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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86화 (86/712)

86화. 정보 공유

[사: 자네는 자신이 알고 있었던 지식에 의혹을 품게 되었겠지. 과거에 배웠던 상백에 관한 역사가 잘못됐다고 느꼈을 수도 있고.]

파편 소지자들은 사호의 분석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런 거였구나!’

물론 허칠안 스스로도 큰 깨달음을 얻었다.

‘내가 그렇게 생각했었구나!’

[이: 잠깐. 그럼 그 문제는 상백 자체에서 비롯된 거지, 일품 고수가 침입한 사건 같은 일은 없었다는 이야기겠군?]

[사: 그건 삼호한테 물어봐야지.]

[오: 삼호, 왜 말이 없나. 얼른 말해주게.]

여기까지 읽은 허칠안은 더 이상 침묵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내막을 알고 있는 건 사실이네.]

[일: 무슨 내막?]

[이: 자네 무슨 비밀을 알고 있는가?]

[사: 상백에 진짜 숨겨진 비밀이라도 있는 건가?]

[오: 우리한테 알려줄 수 없겠는가?]

[육: 아미타불.]

[구: 젊은 친구, 말해보게나.]

“…….”

허칠안은 악취를 풍기는 뒷간에 앉아 넋을 잃고 거울을 내려다봤다.

이 일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럴 만도 하지. 대봉의 정국 보검과 관련된 최고 기밀을, 어느 누가 궁금해하지 않겠냐마는.’

게다가 천지회 일원들은 다들 보통 사람들이 아니었다. 다 자신만의 배경 세력이 있거나 자신 스스로가 그럴 만한 권력을 쥐고 있는 능력자들이었다.

이런 사람일수록 최고 기밀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법이었다. 설령 자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을지라도 이렇게 은밀한 비밀은 언제 어디서든 예기치 못한 영향을 끼칠 수 있으니 말이다.

[삼: 일품 고수가 침입한 게 아니라는 건 내가 어느 정도 확신할 수 있네.]

허칠안은 잠시 멈칫했다가 다시 글씨를 적었다.

[삼: 다만 내가 이걸 자네들한테 말해줄 이유가 없잖은가.]

한참 동안, 지서에는 아무 글씨도 나타나지 않았다.

‘허, 괜찮군. 어느 바보 같은 녀석이 튀어나와 천지회 구성원끼리 정보를 공유해야 마땅하다거나 서로 도와야 하는 거 아닌가 하면서 시비를 걸지 않아 다행이야.’

여기에 따지기 좋아하거나 날로 먹기에 길들여진 사람이 있었다면, 허칠안의 계획은 실행되기 어려웠다.

이 기회를 빌려 허칠안이 말을 덧붙였다.

[삼: 금련 도사, 제가 보기에 천지회에는 폐단이 존재합니다. 이 폐단을 해결하지 않는 한 천지회는 결코 서로에게 이익을 가져다주는 조직이 되기 어렵습니다. 개인에 대한 도움에 한계가 있죠.]

[구: 젊은 친구가 그럼 해답을 말해보게.]

[삼: 진실하고, 서로 도우며,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천지회의 취지가 아닙니까? 하지만 이 취지는 지나치게 이상화 되어 있습니다. 제가 비밀을 알려줄 수는 있지만, 제가 얻는 건 뭐죠? 아무것도 없지 않습니까? 이 비밀을 공유하면, 일호와 같이 묵묵히 염탐하기만 좋아하는 사람들은 제가 던져준 미끼를 그저 당연하다는 듯 주워 먹잖습니까?

그런 일도 한두 번이지. 그 후로는 저도 정보를 공유하거나, 비밀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지지 않겠습니까.]

[일: 던져준 미끼를 주워 먹는다고?]

일호는 화난 듯했다.

‘그래. 바로 너. 너 염탐하기를 무척 즐기잖아…….’

허칠안은 일호의 반문을 무시하고 계속하여 문자를 적었다.

[삼: 천지회의 구성원들은 사방에 흩어져 서로를 모릅니다. 본질적으로 낯선 사람들이죠. 정보와 기여가 바탕이 되지 않는다면, 누가 낯선 사람에게 사심 하나 없이 헌신만 하겠습니까.]

‘날로 먹는 인간이 제일 싫어. 이런 문화는 단호하게 근절해야 해.’

주저리주저리 떠들어댔지만 결국은 결론은 이거였다.

‘내가 왜 비밀을 너희한테 공유해줘야 되냐!’

[구: 젊은 친구의 말이 일리가 있네.]

허칠안이 피식 웃더니 문자를 계속했다.

[삼: 도사께서 찬성하신다면 다른 분들도 찬성하시는 걸로 알고 있겠습니다.]

천지회 구성원들은 침묵을 지켰다.

[삼: 제안 하나 하겠습니다. 삼호 파편을 제게 주셨을 때 삼호 파편이 봉인되어 다른 파편과 연락을 할 수 없다고 하셨지 않았습니까? 우리 이걸 이용해 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제가 상백의 비밀을 황금 오백 냥의 가격으로 천지회 구성원들한테 팔겠다고 하면, 해당 정보를 원하는 사람들은 저한테 지서로 연락하는 겁니다. 그러면 도사께서 해당 정보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의 파편 번호를 봉인해주시는 거고요.

물론 저 또한 돈에만 집착하는 돈벌레가 아닙니다. 만약 누군가에게 등가 정보가 있다면 저 또한 황금이나 백은으로 거래하기를 원할 뿐입니다.]

‘얼른, 얼른 은자로 내 정보를 사들여. 내성에 큰 저택 하나 마련해야 한단 말이야’

허칠안이 기대에 찬 눈길로 거울을 지켜봤다.

뒷간에서 풍기는 악취마저 향기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구: 솔직히 말해야 할 것 같네. 빈도가 지서 봉인 법술을 아는 건 사실이지만 몸이 아직 완쾌되지 않은 상태네. 당일 지종에 잠입했다가 도수의 원신을 깨워서 지서가 봉인되고 빈도가 부상을 입었네. 그렇지 않았다면 그 정도의 궁지에 빠지지 않았을 걸세.]

허칠안의 얼굴에 웃음기가 삭 사라졌다.

금련 도사가 지서 파편을 천지회 구성원들에게 나눠줬다는 것은, 지서를 제어하고, 되찾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설명했다.

하지만 허칠안이 예상하지 못했던 건 금련 도사의 현재 상태였다.

다시 말해서 최근 일대일 채팅은 불가능 하다는 뜻이었다.

다들 오랫동안 아무 말이 없자, 일호가 급하게 문자를 남겼다.

그는 이 거래가 이렇게 무산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일: 그럼 이렇게 하는 건 어떤가? 자네의 정보를 등가 정보나 등가 은자로 바꾸는 거지. 우선 자네가 우리에게 그 비밀을 알려주면, 나중에 우리도 등가 정보나 등가 은자로 갚는 걸세.]

[사: 그렇게 해도 여전히 허점이 있네. 예를 들어 내가 등가의 비밀로 삼호와 교환하면 삼호는 밑지지 않지만, 내 비밀은 기타 구성원 또한 아무런 대가도 없이 가져가게 되지 않는가?]

[이: 그리고 나는 거리가 너무 멀어, 비밀을 사려 해도 은자를 넘겨줄 방도도 없네.]

열띤 토론이 시작됐다. 각자 자신의 생각과 우려를 토로했다.

허칠안은 입을 삐죽거렸다. 천지회 구성원들은 이 방식으로, 자신들도 나중에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간파했던 것이다.

‘만약 내 생각이 현실화된다면 그들 역시 자신이 파악한 정보로 그에 해당하는 보상을 받을 수 있으니까. 그럼, 그럼. 이익이 있어야 동기도 생기는 법. 이래야 상업 모임의 모습이 갖춰지지.’

[삼: 금련 도사의 몸이 완쾌되지 않았으니, 우리 이러는 건 어떻겠는가? 내가 비밀을 공유할 테니, 자네들은 등가 정보나 등가 은자로 교환하는데, 외상이 가능하여 지금 바로 보상해줄 필요는 없는 걸세. 그럼 사호의 우려가 해결되는 거 아니겠는가? 이호 역시 이런 방식으로 외상을 하다가 등가 정보로 바꾸면 되잖은가.]

‘이러면 문제가 해결되긴 하겠네.’

[일: 난 이견이 없네.]

[이: 나도 없네.]

[사: 그럼 삼호의 생각대로 하지.]

[오: 문제없을 듯하군.]

[육: 나도.]

[삼: 칠호와 팔호는 어째서 종래로 말을 하지 않는가? 의견을 표하지 않으면 이 거래는 성사되기 어렵네.]

금련 도사가 대신 답했다.

[칠호는 작년부터 종적을 감췄네. 팔호는…… 음, 잠시 그 두 사람은 배제하게.]

[사: 칠호는 살아있는 거죠? 그렇죠?]

[이: 칠호가 지서 파편을 잠시 나한테 맡기긴 했네만……. 음, 모종의 원인으로 죽음을 위장하여 도피한 상태네.]

[삼: 그럼 저도 이의는 없습니다.]

허칠안은 몇 초 간 멈칫하더니 정보를 입력했다.

[삼: 상백에서 누군가 살려달라 외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상백에서 살려달라는 소리가?!’

삼호의 가벼운 한 마디로 인해 천지회 구성원들은 청천벽력이 울리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대봉은 개국황제가 득도한 곳이었다.

‘게다가 정국 보검을 모신 호수에서 살려달라는 소리가 들려왔다고……?’

‘누가 살려달라고 한 거야?’

‘누구한테 살려달라고 한 거지?’

지서 파편들은 괴이한 침묵에 빠졌다. 한참 지나서야 과묵하기로 유명한 일호가 맨 먼저 문자를 적었다.

[일: 그럴 수는 없네!]

사람들이 다시 지서 파편에 시선을 돌렸다. 오래 기다렸지만 삼호는 응답이 없었다.

‘그래, 삼호는 운록서원의 제자지. 워낙 오기가 장난이 아니잖아.’

‘그럼 삼호의 말도 진실이 아닌가. 그렇게 오만한 서생이 거짓말 할 이유가 없지.’

물론 일호도 그걸 모르는 건 아니었다. 방금 전에는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반응이었을 뿐이다.

[사: 참으로 믿기 어려운 정보군.]

[구: 기밀의 가치가 무척 높아.]

[이: 상백 밑에 뭔가 감금을 당해 있는 것은 아닐까? 자네들은 어떻게 생각하나?]

이호가 자신의 추측을 내놓았다.

허칠안의 마음이 동요했다.

‘나 혼자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었군.’

[오: 와, 대봉 상백에 절세 마두를 봉인했다? 일호, 삼호, 사호, 자네들은 대봉 사람이 아니던가? 뭔가 떠오르는 거 없나?]

[육: 물을 필요 없네. 일호가 모르는 건 분명하지 않은가. 모두가 알다시피 일호는 조정에서도 중요한 인물이고, 그런 일호가 모른다는 것은 황실, 심지어 황실의 기타 사람들도 모르고, 원경제 한 사람만 알고 있다는 의미 아니겠는가.]

[일: 이 일에 대해 더 깊게 조사해보겠네. 삼호, 나에게도 뭔가 정보가 있다면 자네 정보와 상쇄할 수 있겠나?]

[삼: 그건 자네가 어떤 정보를 건네오느냐에 달렸네.]

오 분을 기다렸는데 아무도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허칠안은 예의가 없는 사람들이 결국 말없이 가버렸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는 옥석경을 잘 보관하고 뒷간을 떠났다. 신선한 공기를 크게 들이마셨더니 살 것 같았다.

‘전생의 화장실이 이런 모양이었으면, 변기에 한번 앉았다 하면 삼십 분이나 걸렸던 나쁜 습관을 고칠 수 있었을 텐데……. 누가 이런 환경에서 핸드폰을 하고 있겠냐…….’

그러고는 마음속으로 한마디 덧붙였다.

‘코를 찌르는 뒷간은 치질 치료에 적격이다.’

* * *

편청에 돌아왔더니 주광효는 토납하고 있었고, 송정풍은 염사(艳史) 금서를 뒤지고 있었다. 물론 원경제와 절세 미모의 국사에 관한 것은 아니었다.

“애 낳으러 간 줄 알았는데.”

송정풍이 실눈을 뜨더니 낄낄거리면서 허칠안을 비웃었다.

“그래, 맞아.”

허칠안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의자에 편하게 앉더니 무척 진지하게 한마디 덧붙였다.

“나쁜 놈! 네 자식이잖아!”

옆에 있던 주광효는 갑자기 옆구리가 결려 눈을 떴다. 그러더니 허칠안을 힐끗 쳐다봤다.

송정풍은 전율하더니 허칠안을 향해 공수하고는 고개를 숙여 책을 읽었다.

송정풍은 스스로가 점잖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했다. 그는 외향적인 성격으로, 그 누구를 만나든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농담을 건네 상대방을 골려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유독 허칠안 앞에만 서면 자신이 정인 군자인 것만 같단 착각이 들었다.

분명 상대방이 농담하는 줄 알면서도, 대응하지 못하고 기가 꺾인 채 누그러졌다.

“저녁에 교방사에 가자.”

송정풍이 제안했다.

“동료 몇을 더 데리고 갈 테니 가서 함께 놀자고. 그러다 보면 내 편이 되고 그러는 거야.”

송정풍은 잠깐 멈칫하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양 금라와 강 금라의 일이 있고 나서 관아에 너를 질투하는 자들이 무척 많아졌어. 네가 눈에 거슬리는 거지. 넌 많은 사람과 친분을 쌓아야 돼. 맨날 나와 광효랑만 놀지 말고.”

주광효도 이에 동의한다는 듯 머리를 끄덕이더니 입을 열었다.

“맞아. 네 흉을 보는 무리를 여러 번 봤다.”

다른 동라들과는 별로 사귀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허칠안은 잠깐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응낙하였다.

허칠안은 더 이상 우직하기만 한 청년이 아니었다. 너무 튀다보면 사람들의 안 좋은 시선을 받게 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야경꾼이 된 후로 동료들 간의 교제에 소홀했던 건 사실이었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종일 위연이나 사천감 술사들과 있다 보니 눈이 높아졌던 것이다.

이참에 송정풍의 소개로, 교분이 비교적 잦은 이옥춘 수하의 동라들과 함께 밤에 교방사에 가기로 했다.

물론 동라들의 모임에는 한 턱 쏘기란 존재하지 않았다. 교방사의 가격은 일개 동라들이 한 턱 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허칠안은 가볍게 말했다.

“오늘 내가 영매소각을 접수한다. 나한테 맡겨.”

이 말을 들은 동라들은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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