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타경-101화 (101/712)

101화. 끊긴 단서

형부 관아의 문을 나서 말에 오르자마자, 황기(黄骑)를 단 말 두 필이 쏜살같이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바로 이춘옥과, 옅은 노란색의 긴 치마를 입은 저채미였다.

이옥춘이 해명했다.

“채미 소저가 입궁하여 사천감에 없었네. 황성 문 앞에서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채미 소저가 나왔네…….”

‘또 장공주한테 얻어먹으러 갔겠지. 저 식충이……. 조만간 한 방 먹이고 말 테다…….’

허칠안은 온화하게 웃으며 말했다.

“오랜만이오. 점점 아름다워지는구려.”

저채미의 동글동글하고 반반한 계란형 얼굴에, 달콤하고 아름다운 미소가 흘렀다. 그녀는 방금 무언가를 말하고 싶었으나, 자신의 신분과 옆을 둘러싸고 있는 야경꾼들을 떠올리며 그저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일각을 다투는 일인지라 허칠안은 짧게 간추려 얘기했다.

“민 은라는 제 금패를 가지고 황성 동문 입구로 가서 주적웅(周赤雄) 주 백호를 체포하십시오. 다른 분들은 저를 따라 주부로 가시지요.”

‘왜냐하면 주 백호가 오늘 당직인지 아닌지 알 길이 없으니까.’

허칠안은 병력을 두 갈래로 나누어 움직이기로 했다.

허칠안의 이런 안배는 일리가 있었다. 황성은 ‘천자의 발밑’이니 공연한 충돌이 발생할 일이 없었고, 어느 누구도 감히 그렇게 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사람을 체포하는 것도 쉽지 않기에 요패로 길을 터야 했다. 그리하여 은라 한 명만 보내기로 한 것이다.

주 백호 집에서 바로 체포하게 되면, 그가 궁지에 몰려 허튼짓을 할 가능성이 농후한데, 허칠안이 막 천지일도참을 펼쳐 보인 직후라 전력이 심히 딸리니 아무래도 동라 둘을 데리고 가야 했다.

* * *

한편, 여청은 상황을 보고하고 있었다.

“유 공공, 여러 대인 어르신들. 예상한 대로라면 이 일의 배후에 요괴가 개입했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이 말을 들은 현장에 있는 관원들의 낯빛이 크게 변했다. 형부의 손 상서 역시 양미간을 찌푸렸다.

한 형부 관원이 믿기지 않는다는 투로 물었다.

“어떤 근거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겁니까?”

“수일 전, 소직과 허 대인이 함께 태강현 경내에서 일어난 대황산 요물이 탄광민을 삼킨 사건에 대해 조사한 바 있습니다.”

“요물이 탄광민을 삼켰다?”

유 공공은 양미간을 찌푸렸다.

“그렇습니다. 올해 대황산 산기슭 하류에 요물이 나타나 수백 명의 현지 탄광민을 삼켜버렸습니다. 소직이 허 대인과 공동으로 이 사건을 처리하는 와중에 채집된 정결한 초석광을 대광산에서 발견했습니다…….”

여청은 자리에 있는 대인들에게, 대황산 초석광 사건을 상세하고 분명하게 들려주었다.

이는 시간을 끌기에 아주 좋은 방법이었다. 없는 말을 하는 것도 아니니 대인들도 아주 진지하게 들었고 재촉하지도 않았다.

“방금 소직이 허 대인과 대화를 나눌 때 단계별로 분석해 본 결과, 어쩌면 화약이 공부 출처가 아니라 대황산 초석광과 관련이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형부와 부아 관원들의 얼굴빛이 진지해졌다. 이 사건이 뜻밖에도 요족과 관련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이었다.

구주 요족은 서북방의 요족 제부(諸部)와 남강의 만요국, 이렇게 양대 진영으로 나뉘었다.

남강 만요국은 일찍이 갑자탕요에 몰락했으나 잔당 세력이 목숨을 연명해가고 있었다.

서북방의 요족은 북방 제부(諸部)와 연맹을 맺고, 대봉과 서역국에 맞서고 있었다.

‘초석광 배후에서 주동한 것은 어느 요족 세력이란 말인가?’

유 공공이 진 부윤을 쳐다봤다. 진 부윤은 깨달은 듯 소리를 내더니, 부하들에게 말했다.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네. 부아에서도 요전에 이 사건을 넘겨받아 그 당시에 책임지고 처리하였지, 바로 여 포두가.”

유 공공은 안색이 어두워졌다.

“만약 좀 더 일찍 초석광을 발견할 수 있었다면, 상백 사건은 어쩌면 발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네. 올해 발생한 요물이 사람을 삼킨 사건은 왜 줄곧 지금까지 방치하고 있었던 거지?”

여청은 태강현령의 독직과, 탄광민의 목숨을 경시한 죄를 고발하려 했으나 진 부윤의 눈빛에 저지당했다.

진 부윤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요물의 힘이 막강하여 태강현령도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유 공공은 콧방귀를 뀌었다.

“내가 사실 그대로 폐하께 아뢰겠네.”

손 상서가 여청을 힐끗 보고는 입을 열었다.

“허칠안은 무엇을 하러 간 것입니까?”

그는 여청이 알게 모르게 시간을 끌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고는 바로 정곡을 찔러 그녀가 더는 지껄이지 않게 했다.

유 공공이 듣더니 읊조렸다.

“설사 요족에게 화약이 생겼다 해도 어떻게 대봉 금군과 성을 지키는 시위를 속이고 화약을 상백으로 몰래 운반했다는 것인가?”

“이건 또 다른 사건과 관련이 있습니다.”

여청이 대답했다.

“또 다른 사건?”

모든 관원들이 놀랐다.

‘상백 폭발 사건이 그렇게 많은 사건들과 연루되었단 말인가?’

여청이 말했다.

“폐하께서 제사를 지내시기 전날, 금오위 기관 유한이 집에서 무고하게 죽었습니다. 이 역시 소직과 허 대인이 처리하였는데, 당시 허 대인은 그가 멸구 당한 것이라고 추측하였습니다. 다만, 이 사건이 초석광 사건과 접점이 없어 저희도 여기까지 연결 지어 생각지 못했습니다.”

‘금오위 기관의 멸구와 상백으로 몰래 들여온 화약이라…….’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은 명석하였기에, 더 이상 어떠한 의심도 하지 않았다.

“그럼 허 대인은 방금…….”

형부 관원과 일부 부아 관원들이 의자에서 세차게 일어났다.

“방금 허 대인은 그 일을 떠올려, 문득 깨달음을 얻고 서둘러 떠난 겁니다.”

여청이 말했다.

손 상서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명했다.

“금오위 모든 백호의 체포를 명령한다. 서두르거라!”

모든 관원들이 일어나 의자가 뒤집히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앞다투어 의사당을 뛰쳐나갔다.

‘사건을 이 정도까지 분석하고 나니 꽤 확실해졌어. 금오위 내부의 첩자를 잡으면 1등 공신이 되는 건 자명한 일이야.’

여청은 느긋하게 숨을 내뱉으며 생각했다.

만약 공정한 경쟁이라면, 여청은 이렇게 허칠안을 도와주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의 처지가 딱했고, 이 사건이 그가 공을 세워 죄를 면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여청은, 우의(友誼)로 도와줄 수 있는 만큼은 도와줘야 한다고도 생각했다.

이내 그녀는 부아의 동료를 따라 의사당을 벗어났다. 이렇게 큰 의사당에 유 공공과 그가 데려온 환관, 손 상서, 진 부윤 네 사람만이 남게 되었다.

유 공공이 손을 뻗으니, 종복 환관은 즉시 묵적을 불어서 말린 후 책자를 그의 손에 건넸다.

유 공공은 내용을 자세히 읽어 보았다. 맨 처음 두 장은 형부와 부아의 사건 경위에 대한 토론과 논쟁이 주된 내용이라 비교적 무미건조했다.

‘허칠안이 합류하고 나서부터는 사건의 경위가 명확하게 드러나기 시작했고, 일 주향만에 용의자를 확정했다.’

사건은 유 공공이 놀랄 만큼 빠르게 진전되었다. 정상적인 절차에 따르면, 대황산의 초석광과 기관 두 사건을 연결 짓는 데 2~3일의 시간이 걸릴 듯했다.

‘이렇게 보니 폐하께서 허칠안을 야경꾼 관아 수석 수사관으로 임명하신 데는 깊은 뜻이 있으셨던 게야…….’

유 공공은 돌연 깨달았다.

“소운자(小云子), 오늘부터 야경꾼 관아에 머무르며 그들의 사건 처리를 책임지고 독촉하여 내게 즉시 소식을 전하거라.”

유 공공이 말했다.

“그리하겠습니다!”

기록을 하던 환관이 명을 받들었다.

* * *

주부, 칠흑 같은 대문이 굳게 닫혀있었다.

송정풍은 허칠안의 지시에 따라 계단을 뛰어올라, 문 앞에 이르러 문을 쿵쿵 두드렸다.

“문을 여시오! 야경꾼 사건 처리반이오!”

문 너머로 쇠약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백호 어르신이 편찮으셔서 손님을 맞이할 수 없습니다. 돌아가십시오.”

송정풍은 다시 문을 두드렸으나, 안에서는 죽은 체를 하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버티시겠다?’

송정풍은 냉소를 짓더니 한쪽 발로 대문을 내리쳤다. ‘펑’ 하는 거대한 소리와 함께 나무로 된 대문이 산산조각 났고, 부서진 나무들은 여기저기 흩어졌다.

청색 무명옷을 입은 노인은 먼 곳에 숨어서 벌벌 떨고 있었다. 겁에 질린 눈이 불청객들을 주시했다.

“두 사람은 대문을 지키고, 다른 이들은 이 은라, 양 은라와 함께 들어간다.”

허칠안은 손을 크게 휘두르며 동라들에게 돌진하라고 명령한 뒤, 자신은 저채미와 뒤에 남았다.

“네가 수석 수사관인데, 어째서 들어가지 않는 거야?”

저채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를 한번 쳐다봤다.

“산해관전역 당시, 폐하께서 적진에 돌진하시는 걸 본 적이 있소?”

허칠안은 그녀를 쳐다보며 답했다.

저채미는 말문이 막혔다. 그의 말이 억지라는 것을 분명히 알았으나, 말싸움에 그다지 능하지 않은 머리는 한동안 반박할 말을 생각해내지 못했다.

“본래 네게 대력완(大力丸)을 주려고 했는데, 됐어.”

그녀는 정색했다.

“대력완?”

“몸보신 좀 하라고, 혈기가 이렇게 쇠약해서야 되겠어?”

저채미는 술사 체계의 풍수사 신분으로, 그녀가 병을 고치고 사람을 구할 때 허칠안은 아직 정원에서 석쇠(石鎖)나 들어 올리고 있었다.

허칠안의 기색만 보고도 그가 현재 심히 쇠약하다는 걸 알 수 있는 것이었다.

“흠, 그래도 네게 한 알 줄게. 저녁 식사 대접하는 거야.”

허칠안이 팔꿈치로 그녀를 찔렀다.

저채미는 불쾌해하며 몇 걸음 뒤로 물러섰고, 사슴 가죽으로 된 소포에서 도자기 병을 더듬어 꺼내 건넸다.

“한동안 먹기에 충분할 거야.”

‘꿋꿋한 저채미.’

허칠안은 이렇게 강단 있는 사람이 좋았다.

그는 안으로 걸어가면서 도자기 병을 쏟아 갈색 완자 한 알을 꺼내 깠다. 완자에서는 이상한 냄새가 났으나 몇 번 씹으니 매운맛이 올라왔다.

허칠안은 이를 통째로 삼켜버렸다. 몇 초 후 위가 뜨거워지면서 아주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힘이 빠져나가는 느낌도 많이 회복된 듯했다. 그는 저채미를 바라보며 주절주절 말했다.

“미리 말해두는데, 내가 이 모양인 건 학업을 포기해서 생긴 부정적인 효과지, 결코 내가 완소이(*阮小二: 수호지에 등장하는 인물 중 하나)를 대표하는 건 아니오.”

“원소이가 뭐하는 건데?”

“좋은 건 아니오.”

두 사람은 곧 내원에 도착했다.

이옥춘과 양봉이 맞이하며 고개를 저었다.

“사람이 안 보이네.”

이어 덧붙였다.

“주부에서 돈이 될 만한 물건은 다 옮겨갔어.”

송정풍은 즉시 늙은 문지기를 끌고 오더니 그의 목에 칼을 대고 소리쳤다.

“주적웅은 어디 있는 게냐?”

“백호 어르신은……. 어, 어르신께서는 부인과 공자님, 아가씨들을 모시고 성 밖의 친지 댁으로 가셨습니다.”

“그럼 왜 그가 병이 났다고 말한 거지?”

“백호 어르신께서 그렇게 말하라고 하셨습니다. 소인, 소인은 그대로 말씀드린 것뿐입니다…….”

늙은 문지기는 두려운 기색이 역력했고, 두 다리를 덜덜 떠는 것이 거짓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허칠안이 물었다.

“언제 갔느냐?”

“제사 대전이 끝난 날이옵니다…….”

문지기는 침을 삼키며 애걸했다.

“백, 백호 어르신께서 무슨 죄를 저지르신 겁니까? 소인은 아무것도 모릅니다. 아무것도 모릅니다…….”

허칠안은 손을 내저으며 송정풍에게 그를 풀어주라고 지시하였다.

허칠안은 사람들을 이끌고 다시 집으로 들어가, 방마다 꼼꼼히 뒤졌다. 비교적 진귀한 골동품과 서화를 가져간 것 외에 저택의 모든 장식품은 처음처럼 온전히 있었다.

“주 백호가 도망쳤군!”

이옥춘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판단하기에는 아직 너무 이르지요.”

허칠안은 저채미를 쳐다보았다.

저채미는 귀신이 곡할 정도로 그의 말뜻을 철석같이 알아들었다. 그녀는 재빠르게 지붕 위로 뛰어올라, 빛이 비치는 맑고 환한 눈동자를 크게 뜨더니, 주부의 구석구석을 둘러보았다.

사람을 찾으려고 한 게 아니라 다른 단서를 찾기 위함이었다. 핵심은 화원과 우물에 있었다.

잠시 후 저채미는 지붕 위에서 뛰어내려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택에 숨겨진 시체도 없고, 근래에 이곳에서 죽은 사람도 없어……. 음, 특이한 방법으로 은폐했을 가능성도 있어. 삼척(三尺)쯤 땅을 파서 좀 수색해 보는 건 어때?”

“필요 없소.”

허칠안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죽었든 도망갔든 이 단서는 여기서 끝난 거요.”

‘하지만, 8할은 도망간 것이 분명하다. 저택의 사람이 직접 주 백호가 가족을 데리고 떠나는 걸 봤다고 하지 않았나.’

그들이 주부의 대문을 나설 때, 민산이 몇몇 동라를 추가로 거느리고 달려오더니, 고삐를 당기며 말을 세울 틈도 없이 소리쳤다.

“제사 대전 후에 주 백호가 장기 휴가를 냈다고 하네.”

그는 낯빛이 어두운 동료들의 얼굴을 보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도망갔군.”

양봉은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