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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82화 (82/712)

82화. 상백(桑泊)

사망자의 신체를 만지면서 자세히 살피던 허칠안이 다시 입을 열었다.

“온몸이 뻣뻣해지고 시반(屍斑)이 고정되고, 각막이 혼탁해진 걸 보니 죽은 지 열일곱 시간이 넘었네. 흉수가 야밤에 살인을 저질렀단 말이지.

여러 방면으로 착수하여 조사하기를 바라네만, 첫째, 부아에서 최근 발급한 야행 증서를 찾아보시게. 둘째, 어도위한테 최근 수상한 사람을 보지 못했는지 물어보게. 셋째로는, 해당 구역의 야간 순찰을 책임진 야경꾼에게도 물어보고, 넷째, 가족한테 최근 사망자의 교제 상황을 물어보게.”

한참 동안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고 허칠안만 멍하니 쳐다봤다.

‘이렇게 짧은 시간 내에 이렇게 분명하고도 명확한 추리를 내놓는다고? 게다가 사건 수사 방향까지 제시하다니.’

허칠안이 사건 수사의 고수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수사가 이렇게까지 빠르게 진행될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여청이 잠깐 생각하더니 말을 꺼냈다.

“우선 오작한테 시체를 보여라.”

살인 사건이 생기면 포졸들은 오작을 데리고 수사에 나섰다. 현장에서 시체를 검사하다보면 현장과 연결하여 추리를 진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작이 내린 결론은 허칠안의 판단과 유사했다. 심지어 허칠안이 더 상세한 결론을 내렸다.

송정풍과 주광효, 여청과 부아 쾌수들 모두 허칠안을 향한 탄복의 마음을 절로 드러냈다.

“아까워. 이미 야경꾼이 됐으니 부아에서 빼올 수도 없고…….”

허칠안이 야경꾼이 된 것에 못내 아쉬워하던 여청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렇게 재능 있는 동료와 함께 범인을 체포하고 사건을 분석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여청이 밖에 있는 쾌수들을 불러 무슨 수확이 있는지 물었다.

그들이 물어본 결과, 사망자는 최근 타인과 원한을 맺은 적이 없고 어젯밤에는 손님이 없었으며, 최근 사망자의 정신상태가 무척 좋았다고 했다.

여청은 아무런 단서를 찾아내지 못하자 눈썹을 찌푸렸다.

“사망자는 그저 기관(*旗官: 군대에서 깃발을 드는 사람)인데 원한을 맺은 경우가 아니라면 야밤에 저택에 침입해서까지 사람을 죽인 이유가 뭘까?”

허칠안이 옆에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

수사경험이 풍부한 여청은 허칠안의 말을 듣자 바로 뭔가를 깨달았는지 사망자의 본처를 불러와 물었다.

“최근 집에 은자가 많아졌다거나 유한(劉漢)이 당신에게 이상한 말을 한 적은 없는가?”

부인은 애써 기억을 되살리더니 입을 열었다.

“며칠 전에, 부군이 경성을 떠나 다른 곳에서 풍요로운 생활을 누리자고 말했습니다.”

여청이 허칠안과 눈을 마주쳤다.

“며칠 전인가?”

“열흘 정도 됐을 겁니다.”

부인도 똑똑하게 기억하지는 못했다.

* * *

정원을 떠나는 도중, 여청이 진지하게 말을 꺼냈다.

“뇌물을 받고 살해당했네요.”

허칠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같은 생각이었다.

송정풍이 눈썹을 찌푸리면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일개 기관(*旗官: 군대에서 깃발을 드는 사람)이 뭐 때문에 살해까지 당했단 말인가?”

허칠안이 뭔가를 포착한 듯 말했다.

“내 기억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금오위는 내성 동성문과 황성 동성문의 수위를 책임지는 것으로 아는데.”

이 말을 듣자 사람들의 안색이 변했다.

허칠안이 말했다.

“유한의 직속 상사를 만나봐야 할 것 같네. 우선 관아에 사건을 보고하고 패표(*牌票: 관청끼리 발급하는 공문)를 가지고 찾아가 보지.”

유한의 상사는 금오위 백호였다. 비록 다 백호지만 금오위의 지위는 어도위보다 훨씬 높았다. 후자는 대문을 지키는 경비였고, 전자는 윗분들을 호위하는 경호원이었으니 말이다.

허칠안의 일행이 금오위 백호를 찾아가 말을 물으려면 부아에서 발급한 패표가 있어야 했다. 전생의 영장과 유사한 증서였다.

* * *

허칠안은 야경꾼 관아에 돌아와 이옥춘에게 사건을 보고했다.

“수상쩍은 구석이 많은 사건이군. 하지만 황성은 수비가 잘 돼 있으니 일개 기관(*旗官: 군대에서 깃발을 드는 사람) 하나가 큰 풍랑은 일으키지는 못할 거다. 관례에 따라 물어보면 된다. 금오위 내부에서도 수사할 거니까. 그리고 폐하께서 제사를 지내는 날이 코앞으로 닥쳐왔으니 우리의 제일 임무는 응당 그에 두어야 한다.”

그러더니 그는 바로 패표를 내주었다.

* * *

허칠안과 그의 동료들은 관아에서 부아 쾌수들을 잠깐 기다렸다가 그들과 함께 황성 동문으로 향했다.

주 백호는 수하들을 데리고 순찰을 하고 있었던지라 한 시진 후에야 돌아왔다. 야경꾼과 부아에서 찾아왔다는 말을 들은 주 백호가 바로 그들을 접견하러 왔다.

주 백호는 숱진 구레나룻에 삼각눈을 가진, 흉한 면상의 소유자였다.

송정풍이 먼저 말을 꺼냈다.

“주 백호, 수하에 유한이라는 기관(*旗官: 군대에서 깃발을 드는 사람)이 있습니까?”

불쾌한 표정의 주 백호가 막 답하려는데, 갑자기 동라 한 명이 가슴에서 종잇장 한 장을 꺼내더니 기기로 태웠다.

그러자 동공에 청광이 씌워진 듯했다.

‘망기술?’

주 백호가 양미간 사이에 드러난 화를 슬쩍 거두고 답했다.

“맞네.”

“그 기관이 죽었습니다.”

송정풍이 말했다.

“뭐?”

주 백호가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되묻자 여청이 물었다.

“유한이 최근 이상하게 굴지는 않았습니까?”

“그런 일은 없었네.”

“동성문을 지키는 동안 수상한 사람 혹은 물건이 황성에 출입한 적은 없습니까?”

“없었네만.”

주 백호가 고개를 절레절레하면서 말을 이었다.

“황성을 지키는 사졸이 어마어마한데 한 사람에게만 뇌물을 줘서는 소용없네. 모두에게 주지 않는 이상. 하지만 모두에게 준다는 건 말도 안 되지.”

주광효가 말했다.

“주 백호에게 뇌물을 준다면요?”

주 백호는 억눌렀던 화가 치밀어 올라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지금 무슨 뜻인가?”

송정풍이 웃으며 말했다.

“관례대로 말을 묻는 건데 화를 낼 것까진 없지 않습니까. 폐하께서 제사를 지내는 날이 코앞이니, 우리도 미연에 모든 가능한 착오를 방지해야 할 거 아닙니까.”

망기술을 부리는 동라가 지켜보고 있었기에, 주 백호는 밀려오는 분노를 억제하고 이어지는 물음마다 일일이 답했다.

허칠안의 기술 발휘 시간이 거의 끝나가자 송정풍이 웃으면서 말했다.

“물음에 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는 먼저 가보겠습니다.”

* * *

돌아오는 길에 허칠안이 말했다.

“거짓말을 하지 않았어.”

송정풍이 실눈을 뜨면서 입을 열었다.

“어쩌면 유한은 다른 일로 살해되었는지도 모르지.”

주광효가 진지하게 말했다.

“이 사건은 우선 놔두고 제사 대전에 신경을 기울이도록 해야겠어.”

모레는 황제가 제사를 지내는 날이라 그 외의 일들은 그 뒤로 미루어야 했다.

여청 일행과 작별하고 난 후, 허칠안은 편청에 앉아 다시 한 번 제반 과정을 되새겨봤다. 그래도 아무런 결과가 없자 유한의 사건을 우선 미뤄두기로 했다.

* * *

경자년, 시월 십오일, 갑자일.

황실에서 제사를 지내는 날이었다. 허칠안은 이 날이 결코 낯설지 않았다. 해마다 이맘때면 내성의 성문이 닫히고, 어도위 백호인 숙부가 당일 내성으로 조정되어 계엄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당일 내성의 백성들도 집 안에만 머물 수 있었고, 외출은 금지됐다.

이와 유사한 제사는 초봄에 한 번 더 있었다. 하늘에 지내는 제사였다. 한 해 동안 적절한 강우량으로 풍년이 들고,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이 평안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제사였다.

어제부터 내성의 객잔들을 검문하여 강호객들은 모두 외성으로 쫓았고, 주루는 휴업했으며 객잔은 유숙을 금했다.

야경꾼인 허칠안은 상백에서의 경호 임무를 맡았다.

상백은 황성 바로 옆에 자리한 작은 호수였다. 수면 위로 구불구불한 장랑(長廊)을 세워, 호수 중심에 있는 한백옥고대(漢白玉高台)와 연결하였다. 한백옥고대(漢白玉高台)에는 사당이 하나 있었는데, 편액에 금으로 ‘영진산하(永鎮山河)’라고 새겨져 있었다.

제사를 지내는 지점은 바로 이곳이었다.

상백은 일반 호수가 아니었다. 이 호수는 흥미로운 역사를 가지고 있었는데 개국황제와 관련이 있었다.

‘상백’은 고대에 현무호라 불리었다. 호수에 신수 현무가 살았기 때문이다.

한번은, 대봉의 개국황제가 전쟁에서 패하고 남은 병사들과 함께 상백까지 도망쳤다. 그들은 병기와 식량이 다 떨어진 상태였다.

그들이 절망에 주저앉아있던 그때, 수면에 소용돌이가 일더니 현무가 거센 물결을 헤치고 참천멸선(斬天滅仙)이라는 신검을 등에 꽂고 다가왔다.

현무는 자신이 이곳에서 수백 년 머물렀던 이유가 바로 천명을 타고난 그 한 사람을 기다리기 위해서라고 밝히더니, 신검을 개국황제에게 넘기고 물결을 타고 떠나갔다.

신검을 얻은 개국황제는 호수에서 삼 년 동안 오로지 도만 닦고 나서야 다시 병력을 모았다. 그러자 그는 백전백승의 기백을 보이면서 부패한 지난 황조를 뒤엎을 수 있었다.

그 후 그는 중원을 통일했고, 대봉은 상백에 도성을 세웠다.

상백은 대봉 개국황제가 도를 얻은 곳으로, 남다른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기에 대봉 황실은 해마다 이곳에서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의식을 거행했다.

호수 위에 세운 사당에서는 개국황제의 법상을 모시고 있었다.

‘유방의 참사기의(斬蛇起義)도 있지 않았던가. 이 전설에도 얼마나 많은 거짓이 덧붙여졌는지는 모르지…….’

허칠안은 호수 중심에 자리한 한옥 백옥고대를 바라보며 속으로 비아냥거렸다.

동이 트기 전이라 사방은 아직 새카맸다.

이른 새벽의 겨울바람은 살을 에는 것 같이 차가웠다. 허칠안은 찬 공기를 깊이 들이마시면서 잠이 덜 깬 흐리멍덩한 머리를 맑게 했다.

이때 십여 미터 떨어진 곳에 서 있던 송정풍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제사가 끝나면 셋이 교방사에 가는 게 어때?”

송정풍의 말을 듣자 주광효의 마음이 동했다.

하지만 주광효에게는 야경꾼의 체면이 있던지라 당장에 응하지는 않았으나, 생각할수록 송정풍의 제안에 끌렸다.

“다시 생각해봐.”

허칠안이 말했다.

“너 이러면 재미없어.”

송정풍이 허칠안의 답이 마음에 안 든다는 듯 토라진 말투로 투덜댔다.

“그럼 내가 주령을 담당하지.”

허칠안이 말했다.

“안 돼. 너도 함께 놀아야 돼. 그래야 우리 사이 우의가 더 돈독해보이지.”

송정풍은 일언지하에 허칠안의 제안을 거절했다.

이때 주광효가 친구의 비열한 속내를 까발렸다.

“정풍은, 네가 부향 낭자까지 함께 불러 놀면 안 되겠느냔 뜻이야.”

셋이 대화를 나누면서 무료함을 달래고 있는데, 송정풍이 갑자기 양미간을 찌푸리면서 허칠안에게 물었다.

“호수는 왜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보는 거냐?”

“뭔지 모르게 기분 나쁜 음침한 분위기가 느껴져.”

“그 입 좀 닥쳐!”

송정풍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

“찬바람을 맞더니 머리가 돈 거 아냐? 상백은 대봉의 성지다. 개국황제가 득도한 곳이기도 하고. 그렇게 쓸데없는 허튼 소리는 집어치워.”

주광효도 귀띔했다.

“고품계 무부는 시력과 청력이 무척 발달되어 있어. 네 말이 그들한테 들리기라도 하면, 필히 너한테 죄를 물을 거야.”

허칠안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

시간을 알리는 중후한 북소리가 들려오더니 현장에서는 경건한 분위기가 우러났다.

그 전만 하더라도 가볍게 말을 건네던 야경꾼들조차 바로 입을 다물고 숙연한 자세로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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