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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93화 (93/712)

93화. 폭발

궁성을 떠나 황성을 나선 허신년은 두 동라와 작별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그는 말을 타고 천천히 외성방향으로 달렸다. 그의 미간은 우려로 가득 차 있었다.

‘장공주한테만 의지해서는 안 돼. 비록 승낙은 했지만 얼마나 힘쓸지는 아직 모르는 일이다. 아버지가 사천감에 가본다고 했는데, 술사들에겐 형님을 구할 방법이 있는지 모르겠군. 내년 춘시에는 반드시 급제하여 더 높은 지위에 올라 더 많은 권력을 수중에 넣어야 돼. 아니면 아무 일도 해낼 수 없어.’

허신년이 물주머니를 들어 바짝 마른 입술을 적셨다. 그리고는 옷 안에 넣은 옥석경을 만져보았다.

* * *

동성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황혼이 내린 시각이었다.

동성의 양생당은 빈민가였다. 경성의 가장 밑층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행상과 심부름꾼, 도적과 비적들이 수두룩했다.

도중에 만난 주거민들은 낡아빠진 겨울옷을 입었고, 모두 한결같이 무척 야윈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 허신년을 바라보는 눈빛은 굶주린 승냥이가 먹잇감을 보는 눈빛과 흡사했다.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린 빈민들은 허신년이 입은 유삼을 보고도 그나마 이성을 잃지 않은 것이라 볼 수 있었다.

이 구역의 황토집들은 허름하기 그지없었다. 무질서한 데다가 길가에는 쓰레기더미가 가득했다. 게다가 공기 중에는 분변의 구린내와 소변의 지린내가 섞여 고약했다.

이때 얼굴이 누렇고 몹시 수척한 아이가 용기를 내어 허신년을 가로막았다.

“나리, 돈 좀 주십시오……. 칠일 째 굶고 있습니다.”

‘칠일이나 굶었으면 진작 죽었어…….’

허신년은 본능적으로 비아냥거렸다. 하지만 침묵하며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그리고는 돈주머니에서 쇄은자를 하나 꺼내 던져주었다.

눈앞의 아이는 누런 피부에 뼈만 남은 상태였고, 두 눈에 힘이라고는 없었다. 칠일까지는 과장이겠지만 무척 오래 굶은 건 사실이었다.

허신년이 쇄은자를 던져주는 장면에 그의 앞을 가로막았던 아이의 눈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던 빈민가 아이들의 눈에도 빛이 반짝거렸다.

물론 그들의 눈에서 반짝거리는 것은 탐욕과 욕망이었다.

일고여덟 명쯤 되는 아이들이 방금 전 아이의 행동을 따라 허신년의 말을 둘러쌌다. 빈민들도 조용히 다가섰다.

“나리, 돈 좀 주십시오.”

“열흘이나 아무것도 먹지 못했습니다.”

어른과 아이들은 돈을 내놓지 않으면 길을 내지 않을 기세로 다가왔다.

허신년은 예리한 눈빛으로, 돈주머니를 향해 손을 내미는 남자를 강제 후퇴시키면서 호통쳤다.

“조용!”

그러자 그 남자는 행동을 즉각 멈추고, 주변의 사람들도 자발적으로 입을 닫았다.

“썩 물러가지 못할까!”

허신년은 기를 단전으로 모아 다시 한 번 호통쳤다.

말을 둘러싸고 있던 아이들과, 어른들의 마음속에 공포가 옥죄어왔다. 그들은 반사적으로 물러나더니 다시는 접근하지 않았다.

팔품 수신경 유생은, 타인의 언행을 규범화하고 언출법수의 기능을 약간 흉내낼 수 있었다.

허신년은 머리를 끄덕이면서 말에 채찍을 가했다. 그는 그 구역을 지나 얼마 지나지 않아 양생당에 도착했다.

몸을 돌려 말 등에서 내린 허신년은 말을 밖에 묶어놓으면 도둑맞을 것 같아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그가 대문으로 들어가자 늙은 하급 관리 한 명이 정원을 청소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하급 관리가 주름이 자글자글한 얼굴을 들어 그에게 물었다.

“공자, 무슨 일이신지요?”

허신년이 물었다.

“양생당에 혹시 승려 한 분이 계십니까?”

“항원 대사를 말씀하시는 거지요. 이를 어쩐담. 이미 떠났는데. 떠난 지 이틀이 됐습니다…….”

“언제 돌아오십니까?”

“모르겠습니다. 말로는 사제의 소식이 있어 며칠 나갔다 올 거라고 했는데…….”

늙은 하급 관리가 고개를 절레절레하면서 답했다.

허신년은 실망에 찬 표정으로 양생당을 나가 동성을 떠났다.

* * *

황혼이 내린 시각, 저녁 식사를 마친 장공주가 서재에서 시위장을 소견했다. 시위장은 야경꾼 관아에서 수집해온 정보를 가지고 들어왔다.

장공주는 일의 경과를 듣고 나서 물었다.

“허칠안과 주 은라가 평소 원한 관계였던가?”

시위장이 고개를 절레절레하면서 말했다.

“소인 일부러 그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두 사람은 안면도 없는 사이였습니다. 다만 그 은라가 사적으로 동라 허칠안을 향한 시기와 증오를 종종 드러냈다고 합니다.”

“정 주사의 가족들은 연좌제로 교방사에 보내지는 것으로 결론이 난 건가?”

“아닙니다.”

장공주는 더 이상 묻지 않고 사색에 빠졌다가 무심결에 한마디 던졌다.

“이 일에 대해, 자네는 어떻게 보는가?”

젊은 시위장이 잠깐 망설이더니 입을 열였다.

“소직 알아본 결과, 집결 당시 허칠안은 지각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주성주에게 구타를 당했다고 합니다. 이를 볼 때, 허칠안이 일부러 시비를 걸었던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최근 몇 해 동안, 야경꾼들이 죄를 범한 관원들의 집안 여인들을 희롱하는 사건이 비일비재해졌습니다.

연좌제의 적용 대상이 아닌 아닌 여인들도 그들 손에서 무사히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고요.”

이와 유사한 사건은 수두룩했다. 다만 그 누구도 죄를 범한 관리 가족들을 위해 나서지 않았을 뿐이다.

아무리 높은 관원이라 하더라도 죄인이라는 낙인이 찍힌 순간, 사람들은 그들에게 삿대질하며 침을 뱉었다. 그 누가 죄인 가족의 무고(無辜) 여부에 관심이나 두겠는가.

시위장이 말을 이었다.

“또 알아낸 게 있습니다. 당시 주 은라가 허칠안이 도를 뽑게 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고 합니다. 결국 그의 목적을 달성은 했지만…….”

장공주가 조금 웃으면서 말했다.

“일개 동라에게 그렇게 어마어마한 폭발력이 있을지 상상조차 못했겠지. 알았네. 나가 보게.”

장공주는 이내 고요해진 방안의 창 옆에 서서 적막이 흐르는 정원을 바라봤다.

* * *

깊은 밤.

휘영청 밝은 달이 차가운 빛을 발했다. 고요한 상백에 달이 비꼈다.

갑옷이 부딪치는 소리, 가지런한 발자국 소리가 상백 부근에서 울려 퍼졌다. 순시하는 금군 대오였다.

찬바람이 불어오자 상백에 잔잔한 물결이 일면서 은빛이 너울거렸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정교하게 만들어진 종이 인간이 바람결을 타고 수면을 지나 호수 중심에 있는 한백옥고대에 내려앉았다.

몇 초간 꼼짝달싹하지 않던 종이 인간은 흐느적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짧은 다리를 내딛어 사당 앞에 도착하더니 문 틈 사이를 비집고 안으로 들어갔다.

몇 초 후, 미약한 불빛이 문 틈 사이로 흘러나왔다. 돌연, 천둥과 유사한 소리가 울리더니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 영진산하 사당을 삼켜버렸다.

강렬한 충격으로 일어난 강한 물결이 부서진 기와, 벽돌, 대들보를 수십 미터 밖으로 내동댕이치며 상백으로 떨어졌다.

* * *

폭발 소리는 수백 리 밖으로 전해졌다. 상백 호수 부근에서 순찰하던 금군은 지면이 진동하는 것을 느끼자마자 하늘을 붉게 물들인 거센 불길을 볼 수 있었다.

* * *

원경제가 꿈나라에서 깨어났다.

텅 빈 대전(大殿)에는 적막이 흘렀다.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 탁자 위에 신변을 지키는 대환관이 엎드려서 깊게 자고 있었다.

대전에는 비빈도 궁녀도 없었다. 원경제가 도를 닦기 시작한 후, 황제의 대전은 궁중 여인들에게 금지 구역이 되었다.

원경제가 도를 닦는 것에 대한 비빈들의 심경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이러했다.

‘폐하, 밤늦게까지 책만 읽으시면 간이 상합니다.’

물론 한때는 비빈들의 원성이 자자했지만 원경제는 이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이미 자식들이 수두룩한 황제에게, 비빈들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존재였다.

이십 년만 더 이르게 도를 닦기 시작했어도 신하들이 죽음으로 간하였을 터이나 지금은 신하들도 딱히 반대할 명분이 없었다.

“폐하, 깨셨습니까?”

잠이 얕은 대환관이 바로 정신을 차리더니 용상(龙榻) 앞으로 바삐 다가왔다.

“몇 시진이더냐?”

원경제가 미간을 주무르며 물었다.

“연시(宴時) 일각입니다.”

대환관이 몸을 돌려, 화로 위에 놓은 찻주전자를 들어 원경제에게 따뜻한 물을 부어주었다.

그는 황제를 오랫동안 모셔온지라, 자잘한 일은 굳이 황제에게 묻지 않았다.

원경제가 찻물을 한 모금 마시더니 허, 하고 탁한 기운을 내뱉었다.

“제사 대전 이후로 짐(朕)의 마음 한구석이 항상 불안하구나. 영보관(靈寶觀)으로 가자. 국사와 함께 도를 닦으면서 마음을 안정시켜야겠다.”

두 사람이 곧 대전을 나서려는데, 우렁찬 종소리가 밤하늘을 울리며 궁성의 구석구석에 전해졌다.

황궁이 전쟁을 대비한 방어 태세에 들어간 것이다.

눈썹을 찌푸리던 원경제는 앞에서 미친 듯이 달려오는 금군 대오를 발견했다. 그들의 얼굴은 다급한 기색이 역력했다.

맨 앞에 선 금군 수령이 큰 소리로 말했다.

“폐하, 상백에서 폭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영진산하 사당이 무너졌고, 당직을 서던 금군 삼백 명 전체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말에 원경제는 그만 넋이 나가고 말았다.

한참 지나서야 그는 진지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지금 당장 가서 위연을 데리고 오너라. 그리고 국사에게 대전으로 오라고 전하거라. 감정에게는…… 영진산하 사당이 무너졌다고 전하거라!”

같은 시각, 아무런 까닭 없이 잠에서 깬 사천감 술사들은 세계 종말이 온 듯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 * *

가장 먼저 도착한 자는 국사였다. 칠성검(七星剑)과 함께였다.

그녀는 머리에는 연꽃관을 얹고, 몸에는 태극도포를 입고 있었다. 옷소매가 흩날리면서 세속을 벗어난 듯한 선기(仙气)를 물씬 풍겼다.

그녀의 외관은 첩첩 산을 사이에 둔 것 같은, 범접할 수 없는 거리감을 느끼게 했다.

“국사…….”

원경제가 탄식하더니 말을 꺼냈다.

“상백 밑에 있던 존재가 나온 듯하네.”

국사가 고개를 조금 끄덕이더니, 마치 멀리에서 울리는 것 같은 맑은 목소리로 답했다.

“이미 알고 있습니다.”

위연이 바로 뒤에 도착했다. 그는 야경꾼 관아의 당직 금라 두 명과, 의자(義子) 둘까지 네 명의 사품계 무부를 데리고 왔다.

여기에 황궁 내 고수들까지 더해, 전력이 하늘을 찌르는 무부들과 인종 도수가 원경제를 호위하여 상백에 도착했다.

상백 호숫가에는 이미 천여 명에 달하는 금군들이 손에 횃불을 지고 서 있었다. 군중 고품계 무부들도 상백에 미리 도착해 원경제를 기다리고 있었다.

영진산하 사당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한백옥고대가 무너진 터라 수면 위에는 대들보 나무들이 둥둥 떠다녔다.

이 장면을 본 원경제의 눈썹이 쓱 올라가더니 그가 큰 소리로 호통쳤다.

“신검은 어디에 있느냐?”

금군 수령 한 명이 공수하면서 답했다.

“이미 사람을 파견하여 건져냈습니다.”

원경제가 숨을 크게 한 번 들이쉬더니, 호숫가로 걸어가 손을 내밀어 다섯 손가락을 구부렸다.

물밑에서 뭔가가 밝은 금빛을 발하더니 삼척 길이에 달하는 동검 하나가 물 위로 솟아올라 원경제의 손 안으로 들어갔다.

원경제는 동검을 자세히 살펴 아무 손상이 없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안도의 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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