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절대타경-91화 (91/712)

91화. 요참(腰斩) (2)

위연은 다른 동라들을 쳐다보았다.

동라들은 고개를 떨어뜨리고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고, 그들은 두 쪽 다 건드리기 두려웠다.

이에 위연이 온유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대로만 말하면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다.”

위연의 한 마디에 동라들은 안정제를 먹은 듯 서로 마주보면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

“셋은 확실히 지각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한 명이 참다못해 입을 열었다.

“송정풍의 말이 사실입니다! 주 은라는 여인을 밖에 끌고 나와 우리 앞에서 겁탈하려 했고, 언행중에 허칠안을 겨냥한 도발이 있었습니다!”

이게 바로 여러 동료들과 관계를 잘 다지면 좋은 점이었다. 만약 주 금라의 수하에 있는 동라들이었다면 여론은 바뀌었을 것이다.

이에 주양이 ‘흥’ 하더니 입을 열었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관아에서 처리할 문제지.”

그는 교묘하게 방향을 돌렸다. 이 사건의 어디에 초점을 맞춰 살펴보든, 허칠안이 상급자를 죽일 뻔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터였다.

설사 주 은라가 잘못을 범했다 할지라도 동라 나부랭이가 그를 처단할 문제는 아니었다.

‘게다가 범인 집안 여인을 겁탈한 것쯤은 큰 과오도 아니지. 가볍게 처리하면 감봉 처분이고, 좀 더 중하게 처리하면 감금에 정직이다. 최악의 경우라도 파면이다.’

게다가 일이 커져 관아 내부의 모든 야경꾼들이 이 사건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무리 두 금라의 눈에 들었던 동라일지라도 위연은 그를 감싸지 않을 것이다.

이때 위연이 입을 열었다.

“법을 집행해야 할 자가 법을 어겼으니, 주성주를 당장 파면하고 다시는 임용하지 않겠다. 이 결정은 영구하다.”

주양의 안색이 변했다.

위연이 말을 이었다.

“동라 허칠안도 은라를 공격해 중상을 입혔으니 그 죄를 간과할 수 없다. 당장 감옥에 가두고 칠일 후 야채 시장에서 요참으로 처형한다.”

주양은 눈을 질끈 감더니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들 물러가거라. 이 이상 책 읽는 데 방해하지 말고.”

위연이 손짓했다.

사람들이 허리를 굽혀 인사드리고 물러가려는 그때, 허칠안이 낮은 소리로 운을 뗐다.

“위 공…….”

그는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앞으로 두 걸음 내딛으며 입을 열었다.

“원이심신봉찰진(*愿以深心奉刹尘: 심심으로 중생을 위해 기여하지), 불위자신구리익(*不为自身求利益: 자신을 위해 이익을 도모하지 않으리)이라는 말, 진심이십니까?”

허칠안이 위연의 눈을 지그시 응시하면서 또박또박 내뱉었다.

“물론 진심이다.”

위연이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허칠안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주변을 한번 훑었다. 그러다가 시선이 송정풍과 주광효에게서 멈췄고, 이내 입을 열었다. 마치 자신을 지켜보는 동료들에게 자신의 행동에 대해 설명하는 것 같았다.

“이식이녹(*尔食尔禄: 너희 먹을 것과 녹봉은), 민지민고(*民脂民膏: 백성들의 피땀이니라), 하민이학(*下民易虐: 하층 백성은 괴롭히기 쉽지만), 상천난기(*上天难欺: 하늘은 속이지 못하느니라)…….”

허리를 곧게 편 허칠안이 말을 이었다.

“이 또한 저의 진심입니다.”

* * *

남궁천유가 흰자위를 희번덕거리며 양연을 대신해 물었다.

“의부님, 정말 그놈을 죽일 겁니까?”

양연이 바로 위연을 쳐다봤다.

“내가 공정하게 판결을 내리지 않았더냐?”

위연이 반문했다.

남궁천유와 양연 모두 동시에 고개를 절레절레했다. 그러더니 남궁천유가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공정하긴 합니다만, 아까워서 죽일 수 있겠습니까?”

위연이 차를 한 모금 마시면서 감탄조로 말했다.

“내가 말했잖나? 허칠안은 타고난 무부라고. 보기 드문 의기를 가지고 있어.”

‘단도에 연신경의 은라가 사경을 헤매게 만들다니. 연기경에 들어 선 지 얼마나 됐다고.’

위연의 웃음에는 흡족함이 엿보였다.

* * *

춘풍당.

송정풍과 주광효는 풀이 죽은 채 이옥춘을 따라갔다. 이옥춘은 그 어느 때보다도 조용했다.

아래층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던 그가 맞이한 결과는 칠일 후 허칠안을 요참으로 처형한다는 소식이었다.

이옥춘은 이에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부하 둘을 데리고 춘풍당으로 돌아왔다.

“너희 둘, 나랑 술 한 잔 하자꾸나. 술 감춰놓고 당직을 설 때마다 몰래 마시는 거 다 안다.”

이옥춘이 담담해도 너무 담담하게 말하자, 송정풍이 울컥하며 응했다.

“좋습니다!”

이옥춘은 고지식하고 고집이 세기로 유명했다. 그를 잘 아는 은라들은 그가 규정을 목숨같이 지킨다고 했고, 그를 잘 모르는 은라들은 그가 융통성이 없다며 비아냥거렸다.

하지만 잘 알든, 잘 알지 못하든, 관아에 그를 깔보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다들 마음 한구석에는 그를 존경하는 마음이 있었다. 비록 입 밖에 내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이옥춘의 고지식함은 여러 방면에서 표현됐다. 예를 들어 당직을 설 때 절대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것.

송정풍은 편청에 몰래 감춰둔 술과 사기 사발 세 개를 가져왔다. 그중 하나는 허칠안의 사발이었다.

이옥춘은 술을 빠르게 마시지 않았지만 말 한마디 없이 계속 마셨다.

송정풍과 주광효도 침묵을 지켰다.

셋이서 술 한 단지를 비우자 이옥춘이 입을 열었다.

“그놈이 큰 잘못을 저질렀으니 위 공께서도 그놈을 감싸주기 어렵다는 걸 나도 안다. 사람을 죽일 뻔하다니. 그것도 은라를.”

이옥춘의 말주머니가 봇물 터지듯 와르르 쏟아졌다.

“난 내 자신이 멍청한 사람으로는 최고 경지인 줄 알았는데, 그놈은 나보다도 훨씬 더 멍청하군. 진작 알았더라면 그놈을 받지 않았을 텐데. 괜히 마음만 힘들게 말이야.

위 공이라고 어쩌겠어? 아무리 그놈의 자질이…… 설사 좀 괜찮다 하더라도 이렇게 일을 크게 만들어 관아의 모든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는데 공공연히 편을 든다? 그럼 위 공의 신망은 어떡하고? 명성을 쌓는 데는 오랜 세월이 걸리지만 무너지는 데는 한순간인 법이지. 만약 허칠안을 두둔한다면 앞으로 누가 위 공을 신뢰할까.

그래. 잘 됐지, 뭐. 하나는 파면이고 하나는 요참이니, 이보다 더 공정할 수는 없을 게다. 앞으로 한동안은 관아의 모든 사람이 규정에 어긋나는 짓을 못할 테니 허칠안 그놈의 죽음은 결코 허무하지는 않아. 그만한 가치가 있어.”

이옥춘은 사발을 송정풍에게 돌려주면서 욕설을 퍼부었다.

“뭐 이런 사발이 다 있어? 청화도 대칭이 아니잖나!”

송정풍은 그제야 자신이 반년 넘게 술을 마신 사발에 새긴 청화가 대칭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했다.

술이 다 떨어지자 송정풍과 주광효는 조용히 편청으로 돌아갔다.

* * *

조용한 춘풍당.

오랫동안 자리에 멍하니 앉아있던 이옥춘이 몸을 천천히 일으키더니, 구석에 가서 닭털 먼지떨이를 주워 당 내 먼지가 앉기 쉬운 곳을 청소했다.

그리고는 서적, 꽃병, 의자의 배열이 대칭이 되도록 거듭 만지작거렸다.

나중에는 제복을 잘 개고, 그 위에 패도와 요패를 올려놓고, 이를 받든 뒤 춘풍당을 나서 호기루 방향으로 걸어갔다.

많은 동라들이 그 모습을 보고 낮은 소리로 속닥거렸다.

허칠안이 주성주를 들이받은 사실을 아는 사람도 있었고, 모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무슨 일이야?”

“몰랐어? 주 은라가 하마터면 동라한테 베여 죽을 뻔했잖아. 그를 벤 동라가 이 은라 수하에 있던 허칠안이야.”

“이 은라가 지금 뭐하려는 거지?”

“모르지. 따라가 보자.”

이옥춘의 뒤를 따르는 야경꾼들이 점점 더 많아졌다. 그들은 작은 인파를 이루어 호기루까지 뒤따랐다.

이옥춘은 일 층 수위들의 경계와 경고의 의미가 담긴 눈초리를 받으며 발걸음을 멈췄다. 두 손으로 제복, 요패, 패도를 받든 이옥춘은 뒤따라온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소직 이옥춘, 원경 20년에 관아에 들어와 줄곧 본분을 지켜왔고, 맡은 바 소임을 다했습니다. 탐관오리들을 숙청하겠다는 신념과 나라에 기여하겠다는 목표로 오늘날까지 버텨왔습니다.”

이옥춘은 우렁찬 목소리로 계속하여 말했다.

“십육 년 동안 게으름 한번 피운 적 없고, 독직하거나 법에 어긋난 행위를 해본 적 없습니다. 뇌물은 더더욱 받은 적 없고, 죄 없는 사람들을 억압한 적도 없습니다. 처음에는 마음에 열정만 있으면 깨끗하고 밝은 대봉을 맞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십육 년 간, 백성을 괴롭히고, 상인들을 공갈 협박하며, 재물을 몰수할 때만 되면 은자와 재물을 사사로이 가로채고, 범인 집안 여인들을 범하는, 눈 뜨고는 차마 볼 수 없는 동료들의 행태를 지켜보고만 있어야 했습니다!

그들의 마음속에 법이 없는데 어찌 집법할 수 있겠습니까? 스스로가 바르지 않은데 누굴 바로잡겠습니까? 은라 이옥춘, 더 이상 참지 않겠습니다! 오늘부로 소직 이옥춘, 야경꾼 제복을 벗습니다! 제 뜻이 이러하니 저 또한 참수형에 처하셔도 좋습니다!”

이옥춘은 수많은 눈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제복과 패도, 요패를 있는 힘껏 땅에 팽개쳤다. 마치 헌 옷을 미련 없이 버리는 것 같았다.

호기루 앞에서 위연의 체면을 제대로 깎은 이옥춘이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

“이걸…… 막아야 돼, 말아야 돼?”

누군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주위에 있던 야경꾼들이 일제히 그에게 눈총을 보냈다.

* * *

죄수복을 입은 허칠안은 야경꾼 관아의 감옥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있었다. 감옥 특유의 습기와 썩은 냄새가 그를 맞았다.

“세 번이나 이곳에 갇히다니. 전생에는 범죄자들을 감옥에 잡아넣는 경찰이었는데, 이 생에는 감방의 단골손님이 됐구먼.”

허칠안은 변덕스러운 인생을 한탄하면서 스스로를 비웃었다.

감옥은 고요했다. 가끔 옆방에 있는 범인이 쌍욕을 내뱉는 소리가 들렸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조용했다.

여기에 갇힌 범인 대다수가 사형수였다. 그들은 마음이 이미 죽은 상태일 것이다. 갓 들어왔을 때에는 상스러운 욕들을 마구 퍼붓는 망나니였을지라도 옥졸한테 한번 불려나가기만 하면 사람이 되어 돌아왔으니 말이다.

그들은 그제야 비로소 공공장소에서는 조용해야 한다는 도리를 깨닫게 되는 모양이었다.

죽는 것도 서러운데 죽기 전에 잔인무도한 괴롭힘까지 당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허칠안은 눈을 감고 살아서 나갈 방도가 있을지 고민했다.

‘운록서원의 대유들이나 한 번 와서 떠들썩하겠지. 하지만 관직이 없는 그들로서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사천감 술사들이야 무조건 나를 구하려고 안간힘을 쓰겠지. 하지만 감정이 나서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감정을 내세우기에는 내 신분으로는 부족하다……. 허칠안! 부향에게서 따뜻함을 느끼다가 사회의 냉정함을 잊은 거냐? 두 달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저채미와 송경을 내 사람으로 만들지 못하다니.

게다가 지서 파편을 수색해갔지. 일호한테 구해달라고 해볼 수도 있었는데. 물론 일호의 신분으로도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허칠안은 머리를 굴리다가 그만 잠들어버렸다. 깨어나 보니 적막이 흐르는 감옥의 작은 창을 통해 밤하늘이 보였다.

한잠 자고 일어나니 천지일도참으로 허해진 몸이 회복되었다. 하지만 배에서는 꼬르륵꼬르륵 소리가 진동했다.

통로 내에는 어슴푸레한 등잔불이 켜져 있었다. 허칠안은 난간 옆에 밥 한 그릇이 놓여있는 것을 발견했다. 통통하게 살찐 쥐 두 마리가 그 밥을 무척 맛있게 먹고 있는 것도 보였다.

허칠안은 속으로 쥐 두 마리를 향해 쌍욕을 퍼부었다.

밥도 뺏겼으니 좌선하며 기기를 토납할 수밖에 없었다.

이내 날이 밝아왔다.

웬 발걸음 소리가 통로에서 전해져왔다. 옥졸 두 명이 걸어오더니 옥문을 열었다.

허칠안이 눈을 떴다.

“나와라!”

옥졸이 호통쳤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