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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84화 (84/712)

84화. 갑자기 하늘이 변했다

[육: 삼호, 이런 걸 묻는 이유는 무엇인가?]

허칠안은 그들에게 답장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는 휘청거리면서 지서 파편을 다시 가슴에 넣더니, 맥없이 땅에 무릎 꿇고 앉아 머리를 안고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구해줘. 나를 구해줘…….”

소리가 한 번 또 한 번 들려와 허칠안의 귓전에서 맴돌았다. 그것은 계속해서 철침마냥 그의 뇌를 찌르고 있었다.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송정풍과 주광효가 허칠안의 수상한 행동을 발견했다. 공포가 서린 허칠안의 얼굴은 백지장이 되어 있었다.

“무슨 일이야? 버틸 수 있겠어? 이런 때 일이 생기면 안 되는데! 만약 폐하께서 제사를 지내는 데 방해가 되면 바로 사형감이야!”

송정풍의 마음은 급해졌고, 주광효는 무슨 상황인지 살펴보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 * *

이때 원경제는 이미 한백옥고대에 오른 상태였다. 북소리와 곡조가 중단됐다. 그리고 태상시경이 무릎 꿇고 축문을 읊었다. 축문이 끝나자 다시 곡조가 울렸다.

원경제가 친히 축문을 태우고 조상들에게 삼궤구고(三跪九叩)의 예를 갖췄다.

이제 제사의 절반까지 왔다.

위연이 시선을 거두더니,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황후를 바라봤다.

황후는 장공주의 생모였지만 모녀 둘은 전혀 닮지 않았다. 황후는 여전히 경국지색이었다. 다만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순수한 소녀의 청순하고 풋풋했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위연은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위연의 눈동자가 옛 생각에 잠겨 초점을 잃었다.

이때 뭔가 통했는지, 황후가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 두 사람의 눈빛이 마주쳤다.

황후의 눈길이 부드러워졌다.

순간 전율을 느낀 위연이 깜짝 놀라 급히 시선을 거두고 허리를 굽혀 공손하게 읍했다. 그는 눈동자에 되살아났던 감정을 순식간에 거두었다.

“의부님, 저기에 뭔가 일이 발생한 것 같습니다.”

양연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위연이 양연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동라 한 명이 땅에 무릎 꿇고 주저앉아 있었고, 양 옆에서 동라가 그한테 뭔가를 말하고 있었다.

많은 고수들은 이미 허칠안의 동태를 살피고 있었다. 다만 위기감이 느껴지지 않아 묻지 않았을 뿐이었다. 자객만 아니면 어떤 일이라도 폐하께서 제사를 마친 뒤로 미루어야 했다.

물론 이 동라의 수상한 행위도 잠시 묻어둘 뿐 나중에 반드시 잘못을 묻게 될 터였다.

위연은 수상한 동라가 허칠안이라는 것을 발견하자 양연에게 분부했다.

“가서 무슨 상황인지 알아보고 데리고 가거라.”

이는 허칠안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 * *

“구해줘. 나를 구해줘…….”

명을 재촉하는 귀신마냥, 소리는 귓가를 떠날 줄을 몰랐다. 허칠안의 정신이 드디어 분열됐다. 그의 의식은 21세기의 경찰이었다가, 잠시 뒤엔 경성 토박이 야경꾼이었다가를 반복했다.

‘머리가 너무 아파. 말하지 마. 말하지 마. 제발 말하지 말아줘……’

허칠안은 머리를 끌어안은 팔에 힘을 더 세게 주었다.

땀이 땅에 뚝뚝 떨어졌고, 그의 등은 이미 땀으로 흠뻑 젖은 채였다.

괴이한 소리가 그의 원신(原神)에 충격을 가했는데, 그 고통은 육신이 극형을 당하는 것과 똑같았다.

괴이한 소리가 계속하여 압박을 가하자 허칠안은 결국 폭발했다. 그 순간 그에게는 황제의 제사고, 삼엄한 규칙이고 더 이상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죽음이 임박했을 때에는 그 무엇도 중요하지 않은 법이었다.

허칠안은 두 주먹으로 있는 힘껏 땅을 내리치며 포효했다.

“입 닥쳐!”

그 찰나, 모든 것이 변했다.

호수 위, 한백옥고대의 사당이 진동하더니 금빛을 뿌리는 검기가 지붕을 뚫고 하늘 높이 솟구쳤다.

검광(剑光)이 나타나자, 수면 위로 물결이 거세게 일더니 겹겹으로 용솟음쳐 올랐다.

마치 상백이 다시 살아난 것만 같았다.

강한 기기가 요동치더니, 맨 처음으로는 원경제가 넘어졌다. 그 다음으로는 한백옥고대가 심하게 진동하더니 탁자 위에 놓였던 조상들의 위패가 몽땅 넘어졌다.

제물과 제기 모두 땅에 널브러졌고, 사방으로 흩날리던 기와가 원경제의 몸에 떨어졌다.

순간 상백은 혼란에 빠졌다. 순찰하던 금군이 빠르게 집결하여 상백으로 진군했다.

경비를 맡은 호숫가의 야경꾼들이 제사 대오를 향해 달려가 황실과 문무백관을 호위해 나섰다.

“자객이 있다. 폐하를 보호하라!”

“황후마마를 보호하라. 공주마마를 보호하라……!”

“수보를 보호하라!”

사람들의 그림자가 여기저기서 번득였다. 야경꾼 관아의 금라 열 명, 금군 오위의 고수들, 종친 중의 고수들……. 짧은 시간에 최소 수십 명의 고품계 무부가 하늘로 날아올라 한백옥고대와 구불구불한 장랑을 빈틈없이 채워 원경제를 보호했다.

소동은 단 열 몇 호흡 만에 끝났다. 하늘 높이 치솟았던 검기도 빠른 속도로 흩어졌다. 호수는 다시 고요해졌다.

자객은 없었다. 풍랑이 가라앉자 주변이 안정을 되찾았다. 사상자나 수상한 인물은 나타나지 않았다.

제사 보안의 최고 책임자인 위연이, 구불구불한 장랑을 따라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한백옥고대에 올라가 허리를 굽혀 읍하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소신의 직무 과실입니다. 소신, 죽어 마땅합니다!”

이에 원경제도 마음을 가라앉혔다. 사태가 발생한 후로 그의 담박한 분위기는 완전히 사라진 상태였다.

그는 더 이상 이십여 년 동안 도를 닦아온 도인이 아니었다. 그 순간부터 최상의 권력을 손에 쥔, 속내를 종잡을 수 없는 제왕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원경제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모든 사람은 제단에서 물러나라. 그 누구도 이곳을 가까이 하지 말 것이야!”

위연을 포함한 고품계 무부들이 몸을 일으켜 물러났다.

원경제는 의관을 바로하고, 곤룡포에 묻은 먼지를 털어버리더니, 엄숙한 표정을 짓고 사당 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갔다.

* * *

허칠안은 버드나무 앞에서 크게 한번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괴이한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았고, 시간이 흐를수록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머리는 여전히 아팠지만 방금 전처럼 참기 어려운 통증은 아니었다.

허칠안은 그제야 주위를 관찰할 수 있었다.

옆에 있던 동료들은 이미 호숫가에 있는 문무백관과 황실, 종친들을 겹겹이 둘러싼 채 서 있었다.

한백옥고대에는 한 사람도 없었다. 구불구불한 장랑은 고품께 무부들로 꽉 차있었고, 맨 앞줄엔 위연이 서 있었다.

원경제는 보이지 않았다.

허칠안이 가장 놀란 부분은, 전설 속에 신검을 모셨다는 사당 지붕의 대들보 하나가 끊어져 그 위로 구멍이 나있었다는 점이었다.

‘제사에 문제가 생긴 모양이군. 상백의 비밀이 다시 세상에 드러난 건가?’

많은 생각들이 머리를 스쳤다. 허칠안은 통증이 남아있는 머리를 한 손으로 부여잡고 큰 대오에 접어들었다.

야경꾼 신분이라, 제지를 받지는 않았다.

“너 방금 왜 그랬던 거냐?”

송정풍이 동료를 살펴보면서 물었다.

“몸은 괜찮고?”

송정풍은 상백호에서 벌어진 괴이한 상황과 허칠안을 연결짓지 않는 듯했다.

누가 닭 한 마리의 포효를 10급 지진과 연결짓겠는가.

“요 며칠 무공에 너무 집착했나 봐. 오히려 역효과가 일어난 듯해.”

허칠안이 합리적인 변명을 내놓았다.

“그나저나 방금 전에는 어떻게 된 거지?”

“우리도 모르겠군.”

송정풍은 긴장을 늦추지 않으며 주변을 살피다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영진산하 사당이 갑자기 폭발했다. 사당에서 검기가 지붕을 뚫고 나오더니 지진이 일어난 것마냥 상백호 전체가 물이 솟구치면서 난리도 아니었어. 방금 전 상황을 볼 때, 자객이 한 짓은 아닌 것 같아.”

허칠안은 시선을 한백옥고대로 옮겼다.

‘사당 꼭대기의 구멍이 검기에 의해 뚫린 거라고? 이렇게 어마어마한 위력을 가진 신검이 나한테 살려달라고 할 리가 없지.’

방금 전 그에게 들렸던 소리는 검령(剑灵)과 같은 존재에서 흘러나온 것이 아니었다.

허칠안은 총총걸음으로 장공주 앞으로 다가가더니 공수하면서 입을 열었다.

“장공주마마, 별고 없으십니까?”

질서를 되찾은 대오는 대체적으로 조용했다. 다들 제자리에 서서 원경제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허칠안의 목소리가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야경꾼 동료, 금군, 환관……. 물론 장공주가 있는 곳에는 그 주변의 황실 종친들도 있었다.

장공주는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조금 돌려봤다. 장공주의 맑은 눈동자에 허칠안의 그림자가 비쳤다. 장공주는 옥석이 부딪치는 것 같이 차가우면서도 맑은 목소리로 답했다.

“없으니 걱정 마시게.”

허칠안이 큰 짐을 내려놓은 것 같은 기색을 보이더니 입을 열었다.

“그럼 소인도 시름을 놓겠습니다.”

허칠안은 자신의 존재를 알리자마자 바로 물러나 추호의 흐트러짐 없이 경비 태세에 들어갔다.

“회경(懷慶), 저 동라가 언니에게 호감이 있는 것 같은데요.”

부드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장공중 뒤에 서 있던 둘째 공주였다.

회경은 장공주의 봉호(封号)였다. 하지만 그녀는 사람들이 자신을 장공주라 부르는 것을 더 좋아했다.

둘째 공주의 용모도 장공주에 못지않았다. 둥근 얼굴에 웃는 눈, 산뜻한 붉은색을 띤 입술은 웃을 때마다 매혹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장공주와는 전혀 다른 유형의 미인이었으나, 자매 둘의 관계는 줄곧 좋지 않았다.

장공주가 담담하게 말했다.

“호감까지는 아니고, 은혜를 아는 청년일 뿐이다.”

사천감에서 깔았던 밑밥에 방금 전의 공손한 태도까지, 허칠안은 장공주에게 ‘은혜를 아는 청년’이라는 인상을 성공적으로 남기게 된 것이었다.

둘째 공주가 가볍게 웃더니 말을 꺼냈다.

“회경 언니의 매력이야 경성에서 누가 모르겠습니까. 운록서원의 학생들도 언니께 푹 빠졌었지요. 하물며 서생들도 그러한데, 야경꾼이야 더 말할 것도 없을 테지요.”

다른 황자와 황녀들이 옆에서 이 장면을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었다.

“임안(臨安)!”

동궁 태자가 눈썹을 찌푸리면서 둘째 공주를 혼냈다.

“조용!”

임안은 둘째 공주의 봉호였다. 그의 꾸지람에 둘째 공주는 입을 삐죽거리더니 고개를 조금 떨어뜨리고 단정하고 우아한 자태로 조용히 섰다.

황실 종친들 모두 장공주와 둘째 공주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장공주는 황후가 낳았고, 둘째 공주는 진귀비가 낳은 자식이었다. 지위상의 격차가 있긴 하지만 귀비는 황후보다 황제의 총애를 받았다.

어린 시절, 둘째 공주는 종종 장공주를 도발하는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사사건건 장공주를 상대로 트집을 잡았었다.

황실에서 이런 갈등들이야 늘 일어났다. 하지만 하필 지고는 못사는 장공주를 건드린지라 일이 커졌다. 한번은 장공주가 시종들에게 둘째 공주를 붙잡으라고 명했는데, 시종들이 감히 명을 받들지 못하자 죽간(竹簡)을 들고 직접 둘째 공주를 쫓아가 흠씬 때린 적이 있었다.

궁중의 시녀들과 시위들은 차마 나서서 말리지 못했고, 이 소동은 도를 닦고 있던 원경제의 귀에까지 전해졌다.

진귀비는 얻어맞아 얼굴이 퉁퉁 부은 둘째 공주를 원경제 앞으로 데려가, 울며불며 장공주를 고발했다. 이에 원경제가 장공주를 엄하게 처벌하기 위해 그녀의 서재에 찾아갔다.

진작 이를 대비하고 있던 장공주는 <예기(礼记)>, <통전(通典)>, <궁율(宫律)> 등 열 여권의 책을 서재에 비치해 두고 연설을 시작했다.

결국 이 소동은 장공주의 승리로 끝났다. 원경제는 괴로운 마음을 뒤로한 채 어쩔 수 없이 장공주를 무죄로 판결 내렸다.

성인이 되고 난 후 장공주는, 자신의 성질을 꽤나 많이 가라앉히며 사는 중이라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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