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화. 재산을 몰수하다
“이건 공문서다.”
이옥춘이 위에서 내려온 문서를 세 사람에게 보였다.
이번 재산 몰수 대상은 호부 금부(金部) 주사(主事)로서 정육품(正六品)관원이었다. 탐오 독직 죄로 당사자 본인을 유배하고, 그의 재산 전부를 몰수한다고 판결난 참이었다.
몰수한 재산은 국고로 들어갈 것이다. 허칠안의 전생에서, 범인의 개인 재산 전부를 몰수하는 것과 같은 벌이었다.
이옥춘이 허칠안을 힐끗 쳐다보더니 말을 꺼냈다.
“이 사람은 호부 주 시랑의 부하다.”
이는 허칠안에게 이 사건이 세은 사건의 후속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었다.
조당에서 고품계 관원 한 명이 무너지면, 그 뒤를 이어 그를 추종했던 관원들이 줄줄이 파면 당하고 처벌받는 법이었다. 마치 무를 뽑으면 뿌리에 따라 나오는 흙처럼 말이다.
허칠안과 동료 둘은 명을 받고 춘풍당에서 나와 전원으로 걸어갔다.
“재산은 처음 몰수해보는 거지? 일부 규정에 대해서는 잘 모를 테니 내가 말해주마. 재산을 몰수하는 과정에서 하급 관리는 전원(前院)에서 값진 물품을 가려내어 책자에 기록하고 관아로 가져와. 하지만 그들은 수색에 참여하지 않아.”
여기까지 말한 송정풍이 ‘그 다음은 네가 알아서 이해해’라는 눈빛을 보냈다.
이런 방면에 빠삭한 허칠안은 바로 그 뜻을 알아챘다.
“대장의 뜻은…….”
허칠안이 넌지시 떠보았다.
“그건 신경 쓰지 마.”
송정풍이 입을 삐죽거리면서 덧붙였다.
“대장은 앞뒤가 꽉 막힌 사람이야. 융통성이라고는 요만큼도 없지. 우리야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스스로를 위해 이익을 도모해야지 않겠어?”
이건 확실히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이익을 도모하는 일이긴 했다. 허칠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송정풍도 허칠안과 마찬가지로 공갈 협박으로 상인이나 백성의 재물을 약탈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 재산을 몰수하러 가는 곳은 탐관오리의 집이었다.
그 재산 자체가 깨끗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들은 결코 백성을 피를 빨아먹는 것이 아니었다.
허칠안은 이런 일을 전생에도 수두룩하게 보아온 터였다. 그는 이에 대해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는 중립의 태도를 취하곤 했다.
이번 재산 몰수는 은라 한 명이 동라 네 조와 백역 스물네 명을 거느리고 진행할 예정이었다.
세 명의 동라마다 서로 다른 은라 밑의 수하였다. 여러 조를 한데 모아 진행하는 제도는 상호 감독과 상호 적발을 추진하기 위함이었다.
이 제도의 초심은 좋으나, 시간이 오래 지나면 그 효용을 잃게 될 터였다. 굳이 누가 나서서 말하지 않아도 행동에 참여한 사람 모두가 자기 호주머니에 조금씩 넣으면, 이내 그 누구도 그런 짓을 하지 않은 것이라 묵인될 게 빤했다.
* * *
셋은 전원에 도착했다. 거기에는 이미 집합을 마친 동라들도 있었다.
맨 앞에는 젊은 은라가 서 있었다. 서른이 막 넘은 나이에 입술이 얇은 편이고 미간에 오만함이 서려 있었다. 면상만 봐도 쉬워 보이지 않았다.
송정풍은 동료 둘과 함께 대오에 합류하면서 은라에게 패표 세 장을 꺼내 보였다.
은라는 셋을 보자마자 눈빛을 바꾸었다. 그러면서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니들 셋, 지각했다.”
허칠안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지각이라니요?”
셋은 소식을 받자마자 바로 출발했던 터라 길에서 대화를 나누면서 속도를 내서 걷지 않았을지언정, 일 각을 초과했을 리가 없었다.
허칠안의 말에 은라가 돌연 눈썹을 치켜세웠다. 그는 예리한 눈빛으로 허칠안을 노려보다가 허리춤에서 패도를 뽑아 허칠안의 얼굴을 겨냥했다.
허칠안은 몸을 뒤로 젖혀 사납게 날아오는 도날을 간신히 피했다.
허칠안이 피할 줄 몰랐던 은라가 멈칫하더니 섬뜩한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감히 피하기까지 해?”
“대인?”
송정풍이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면서 웃는 얼굴로 말했다.
“대인 말씀이 맞습니다. 화내지 마십시오. 공적인 일을 지체해서야 되겠습니까. 게다가 좋은 일이 기다리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은라는 송정풍의 체면을 봐주기는커녕 오히려 발로 그의 복부를 힘껏 찼다. 그러자 송정풍이 날아갔다. 그는 일어나려고 시도했지만 복통으로 다시 주저앉고 말았다.
‘저 은라는 지금 나를 겨냥해서 화내고 있다……. 하지만 난 저 은라한테 밉보인 적 없잖아…….’
마음속에서 분노가 치민 허칠안이 저도 모르게 칼자루를 눌렀다.
이에 실눈을 뜨던 은라는 노하지 않고 오히려 웃으면서 도실로 허칠안의 얼굴을 후려갈겼다. 그러면서 조소하듯 입을 열었다.
“왜? 도를 뽑을 것이냐? 그게 가당키나 하다고 생각하느냐?”
‘도를 뽑기만 하면 이 자리에서 끝장일 텐데.’
허칠안은 손을 들어 얼굴로 짓쳐들어오는 도실을 몇 번 막았다. 팔뼈가 너무 아파 눈물이 핑 돌 지경이었다.
허칠안의 기세가 수그러지는 것을 확인한 은라는 몇 번 더 도실을 날리더니, 냉소를 머금고는 한 마디 뱉었다.
“들어가라.”
그제야 허칠안과 동료 둘은 대오에 합류할 수 있었다.
그 후로도 동라들이 잇달아 도착했다. 하지만 은라는 전혀 추궁하지 않고 그들을 대오에 합류시켰다.
이 장면을 보자 허칠안은 방금 전, 은라의 횡포가 자신을 겨냥했다는 것을 확신했다. 다만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을 뿐이었다.
“방금 전엔 잘했어. 아니면 너 끝장이었을 거다.”
뒤에서 누군가가 말했다. 허칠안이 고개를 돌리니 어젯밤 화주를 함께 마시던 동라가 보였다.
“나 그렇게 바보는 아니다. 동라가 은라를 향해 도를 뽑는 것이 큰 죄라는 것쯤은 알아.”
허칠안이 말했다.
동라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저 은라의 성은 주(朱)씨야. 관아에서는 가장 젊은 은라지.”
허칠안이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런데 난 저 은라를 아예 모른단 말이야.”
동라가 ‘허’ 하더니 한 마디 던졌다.
“저 은라의 부친도 주씨라고.”
허칠안은 속으로 그거 모를 사람이 이 세상에 있겠냐며 투덜댔다. 그러자 옆에 서 있던 주광효가 낮은 소리로 물었다.
“주 금라?”
화주를 함께 마셨던 동라가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덧붙했다.
“가장 젊은 은라거니와 경성 관아에서는 가장 돋보였던 젊은이지. 허칠안이 나타나기 전까지만 해도. 전날, 저 은라 수하에 있는 동라와 술을 마셨는데, 주 은라가 널 무척 싫어한다고 떠들어댔다더군. 일개 동라 나부랭이라고 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대……..”
이때 주 은라가 예리한 눈길로 대오를 훑었다. 그러자 동라는 바로 말을 끊고 입을 닫았다.
“빌어먹을!”
허칠안은 똥 밟았다 생각하고 한마디 뱉었다.
전생에 직장에서 상사한테 괴롭힘을 당하던 안 좋은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에는 ‘제기랄, 관두면 될 거 아냐!’ 하면서 배짱을 부리고 직장을 그만두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야경꾼은 등급을 무척 중히 여기는 조직이라 이런 극단적인 방식은 통하지 않았다.
‘직급으로 나를 누른다 이거지. 그럼 내가 위 공께 어떻게 이르든, 날 탓하지 말거라.’
띵띵 부은 팔을 문지르던 허칠안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미는 것을 애써 억눌렀다.
인원이 다 도착하고 군마 점검까지 끝나자, 야경꾼과 백역들은 말에 올라타 기세등등하게 목적지를 향해 달려갔다.
이번 재산 몰수 대상인 호부 금부 주사는 정(程)씨였다. 그는 큰 저택 하나를 가지고 있었다. 지금쯤 그 저택은 이미 어도위에 포위되었을 것이다.
야경꾼 대오가 저택에 도착하자마자 주 은라는 도실에서 도를 뽑아들었다. 도날에 빛이 번쩍하더니 ‘정부(程府)’의 편액이 두 동강 났다.
그가 도를 든 손을 휘두르면서 외쳤다.
“재산을 몰수하라!”
그러자 동라와 백역들이 줄줄이 말 등에서 내려오더니, 발로 문을 박차고 저택 안으로 우르르 몰려 들어갔다.
저택에 있던 하인들은 놀라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면서 구석진 곳, 길 옆, 화원, 지붕 밑에 웅크렸다.
그들은 어제야 나리가 하옥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터였다. 지금 막 어떻게든 상황을 파악하려던 찰나에 어마무시한 야경꾼들이 들이닥칠 줄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허칠안과 동료 둘이 막 전청에서 후원으로 가려는데, 주 은라의 발이 날아왔다.
“네들 셋은 어디도 가지 말고 이곳에 처박혀있거라. 끝나고 나서 너희 몸을 수색할 거다. 감히 재물을 가로챈다면 죄를 단단히 물을 것이야.”
주 은라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허칠안이 괴롭힘을 당하는 모습에 고소해하는 동라들이 있는가 하면, 자신을 지키기 위해 못 본 척 하는 이들도 있었다.
송정풍은 화가 났지만 입도 뻥긋하지 못했다.
줄곧 과묵했던 주광효도 안색이 어두워졌다.
허칠안은 이를 악물고 침묵을 지켰다.
주 은라가 내원으로 들어가자 송정풍이 드디어 쌍욕을 퍼붓기 시작했다.
“퉷! 미친 새끼! 남의 돈줄을 막다니, 벼락 맞아 죽을 놈 같으니라고!”
“미안하다. 나 때문에 너희까지 말려들게 해서.”
허칠안이 무척 미안해하면서 말했다.
송정풍이 흰자위을 희번덕거리더니, 허칠안의 팔에 시선을 고정했다.
“여러 번 문지르는 걸 봤는데 괜찮겠어?”
허칠안이 울상으로 웃으면서 옷소매를 올렸다. 팔이 무척 많이 부어올라 있었다.
“저 미친놈, 기기(气机)를 사용했나보네.”
송정풍의 안색이 변했다.
일반적으로 상사가 부하를 때릴 때에는 기껏해야 외상이지, 절대 기기를 사용하지 않았다. 통증을 느끼게 하는 것과 부상을 입히는 것은 완전히 다른 개념이었기 때문이다.
이 사건만으로도 주씨가 얼마나 옹졸한 사람인지를 알 수 있었다.
“이 상처로도 충분히 고발할 수 있어. 나중에 대장을 찾아가. 대장은 절대 참지 않을 거야.”
주광효가 진지하게 말했다.
송정풍이 그를 힐끗 쳐다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하면서 말했다.
“문제를 크게 만들지 마라. 대장도 은라에 불과해.”
같은 은라였지만 저자의 부친은 금라였다. 금라가 뒤를 봐주고 있으니 은라 이옥춘이 건드릴 수 있는 상대는 아니었다.
송정풍이 말을 이었다.
“됐어. 다음에 저자를 보면 피하자. 재수 없다 생각하고.”
‘난 가서 고발할 거야. 춘 형 말고 위 아버지한테…….’
허칠안은 묵묵히 결심하고 옷소매를 내렸다.
* * *
재산을 몰수하는 장면은 허칠안의 상상과는 전혀 달랐다. 뚝딱거리면서 물건 깨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니라 무척 조심스레 움직이는 백역들과 동라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서재의 구석구석에는 꽃병이 놓여 있었다. 몇십 내지 몇백 냥의 값어치에 달하는 도자기들이었다. 물건을 배치하는 작은 탁자 하나도 은자 몇 냥은 될 터였다.
그런데 느닷없이 여인의 처절한 울음소리와 애원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허칠안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가 고개를 돌려 송정풍을 보며 말했다.
“문서상에는 재물만 몰수한다고 되어있지, 연좌(连坐)까지는 아니잖아.”
문서상으로 봤을 때 호부 정 주사에 대한 판결은, 재산을 몰수하고 정 주사만 유배당하는 것이었지, 가족들을 연좌한다는 말은 없었다.
다시 말해서 집사람들은 저택에서 쫓겨나겠지만 죄인의 신분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송정풍이 우물쭈물하더니 답했다.
“저들도 그냥 놀고 싶어서 그러는 걸 거다……. 이런 일들이 종종 일어나.”
“이런 미친 새끼들!”
허칠안이 욕을 퍼붓더니 후원으로 성큼성큼 발을 옮겼다.
후원에서 여인들의 비명 소리가 여러 방에서 흘러나왔다. 남자들의 음탕한 웃음소리와 함께였다.
허찰안은 가장 가까운 방문부터 걷어찼다. 낯선 동라 한 명이 부인의 치마를 찢고 있었다.
부인의 윗몸에는 배두렁이(肚兜) 한 겹만 딸랑 남아있었다. 절망에 빠진 부인이 울면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문을 박차는 소리에 혼이 나간 동라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지더니, 노기등등한 눈길로 문어귀 방향을 노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