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용의자 확정
여청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잊으셨습니까? 허칠안입니다, 세은 사건의 허칠안.”
그녀가 상기시켜준 덕분에, 부아의 모든 관원들은 허칠안이라는 자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다.
어쩐지, 모두들 방금 그 이름을 듣고는 귀에 익는다 생각하던 참이었는데, 알고 보니 세은 사건을 바로 잡고, 가짜 은자 의혹을 해결한 그 쾌수였던 것이다.
‘음, 현재는 야경꾼의 동라지만.’
‘과연 폐하의 칙명으로 그가 야경꾼 관아 수석 수사관으로 임명됐다니…….’
이쯤 되자 부아의 관원들도 비로소 황제의 진정한 참뜻을 헤아릴 수 있었다.
“확실히 어느 정도 수확이 있기는 합니다!”
허칠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형부와 부아 모두 경쟁 상대였고, 이 나쁜 자식들에게 단서를 공유할 이유도 없었기 때문에, 허칠안 또한 본래는 말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환관이 기록하고 있었고, 형부와 부아의 모든 관원들이 거리낌 없이 교류하고 있는 걸 유심히 보고 있자니, 허칠안은 문득 이것이 어쩌면 어필할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제 폐하께 어필해야지.’
예상대로 이 기록은 황제가 살펴보기 위한 용도인 듯했다. 원경제가 기록을 보고 나면, 형부와 부아에서는 적극적인 토론을 거쳐 단서를 제공하여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야경꾼 관아에서는 유독 아무 말 없이 침묵했다는 걸 발견할 수 있을 터였다. 이를 알게 되면 황제가 어찌 생각하겠는가?
비록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약간은 손해라지만, 공로는 종이에 기록되지 않는 법이었다.
“여 포두의 추측에 견주어 저도 몇 가지 의문점을 제시하겠습니다.”
모든 관원들이 허칠안을 돌아보았다. 허칠안은 조리 있게 말했다.
“오늘 아침 상백에 조사하러 다녀왔습니다. 영진 산하 사당 전체와 한백옥고대를 폭발시키려면 방대한 양의 화약이 필요합니다.”
“그렇지요,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여청 역시 상백에 가서 현장을 실제로 조사했던지라 의아하게 물었다.
“문제가 있지요.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화약은 조정에서 극도로 중요시하는 전략 물자이기에 각종 보안 조치와 도난 방지 조치가 매우 엄격하면서도 잘 완비돼 있습니다. 그러니 이 화약들을 몰래 운반하는 것 자체가 아주 어려운 일이겠지요. 또한 운반했던 흔적도 지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허칠안이 말했다.
“여 포두께서는 어떤 자가 이 일을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여청이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했다.
“공부상서, 혹은 시랑 둘이지요.”
관원들은 깜짝 놀랐고, 고개 숙여 기록하던 환관조차 멈칫했다.
허칠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공부상서와 시랑 두 사람이라면 모든 것이 맞아떨어집니다. 그들의 재간과 능력으로 궁중 차야나 대리사, 예부의 하급 관리를 매수하는 것도 가능성이 없지는 않습니다. 다만, 너무 어리석지 않습니까?”
여청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하고 싶은 말이…….”
허칠안이 말했다.
“이 정도 규모의 화약을 몰래 운반하려면, 일을 처리하는 솜씨가 아무리 깔끔하다고 해도 조사를 피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상서와 시랑씩이나 돼서 그렇게까지 어리석지는 않다고 확신합니다.”
여청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들이 아니라면, 어디에서 그렇게 많은 화약을 제공할 수 있단 말입니까?”
허칠안이 답했다.
“성 밖에서 운반해올 가능성은 없습니까?”
여청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외성은 말할 것도 없고, 내성을 들어오려는 자에게는 세금을 거두고, 성을 지키는 사졸이 화물을 검사할 것이니, 황성은 더욱이 불가능합니다. 화약은 매우 눈에 띄는 물건인데 어떻게 몰래 운반하겠습니까? 운송해온 것이 원재료가 아니고서야 화약은…….”
여청과 허칠안이 방약무인(*傍若無人: 곁에 사람이 없는 것처럼 거리낌 없이 말하고 행동함)으로 추리하고 있어, 다른 사람들은 참견할 틈이 전혀 없었다. 유 공공도 재촉하지 않고, 인내심을 갖고 들었다.
기록을 담당하는 환관이 날렵하게 붓을 움직였고, 점점 더 그 속도가 빨라졌다.
‘운송해온 것이 화약이 아니고 원재료라. 화약의 원재료는 유황과 숯, 모두 진귀한 것들이 아니다. 더욱이 겨울에 경성의 탄 소비량은 무서울 정도지……. 하지만 초석은 대봉에서 엄격하게 통제하는 것이고…….’
불현듯 허칠안의 머릿속에 반짝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초석광?!”
그는 눈을 부릅뜨고 여청을 응시했다.
여 포두는 잠시 멍하니 허칠안을 바라보다가 이내 이해하고서는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초석광!”
두 사람의 얼굴이 충격으로 가득 찼다. 다른 한편에서는 송정풍과 주광효가 서로 눈을 마주치며 낯빛을 조금 바꾸었다.
그 네 사람은 직접 대황산(大黄山)을 실지 조사하였고, 그곳에서 초석광을 발견했던 것이다.
여청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자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고, 새로운 의혹을 떠올렸다.
“만약 정말 그것들이 원인이라면, 아홉 명의 실종자는 어찌 된 일이란 말입니까?”
허칠안이 꾸물대며 말했다.
“간단합니다. 죄를 뒤집어씌운 것이지요!”
그러다 다시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아니, 저희의 시선을 돌리고 경성을 벗어날 시간을 벌기 위함입니다.”
여청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저희로 하여금 공부에서 화약을 빼냈다고 생각하게 만들고, 조정 내부에 첩자를 심어 놓았다고 판단하게 한 후 조사의 핵심을 공부와 예부, 대리시경(大理寺卿)으로 돌린 것입니다.”
유 공공은 양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자신이, 이 두 사람의 대화를 이해하지 못하기 시작했다는 걸 알아차렸다.
지위가 높은 형부상서와 진 부윤은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았으나, 다른 관원들은 어리둥절하여 서로 쳐다만 볼 뿐, 역시나 허칠안과 여청이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알아듣지 못하는 중이었다.
‘마치 드라마 한 화를 빼놓고 보는 것 같은 느낌이겠지.’
허칠안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다고 해도 한 가지 의심이 풀리지 않습니다. 어떻게 화약을 상백으로 운반할 수 있었던 거죠?”
여청이 대답했다.
“간단합니다. 실종된 아홉 명의 하급 관리는 아마 매수됐거나 협박을 받았을 겁니다. 물론 전자에 더 가깝다고 생각합니다만.”
‘일리가 있어. 요족이 화약을 상백으로 몰래 운반하는 과정에는 분명히 공범이 존재할 것이다. 조정과 내통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조정 내 나쁜 자식들은 차치하더라도, 요족은 왜 상백을 폭파시키려고 한 것일까.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들은 상백 밑에 봉인되어 있는 물건을 목적으로 한 것이다. 봉인되어 있는 물건이 그들에게 무슨 용도란 말인가?’
허칠안은 이런 생각을 하며, 여청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저희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방금 한 가지 사소한 부분에 대해 짚어봤는데…….”
영특한 여 포두가 의심의 눈초리로 허칠안을 바라보았다.
“아홉 명의 실종자, 궁중 차야 셋, 예부 사람 셋, 대리사 사람 셋……. 그들이 어떻게 동료를 속이고 화약을 몰래 들여올 수 있었을까요?”
허칠안은 제사 대전의 절차에 대해 잘 알지 못했고, 마무리를 책임지는 하급 관리와 차야들을 미처 심문하지 못했다. 하지만 여청의 말을 들으니 마음이 동했다.
“각 세 사람만으로는 동료의 눈을 속이고 몰래 화약을 운반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맞습니다. 왜 일부러 그 아홉 명을 분리시켰을까요? 만약 이 아홉 명이 전부 예부 하급 관리거나 대리사 하급 관리 혹은 궁중 차야라면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여청의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웃음은, 꽤나 매력적이었다.
그녀는 허칠안의 이런 점을 가장 높게 샀다. 총명하면서도 자신의 의중을 바로 파악할 줄 알았다. 그와 사건에 대해 논의하면 지치지 않고 도리어 회심의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허칠안은 말했다.
“따라서 분명히 그자들을 돕는 다른 자들이 있을 것입니다. 또한, 이자는 분명 자유롭게 황성을 드나들 수 있거나 화약을 황성으로 들여올 능력이 있는…….”
여기까지 말하다 보니, 허칠안은 다시금 여청과 서로 눈이 마주쳤고, 그들은 한 사건을 떠올렸다.
바로 금오위 기관(*旗官: 군대의 깃발을 드는 병사) 사건이었다.
제사 대전 전날에 발생한 사건으로 이 역시 그들이 직접 맡았던 사건이었다.
‘금오위 기관이 멸구(*灭口: 비밀을 감추기 위해 그 비밀을 아는 사람을 빼돌리거나 죽임)를 당했는데……. 멸구를 당하기 전에 아내에게 비밀을 누설하고 가족을 데리고 경성을 벗어나려고 했다……. 그리고 죽기 전에 마침 당직이었다……?’
허칠안은 통달한 듯 초석광과 금오위 기관(*旗官: 군대의 깃발을 드는 병사) 유한의 사건을 엮어 어렵지 않게 진상에 도달할 수 있었다.
‘요족은 대황산의 초석광을 채집하여 화약을 제조하고 영진산하 사당을 폭파하여 상백에 봉인된 물건을 꺼내기 위해 탄광민을 쫓아낸 거다.’
화약을 사용한 이유는, 황궁은 경비가 삼엄하여 뚫을 수 없지만 화약은 감쪽같이 들여오기만 하면 되기 때문일 터였다.
사천감 감정이든 인종 국사든 금군의 고품 무사든, 강자가 침입했다는 걸 감지할 수는 있으나, 화약 같은 사물(死物)은 알아차리기 어려운 법이었다.
유한은 일개 기관(*旗官: 군대의 깃발을 드는 병사)으로, 능력이 그리 뛰어나지 않았어도 황성에 몰래 화약을 들여왔다.
그는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고, 지시자는 그의 상급자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 상급자가 유한이 비밀을 누설하지 못하게 죽인 것이다.
‘제기랄, 요족의 일 처리 방식은 정말이지 다양하면서도 전략적이군. 유한의 상급자, 금오위 백호를 잡아서 고문하기만 하면, 모든 것을 알게 될 거야!’
허칠안은 재빠르게 의심 가는 인물을 확정했다.
‘바로 주 백호!’
허칠안은 몸을 일으켜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
“유 공공, 여러 대인 어르신들, 소인 공부에 볼 일이 있어 먼저 물러가보겠습니다.”
그는 여느 때와 다름없는 얼굴에, 가벼운 어조로 말했다.
“야경꾼들은 나를 따라 오시오.”
이내 허칠안은 서둘러 그들을 데리고 떠났다.
현장에 있는 관원들이 바보는 아니었다. 설령 허칠안의 태도가 정상적이라고 해도, 그가 여청과 대화를 나눌 때 여러 차례 표정에 변화를 보이던 것을 똑똑히 목격했다. 또한 그들이 나눈 대화 내용을 수박 겉핥기 식으로 들었다고 할지언정, 허칠안이 중요한 단서를 발견했다는 사실 정도는 충분히 추측해낼 수 있었다.
모든 관원들이 잠시 여청을 바라보았으나, 여청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였다.
유 공공이 손가락으로 탁자를 툭툭 치며 여청을 재촉했다.
“허칠안이 무언가를 발견한 것인가? 사건에 진전이 있는 것인가? 빨리 말하거라!”
여청은 속으로 생각했다.
‘나도 성심성의껏 도왔어. 물론 허칠안을 좋게 보지만, 딱히 특별한 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약혼자 같은 것도 아니잖아? 시간을 좀 끌어주는 것만으로도 이미 의리가 넘치는 거지.’
* * *
“허 대인, 우리 어디로 가는 건가?”
민산이 물었다.
“범인 체포하러 갑니다!”
의사당에서 벗어나니, 허칠안은 어떠한 거리낌도 없이 바로 설명했다.
은라 양봉과 다른 동라들은 의아한 눈초리로 허칠안을 바라보았으나, 주광효와 송정풍은 머릿속에 몇 가지 추측이 들었다. 초석광이든 기관 사건이든 두 사람 모두 개입했었기에, 다른 이들보다 알고 있는 것이 더 많았다.
이옥춘이 여기에 있었다면 아마도 확실히 갈피를 잡았을 터였다. 그렇지만 그는 사천감의 저채미에게 도움을 청하러 가 있었다.
“대장은 어째서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 거지? 오전 내내 도움을 청하고 있는 건가?”
허칠안이 양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무슨 성가신 일이 생긴 건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