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화.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비밀
영진산하 사당 안.
곤룡포를 입은 위엄 있는 남성이 검을 잡고 서 있었다. 원경제는 개국황제의 법상 앞에 서서 아무 기척 없이 먼지로 뒤덮인 동검을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입을 열었다.
[“일품이면 뭐 한단 말입니까? 장수해야 할 사람이 인간 기운의 영향을 받아 수명이 일반인보다 얼마 길지 못했으니.”]
원경제가 법상 앞에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어쩌면 육백 년 전의 조상과 나눈 대화일지도 몰랐다.
[“저는 스무 살에 황위에 올라 모든 적수를 무찌르고 지금 이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 후로는 저와 어깨를 견줄 사람이 없었지요. 저의 가장 큰 적수는 다름 아닌 시간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원경제는 서서히 시선을 옮겨 고개를 숙이고 발아래를 오랫동안 내려다봤다. 이어서 사당에 배치한 물품들을 하나하나 만져보았다. 심지어 그는 신단에 올라 조상의 법상과 황동검을 만져보는 불경스러운 행동까지 서슴지 않았다.
이 과정은 무척 꼼꼼하고 오래 진행되었다. 검사를 마치자 그는 그제야 안도의 숨을 쉬었다.
그의 표정은 전보다 훨씬 홀가분해보였다. 원경제는 부들방석에 무릎 꿇고 개국황제에게 삼궤구고의 예를 갖춘 후 영진산하 사당을 떠났다.
원경제는 한백옥고대에 높이 서더니, 문무백관과 황실 종친들을 굽어보면서 우렁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제사를 계속하여 진행한다!”
그는 방금 전에 일어났던 괴이한 현상에 대해서는 구태여 이야기 하지 않았다.
금군 오위와 야경꾼들이 다시 흩어져 질서를 회복하고는 주변을 순찰하였다.
환관 대오가 고개를 한껏 떨어뜨리고 총총걸음으로 다가가서 한백옥고대 위의 깨진 기와를 치우고 제물과 제기, 그리고 황실 조상들의 위패를 가렸다.
허칠안도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그는 지금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황실 제사에서 이런 일이 생기면……. 대흉의 징조라며 황제가 벌컥 화를 내야 정상인데. 이런 일에 대해 미리 마음의 준비라도 한 듯 위 공과 금오위 지휘자들을 혼내지도 않았다……. 음, 어쩌면 마음의 준비가 아니고, 괴이한 현상이 발생한 원인을 알지도 모르지. 다만 그 원인을 공개하지 못할 뿐.’
상백호에는 과연,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비밀이 있는 듯했다.
‘그 비밀은 어쩌면 내가 들었던 괴이한 소리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 심지어, 심지어 이번 돌발 상황은 나 때문에 초래되었을지도 모르고…….’
허칠안 스스로도 자신의 추측에 깜짝 놀랐다.
한때 유능한 형사였던 허칠안은 성숙한 논리체계를 내재하고 있었기에 자신을 바로 ‘진범’으로 지목하지는 않아왔다. 엄밀히 말해서 그는 아직 피의자에 불과했다.
충분히 다른 가능성이 있었다. 물론 그 소리를 자신만 들을 수 있었다는 것은 송정풍과 주광효를 통해 검증한 바 있었다.
하지만 그 사실로, 자신이 이번 소동을 일으켰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었다.
상백 자체에 비밀이 존재하는 듯했다. 다만 이 비밀은, 원경제 한 사람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이번 소동은 원래 일어났어야 했던 일일지도 몰라. 그저 내가 특수한 경우라 듣지 말아할 소리를 들었을 뿐인 걸지도. 내 몸에 감춰진 특수함……. 아마 이상하게 돈을 자주 줍는 운과 연관 있을지도 모르겠군.’
허칠안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진상을 알고 싶은 욕망이 큰 만큼 진상이 두려운 마음도 컸다. 자기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진상일까 두려웠던 것이다.
또 한 시진이 지나갔다. 제사가 마무리 되었다.
* * *
“수상해. 영진산하 사당 밑에 도대체 뭐가 있는 거야?”
돌아가는 길, 마음이 홀가분해진 송정풍은 근질근질했던 주둥이가 석방된 듯 궁금증을 늘어놓았다.
“눈을 뜨고 좀 걸어가지 그래?”
허칠안이 실눈인 송정풍을 놀려댔다. 자신의 집중력을 조금이나마 분산시켜서 마음을 가라앉히려는 것이었다.
다른 동라들도 방금 전 상황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다.
“방금 전 그거, 검기 맞지? 그렇게 공포스러운 검기는 처음이야. 검의(剑意)로 유명한 장(張) 금라도 그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지.”
“놀라 뒤질 뻔했어. 자객인 줄 알았잖아. 그럼 그렇지, 그렇게 무시무시한 자객이 어찌 경성에 발들일 수나 있었겠어. 우리 경성은 감정과 국사가 지키고 있는데.”
“사당 밑에 대체 뭐가 있는 걸까?”
이 문제에 대해서 동라들은 서로 마주볼 뿐 답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개국황제께서 당시 전장을 평정할 때 사용했던 패검이다.”
허칠안이 말했다.
그러자 주변의 시선들이 일제히 허칠안에게로 쏠렸다. 허칠안이라는 동라에 대해, 야경꾼 관아 내부에서는 두 가지 태도를 보였다.
그와 친분을 쌓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를 질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금라 두 명이 이 동라 때문에 싸우기까지 했잖아. 이 녀석, 나중에 분명 잘 될 거야. 적어도 은라까지는 문제없겠지.’
“네가 뭘 알아?”
어떤 사람이 피식 웃으면서 한 마디 던졌다.
“그럼 네가 직접 선배들한테 물어보든가.”
허칠안도 마찬가지로 피식 웃으면서 대꾸했다.
젊은 동라들은 산해관전역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연로한 동라나 은라들은 당시 원경제가 신검을 뽑아 진북왕에게 증여했단 사실을 알 터였다.
여기서 진북왕은 친왕(親王)이었다. 원경제의 친동생이기도 했으며, 봉호는 회왕(淮王)이었다.
진북왕은 북방을 지키고 초원 각 부를 진섭(震懾)하고 있는 회왕에 대한 존칭일 뿐이었다.
친왕은 무척 많았으나, 진북왕은 단 한 명뿐이었다.
허칠안과 동라의 적대적인 분위기를 감지한 여러 동라들이 화제를 돌렸다.
그들은 오늘 소동은 있었지만 그래도 제사를 원만히 마쳤으니 축하할 겸 저녁에 교방사나 청루에 다녀오자는 의논으로 분위기를 바꾸려 애썼다.
‘참으로 무미건조한 시대다. 남자들이 즐길 수 있는 오락 장소라고는 기루나 청루밖에 없다니. 너무 재미 없잖아!’
* * *
야경꾼 관아에 도착하자 허칠안은 또 감응을 느꼈다. ‘지서’ 문자가 도착한 것이다.
그는 뒷간을 핑계로 자리를 떠서 옥석경을 꺼내 보았다. 금련 도사가 자신과 일호에게 묻는 문자가 보였다.
[구: 일호, 삼호, 제사는 끝났나? 무슨 일인가?]
일호는 답이 없었고,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흥미진진하게 의논하고 있었다.
[이: 도사님, 그게 무슨 뜻입니까? 원경제가 제사를 지낼 때 자객이라도 만난 겁니까? 죽었습니까? 하하!]
허칠안은 이호가 조정 사람이 아니거니와 한평생 자신과 일호를 만나고 싶지 않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이호 같은 염세 청년은, 인터넷이 발달한 전생에 살았으면 몇 분 만에 경찰에 잡혀 콩밥을 먹었을 것이다.
[구: 좌선하고 있는데, 상백 방향에서 검광이 충천하는 걸 봤네. 마치 운록서원의 청기가 충천하는 것처럼 말일세.]
[이: 어느 고수입니까?]
[구: 정국(鎮国) 보검은 대봉 개국황제의 패검으로, 대봉이 세워진 후로는 하루도 빠짐없이 국운의 세례를 받아 대봉의 국운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네. 그런 보물에게는 이치상 그런 이상이 발생하지 말아야 하지.]
이호의 말이 뜨자마자 구호 금련 도사의 말이 이내 나타났다.
자신이 금련 도사의 말을 가로챘다는 것을 알아챈 이호가 침묵을 지켰다. 그러다가 십 초가 지나 금련 도사의 말이 더 이상 뜨지 않자 다시 문자를 적었다.
[이: 그래서, 대체 무슨 일이 발생했다는 건가?]
[사: 뭐라고? 정국 보검이 다시 살아났다고? 일품 강자가 대봉 경성으로 들어가 신병을 건드린 건가? 아니면 정국 신검이 다시 살아날 이유가 없는데.]
사호가 무척 놀라워 했다. 과거 그는 조당 관직에 있었기에 대봉에 대한 이해가 일호나 삼호보다 적지 않았다. 오히려 더 많을 수도 있었다.
[오: 난 대봉 황제의 생사여부에 대해서만 관심 있네. 만약 죽었다면 이 누님이 바로 부친께 이를 테니까.]
누님이라……. 오호는 여인이다. 허칠안의 눈에 빛이 반짝거렸다.
[사: 자네 부친한테 일러 뭐 하려고?]
[오: 당연히 출병하여 대봉의 변방을 쳐서 대봉의 양식과 사람을 뺏어야지. 하하하하!]
과연, 오호는 이족(異族)인 듯했다.
‘그렇지 않으면 만요국에 관한 역사를 그렇게 잘 알 수가 없지. 만요국이 남강(南疆)에 있으니 오호는 북방 각 부의 사람은 아닐 거다.’
이때, 일호가 나타났다.
[일: 제사는 이미 마쳤습니다. 영진산하 사당의 신검이 다시 살아나면서 약간의 소동이 있었던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시 고요해졌습니다. 원경제가 사당에 들어가 일각 정도 머물렀는데, 뭘 했는지는 모릅니다.]
[구: 휴, 과연 상백에는 비밀이 있는 게 분명하군. 이 비밀은 아마 황실에서만 알고 있겠지.]
[일: 도사님은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허칠안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구: 빈도야 일개 출가(出家)한 도사에 불과한데 그런 비밀을 접할 수가 없지. 다만 검기가 충천하기 전, 마기(魔气)가 황성 방향으로 몰리는 것을 봤네.]
[육: 빈승도 감지했습니다. 다만 반짝하더니 사라졌습니다.]
불문 제자인 육호도 한마디 했다.
‘지종은 공덕을 수행하니 아마 망기술과 유사한 기운을 관찰하는 법문 같은 것이 있는 모양이다……. 불문에 대해서는 잘 모르나 원칙상 마기나 요기에 대해 민감해야 마땅하지.’
허칠안은 묵묵히 거울을 염탐했다.
[이: 다시 말해서 제사를 지낼 때, 고품계 요족이거나 마도(魔道)의 사람이 경성에 접근하면 정국 신검이 다시 살아나 그 고수를 물리친다는 말일세.]
이호의 판단이었다.
[사: 경성은 감정께서 지키고는 있지만, 상대방 역시 정상 고수라면 찰나에 황성에 접근할 수도 있었겠지.]
[육: 일품 고수야 몇 안 되는데, 누가 이럴 때 경성을 침범한단 말인가?]
한참 동안이나 지서에는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아마 마음속으로 저마다의 추측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허칠안은 일품 고수가 나타나서가 아니라, 자신으로 인해 이상이 발생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 금련 도사, 검기 충천은 언제 발생했습니까?]
[구: 한 시진 전이네. 자네가 그게 왜 궁금한가?]
‘한 시진 전이라면……. 삼호가 상백에 관해 물었던 시각과 맞아떨어진다. 거의 동시에…….’
당시 삼호가 보낸 문자 내용을 보아서는 무척 절박해 보였다.
사호는 방금 전, 삼호가 물은 질문들을 떠올렸다.
‘삼호는 유가 서생이다. 사서를 통달하고 있을 테니 상백의 역사를 모를 리가 없다. 그런데 왜 지서에 그런 질문을 했단 말인가?’
상백의 역사를 잘 알고 있는 사호는, 역지사지로 삼호의 처지에서 헤아려보았다.
‘만약 내가 황실의 제사 대전에 참여했는데, 중도에 이런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 제일 먼저 상황을 설명하고 천지회 구성원들과 이상이 발생한 원인을 의논하여 일품 고수가 침입했을 가능성을 유추해냈을 거다.
하지만 삼호는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무척 분명한 목적성을 가지고 상백의 역사를 물었다. 삼호는 결코 머리가 나쁜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무척 총명한 사람이다.’
여기까지 분석한 사호는 스스로도 믿지 못할 추측을 하고는 삼호에게 물었다.
[사: 삼호, 자네는 뭘 좀 알지? 당시 현장에 있었고, 자네가 상백에 관해 묻고 나서 바고 정국 신검이 이상한 반응을 보였잖은가. 이건 절대 우연이 아닌 듯하네.]
사호가 적은 말을 본 천지회 구성원들은 그제야 사호가 금련 도사에게 검기 충천의 시각을 물어봤던 이유를 깨달았다.
[사: 삼호, 자네는 운록서원 학생이 아닌가? 그럼 필히 상백의 역사에 관해 알 텐데. 운록서원이 조당에서 밀려난 지 이백 년이 된다지만 그 초석이 무척 단단하네. 서원의 장서각에는 상백에 관한 역사가 내가 말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상세하게 기록돼 있을 텐데?
방금 전에도 자네가 상백에 대해 묻는 것을 이상하다 생각했네만.]
‘아니, 난 정말 몰랐는데…….’
허칠안도 이를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랐다. 소름 끼치는 목소리가 그의 정신을 붕괴로 몰았으니, 그런 상황에서 자신이 부각해놓은 이미지를 지키려고 침묵할 새가 없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