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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97화 (97/712)

97화. 수석 수사관 (2)

진서당의 은라는 성이 양(杨), 이름이 봉(峰)이었다. 피부가 까무잡잡하며 키가 크고 야윈 중년 남성이었다. 미간에는 무척 큰 까만점이 있었다.

금옥당의 은라는 얼굴에 구레나룻이 수북한 민산(闵山)이라 불리는 남성이었다. 얼굴에는 칼자국이 선명하여 면면이 흉했다.

춘풍당의 이옥춘까지, 은라 세 명에 동라 열두 명이 무척 빠르게 전원에 집합했다.

관아의 관례대로, 수사 직전에는 전원에 집합하여 수석 수사관의 지시를 들었다.

“어제 상백에 폭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영진산하 사당이 무너졌습니다. 폐하께서는 진노하시어 관아에 보름 내로 진상을 밝히고, 놈을 붙잡으라는 어명을 내리셨습니다.”

허칠안이 한 손으로 도를 짚고, 허리와 가슴을 쫙 편 채, 예리한 눈빛으로 모인 사람들을 훑으면서 말했다.

“저는 폐하의 명을 받들어 이번 사건의 수사를 책임지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수사에 최선을 다해 협력하여 황은에 보답해야 합니다.”

“예!”

모인 사람들이 일제히 외쳤다.

양연의 수하에 있는 은라와 동라들이라 다들 말을 잘 듣는 편이었다. 다만 그들에게는 조금 내키지 않는 부분이 있긴 했다.

‘일개 동라인 허칠안에게 과연 이렇게 큰 사건을 처리할 능력과 경험이 있단 말인가?’

‘폐하께서 어찌 허칠안을 수석 수사관으로 지명했냐 이거지.’

야경꾼 관아를 떠나 날렵하게 말 등에 올라탄 민 은라가 허칠안에게 물었다.

“허 대인, 지금 어디로 가는 건가?”

“물론 현장입니다.”

야경꾼 대오는 황성으로 쏜살같이 내달렸다. 그들은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황성을 가로지르는 지름길을 택했다.

황성을 에둘러서 현장에 갈 수도 있었지만 허칠안은 금패를 손에 넣었다는 이유로 최단 시간에 도착할 수 있는 선로를 택했다.

어떠한 사건 수사라도 시간이 관건이었다. 그러기에 일분일초를 다퉈야 했다.

* * *

야경꾼들이 금군을 따라 상백에 도착했다. 상백의 풍경은 단 하루 사이에 몰라 보게 변해 있었다. 호숫가와 한백옥고대를 이어놓은 장랑이 폭발에 의해 망가졌고, 호수 중심에 있던 한백옥고대도 온데간데없어져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상백의 수면 위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이 광경을 보고 그 누가 며칠 전에 이곳에서 성대한 제사 대전을 치렀으리라고 가히 상상할 수 있겠는가.

호숫가에는 작은 배 한 척이 있었다. 허칠안이 말을 꺼냈다.

“우리 몇 사람은 물밑으로 내려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허칠안은 앞장서서 작은 배에 올라탔다. 그는 손을 가슴에 넣어 옥석경의 뒷면을 잡아당겼다. 그리고 대유가 선물한 ‘마법 책자’를 꺼내 책자에서 한 장을 찢은 뒤 손에 넣었다.

다른 은라들도 허칠안의 뒤를 따라 배에 올라탔다. 동라 열두 명과 금군 대오는 호숫가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이옥춘이 노를 저어 호수 중심에 도착했다.

키가 크고 야윈 은라 양봉이 허칠안을 힐끗 보더니 입을 열었다.

“허 대인, 내가 내려가 보겠네.”

허칠안이 말했다.

“그럼 함께 내려가 봅시다.”

말이 끝나자, 허칠안은 바로 종잇장을 불태워 망기술을 시작했다.

허칠안은 패도를 뽑아 입에 물고 입수했다.

차디찬 호수물이 모공을 제대로 자극했다. 흑금장도를 물고 있는 허칠안의 입으로 기포가 나왔다.

그는 최선을 다해 눈을 크게 뜨고, 물밑 상황을 살폈다.

한백옥고대의 기초는 호수 밑까지 연장되어 있었다. 고대(高臺)가 무너져 단절된 곳은 수면과 일 장(丈) 떨어진 곳이었다.

인기척 소리가 들려와 뒤돌아보니, 양 은라가 따라오고 있었다.

피부가 까무잡잡한 양 은라 역시 한백옥고대가 무너진 상황을 살피더니, 마음속에 판단이 섰다. 그는 자신의 추리를 마음속에 간직했다. 그는 지면으로 돌아가면 중임을 맡은 어린 동라의 능력을 시험할 작정이었다.

이때 양 은라는, 허칠안이 한백옥고대의 기초를 따라 물밑으로 잠입하는 것을 발견했다.

그도 얼른 뒤따라갔다.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시야가 흐려지면서 나중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양 은라는 더 이상 따라가지 않고 홀로 먼저 수면 위로 올라왔다.

수면 위로 올라온 양 은라가 작은 배에 올라탔다. 그는 한편으로는 운기하여 젖은 옷을 말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주변을 살폈다.

“허 대인은 호수 맨 밑으로 내려간 거 같네. 거기에는 빛이 스며들지 않아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네.”

* * *

허칠안은 호수 맨 밑으로 내려왔다. 그는 눈에서 아직도 청기를 발사하고 있었다. 흑암 중에는 미약한 두 갈래의 빛밖에 보이지 않았다.

호수 밑에는 흙이 쌓여있었다. 한백옥고대의 기초를 중심으로 여러 돌기둥이 특수한 배열로 박혀서 한백옥고대를 둘러싸고 있었다.

‘이건 모종 진법인가 보군…….’

허칠안의 추측이었다.

대봉 경성에 진법을 설치할 수 있는 자는 사천감의 술사들밖에 없었다. 즉, 당시의 사천감도 영진산하 사당의 건설에 참여했다는 의미였다.

‘그럼 상백의 비밀은 황제를 제외하고 감정 그 노인네도 알고 있겠네……. 그럼 감정의 병환이 진짜란 말인가? 아니면 영진산하 사당이 무너져서 영향을 받은 건가? 여기에는 대체 무슨 비밀이 있단 말인가?

상백의 비밀을 꾀하는 세력과 영진산하를 파괴한 놈은 정상급 인물이 틀림없다……. 나 같이 작은 동라는 끼어들었다가 언제든지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질 것 같은 예감인데……. 내가 진상을 찾아내더라도, 황실에서 나를 보호할 수 있을까?’

생각이 많아지자 허칠안의 마음이 무거워졌다.

‘위연은 이미 나에게 길을 제시했다. 해결 못할 일에 봉착하면 관아에 알리고, 양 금라에게 통보하라고……. 이는 무척 분명한 암시다. 난 그저 앞길을 정찰하는 정찰병, 추적을 맡은 사냥개에 불과해. 정 안 되면 죽음을 가장하여 이 일에서 몸을 빼고 경성을 떠나면 그만이다.’

생각이 서자, 그는 다시 헤엄쳐 자신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돌기둥에 접근했다.

돌기둥에는 구불구불하게 생긴 이상한 문자가 새겨져있었다.

허칠안은 돌기둥에 새겨진 것이 모종의 문자인 것은 알아보았으나, 문화적인 한계로 그 뜻을 해석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그 문자들을 머릿속에 기억해뒀다.

여러 돌기둥을 더 검사해본 결과 모두 동일한 문자가 새겨있었다. 심해 공포증으로 인해, 허칠안은 이 칠흑 같은 호수의 맨 밑에서 한시바삐 벗어나고 싶었다.

적막이 흐르는 호수의 바닥에서 허칠안은 공포를 느꼈다. 등 뒤에서 자신을 지켜보는 두 눈이나, 앞에서 거대한 검은 그림자가 나타날 것만 같은 공포가 밀려왔다.

수면 위로 올라온 허칠안은 작은 배에 올라타고는 입에 물었던 흑금장도를 다시 도실에 꽂아 넣고, 운기하며 옷을 말렸다.

그의 몸에서 증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이옥춘은 가만히 그를 지켜보았다.

‘이 녀석, 내 수하에 들어오고 나서 연기경에 들어섰는데 얼마나 지났다고 기기가 이렇게 깊어졌어?’

“네 기기를 볼 때, 최근 연기경에 들어선 것 같지는 않구나.”

이옥춘이 의아하여 물었다.

“매일 좌선을 두 시진씩 했을 뿐입니다.”

허칠안이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

이옥춘은 이 화제로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다는 듯 손을 저었다. 그리고는 양 은라를 힐끗 쳐다보면서 입을 열었다.

“우리 양 은라가 네 실력을 믿지 못해. 방금 전 우리에게 물밑 상황에 대한 자신의 분석을 말해줬는데, 수확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한 마디 덧붙였지. 만약 네 분석이 그와 같다면 네 능력을 인정하겠다고.

다들 한 금라 밑에서 일하는 것이니, 무언가를 알아냈으면 굳이 숨길 필요가 없지 않겠느냐.”

키가 크고 야윈 양봉은 웃더니 이에 반박하지 않았다.

허칠안은 구레나룻이 수북한 민산을 힐끗 쳐다봤다. 비록 말은 하지 않았지만 지켜보는 눈빛을 보니 허칠안이 얼른 입을 열기를 기다리는 모양이었다.

허칠안이 흰자위를 희번덕이더니 입을 열었다.

“한백옥고대가 단절된 곳을 보아서는, 폭발 지점이 물밑이 아닌 사당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화약은 제사 대전이 끝나고 나서 사당 안에 숨겨놓았겠지요. 아마 제사 대전이 끝나고 한 시진 내에 숨겨 놓았을 테고요.

만약 사전에 사당 안에 숨겨 놓았다면, 화약 냄새가 어지간히 심한 게 아니니 당시 폐하께서 사당 안으로 들어갔을 때 화약을 발견했을 것입니다. 돌아가면 제사 대전의 마무리 작업을 맡은 차역(差役)들과 대리사 하급 관리, 예부 하급 관리들을 체포하여 일일이 심문하여 주십시오. 이 일은 양 은라가 맡아 주시고요.

그밖에 관아에 통지하여 폐하께 사천감 백의 몇 명을 파견해달라고 부탁해야 하는데, 이건 대장이 해주십시오. 음, 저는 사천감 채미가 와서 도와줬으면 좋겠습니다.

민 은라께서는 저와 공부(工部)에 가시지요. 화약 창고에 가서 기록을 한번 뒤져봐야겠습니다. 당량(当量)이 이렇게 많은 양의 화약을 외부에서 운반해왔을 리 없으니까.”

허칠안이 잠깐 멈칫하더니 한 마디 덧붙였다.

“일전에 희생된 사졸들의 시체를 한번 봤으면 하는데요.”

허칠안의 분석을 듣고 난 은라 세 명은 서로 마주보았다. 그들은 사건 수사를 할 때의 허칠안은 믿을 만하다고 판단을 내렸다. 수사 방향이 뚜렷하고, 논리가 면밀할 뿐만 아니라 임무도 빈틈없이 안배했다. 양봉과 민산 모두 허칠안에 대한 경시와 불신을 이로써 버리게 되었다.

그들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이렇게 빠른 시간 내에 이렇게 명확한 방향을 제시하라고 한다면, 그들 자신은 불가능했으리란 것을. 그들이었다면 수사 방향 하나를 잡는 데도 무척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 * *

당일 희생된 금군들의 시체는 군영에 보관되어 있었다. 그들은 금군을 따라 군영의 한 장막 밖에 도착했다. 그 안에는 흰색 천으로 덮은 시체들이 있었다.

부근의 장막 두 곳도 시체 보관용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이번에 상백 부근에서 순시하던 사졸이 총 삼백이십 명인데, 모두 희생 당한 것이었다.

허칠안은 흰색 천을 들어 시체들을 일일이 살폈다.

“자네, 검시할 줄도 아나?”

양봉이 점점 엄숙해지는 허칠안의 기색을 보더니 물었다.

“뭘 발견한 건가?”

“무척 큰 걸 발견했습니다.”

“말해 보시게.”

은라 세 명의 정신이 번쩍 들었다. 길을 안내했던 금군 수령도 바로 눈길을 돌렸다.

허칠안이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제가 아직 보잘것없는 동라라, 싸움이 벌어지면 대인 세 분께 의지해야 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모든 사졸들의 시체는 천편일률로 똑같았다. 모두 모종의 요법(妖法)에 의해 정기(精氣)와 피가 깡그리 흡수되었던 것이다. 몸에는 딱히 다른 상처가 없었다.

사졸들을 죽인 수단으로 볼 때 연기경이 상대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만약 놈이 갑자기 나타난다면 허칠안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손을 휘저으며 한 마디 내뱉는 것뿐일 터였다.

‘출격!’

그리고는 잽싸게 사람들 뒤에 숨어야 할 듯했다.

* * *

허칠안은 민산과 함께 공부에 도착했다. 금패만 내들면 어디를 가나 거침없이 통과되었다.

그가 화약 창고를 관리하는 관원을 불러 말했다.

“본관이 최근 한 달 동안의 화약 생산과 사용 기록을 봐야겠다.”

물론 기록이야 조작하기 무척 쉬웠다. 그중 가장 잘 쓰이는 수단은 사용량을 대폭 늘리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포탄을 한 차례 제조하는데는 이백 킬로그램의 화약이 필요한데, 수요량을 삼백 킬로그램으로 기록하는 것이다.

또 다른 예를 들면, 운송해온 원재료로는 화약 이백 킬로그램을 제조할 수 있는데, 일부러 원재료의 입고량을 줄여 여분의 화약 완제품을 사사로이 숨겨놓는 방법도 있었다.

다만 이런 수단은 검사만 하면 바로 들통났다. 흔적 없는 범죄란 존재하지 않는 법이었으니 말이다.

공부의 관원들을 믿지 못하는 허칠안은 야경꾼 관아의 하급 관리들을 불러왔다. 그러자 수십 명의 하급 관리가 공부로 몰려들었다.

이건 작업 과정이 무척 번잡했다. 그들은 원재료 구매 지점에 직접 가서 증거를 수집해 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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