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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80화 (80/712)

80화. 감정(监正)의 선물

관성루의 꼭대기층은 팔괘대로, 무척 두껍고도 육중한 청석을 맞추어 만들어져 있었다.

허칠안이 위연을 따라 팔괘대에 올라가자 탁자 옆에 자신들을 등지고 앉아있는 백발의 백의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머리에 서리가 내려앉은 듯했고, 백의에는 눈이 내린 듯했다. 노인의 뒷모습은 얼핏 보면 평범하기 그지없었지만 자세히 보면 무척 놀라웠다. 마치 저 하늘 끝에 있는 것 같이 바라볼 수는 있으나 닿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자네, 왔는가.”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

위연이 팔괘대 가장자리, 감정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위치로 걸어갔다.

허칠안은 위연이 당당하게 감정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모습에 깜짝 놀랐다.

“바둑을 안 둔 지 오래됐습니다. 대인, 저와 한 판 두시겠습니까?”

감정(监正)은 말없이 손을 내저었고, 그러자 빈 탁자 위에 바둑판과 바둑알이 나타났다.

위연이 웃으면서 청의 자락을 뒤로 던지더니 감정과 마주 앉았다.

“감정 대인께서는 요즘 인간 세상을 관찰하고 계십니까?”

위연이 바둑알을 놓으면서 넌지시 화제를 꺼냈다.

“이젠 늙었는지, 눈이 침침해져 잘 안 보이네.”

감정이 말하면서 바둑알을 놓았다.

두 사람은 한참 동안이나 아무 말도 없이 바둑에만 전념했다.

“지종 도수가 입마했습니다.”

위연이 또다시 말을 꺼냈다.

“사물의 극에 달하면 역작용이 있기 마련이지. 공덕을 쌓아 신선이 되는 일이 어디 그렇게 쉽겠는가.”

“제가 접한 소식인데, 만요국 잔여세력이 경중(京中)에 잠복해 있다고 합니다.”

“다 작은 인물들일세.”

감정의 말을 듣자 위연은 그나마 마음이 놓였다.

또 한동안 바둑만 두던 위연이 무심코 한마디 던졌다.

“제 기억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인종이 십구 년 전에 황성으로 옮겨왔지요. 그 전에는 폐하께서 신선이 되겠다고 어떻게 간청해도 천, 지, 인 삼종 모두 거들떠보지도 않았지요.”

감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최근 만요국 잔여세력들의 움직임이 경성 주변에서 빈번합니다. 사흘 후면 폐하께서 제사를 지내는 날인데, 감정께서는 경성을 반드시 잘 지켜보셔야 합니다. 또 운주의 비적들이 날로 날뛰는데, 폐하께서 비적에 대처할 마음이 전혀 없으시니 심히 우려스럽습니다. 음, 세은 사건의 배후 연금술사에 대해 감정께서는 무슨 생각이신지요?”

두 사람이 바둑알을 놓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나중에는 생각할 시간조차 필요 없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비겼다.

감정이 손을 휘두르자 바둑판이 다시 사라졌다. 그는 주름이 자글자글한 얼굴을 들어 위연을 쳐다봤다.

“자네가 무도를 수행할 때, 내가 예언하지 않았던가. 대봉에 이품 무사가 탄생할 것이라고. 하지만 나중에 자네 스스로 자신의 수행을 폐했지.”

“재미가 없었습니다.”

위연이 고개를 절레절레했다.

“그럼 왜 유도를 선택하지 않았는가?”

“운록서원의 서생들과는 통하지 않았습니다. 흥미가 없었던 거죠.”

“이십오 년 전, 본인이 자네에게 물었지. 내 제자가 되는 건 어떠냐고.”

“저는 술사에 관심이 없습니다.”

감정은 한참을 침묵하더니 말을 꺼냈다.

“너무 훌륭했네. 어린 친구가 나를 위해 학생들을 가르치다니. 그러니 나도 어린 친구에게 선물을 하나 줘야지.”

‘이렇게 좋은 일이…….’

허칠안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감정 대인께서, 설마 거울 하나를 내들고 천지회에 가입하라고 하실 건 아니시겠죠!’

허칠안이 아직 넋을 잃고 있는 그때, 갑자기 공기가 터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이내 소리를 따라 계단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검은색과 금색 철 덩어리가 빠른 속도로 소리를 내며, 금라 두 명과 허칠안 사이를 지나 감정을 향해 날아갔다.

두 철 덩어리는 비행 과정에 용화되어 쇳물이 되더니 물 뿌리듯 감정을 향해 흩뿌려졌다.

두 가지 쇳물이 융합되더니 장도(長刀)의 윤곽을 보였다.

수증기가 자욱하게 생기더니 쇳물이 담금질 되었다. 그러다가 감정의 손에 쥐어졌을 때에는 이미 장도(長刀)의 모습이 드러난 상태였다.

감정은 한 손으로는 도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 도체(刀体)를 문질렀다. 그러자 어두운 금색의 장도(長刀)가 완성되었다. 도체의 색상은 무게감을 주었고, 도봉(刀鋒)은 무척 예리했다.

감정이 손가락을 조금 움직이니, 장도(長刀)가 돌면서 허칠안을 향해 날아왔다. 이내 두부에 꽂히는 것마냥, 장도(長刀)가 허칠안 앞의 청석판에 꽂혔다.

도를 사용하지 않는 금라 두 명이 뜨거운 눈길로 어두운 금색을 띠는 장도(長刀)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게 연금술?! 이게 연금술이라고?! 이건 마법이잖아.’

허칠안은 눈앞에 일어난 현상에 놀라 멍해 있다가 깨달았다.

‘감정의 이 선물은 단지 선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모종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과 같다. ‘젊은이, 자네는 연금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네…….’ 같은.’

장도(長刀)의 외관은 전생의 당도(唐刀)와 태도(太刀) 사이에 있었다. 당도보다는 휘었고, 태도보다는 곧았다.

가늘고 긴 도체는 길이가 사 척에 달했다. 외관이 너무 화려하지도 검소하지도 않은 멋진 장도였다.

“감정 대인, 고맙습니다.”

허칠안은 날 것만 같은 기쁨을 애써 가라앉히고 윗옷을 벗어서 도체를 감쌌다.

도봉이 지나치게 예리하다 보니 타인이나 자신이 다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 도만 있으면 내 전력이 한 단계는 상승할 거야. 아니 두 단계.’

허칠안은 속으로 좋아 죽는 줄 알았다.

위연은 감정에게 읍하고, 세 명의 수하를 거느리고 사천감을 떠났다.

계단을 내려갈 때 허칠안은 팔괘대로 올라가고 있는 저채미와 장공주와 마주쳤다.

위연과 장공주를 포함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허칠안은 저채미의 손을 잡고 계단의 구석진 곳으로 가더니 물었다.

“저녁에 시간 되시오? 계월루에서 밥을 사겠소.”

허칠안이 제안했다.

그런데 웬일로 밥통 저채미가 단칼에 거절했다.

“좀 늦어서 황성에 가봐야 돼. 오늘 장공주부에서 있기로 했거든.”

장공주부에는 먹어도 먹어도 끝이 없는 간식과 요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계월루의 음식이 맛있다고 한들 어찌 황성과 비교하겠는가.

‘그렇군……. 내일과 모레는 야간 순찰이고, 글피는 황제가 제사 지내는 날이라 야경꾼이 안보를 책임진다…….’

허칠안이 잠깐 생각해보더니 말했다.

“그럼 폐하께서 제사를 지낸 다음 우리 집에서 식사하는 건 어떠시오?”

허칠안은 조미료를 만들어 음식을 직접 하는 게 계월루에서 소비하는 것보다 훨씬 값쌀 것이라 생각했다.

“면도 끓여줄 거야?”

저채미가 기억을 되살려 묻자 허칠안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그럼.”

저채미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두 무리가 갈라졌다. 저채미는 장공주를 데리고 계단을 올라갔고 허칠안은 위연을 따라 계단을 내려갔다. 허칠안이 머리를 들자 마침 자신을 굽어보는 장공주와 시선이 마주쳤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치자 허칠안이 웃음을 지었다. 장공주는 무표정으로 있다가 허칠안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자 입을 삐죽거렸다.

* * *

나오는 길에 백의 한 명과 마주친 허칠안이 흑금도(黑金刀)를 그에게 맡기면서 송 사형한테 도병(刀柄)을 부탁한다고 전해달라고 했다. 자신이 내일 찾아가겠다고.

관성루를 나와 위연이 먼저 마차에 올라탔다. 양연이 허칠안을 보고 손짓하면서 물었다.

“마차를 몰 줄 아느냐?”

허칠안이 고개를 절레절레했다.

양연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고삐를 허칠안에게 넘기고는 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허칠안은 멍해있다가 그제야 반응했다.

‘안면마비 상사가 나더러 기능을 익히라네. 참나.’

* * *

팔괘대.

저채미는 팔괘대의 가장자리에 앉아 가죽 장화를 신은 작은 발을 흔들거리면서 품속에 안은 건과를 먹고 있었다.

장공주는 그 옆에 서서 치맛자락을 날리고 있었다. 그 모습은 선녀가 따로 없었다.

“감정 대인, 본 공주가 여태 풀리지 않은 의문이 하나 있습니다.”

장공주의 목소리는 여전히 듣기 좋았다.

“공주마마, 말씀하시지요.”

감정이 술잔을 들고 멀리 바라보면서 말했다.

“인종이 황성에 자리 잡고 나서 도를 닦는다는 명분으로, 부황이 십구 년 동안이나 조정일을 살피지 못하도록 미혹시키고 있습니다. 운주의 비적을 평정하지도 못하고, 각 지방에 재해가 잇달아 일어나고, 남쪽에 대한 조정의 통제가 날로 박약해지며 북쪽의 각 부들도 점점 이빨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러니 대봉은 현재 안팎으로 압박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

장공주가 크게 한탄하면서 말했다.

“도대체 뭘 더 기다리시는 겁니까?”

감정이 오랫동안 아무 대답이 없어 장공주가 뒤돌아보았을 때, 감정은 눈을 감고 잠든 채였다.

이에 화가 난 저채미가 투덜거렸다.

“장공주마마, 이 노인네는 상관하지 마세요. 나이가 너무 많아 기력이 쇠해 맨날 이러고 있습니다.”

장공주가 저채미를 한 번 쳐다봤다. 감정에게 여제자라고는 저채미 한 명뿐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예뻐했고, 또 채미만이 감정을 이렇게 칭할 수 있었다.

“넌 그 동라와 친하느냐?”

장공주가 화제를 돌렸다.

“네.”

저채미는 눈이 반달이 되더니 말을 이었다.

“그는 인재예요. 말도 듣기 좋게 하고 재미있는 친구죠.”

* * *

양생당.

주변 민가에서 조용히 이틀을 기다린 항원 대사는 이상한 광경을 발견했다.

원앙을 수놓은 녹포를 입은 구품 관원이 일꾼들을 거느리고 양생당에 들어서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양생당 안에서 웬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황혼까지 지속되었다.

항원 대사는 깊은 밤까지 기다려, 주변에 야경꾼과 사천감 백의들의 매복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민가를 떠나 양생당으로 들어갔다.

그는 눈앞에 펼쳐진 양생당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양생당이 완전히 새롭게 변신해 있던 것이다. 울퉁불퉁하던 지면에 청석판이 깔렸고, 너무 오래되어 낡아빠진 돌 탁자와 의자도 새 걸로 바뀐 것이었다!

창과 지붕, 심지어 여러 도구까지 그 모든 것이 새롭게 바뀌어 있었다. 우람한 체구의 ‘노지심(*魯智深: 중국 소설 수호지에 나오는 인물)’은 정원에 오랫동안 묵묵히 서 있었다.

양생당을 지키던 늙은 하급 관리는 바로 깨어나 초롱을 들고 나와 정원을 살폈다.

“항원 대사, 돌아왔는가?”

늙은 하급 관리가 기뻐하면서 말했다.

“이제는 동냥할 필요가 없게 됐네. 조정에서 돈이 내려왔네. 이 년 동안 밀렸던 비용까지 함께. 오후에는 일꾼들까지 와서 원자를 싹 다 수리했지 뭐야.”

“돈이 내려왔다고요?”

항원 대사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 은자가 이백 냥이나 내려왔네.”

늙은 하급 관리가 걱정을 던 듯 말을 이었다.

“양생당의 애들과 노인들의 내년 지출이 마련되었네. 내일 겨울옷 한 벌씩 지어주려 하네. 정말 시기적절하게 내려왔어. 아니면 늙은 노인 몇 명은 이번 겨울을 나지 못할 뻔했네.”

* * *

허칠안은 잠에서 문득 깼다.

‘어느 미친놈이 이 야밤에 자지 않고 문자질이냐고!’

그는 베개 밑에 두었던 거울을 꺼내 탁자 옆에 앉아 촛불을 켜고 문자를 확인했다.

[육: 일호, 삼호, 나의 은신처를 알아낸 건가?]

[이: 이런 까까머리 같으니라고. 이 야밤에 잠도 안 자고 뭐가 이리 소란스러워?]

이호는 성깔이 사나웠다. 허칠안처럼 깊은 잠에서 깬 모양이었다.

[구: 무슨 일인가?]

금련 도사가 나타났다는 건, 천지회 구성원들에게 육호가 난관에 봉착했음을 알리기 위함이었다.

일호는 응답하지 않았다. 아마 묵묵히 염탐하고 있을 것이다.

허칠안도 무슨 상황인지 몰라 아무 응답도 하지 않았다.

[육: 은신처가 이렇게 빨리 폭로되다니. 말해줘도 무방하네. 난 경성 동쪽에 있는 양생당에 머물고 있네. 구해낸 애들을 이곳에 데려왔거든. 적어도 목숨을 부지할 수는 있으니까. 갈 곳 없는 늙은 하급 관리 몇 명과 돌아갈 집이 없는 애들과 노인들과 함께 있지.

그런데 오늘 조정에서 이곳을 떠올렸는지 갑자기 사람을 보내 처소를 수리하고 여태 밀린 돈을 주고 갔다더군. 늙은 하급 관리들이 몇 번이나 호부를 찾아갔었는데 매번 쫓겨났거든. 특별한 이유 없이 돈이 내려올 리 없다는 걸 알고 있건만.]

야경꾼이 찾아왔다면 육호는 오히려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일호와 삼호가 이렇게 빠르게 그의 은신처를 찾아냈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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