 개에 불과했을 뿐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 * *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으나 밖에선 구슬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는 마른 나뭇가지와 정원 내 판석을 서서히 적셔갔다.

배도 부르고 술도 얼큰하니 취한 허칠안은, 기름종이 우산을 쓰고 자신의 뜰로 돌아왔다.

그는 등잔에 불을 붙이고 창문을 열었다. 날이 완전히 어두워지자 그 사이로 촛불 빛이 강하게 새어 나왔고, 추적추적 빗소리도 들려왔다.

세상이 고요하니 마음도 차분해지며 여러 일들이 떠올랐다.

‘봄바람에 복사꽃 한창일 때 함께 술잔을 기울였건만, 강호를 떠돌며 밤비 소리 듣다가 십 년이 지난 지금 등불 앞에 앉아 그대를 그리네! 시인 황정견(黄庭堅)이 이 시를 쓸 때, 아마도 나와 같은 심정이었겠지. 이렇게 찬바람이 불고 궂은비가 내리는 적막한 밤에 말이야.’

무릇 사람은 계속해서 자신의 세계에 빠져있으면 안 되는 법이었다.

‘그래, 해야 하는 일이 얼마나 많냐, 내가.’

허칠안은 탁자 앞에 앉아 옥석경을 꺼내 문자를 보내며 중얼거렸다.

“하, 경성에 또 일이 났습니다.”

이 문자를 보내고 몇 초만에 제일 먼저 답한 것은 이호였다.

[이: 원경제가 암살당하기라도 했나?]

‘……아니, 이 사람은 어찌 된 일인지 입만 열면 원경제 승천에 대해 얘기하는구먼. 원경제가 너희 집 쌀을 먹기라도 했니, 아니면 너희 집 은자를 훔치기라도 했니.’

허칠안은 속으로 ‘이호’에게 분청(*憤靑: 염세적인 20~30대의 젊은층을 가리킴)이라는 꼬리표를 달았다.

‘고대판 분청.’

[구: 어제 내성과 외성 모두 봉쇄하고, 모든 백성의 출입을 금하였길래 일이 났다고 예단하였네.]

‘금련 도사는 아직 경성에 숨어서 묵묵히 상처를 치료하고 있나보군.’

허칠안이 문자에 대한 답을 절반밖에 쓰지 않았는데, 뜻밖에도 염탐이 습관인 일호가 한발 앞서 허세를 부리며 지서 파편 소지자들을 깜짝 놀라게 할 진상을 공개했다.

[일: 상백이 폭발하고 영진산하 사당이 무너졌네. 상백 내에 봉인된 물건은 종적을 감췄다고 하네.]

충격적인 소식에 침묵이 흘렀다.

지서 단체 채팅방에선 꽤 오랜 시간 정적이 흘렀다. 문자를 전송하는 사람도 놀라움을 표하는 사람도 없었다.

[이: 뭐라고? 상백이 폭발했다고? 영진산하 사당이 무너져? 일호, 우리를 희롱하고 있지 않은 것이 확실한가?]

이호의 이런 반응에도 이유가 있었다. 이는 흡사 원경제가 아무런 도움 없이 혼자 황궁에 침입한 자에게 제거당한 것과 다름없는, 믿기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마치 환관들이 공무를 논한다고 하는 것과 같이, 그야말로 황당무계하기 짝이 없는 얘기였다.

사호 역시 믿어지지 않았다. 그는 상백이 어떤 곳인지, 그곳의 경비는 또 얼마나 삼엄한지 이호보다 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호는 절대로 목적 없이 행동할 리가 없었다.

[사: 삼호, 네가 하려던 얘기도 이것인가?]

[삼: 그렇네. 상백이 파괴됐고, 영진산하 사당 아래 봉인된 물건의 행방이 묘연하네.]

삼호의 문자가 떴다. 아무리 믿기 어렵다고 해도 이는 거의 기정사실이었다.

일호와 삼호 모두 경성에 있기 때문에, 대봉 경성의 일을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구: 정말 믿기 어려운 소식이네. 관련 단서가 잡히기라도 한 건가? 일호?]

‘재미있군. 금련 도사가 야경꾼 신분인 내게 묻지 않고 일호에게 직접적으로 묻는다? 이런 고급 기밀에 관련된 단서는 나보다 일호가 알고 있을 확률이 높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하지만 이렇게 얘기하는 건 아주 신중치 못한 일이지……. 혹 고의로? 아무래도 상백 폭발 사건에 대한 충격이 너무 커서, 신중하게 생각하지 못하는 게 틀림없어.’

[일: 이 사건은 야경꾼 관아, 형부, 부아 이렇게 세 곳에서 처리하게 되었네. 구체적인 소식은 나도 잘 모르네.]

지서 단체 채팅방의 모든 이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조정 내에서 지위가 높은 일호도 구체적인 내막을 모른다고 하니, 삼호는 더욱이 말할 것도 없을 터였다.

[삼: 공교롭군. 우리 서원도 상응하는 경로를 통해 적지 않은 비밀을 알게 되었고, 사건의 내막에 대해 대략적인 갈피를 잡았네.]

방금 서원의 경로를 통해 정보를 얻었다고 한 걸 보니, 운록서원도 경성의 각 관아에 첩자를 많이 심어놓은 모양이라고 모두들 생각했다.

삼호가 이렇게 말하는 걸 보더니, 본래는 대봉 경성에서 발생하는 일에 대해 그다지 흥미가 없던 오호가 갑자기 튀어나왔다.

[오: 삼호, 너희 서원에서 꽤 깊숙이 손을 뻗었군. 일호도 모르는 일을 서원이 알다니. 그나저나 너는 서원에서 어떤 지위지?]

[삼: 내게는 당연히 나만의 방법이 있네.]

허칠안은 설명하지 않았다. 여백의 중요성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똑똑한 사람일수록 너무 많은 생각을 하기 쉽다는 점이었다.

‘이들은 평범한 학자의 신분인 삼호를 의심하면서, 동시에 삼호가 다른 신분은 아닌지 의심할 것이다. 유력한 증거가 부족한 상황에서는 오히려 생각할수록 혼란스러운 법이지.

음, 일호가 문제야. 그(그녀)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아. 하지만 상관없어. 한동안은 일호와 부딪힐 일이 없고, 게다가 그(그녀)의 신분에 대해 점점 더 확신이 생겼어. 적어도 범위를 확정 지을 수는 있어.’

[삼: 그럼 자네들은 무엇을 내 정보와 맞바꿀 텐가?]

이 문자를 본 후 사람들은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영문도 모르는 채 빚이 점점 더 늘어나는 느낌이었다.

만약 삼호가 장사를 했다면, 분명히 성공한 장사꾼일 것이라고 생각하며, 사호는 한숨을 쉬고 답장했다.

[사: 내가 근래에 수행을 하는 데에만 몰두하여 가치 있는 정보를 얻지 못했네. 먼저 빚졌네.]

[이: 도적을 처벌하느라 바삐 지내고 있네. 음, 운주 배후에서 각 사건을 조종하는 세력에 대해 확실히 파악한 후면, 삼호에게 진 빚을 갚을 수 있을 듯하네.]

여기까지 말하고 나니, 이호는 영문을 모르고 진 빚 때문에 속이 좀 쓰렸다.

[오: 내가 최근에 중요한 정보를 얻기는 했으나, 이 정보에 대해 말하면 내 신분이 드러나게 되네.]

[사: 하, 자네 남강 사람이구먼.]

[일: 아마도 모 고족(蠱族)의 귀족이겠군.]

[이: 그리고 좀 호전적이겠지.]

[오: ……자, 자네들 다 아는 겐가?]

‘뻔하지, 뭐. 만요국의 역사에 빠삭하고, 말끝마다 자신을 누님이라고 칭하는데. 게다가 예전에 스스로 부친의 지위가 아주 높다고 까발렸잖아. 오호는 머리가 그다지 좋지 않은 모양이다……. 나나 저채미와 같은 레벨…….’

허칠안은 속으로 평가하며 지서 채팅방의 인물들에 대해 다시 정의를 내렸다.

‘일호는 조정 내부에서 지위가 높은 염탐꾼.

이호는 천자호(*天字號: 천자문의 제일 첫 글자로 1등을 의미함) 염세 청년이나 지혜롭고, 제사 대전이 있던 그날 나와 일호를 지켜본 자.

사호는 인종 도수와 친분이 두텁고, 일찍이 조정의 관직에 있었으나 지금은 천하를 유랑하고 있다.

오호는 남강 고족의 여인으로 호전적이고 그다지 총명하지 않은 듯하다.

육호는 대봉판 노지심(*魯智㴱: 《수호전》에 나오는 인물로 성격이 강직하고 의협심이 강한 사람을 가리킴)으로 수련의 경지가 높은 자이다.

칠호는 도피 중이다. 지서 파편이 이호의 손에 있는 걸로 보아 이호와 칠호의 관계가 일반적이지는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팔호는 막다른 골목에서 잠적한 지 오래다.

구호는 천지회를 만든 금련 도사로 부호다.’

오호는 한참 동안 말이 없다가 문자를 전송했다.

[오: 그래, 이 누님은 남강 고족 사람으로 정정당당하고 떳떳하게 중요한 정보를 말하고자 하네. 삼호, 나는 이 정보를 자네의 상백 사건과 교환하겠네.]

[구: 오호, 빈도의 부상이 아직 완쾌되지 않았네. 만약 자네가 말하고 싶다면, 우선 구성원들이 자네에게 등가 정보나 등가 백은을 빚진다는 사실에 대해 모두에게 동의를 구하시게.]

천지회 구성원들은 잠시 침묵하였고, 이내 오호에게 한 가지 정보를 빚진다는 점에 대해 동의를 표했다.

[오: 고신(蛊神)이 회생한 듯하네.]

‘고신? 계급을 뛰어넘는 존재이자 고사(蛊師) 체계의 창시자?’

허칠안은 깜짝 놀랐다. 물론 천지회 내부 정보를 통해 실존 가능성이 있는 ‘선불(仙佛)’의 실체에 관해 조금은 알고 있긴 했으나, 그럼에도 그는 터무니없다고 생각했다.

지서 단체 채팅방에는 꽤 오랫동안 말을 하는 자가 없었다. 보아하니 이 정보가 구성원들에게 안겨준 충격은 상백 폭발에 못지않은 듯했다.

[오: 어제 깊은 못에서 고신의 숨결 한 올이 흘러나왔네. 마을에서 기르던 하급 독충이 전부 변사하였고, 고급 독충은 미쳐 날뛰며 고족 사람들을 공격했네. 이 누님이 제일 아끼던 독충도 하마터면 통제력을 잃을 뻔했지. 부친께서 말씀하시길 수천 년만에 고신이 드디어 회생했다고 하네. 하지만 이는 결코 좋은 일이 아니야.]

[이: 좋은 일이 아니라고?]

[오: 고신은 혼란의 근원이야. 통째로 삼켜 번식하는 것이 고신의 본능일세. 만약 회생한다면 남강의 모든 생물은 고신이 교배하고 삼켜버리는 대상이 되고 말 것이네. 구주 전체를 독충의 세계로 만들어 버릴 것이야! 그래서 우리 고족은 현재 강자를 모집하여 며칠 뒤에 극연에 잠입해 상황을 살펴볼 계획이네.]

‘헉, 이런 일도 있단 말인가? 고신이 이런 생물이라고?’

허칠안은 깜짝 놀랐다. 고신은 결코 상상 속의 촉수나 은마 같은 것이 아니었다. 진짜로 고신의 사악함에 경악한 것이다.

허칠안은 고신의 다른 정보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이 절박하였으나, 어찌 된 일인지 묻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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