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화. 여기는 오늘 내가 접수한다
단향을 피워 연기가 실오라기마냥 넘실거리며 피어올랐다. 햇빛이 격자창을 뚫고 들어와 지면에 규칙적인 무늬를 그려놓았다.
위연은 두꺼운 <대봉십삼전(大奉十三典)>을 덮고 잠깐 앉아 있다가, 몸을 일으켜 서가(書架)에 가서 <구주지: 서역(九州志:西域)>을 뽑아 들었다.
단향은 어느새 재가 되어 향로에 떨어졌다.
위연은 모든 책을 덮더니 피곤한지 미간을 주물렀다. 그의 옆에는 책자가 이미 어깨 높이만큼 쌓여 있었다.
“의부님, 새로운 발견이 있습니까?”
남궁천유는 드디어 물어볼 기회를 잡았다.
“대략 무슨 일인지 알 것 같구나.”
위연이 탄식했다.
“상백호에 무슨 비밀이 있는 겁니까?”
남궁천유가 물었다.
“그건 네 알 바가 아니다.”
위연이 고개를 절레절레하더니 진지한 표정을 지으면서 경고했다.
“오늘 발생한 일에 대해서는 더 이상 조사하지 말거라. 사적으로 의논 하지도 말고.”
양연과 남궁천유는 동시에 고개를 떨어뜨리면서 ‘네’라고 답했다.
* * *
황혼이 내리자 주간 당직이 끝났다.
허칠안을 포함한 열 명의 야경꾼이 고개를 쳐든 채, 가슴을 쫙 펴고 교방사 골목에 들어섰다.
문무백관이 말 한마디도 조심스러워하는 경찰 기간이기에 야경꾼은 교방사에서 마구 날뛸 수 있다.
“칠안, 부향 화괴(*花魁: 기녀를 지칭)가 우리를 만난다고?”
“내가 듣기로는 부향 낭자가 손님을 접대하지 않은 지 오래 되었다고 하던데.”
동라들은 믿지 못했다. 교방사는 문인을 가장 환영했다. 그러니 각종 오락도 문인을 겨냥하여 준비했던 터였다.
이것이 이 시대 사회의 일반적인 문화였다.
백관을 감찰하는 야경꾼의 콧대가 높은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관원들과 상호 견제 관계였다.
야경꾼들이 교방사에서 함부로 행동하면, 예부에서 무척 기뻐할 것이다. 그들은 기회를 잡지 못해 야경꾼을 탄핵하지 못했던 것뿐이었다. 예부는 당장이라도 야경꾼들을 끌어내리고 싶어 안달이었다.
만약 부향이 그들을 접대하지 않겠다고 하면 동라들은 조용히 자리를 떠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그냥 자리를 뜨는 게 아니라 체면까지 깎이게 될 터였다.
하지만 그들은 허칠안의 제안에 무척 끌렸다.
영매소각이라는 편액이 보이자 동라들의 발걸음이 저도 모르게 느려졌다. 그리고 그들은 평범하기 그지없는 허칠안을 앞세웠다.
허칠안이 허리춤에 건 패도를 쥐더니, 도실로 문지기의 엉덩이를 툭툭 치면서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가서 부향 낭자께 일러라. 오늘 내가 이곳을 접수하겠다고!”
문지기는 허칠안의 행동에 전혀 불쾌한 기색이 없었다. 게다가 얼굴에 웃음까지 활짝 피우고 태도도 무척 공손했다. 심지어 아첨하는 분위기였다.
“잠깐 기다려주세요. 제가 바로 가서 알리겠습니다. 양 공자께서 오셨다면 낭자께서 무척 기뻐하실 겁니다.”
허칠안은 영매소각의 단골이었다. 영매소각의 하인들은 이미 그를 부향의 연인으로 인지했다. 그래서 문지기는 다른 손님들에게는 조금 거만한 태도를 보여도 허칠안은 홀대하지 못했다. 오히려 잘 보이지 못해 안달이었다.
* * *
허칠안이 야경꾼들을 데리고 정원에 들어왔다. 담 모퉁이에 있는 매화나무숲에서는 꽃향기가 물씬 풍겼고, 흰색 담에 청흑색 기와가 어우러져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했다.
부향은 오늘 허칠안이 영매소각을 접수하겠다는 소식에 치장에 무척 신경을 썼다. 예쁜 쇄골과 목선을 드러내는 분백색의 긴 치마가 바닥에 끌렸다.
부향은 손수 허칠안에게 차를 올리고 술을 따랐다. 두 사람이 귓속말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부향의 얼굴에 보조개가 꽃처럼 활짝 피고는 했다.
이 장면을 지켜보는 동라들은 무척이나 부러워했다.
부향은 본래도 명성이 뛰어난 기녀였으나, “암향부동월황혼”이 탄생하고 나서는 몸값이 나날이 치솟았다.
지금은 손님을 거의 접대하지도 않는다고 들었다. 적어도 일반인은 접대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영매소각을 찾아 술을 마시고 노래를 들으며 다도회에 참여하는 손님의 수는 어마어마했다. 가끔 부향이 친히 주령을 담당했기 때문이었다.
술을 꽤나 마신 허칠안이 송정풍에게 눈짓을 주더니 몸을 일으키면서 입을 열었다.
“난 술이 약해 먼저 일어나보겠네. 다들 재밌게들 놀게.”
눈빛이 흔들리던 부향이 수상한 눈길을 하고, 말없이 자신의 어깨를 안고 자리를 뜨는 허칠안을 따라갔다.
* * *
목욕을 하고 난 후 흰색 내의 한 벌만 걸친 허칠안이 손에 술잔을 든 채 흐트러진 자세로 의자에 걸터앉아 있었다.
“허랑(*郎: 여인이 연인을 상냥하게 부르는 호칭)은 여태, 동료들과 술 마시러 자주 오지 않았잖아요.”
마찬가지로 방금 목욕을 마친 부향이 좀 떨어져 있는 침상에 앉아 머리를 기울여 머리카락의 물기를 닦고 있었다.
“그건, 말하자면 좀 긴데.”
허칠안이 술을 한 모금 마시더니 한숨을 푹 쉬면서 입을 열었다.
“며칠 전에 금라 두 명이서 서로 나를 자신의 수하에 들이겠다고 관아에서 대결을 벌였거든.”
부향이 침상에서 내려오더니, 치맛자락으로 희고도 긴 다리를 가렸다. 그녀가 허칠안의 등 뒤에서 그를 끌어안고 가볍게 웃으면서 말을 건넸다.
“그래서 소인배들의 눈총을 받으셨나요?”
“타인이 잘되는 꼴을 못 보는 소인배들이야 적지 않은 법.”
허칠안이 부인하지 않자, 부향이 후회가 섞인 말투로 말했다.
“허랑이 진작 말했으면 제가 대신해서 동료들을 잘 접대했을 텐데요.”
그녀는 술자리에서 다른 동라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았었다.
“그럴 필요까지는 없네.”
허칠안은 갑자기 부향을 한 손으로 끌어안아 무릎에 앉혔다. 그리고는 술을 한잔 따랐다.
“술은 이렇게 마셔야 제맛이지.”
허칠안이 웃으면서 고개를 기울였다.
* * *
온몸에서 술 냄새를 풍기는 부향이 다시 욕통에 몸을 담갔다. 허칠안은 숨을 돌리러 안방을 나가 동료들을 들여다보았다. 그들은 흥겨운 노랫소리를 들으며 재미있게 즐기고 있었다.
허칠안은 담 위로 훌쩍 뛰어올라 가슴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불을 피웠다.
청기 두 갈래가 까만 밤하늘 뚫고 올라갔다.
허칠안은 곧 무척 다양한 기수(氣數)를 볼 수 있게 됐다. 까만 세상에 색색의 색을 칠한 것 같았다.
저채미에게서 듣기로는, 요기는 짙은 녹색을 띤다고 했다. 그날 밤, 순찰할 때 그는 교방사 상공에서 분명 반짝하고 사라지는 녹색광을 본 터였다.
과감한 추측이었지만, 이건 교방사에 요괴가 잠입해있다는 뜻이었다. 교방사는 평소 높은 관직에 있는 관원들이 즐겨 찾는 오락 장소였다.
‘이런 곳에도 요괴가 잠입해있다니.’
허질안은 사천감을 엿보면서 죽음을 자처하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았다.
‘그랬다가 두 눈이 진짜 멀 수도 있으니까.’
그는 교방사의 상공을 한 번 훑었다. 시야에 무척 다양 색상이 들어왔지만 요기는 없었다.
“떠난 건가? 아니면 특수한 방법으로 은닉했나?”
허칠안은 담 위에서 뛰어내려 부향의 규방으로 돌아왔다.
* * *
부향은 허칠안의 품에 쏙 들어가 눈을 반짝거리며 입을 열었다.
“허랑, 저를 속신해주면 안 돼요?”
‘돈이 섞이면 감정이 상하지…….’
허칠안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부향이 애교를 부리면서 말했다.
“저는 첩이면 돼요. 그저 허랑 옆에서 허랑만 모시고 싶을 뿐이에요.”
허칠안이 부향의 머리를 만졌다. 손가락 사이로 윤기 나는 머릿결이 흘렀다.
“우리 둘의 감정에 금전이 섞여서 되겠는가?”
부향은 금세 눈시울을 붉히고 물었다.
“허랑은 그저 저를 데리고 놀다가 싫증나면, 저리 가라 하려고 그러는 거지요?”
‘그것도 알아차린 거야?!’
허칠안은 차마 자신도 어쩔 수 없다는 듯 아쉬운 말투로 말했다.
“자네는 교방사 화괴가 아닌가? 속신하려면 사오천 냥이 필요하지. 게다가 예부에서도 허락하지 않을 테고.”
“모아놓은 돈이 좀 있습니다. 게다가 제가 알아보기로는, 동라로 삼 년이면 내성에서 저택 하나 마련할 수 있다던데요.”
부향이 허칠안을 부둥켜안고 애원하는 말투로 말했다.
“허랑, 절 속신해줘요.”
부향은 애교를 부릴 줄 알 뿐만 아니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원을 충분히 이용할 줄도 알고 있었다. 그녀는 부드러운 몸을 허칠안의 몸에 찰싹 붙이고, 눈물을 머금은 불쌍한 표정으로 허칠안을 바라봤다.
허칠안은 눈썹을 찌푸렸다. 전생에도 이런 유형의 여자를 만난 적 있었다.
그러나 허칠안이 이상하다고 느끼는 것은, 화류계에서 무척 유명세를 타고 있는 화괴가 한창 잘 나갈 때, 그것도 묘령의 나이에 속신하겠다고 주장하는 이유였다. 그녀는 지금 속신하기에 아직 너무 일렀다.
문무백관 모두 야경꾼의 신분을 두려워한다지만, 부향 정도면 사품 관원의 첩도 손쉽게 될 수 있을 터였다.
“그건 우선 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돈을 충분히 모으면 자네를 속신해주지.”
허칠안은 되는 대로 얼버무리고는 금세 잠들었다.
어둠 속에서 부향의 눈이 빛났다. 그녀는 불을 켠 것 같은 환한 두 눈으로 허칠안의 얼굴을 주시하고 있었다.
* * *
이튿날 아침, 야경꾼들이 교방사를 떠났다.
동료들은 웃음으로 허칠안을 맞았다. 관계가 꽤 가까워진 것이다. 이전에 허칠안을 동료로만 생각했다면 지금은 친구로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교방사 행이 제대로 먹혔군.’
질투심이 유별나거나 지위가 너무 높지 않은 이상, 동급 동라들이야, 그를 무작정 적대시하지 않을 것이다.
융통성을 좀 발휘하고, 상대방의 흥취에 맞게 접대하면서 선의를 보이면 대부분 사람들이 허칠안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기를 원했다.
이렇게 되면 그들은 허칠안을 금라 두 명의 눈에 든 ‘놈’에서, 금라 두 명의 눈에 든 ‘내 친구’로 여기게 될 터였다.
기분이 좋은 동라들이 길에서 웃고 떠들었다.
“칠안은 참 인재야. 나 스스로가 얼마나 무미건조하고 재미없는 사람이었는지 여실히 느끼게 하는구먼.”
동료들의 웃음은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기쁨이었다.
허칠안이 어깨를 으쓱하더니 한 마디 더했다.
“나중에 몇 가지 더 재미있는 일을 알려주겠네.”
‘더 재미있는 일……?’
동라들의 눈에서 빛이 반짝거렸다.
* * *
그들은 묘시(卯時)에 야경꾼 관아에 도착했다. 허칠안은 점호를 마친 후 송정풍과 주광효와 함께 춘풍당 편청으로 직행했다. 셋이 차를 몇 모금 마시고 거리 순찰을 나가려는데, 하급 관리 한 명이 종종걸음으로 와서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인 세 분, 이 대인께서 부르십니다.”
‘임무가 생긴 모양이군…….’
허칠안과 두 명의 동료는 패도를 차고 어깨 나란히 춘풍당에 들어섰다.
이옥춘은 여전히 흠잡을 데 하나 없는 바른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춘풍당 역시 흐트러짐 없이 질서정연하였다.
‘춘 형, 이렇게 사는 거 힘들지 않습니까?’
허칠안은 심각한 강박증세를 보이는 직속 상사가 안쓰러웠다.
이옥춘이 탁자 위에 놓은 패표 세 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오늘 나를 대신해 재산 몰수 업무에 참여하거라. 똑같은 말이지만 그래도 경고한다. 다들 쓸데없는 짓거리들 하지 말고. 일각 후 전원(前院)에서 집합하여 다른 조 동료들과 함께 출발해라.”
‘재산 몰수?!’
허칠안은 재산 몰수가 자신의 업무 범위 안에 속한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상대방은 죄를 범한 관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