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화. 물 먹이다
공부에서 점심을 먹고 난 허칠안은, 큰 의자에 걸터앉아 이를 쑤시면서 하급 관리와 동라들의 분주한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런데 이때 대리사, 예부, 궁중 차역(差役)들의 조사를 책임진 양봉이 사람을 파견해 소식을 전해왔다.
“대리사와 예부 모두 하급 관리들이 세 명씩 실종되고, 궁중 차역 중에서도 세 명이 실종되었다고 합니다.”
소식을 전하러 온 동라가 말했다.
황궁에서 지위가 비교적 낮은 환관도 차역이라 불렀다. 그들은 주로 잡일을 도맡았다.
“언제 실종됐지?”
“제사 대전의 마무리 작업을 맡은 관련 인원 전부를, 형부와 부아에서 손을 잡고 가둬놓았습니다. 우리에게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양 은라가 지금 형부 사람들을 상대하고는 있지만, 오래 버티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허칠안이 눈썹을 치켜세웠다.
비록 야경꾼이 된 지는 오래 되지 않았지만, 허칠안은 야경꾼 특유의 오기와 거만함이 이미 몸에 밴 터였다.
동라가 추가 설명을 했다.
“형부와 부아 모두 폐하의 명을 받아 사건을 수사하고 있습니다. 모두 황명을 받은 입장이라 우리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양 은라가 폐하께서 하사한 금패를 가지고 있지 않는지라 소인더러 속히 대인께 알리라고 명했습니다.”
일반적인 상황에서 야경꾼의 지위가 다른 관아보다 높은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상황만은 예였외다. 바로 황제의 성지(聖旨)를 받은 경우였다.
“가자. 가서 사람을 데리고 오자.”
허칠안은 제대로 뿔이 났다.
황제가 형부와 부아에게 동시에 사건을 수사하도록 한 것은 이상하지 않았다. 큰 사건은 여러 관아에서 공동 수사하는 것이 관례였다. 한 개 관아에만 의존한다면 우선 인력적인 한계가 있었다. 관아 내부에는 지정된 고정 업무가 존재했기에 다른 사건을 처리하는 데 인력과 물력을 전부 투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여러 관아에서 공동 조사하는 장점은 무척 명확했다. 하지만 폐단 또한 분명했다. 바로 서로 공로를 다툰다는 것이다.
‘나는 상백 사건이 해결되기만 하면 그만인 것이 아니다. 반드시 사건을 해결하여 눈에 띄는 공을 세워야 한다. 그래야만 죄를 사면할 기회를 얻을 수 있지! 공을 세우지 못한다면 야채 시장에서의 요참을 면할 수 없는 운명이 되어버린다……. 그 누구라도 내가 사건을 수사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면 과감하게 처단할 것이다.’
자신의 목숨과 연관된 일이라 허칠안은 추호의 망설임 없이 탁자 위에 놓인 흑금장도를 집어 들고 주변의 하급 관리들을 향해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들은 계속해서 조사하게. 올초부터 지금까지의 생산, 소모 등과 같은 기록들을 모두 하나도 빠짐없이 일일이 조사하게. 이상을 발견한 사람들에게는 은자 이십 냥을 보상하지.”
수석 수사관으로서 그는 보상금을 내걸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물론 보상금은 야경꾼 관아에서 부담했다.
허칠안의 말을 들은 야경꾼 관아 하급 관리들의 눈에 생기가 돌았다.
허칠안은 하급 관리들만 남기고 은라 민산과 다른 동라들을 거느리고 급히 공부를 떠나 말을 타고 형부를 향해 내달렸다.
* * *
형부는 그렇게 멀지 않았다. 전속으로 달리니 한 주향이 되기 전에 형부의 붉은색 대문이 허칠안의 시선에 들어왔다.
대문 밖에는 갑옷을 입고 예기를 지닌 갑사들이 두 열로 서 있었다.
양봉과 동라 여섯 명은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채, 갑사들과 대치하는 중이었다.
“형부는 성지를 받들어 사건을 수사하고 있소. 형부에 함부로 들이닥치거나 사건 수사를 방해하는 자는 바로 목을 내리칠 것이오!”
맨 앞에 선 중년의 군관이 한 손으로 도를 누르면서 야경꾼들에게 위협을 가했다.
그 뒤에 서 있는 수십 명의 갑사들도 칼자루를 누르고 있었다.
양봉의 이마에 핏줄이 섰다. 아마 이렇게 굴욕적인 순간은 겪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저렇게 보잘것없는 놈까지 감히 야경꾼 은라인 내게 호통을 쳐대다니!’
양봉도 칼자루를 누르고 있었으나 충동적으로 행동하지는 않았다. 수석 수사관이 현장에 없는 한, 그는 성지를 받들어 사건을 수사하고 있다고 말할 자격이 없었다. 형부에서도 야경꾼이 어명을 받들어 사건을 수사하고 있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일부러 사람을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막고, 야경꾼에게 물 먹여 야경꾼의 수사를 방해하려는 작정일 터였다.
“허!”
맨 앞에 있던 중년 군관이 냉소를 짓더니, 한 손으로 도를 누른 채 저 멀리에서부터 달려오는 야경꾼들을 응시했다.
“형부에서 사건 수사 중이니, 관련 없는 사람들이 형부에 난입하려 하면 바로 목을 내리치겠소.”
그렇게 말하던 군관의 눈이 돌연 커졌다. 그는 맨 앞에서 달려오는 젊은 동라가 허리춤에서 쇠뇌를 잡더니 거리낄 것 없이 방아쇠를 당기는 것을 발견했다.
화살이 빠르게 날아왔다.
중년 군관은 잽싸게 장도를 뽑아 날아오는 화살을 막았다. 군인으로 살며 몸에 배었던 살기가 바로 솟구쳐 올랐다.
‘일개 동라가 감히 나를 향해 화살을 쏘다니! 오늘 목이 잘려도 억울해 말거라! 줄곧 오만방자하게 굴던 야경꾼에게 이때 복수하지 않고 언제 복수하겠는가!’
중년 군관이 장도를 휘두르더니 호통쳤다.
“형부에 들이닥치는 자, 모두 죽이거라!”
갑사들이 잇달아 군도를 뽑더니 전장에 나갈 때의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허칠안은 말고삐를 잡아당겼다. 말이 소리를 지르며 앞발을 하늘 높이 치들었다. 허칠안이 황제가 하사한 금패를 꺼내들면서 호통쳤다.
“본관은 성지를 받들어 사건을 수사하러 왔다. 모두 물러나거라!”
중년 군관은 금패에 전혀 위축되지 않은 채 갑사들을 이끌고 길을 막아 나섰다.
“형부도 마찬가지로 성지를 받들어 사건을 수사한다. 관계자 이외에는 접근 불가다.”
“미련한 행동으로 스스로를 망치지 마라.”
허칠안이 실눈을 뜨더니 위협하는 어조로 말했다.
“형부에 들어갈 수도 있지만, 우선 우리 형부 사람이 들어가 통보해야하지 않겠습니까?”
중년 군관이 시위 한 명을 안으로 들여보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말을 전하러 간 시위가 돌아오지 않았다.
민산이 노하여 상대방에게 도를 겨누면서 호통쳤다.
“이런 죽일 놈들. 나를 감히 놀려?”
“다들 잘 들어라. 형부 대인께서 동의하기 전에 관아에 발을 들이는 자는 서슴없이 목을 칠 것이다!”
중년 군관이 냉소를 머금으면서 말했다.
“예!”
시위들이 우렁찬 목소리로 일제히 답했다.
‘형부에서 단서를 보여주지 않으려는 모양이다. 내가 아무리 애를 써도 이 놈들은 조사할 것을 다 조사하거나, 단서에 가치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사람들을 야경꾼에 넘기겠지……. 난 죄가 있는 몸이라 시간이 생명이라고!’
허칠안의 마음속에서 살기가 북받쳐 올랐다.
“기어코 막아 나서겠다면 내가 금패의 특권을 사용해도 날 탓하지 말거라.”
허칠안이 칼자루를 눌렀다.
“먼저 저지르고 보겠다 이거지?”
중년 남성이 흉악한 웃음을 짓더니 장도에 강력한 기기를 주입했다.
“일개 동라가 형부 앞에서 사람을 죽이겠다고?”
허칠안과 중년 군관은 형부 앞에 바로 섰다. 허칠안이 도를 빼들었다.
그제야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반응했다. 야경꾼 동료를 포함하여 형부를 지키던 사졸들까지 모두, 허칠안이 이토록 과감하게 도를 빼들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터였다.
허칠안이 도를 쥔 오른쪽 손목을 흔들었다. 그러자 지면에 혈선이 그려졌다.
이어서 중년 군관의 몸이 조금 흔들리더니, 콰당 뒤로 넘어졌다.
사졸 한 명이 황급히 앞으로 다가가 군관의 목을 만지더니 실성하여 소리쳤다.
“죽었어!”
야경꾼들의 안색이 변했다.
쌍방에 충돌은 있었지만, 사람을 죽이는 건 다른 문제였다. 이러면 일이 복잡해질 것이다. 더군다나 사망자는 형부 소속 군관이었다.
아무리 오만방자한 야경꾼이더라도 육부의 관아 밖에서 대놓고 사람을 죽였던 선례는 없었다.
사졸들이 일제히 몸을 돌려 허칠안을 향해 도를 겨누었다.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뭔 놈의 절학이 삼 초 만에 체력이 방전되냐고…….’
허칠안은 지속적인 전투가 불가능했다.
‘앞으로 기회를 봐서 절학을 얼른 바꿔야지.’
허칠안은 몸의 피로를 애써 감추고 금패를 사졸들에게 높이 쳐들어 보였다.
“성지를 받들어 사건을 수사하는 것을 방해하는 자는 모두 죽을 것이다!”
허칠안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사졸들을 쏘아봤다.
“당장 물러나거라!”
그가 큰 소리로 호통쳤다.
금패와 군관의 시체를 번갈아 보던 사졸들이 물러섰다.
허칠안은 도를 도실에 넣고, 은라 두 명과 동라 열두 명을 거느리고 형부 관아로 들어갔다.
가는 도중, 양봉과 민산 두 은라가 끊임없이 허칠안을 살폈다. 그들은 눈앞의 동라를 다시 알아가려는 듯싶었다.
민산이 눈썹을 찌푸리더니 입을 열었다.
“자네, 너무 충동적인 게 아닌가? 형부 대문 앞에서 사람을 죽이다니. 그것도 관직에 있는 사람을. 사후의 추궁이 두렵지 않은가?”
처음 사람을 죽인 탓에 미간에 서렸던 살기가 아직 사라지지 않은 허칠안이 구레나룻이 수북한 민산을 힐끗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나에게 사후가 있습니까?”
이 말에 민산이 멍해졌다.
허칠안은 냉소를 머금고는 말을 이었다.
“저는 이미 벼랑 끝에 몰렸습니다. 제게는 사건 진척과 단서가 생명이지요. 누군가 제가 사건을 수사하는 것을 방해한다면 저는 거침없이 목을 내리칠 겁니다.
형부와 야경꾼 관아의 관계가 워낙 좋지 않은데다가 부아에서도 공로를 뺏으려 하고 있으니 이 사람들 모두가 사건을 수사하는 데 걸림돌입니다. 제가 마음을 독하게 먹지 않으면 앞으로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사람이 튀어나와 저를 방해하겠지요. 내가 그들을 죽이지 않는다면, 그들이 나를 간접적으로 죽이는 것 아니겠습니까?
오늘 내가 눈치 없는 놈을 하나 자르면, 내일의 다른 눈치 없는 놈들이 나를 두려워할 것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이 또한 사람을 적게 죽이는 간접적인 방법인 것이고요.”
허칠안은 양봉과 민산 두 은라를 쳐다보며 애써 웃음을 지었다.
“양 금라 수하에 있는 두 분께서도 제 일 처리 능력을 불신하고 있으니, 하물며 부아와 형부는 오죽하겠습니까.”
그가 이 말을 하는 이유는 무척 분명했다. 수석 수사관으로서의 위엄을 세우려는 것이었다.
이에 양 은라와 민 은라가 웃으면서 말했다.
“허 대인, 우리가 허 대인을 만만하게 봤네.”
이 ‘허 대인’이야 말로 황명이 아닌 그들의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호칭이었다.
* * *
형부 관아는 무척 컸다. 허칠안은 가는 도중 하급 관리 한 명을 붙잡아 길을 안내하도록 했다.
힘없는 하급 관리들은 흉악하기 그지없는 야경꾼을 두려워하기 마련이었다. 그는 감히 야경꾼들의 요청을 거스르지 못하고 고분고분하게 그들을 의사당(议事厅)으로 안내했다.
그들은 대원(大院)을 지나 형부의 의사당에 도착했다. 의사당은 무척 널찍한 대청이었다. 그 안에는 탁자가 없이 의자만 정연하게 배열해 놓았다.
‘양 옆으로 갈라 앉은 두 관아의 사람들이라.’
관아 사이의 경계가 분명했다.
좌측은 비포에 금계(锦鸡)를 수놓은 이품 형부상서를 비롯한 형부 관원들이었고, 우측은 비포에 운안(云雁)을 수놓은 사품 경조부 진 부윤을 비롯한 부아 관원들이었다.
중간에는 높은 우사모에 망포를 입은 환관이 앉아있었다. 수염 하나 없이 실눈을 뜬 환관은 괴상야릇한 느낌을 줬다.
대환관의 옆에는 환관 두 명이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