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살인 사건
[일: 난 아닐세.]
일호가 부인했다.
일호가 아니면 그럼 삼호밖에 없다.
‘삼호는 역시 운록서원의 서생이야.’
평원백 사건으로 육호가 머무는 곳을 찾아냈지만 육호에 대해 아무런 불리한 행동도 하지 않은 데다 오히려 그를 묵묵히 돕고 있었다.
‘삼호는 역시 학식이 높은 문인일 거다.’
천지회 구성원들은 돌연 삼호에게 존경심이 들었다. 그들은 삼호의 인품이 훌륭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 삼호 자네가 한 건가?]
‘……아닌데. 난 그런 적 없는데.’
허칠안은 침묵했다. 해명하지 않으면 묵인이었다.
‘만약 사람들이 진상을 알더라도 내가 하지 않았다고 하면 그만이지.’
게다가 허칠안은 갑자기 자신이 위연에게 육호를 팔아먹었던 사실이 떠올랐다. 위연의 수단으로는 그가 제공한 단서만으로도 육호가 머무는 곳을 쉽게 찾아낼 수 있을 터였다.
육호가 그렇게 많은 아이들을 구해냈는데, 그들을 어떻게 방치했겠는가?
그러니 허칠안이라면 우선 경성의 양생당부터 수사했을 것이다.
‘게다가 위연을 제외하면 또 조정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없다.’
물론 일호도 그럴 만한 능력은 되지만, 방금 그는 부인했다.
‘평원백을 살해한 흉수를 찾아내고도 체포하기는커녕 오히려 양생당에 밀린 돈을 지급하고 거처까지 수리하다니.’
“위연…….”
어두운 촛불 아래, 허칠안이 작은 목소리로 위연의 이름을 한 번 불렀다.
* * *
아침 일찍 깨어난 허칠안이 후청에 도착하니, 허영음이 내는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다.
콩알이의 희고도 여린 피부에 빨간 부스럼이 돋아 아프다고 아우성치던 것이다.
숙모는 그런 콩알이에게 얼굴에 벌레가 자라서 피부를 갉아먹고 있으니 내일이면 얼굴이 엉망진창이 되어 나중에 출가도 어려울 것이라고 농담을 던졌다.
허영음이야 출가하든 말든 거기에는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줄곧 자신이 귀여운 아이라고 여겨왔고 앞으로 모친과 언니처럼 아리따운 미모를 갖추어 훌륭한 장난꾸러기가 될 줄만 알았다. 그런데 모친의 말을 듣자 자신의 바람이 물거품이 될 거라는 생각에, 슬픔이 밀려오면서 울상이 돼버렸다.
“큰 오라버니…….”
허영음이 작은 엉덩이를 씰룩대며 급히 달려 오더니 허칠안 앞에서 급정거하고는 얼굴을 옆으로 돌려 짧은 손가락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키며 말했다.
“제 얼굴이 엉망진창이 될 거래요.”
“이건 엉망진창이 되는 게 아니야.”
허칠안이 콩알이의 머리를 쓰담쓰담하면서 말을 이었다.
“네가 너무 예뻐서 이렇게 된 거야.”
“너무 예뻐서?”
“음, 앞으로 넌 네 어머니와 언니보다 더 예쁠 거거든.”
허영음은 허칠안의 말을 믿고 기분이 좋아졌는지 아침에 죽을 세 그릇이나 뚝딱 비웠다.
* * *
오늘은 주간 순찰인 허칠안이 송정풍, 주광효와 조를 이루어 거리를 돌아다니는 날이었다.
“도가 괜찮아 보이는데.”
송정풍이 허칠안의 허리에 찬 패도가 바뀐 것을 발견했다.
허칠안이 한 손으로 도를 눌러 엄지를 튕기더니, 흑금도를 삼 척정도 도실에서 뺐다가 얼른 다시 넣으면서 득의양양한 어투로 말했다.
“사천감에서 선물한 거야.”
감정이 선물한 거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말해도 믿을 사람이 없거니와 만일 진짜 믿어 퍼뜨리기라도 하면 도를 노리는 눈길들이 많아질 테니까.’
“법기?”
송정풍과 주광효의 눈이 반짝거렸다.
허칠안이 고개를 절레절레했다. 도는 진법을 새긴 법기는 아니나 무척 단단한 것이 특징이었다.
이 특징은 허칠안과 어울렸다.
* * *
내성의 거리는 무척 넓고 종횡으로 잘 뻗어있었다. 허칠안은 간식을 사서 동료들과 나누어 먹으면서 걸어 다녔다.
주간 순찰은 주간 순찰만의 좋은 점이 있었다. 야경꾼 외에도 어도위와 부아의 포졸들도 순성하기에 야경꾼의 일이 훨씬 줄어든다는 점이었다. 잠깐 쉴 틈도 생기고 힘들면 찻집에 들어가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듣거나 기루에 들어가 노래를 들을 수도 있었다.
순찰하는 도중에 허칠안의 발밑에 갑자기 딱딱한 물체가 밟혔다. 그는 허리를 굽혀 딱딱한 물체를 주웠다.
동작이 어찌나 매끄럽고 표정이 어찌나 자연스러운지 송정풍과 주광효는 그가 바지통이나 가죽신을 만지는 줄로만 알았다.
은자를 만지작거리던 허칠안이 말을 꺼냈다.
“기루에 가서 노래 듣는 건 어때?”
송정풍과 주광효가 잠깐 멈칫하더니 입을 열었다.
“좋지.”
* * *
세 사람은 익숙한 발걸음으로 기루에 들어가 이층 별실을 차지했다. 탁자가 난간 옆에 있어 손님들은 차를 마시거나 술을 마시면서 무대를 굽어볼 수 있었다.
무대에서는 잡극을 연출하고 있었다.
“모레면 폐하께서 제사 지내는 날인데 너희 둘은 경험이 있을 거 아냐.”
허칠안이 먼저 말을 꺼내면서 자문을 구했다.
“우리는 그저 상백(桑泊) 변두리를 지키면 된다. 제사 대전은 상백(桑泊)에서 거행되거든. 그건 알지?”
송정풍이 땅콩을 씹고 술을 마시면서 말했다.
허칠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백은 황성 밖에 있는 작은 호수였다. 그곳은 마침 경성 오위(五衛) 군영의 호위 범위에 둘러싸인 곳이었다.
야경꾼의 임무는 무척 간단했다. 질서를 유지하고 황실 종친들의 안전을 지키면 되었다.
제사의 흐름은 태상시(太常寺)와 예부에서 책임졌고 외곽 순찰은 어도위, 금오위 등 황성 금군들이 책임졌다.
잡극이 끝나자 무료함을 느낀 송정풍이 여인들을 불렀다. 그러자 무척 열심히 꾸민 여인들이 줄줄이 들어와서는 눈웃음을 치면서 귀객들의 환심을 샀다.
야경꾼 제복을 입은 허칠안 일행은, 일반인에게는 무척 위엄이 있었다.
허칠안은 삼 일 동안은 여인을 가까이 하고 싶지 않았다. 연기경의 무인은 금욕까지는 아니더라도 절제가 필요했다.
* * *
외모가 괜찮은 여인 둘을 고른 두 사람은 안방으로 들어갔다. 기루 같은 곳을 찾아와서 노래만 듣는 경우는 적었다. 대부분 노래를 들으면서 일을 완성했다.
‘기루는 마치 전생의 콘서트에 곡예를 더한 것과 같은 곳이다. 무척 내용이 풍부하다.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쏠쏠하다.’
허칠안은 술을 마시면서 흥미진진하게 주변을 감상했다.
* * *
점심이 다가오자 세 사람은 기루를 떠났다. 간식과 차, 그리고 술까지 먹으니 배가 더부룩했다. 그래서 그들은 점심을 먹지 않기로 했다.
느릿느릿 걸으면서 수다를 떨고 있는데, 갑자기 앞에서 공복(公服)을 입은 부아 포졸들이 말에 채찍질을 가하면서 달려왔다.
선두로 달리고 있는 포두는 여인이었다. 늘씬한 키에 수려한 오관. 눈썹은 일반 여인들보다 짙고 늠름한 기운을 물씬 풍겼다.
세 사람을 알아본 여청이 바로 말고삐를 당겼다. 말이 길게 소리를 지르며 앞발을 높이 들었다. 여청이 세 사람을 알아본 것도 야경꾼 제복이 무척 눈에 띄었기 때문이었다.
“허 공자, 또 만났네요. 두 분도 별고 없으시죠?”
‘허칠안은 허 공자고, 우리 둘은 통틀어 두 분이 됐네. 그러니깐 나랑 광효는 이름도 없는 작은 인물이라 이거지…….’
송정풍이 벙긋 웃더니 실눈이 되어 인사를 건넸다.
“며칠 안 봤는데, 여 포두는 점점 더 늠름해지는 것 같네.”
이에 가볍게 웃던 여청이 해야 할 일이 생각났는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삼수가(三水街)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세 분이 책임지는 구역이지요? 기왕 만난 거 함께 가봅시다.”
‘살인사건…….’
송정풍의 안색이 변했다.
“좋네. 앞장서게. 우리가 뒤따라갈 테니.”
* * *
허칠안은 동료들과 함께 삼수가에 도착했다. 저택의 문어귀에서 부아 포졸들이 길가에 묶어놓은 말들을 발견했다.
대문을 들어가 정원을 지나자 부아 쾌수 몇 명이 말을 묻고 있었다. 집안 여인들은 눈시울이 빨개져 흐느끼고 있었다.
여청은 방 안으로 바로 들어갔는지 정원에는 없었다.
허칠안이 여주인을 보고 물었다.
“죽은 사람은 당신 남편인가?”
여주인은 야경꾼 제복을 확인하더니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손수건으로 끊임없이 눈물을 닦아냈다.
“당신 아들을 불러오게.”
여주인은 눈앞의 동라가 무슨 생각인지 몰라 하인을 시켜 아들을 불러오도록 했다. 몇 분 후 하인이 열 살쯤 되는 아이를 데리고 왔다.
“또 있는가?”
허칠안이 물었다.
“외아들입니다.”
여주인이 아이를 품에 안으면서 말했다.
허칠안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뭇사람을 지나 동료 둘과 함께 방 안으로 들어갔다.
* * *
이곳은 서재였다. 피해자는 탁자에 엎드린 채 죽었을 터였다. 피가 말라 응고되어 탁자 절반을 덮었고, 출혈량이 어마어마했다.
허칠안은 피해자가 목이 잘렸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봤다.
여청이 부아 쾌수 두 명과 함께 서재의 구석구석과 창과 대들보를 검사하고 있었다.
허칠안이 물었다.
“발견한 것이 있는가?”
여청이 고개를 절레절레하면서 말했다.
“창을 뜯고 들어온 흔적이 없습니다. 대들보 위도 마찬가집니다.”
그러자 허칠안이 말했다.
“지인이 한 거겠네, 그럼.”
‘이렇게 빨리 결론을 내린다고?’
허칠안이 사건 분석에 남다른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급히 반박에 나서지 않고 그가 설명해주기를 기다렸다.
“창이 완전하고 대들보에 발자국이 없는 걸 보면 서재에 남몰래 침입해서 살해한 경우를 제외할 수 있지.”
허칠안이 죽은 자의 주위를 한 바퀴 돌며 말을 이었다.
“사망자는 무척 바른 자세를 하고 있어. 엎드리고 있는 각도를 보면 한순간에 죽은 거야. 발버둥 친 흔적이 없거든. 이건 사망자와 흉수가 서로 아는 사이일 뿐만 아니라 피해자가 흉수를 매우 존경하거나 두려워한다는 것을 설명하지.”
“그건 어떻게 알아낸 겁니까?”
여청이 허심하게 배우려는 자세를 취했다.
“사망자는 문인이 아닐 거다. 그렇지?”
여청은 허칠안이 어째서 이 물음을 묻는지 모른 채 답했다.
“금오위 기관(*旗官: 군대에서 깃발을 드는 사람)입니다.”
허칠안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입을 열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서재에서 무척 편하게 앉아있지, 이렇게 바른 자세로 앉아있지는 않아. 추호의 흐트러짐 없는 자세잖나. 이건 그가 공손하게 대할 수밖에 없는 상대를 대면하고 있었다는 뜻이지. 그밖에 사망자를 얼핏 살피면 목이 베인 게 사인인 것 같지만, 내 추측에 의하면 진짜 사인은…….”
허칠안이 사망자의 머리카락을 잡더니 백지장이 된 얼굴을 들어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그러자 그들은 사망자의 이마에 오목하게 들어간 흔적을 발견했다.
목이 베였다면 즉각 사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흉수는 행동이 무척 민첩했다. 그는 목을 벤 것이 아니라 바로 측면의 경동맥을 그었다.
딱 봐도 노련한 솜씨였다.
허칠안의 전생에서도 경동맥이 끊어진 경우는 화타가 다시 살아나도 구할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로 분리됐다.
‘하지만 즉사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눈앞의 기관(*旗官: 군대에서 깃발을 드는 사람)은 탁자에 엎드린 채 발버둥 친 흔적 하나 없이 죽었다. 게다가 피가 사방에 튀지도 않았다. 이 말인즉슨 사인이 목을 베인 데에 있지 않음을 설명했다.
그가 즉사한 진짜 원인은 머리에 입은 치명상이었을 터. 그래서 반응할 기회도, 발버둥 칠 힘도 없이 바로 숨이 끊어진 것이었다.
‘흉수는 먼저 그의 이마뼈를 박살 내고 단칼에 목을 베었다. 무척 민첩하고 깔끔한 솜씨다…….’
사망자의 이마에 오목하게 들어간 흔적을 본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당시의 장면이 저절로 그려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