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화. 수석 수사관 (1)
허칠안이 후원에 도착하자 허영음이 의기소침해서 지붕 아래에 앉아 있었다. 정말 딱 콩알만 한 녀석이었다.
집안에 자신과 놀아줄 사람도, 자신을 거들떠보는 사람도 없었다.
머리가 좋지 않은 아이도 큰 오라버니에게 일이 생겼다고 하자 우울해 했다. 거위 새끼들을 찾아 놀지도 않고, 고개를 떨어뜨리고는 나뭇가지로 바닥에 마구 낙서만 해댔다.
“이건 어느 집안의 어리석은 콩알이래?”
허칠안이 멀지 않은 곳에서 웃음을 터뜨렸다.
허영음은 머리를 홱 들더니, 허칠안을 몇 초 간 멍하니 바라보고 나서야 작은 얼굴에 웃음꽃을 활짝 피웠다.
“큰 오라버니!”
허영음은 몸을 일으키더니 짧은 다리로 종종 뛰어왔다. 아이가 두 팔 벌려 허칠안을 와락 덮쳤다.
허칠안도 허영음을 향해 마주 달려왔다. 하지만 웃음이 만발한 허영음을 지나 그 뒤에 있는 허영월을 와락 껴안았다.
허탕을 친 허영음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우우우……. 큰 오라버니……!”
한편 허영월은 두 손에 힘을 주어 허칠안의 허리를 꼭 끌어안았다. 허칠안은 그녀의 등을 쓰다듬으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아무 일 없어. 이렇게 무사히 돌아왔잖아.”
이에 허영월이 더 심하게 울음을 터뜨렸다.
지난번에 허칠안이 형부 관아에 갇혔을 때도 그녀는 무척 속상해했지만 어쨌거나 그때는 사적인 원한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야경꾼 관아에 갇혔으며, 칠일 후 야채 시장에서 요참으로 처형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두 사건의 성질은 전혀 달랐다.
‘이 시대의 여동생은 너무 좋아. 귀여워.’
허칠안의 전생에는 여동생이 없었다. 사촌 여동생은 있었는데, 애교를 부리거나 친밀하기는커녕 허칠안을 보기만 하면 냉소를 머금으면서 ‘멍청이’라고 놀려댔다.
“큰 오라버니, 큰 오라버니!”
허영음이 선 자리에서 폴짝폴짝 뛰면서 기뻐했다.
“어머니에게 알릴 거예요! 어머니는 오라버니가 돌아온 줄 모르고 있을 거예요!”
허칠안은 담을 넘어 온 것이 아니라 대문으로 들어왔다고 말하려다가 말았다. 그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래…… 잠깐.”
허칠안이 콩알이를 불러 세웠다.
“너 이렇게 기분 좋은 게, 저녁에 밥을 세 그릇이나 먹을 수 있어서 그런 거지?”
이에 허영음은 깜짝 놀랐다.
‘역시 큰 오라버니는 대단하다!’
허영음은 자신의 속마음을 들키자 놀라서 달아났다.
* * *
허영월은 생각이 너무 많았다. 그녀는 내향적인 성격에 뭐든 마음속에 묻어두는 유형이었다. 큰 오라버니가 돌아오자 자신을 누르고 있던 근심 걱정들이 한꺼번에 덜어져 울음이 터질 수밖에 없었다.
여종이 문을 나서자 오누이가 끌어안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여종은 기쁨에 겨워 큰 소리로 외쳤다.
“큰 공자님께서 돌아오셨습니다!”
그제야 허영월은 아직 출가도 하지 않은 자신이 오라버니의 품에 안겨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오라버니의 품에서 벗어나 훌쩍이면서 고개를 떨어뜨리고 똑바로 섰다.
허칠안은 여동생의 손을 잡고 규방으로 들어갔다. 여종은 차를 올리고는 조용히 옆에 서서 큰 공자님과 큰 아가씨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가서 하인들에게 일러라. 물을 좀 덥혀두라고.”
허칠안이 분부했다.
여종이 나가서 하인들에게 말하자, 하인들의 안색이 변하더니 고개를 절레절레하면서 거절했다.
여종이 돌아와서는 억울한 표정으로 큰 공자님께 하인들의 반응을 일렀다. 그러자 큰 공자님이 무척 크게 화를 냈다.
‘이놈들 봐라? 눈에 뵈는 게 없는 모양이구나.’
“그럼 네가 가서 끓여라.”
허칠안이 말했다.
비록 내키지는 않았지만, 감히 거절하지 못한 여종이 입을 삐죽거리며 자리를 떴다.
여종이 나가자 허칠안이 고개를 돌려 허영월을 향해 웃음을 짓더니, 입을 열었다.
“폐하께서 나에게 공을 세워 죄를 면할 기회를 주셨다. 그러니 잠깐은 무사할 거야.”
허영월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다가 동료와 몸싸움까지 하신 거예요?”
허칠안은 일의 경과를 요약해서 알려주었다. 허영월은 듣더니 무척 격분하며 주먹을 꽉 쥐더니 입을 열었다.
“큰 오라버니가 나서면 제 마음이 놓입니다.”
그녀는 보기 드물게 환하게 웃었다. 자랑스러움으로 꽉 차있는 얼굴이었다.
허칠안은 저도 모르게 동생의 볼을 조금 잡아당겼다.
허영월은 멋쩍었는지 바로 고개를 떨어뜨렸다.
* * *
목욕을 마친 허칠안은 야경꾼 제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는 허영음과 함께 지붕 아래에 나란히 앉아 커다란 사발을 들고 면을 입에 마구 쑤셔 넣었다.
‘얼마나 따뜻한 장면인가.’
허칠안이 말했다.
“영음아, 내 고기랑 네 달걀을 바꾸는 건 어때?”
허영음이 잠깐 생각해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하면서 입을 열었다.
“싫어요. 어머니가 그랬어요. 저번엔 오라버니가 저에게 사기 쳐서 제 만두를 가져간 거라고.”
“너도 오라버니가 너에게 사기를 쳤다고 생각해?”
콩알이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폼이 골똘히 생각하는 것 같았다.
“모르겠어요.”
“내가 너에게 사기 칠 리가 없잖아. 큰 오라버니는 지금 네 달걀을 먹으려는 것이 아니라 그저…….”
허칠안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허영음은 면을 담을 사발에 대고 ‘퉷퉷’하면서 침을 뱉었다.
그러자 허칠안이 멍하니 허영음을 쳐다봤다.
“둘째 오라버니가 가르쳐준 거예요.”
‘……역시 글 좀 읽었다 하는 놈들이란.’
허칠안은 막내 동생의 달걀을 노릴 생각을 버렸다. 그는 고개를 떨어뜨리고 면을 먹었다.
하지만 이대로 넘어가지 못하는, 심보가 고약한 허칠안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영음아, 이 면 먹으면 안 되겠는데?! 독이 있어!”
허영음이 눈을 크게 뜨고 자신의 다리 위에 놓은 사발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는 큰 오라버니를 다시 보더니 대경실색했다.
허칠안이 그녀에게 조곤조곤 설명을 시작했다.
“예전에 네가 넘어져서 무릎이 까졌을 때, 아버지가 침을 네 상처에 발라준 적 있잖아.”
허영음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의 침은 말이야……. 음, 나쁜 것들을 죽일 수 있어. 그게 무슨 뜻이겠어? 침이 일단 입을 떠나면 독이 된다는 거지. 네가 아까 면에 침을 뱉었기 때문에 침이 이제는 독이 되어 면에 퍼진 거다. 그러니 면을 더 이상 먹어선 안 돼.”
허칠안은 자신의 말에 창백해진 허영음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럼 저 죽는 거예요?”
허영음은 입술을 오므리더니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기세로 물었다.
“죽지는 않겠지만, 배가 며칠 아플 거야.”
그러자 고개를 끄덕이던 허영음이 다시 면을 먹기 시작했다.
허칠안은 어리둥절해서 머릿속 가득 물음표만 띄웠다.
* * *
면을 다 먹은 허칠안은 허신년의 방에 들어가서 자신의 옥석경을 찾아 품에 넣었다. 그러다가 탁자 위에서 문진에 눌려있는 종이 몇 장을 발견했다.
종이에는 무척 조잡한 글씨체의 글씨가 촘촘하게 쓰여 있었다. 이건 허칠안이 처한 상황에 대한 분석이었다. 사천감과 운록서원이 어떤 작용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허신년의 판단이었다.
아마도 야밤에 서재에 앉아 고민하다가 손이 가는 대로 적은 모양이었다.
‘우리 동생 그래도 능력이 대단하다니까…….’
허칠안은 웃음을 지으며 서재를 떠났다.
* * *
그는 전속으로 달려 관아에 도착해, 위연을 찾아갔다.
오래 전부터 허칠안을 기다리고 있던 위연이, 양연의 옆자리를 가리키며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
“앉거라.”
위연이 입을 열었다.
“이 사건은 금옥당(金玉堂), 춘풍당, 진서당(镇邪堂) 삼당이 협력해서 수사할 거다. 수석 수사관은 네가 맡거라.”
허칠안이 이에 깜짝 놀랐다.
위연이 웃으면서 말했다.
“폐하께서 친히 내리신 어명이시다.”
위연과 시선이 마주치자, 허칠안은 이 사건을 통해 위연이 자신을 진급시키고자 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단순히 수사에 협력하는 일개 수사관이 아니라 수석 수사관으로 그를 임명한 것이다.
허칠안이 권종을 펼쳐 자세히 살피더니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상백에 뭔가를 봉인했던 건 아닙니까?”
위연의 눈빛이 변했다.
늘 무표정이었던 양연의 얼굴에도 놀라운 기색이 서렸다.
위연은 오늘 아침에야 그에게, 상백 밑에 뭔가를 봉인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양연보다 총명한 남궁천유는 어젯밤 상백의 이변을 겪고 나서야 의부가 공문서 창고에서 자료와 권종들을 열람할 때의 광경을 연상하여 추측을 해봤던 참이었다. 물론 그도 확신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눈앞의 이 동라는 단도직입적으로 상백 밑에 뭔가를 봉인하지 않았냐고 물었다.
위연이 뜻밖이라는 표정 대신 웃음을 지으면서 물었다.
“네 추리를 말해 보거라.”
죄인의 신분을 벗지 못한 허칠안은 위연 앞에서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지 못해 안달이었다.
“대봉인들에게 상백은 금지 구역이지만, 외부인들에게 상백의 유일한 가치는 정국 신검이겠죠.”
허칠안은 권종으로 시선을 돌리면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 위에는 정국 신검이 그대로 있다고 적혀 있습니다. 그럼 놈의 목표는 다른 곳에 있다는 말일 겁니다. 따라서 소직은 영진산하에 뭔가 있을 것이고, 그걸 왜 상백에 두어야만 했나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소직이 내린 결론은, 정국 신검으로 그걸 봉인해야 한다는 겁니다.”
허칠안은 결과를 근거로 역추리 과정을 거쳤다.
허칠안의 뚜렷한 사고와 면밀한 논리를 듣고 난 양연은, 이 부하에 대한 호감이 상승하는 것을 느꼈다.
허칠안은 자질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머리가 좋고 실력이 훌륭했다. 그는 허칠안이 앞으로 큰 인물이 되리라 예상했다.
“위 공께서는 진작 아셨던 것이지요?”
허칠안이 넌지시 떠보았다.
위연은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절레절레하면서 입을 열었다.
“폐하께서 분명히 말씀하지 않으셨다. 마음속에 추측은 있었다만…….”
그러면서 그는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허칠안에게 경고했다.
“네 임무는 영진산하 사당을 폭발시킨 놈을 찾는 일이다. 그 물건을 되찾는 일은 너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임무 수행 과정에서 해결하지 못할 일에 봉착하면, 양 금라를 찾으면 된다. 그가 나서줄 거야.
폐하께서 금패 하나를 하사하셨다. 그 금패를 지니면 황성을 자유로이 오갈 수 있지. 후궁과 몇 군데 특별한 곳 외에는 이 금패를 가지고 황성 어디든 다닐 수 있을 거다.”
허칠안이 명을 받들고 물러갔다.
위연은 허칠안의 뒷모습을 지켜보다가, 계단을 내려가는 발걸음 소리가 들리자 양연에게 물었다.
“감정이 병 들었다지?”
양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위연의 눈동자가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는가 싶더니, 이내 한 마디 뱉었다.
“교활한 노인네!”
* * *
호기루를 떠난 허칠안은 춘풍당으로 부리나케 달려가 말했다.
“대장, 지금 당장 가서 금옥당과 진서당의 은라 두 분을 불러 관아 전원에서 집합합시다. 얼른!”
이옥춘은 순간 멍해졌다가 눈을 크게 뜨고 허칠안을 노려보면서 입을 열었다.
“네가 대장이냐? 내가 대장이냐?”
‘어린 놈이 지금 나를 마구 부려먹고 있잖아!’
이때 허칠안이 금패를 꺼내더니 입을 열었다.
“저 지금은 폐하께서 친히 지정한 수석 수사관입니다. 오늘부로 우리 각자의 예를 차립시다. 저는 대장께 대장이라 부르고, 대장은 저를 대인이라 불러주십시오! 자, 대장, 대인을 도와 은라 두 분을 불러주십시오!”
허칠안의 말에 의기소침해진 이옥춘이 자리를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