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화. 다리찢기
장공주가 고개를 돌려 의아한 눈길로 위연을 쳐다봤다. 위연이 웃음을 짓더니 낮은 소리로 말했다.
“저도 감정(监正)과 똑같은 생각입니다.”
장공주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시선을 허칠안 쪽으로 돌렸다.
그가 뭐라고 답할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건 송경 사형의 방법이 틀렸기 때문에 감정 대인께서 지적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송경 사형의 연구 방향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허칠안이 말했다.
감정 어르신과 대립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었다.
‘논쟁하여 이긴다 하더라도 감정 노인네가 화난 김에 옷소매만 한번 휘두르면 난 뼈도 못 추스릴 텐데, 뭐.’
송경은 허칠안의 주장이 내키지는 않았지만 이에 반박하지 않고 그가 뭐라 말할지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 기억을 한 번 살려 보십시오. 광석에서 금속을 제련해내고, 또 금속에서 더 단단하고 순수한 금속을 제련해냅니다. 그리고 약재로 단약을 만들죠. 하지만 금속으로 단약를 만들거나 약재로 금속을 제련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왜 그럴까요?”
허칠안은 백의들에게 생각해 볼 여지를 주었다.
“약재는 약재고 광석은 광석인데, 허 공자의 문제가 이상한 거 아닙니까?”
“하하, 약재로 금속을 제련해낼 수만 있다면 입쌀에서도 금과 은을 추출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백의 술사들에게 허칠안의 이 물음은 마치 태양은 왜 동쪽에서 떠오르는지, 사람은 왜 밥을 먹지 않으면 굶어죽는지, 하루는 왜 열두 시진으로 이루어졌는지를 물어보는 것과 같았다.
현장이 술렁거렸으나 유독 송경만은 조용히 사색에 빠져 있었다. 그는 뭔가 단서를 찾은 것 같았지만 소란스러운 사제들로 인해 머리가 복잡해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제대로 사고할 수가 없었다.
송경이 탁자를 내리치더니 몸을 일으키면서 소리쳤다.
“조용!”
송경은 허칠안을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말했다.
“얼른, 얼른 말하게!!”
백의 술사들이 조용해졌다. 송 사형의 이런 모습은 극히 보기 드물었다. 따라서 이는 허칠안이 이제 말하려는 내용이 무척 심오한 연금술 지식이라는 것을 설명했다.
이때 허칠안은 불현듯 멀찍이 떨어진 곳에 서 있는 위연을 발견했다. 그러자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이런! 잘난 척이 절정에 이른 이때 하필 상사가 그 모습을 구경하고 있다니…….’
허칠안은 반사적으로 경계심을 느꼈다. 내심 켕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천감 술사들이야 빈틈없는 이과생 집돌이들이다. 그들은 연금술 자체에 관심이 있는 거지 연금술의 역사 같은 것에는 아예 관심이 없을 터였다.
하지만 위연은 달랐다. 그는 정치가이자 군사가이자 전략가였으며, 아주 화려한 이력을 가진 총명한 사람이었고, 총명한 사람들의 특징은 생각이 지나치게 많다는 점이었다.
허칠안이 백의 술사들을 겨냥해 세운 전략은 허세를 부리는 것이었다. 과장되면 과장될수록 효과가 좋았다. 하지만 위연을 상대로는 충성심을 보여야 했다. 합리한 범위 내에서 너무 지나치지 않은 잘난 척이면 괜찮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지금의 그의 모습은 작은 허세가 아니었다. 사람들 앞에서 난데없이 다리찢기를 하는 것과 다름없단 말이었다!
그때 위연이 허칠안을 향해 고개를 조금 끄덕였다.
‘휴……. 그래. 다른 각도로 생각해보면 지금이 윗사람 앞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일 수도 있어. 이 또한 주목을 받을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니까.’
허칠안은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고는, 잡념을 버리고 다시 입을 열었다.
“이게 바로 오늘 수업에서, 제가 여러분께 말씀드리고자 했던 중점입니다.”
허칠안은 자신이 준비한 내용의 핵심을 훤히 꿰뚫고 있었다. 그는 잠깐 멈칫 하더니 미소를 머금고 학구열로 꽉 찬 백의 술사들의 시선을 마주했다.
그는 곁눈으로는 문밖에서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위연과 위연의 옆에서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경국지색의 미인을 살피는 중이었다.
‘그녀는 누구일까? 미모가 장난이 아닌데…….’
허칠안이 헛기침을 한 번 하더니 말을 이었다.
“만물 가운데는 매우 미세한 물질들이 존재합니다. 이런 물질들이 오늘 우리 눈에 보이는 다양한 세계를 형성하였죠. 이 물질들 사이에는 관계뿐만 아니라 규칙도 존재합니다. 가장 쉬운 예로 설명 드리겠습니다. 단약 하나를 만들려면 십여 가지 내지 몇십 가지의 약재가 필요합니다. 그 약재들의 효능은 저마다 다르죠.
다만 그 약재들을 형성한 미세한 물질 사이에 유사한 특징이 있어서 그들은 서로 반응을 일으키면서도 융합됩니다. 금속 제련도 이와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허칠안은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설명했다. ‘원자’와 같은 화학 용어는 사용하지 않았다. 그렇게 되면 연금술사들의 이해 난이도만 높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술사들의 눈에서 빛이 반짝거렸다.
그들뿐만 아니라 밖에 서 있는 장공주와 위연도 이에 흥미를 느꼈다. 재능과 학식 모두 비범한 두 사람은 심오하고 어려운 지식일수록 재미를 느꼈다. 그들도 허칠안의 강의 내용이 연금술 분야에서는 무척 높은 수준에 있는 밀술(密術)이라는 것을 인식했다.
신분이 남다른 높이에 있는 공주와 대환관이, 우두커니 선 채 강의에 몰두하고 있었다.
허칠안은 계속해서 강의했다.
“제가 말씀드렸던 비급(秘笈)에는 미세 물질의 유사 특성을 기재한 표가 있었습니다. 이를 원소주기표라고 합니다.”
순간, 대청은 숨소리만 들릴 정도로 고요해졌다. 백의들이 흥분에 겨워 어찌할 바를 몰랐다.
“알았다. 내가 알아냈어!”
순간 송경이 뭔가 큰 깨달음을 얻은 것마냥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허칠안을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검증하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내가 시도했던 생물에 관한 연금술이 실패했던 원인은 그들 사이에 유사한 특성이 없었기 때문이야! 그렇지! 고양이와 나무가 어떻게 유사한 특성을 지니겠는가? 완전히 다른 물체인데.”
‘……그렇게 이해하는 것도 틀린 건 아니지!’
허칠안이 웃으면서 말했다.
“송 사형은 역시 연금술의 기재입니다. 이해력이 이렇게나 뛰어나다니요.”
이건 진심이었으나 송경은 또 눈썹을 찌푸렸다.
“자네가 가르친 도리는 이해했지만 생물 간의 유사성은 어떻게 검증하는가? 생물에 관한 연금술의 정확한 방향은 어디에 있는 건가?”
‘잘 물었어. 내가 그렇지 않아도 당신의 왜곡된 사고 방향을 바로잡고 싶었거든.’
허칠안이 두 손을 뒤로 가져가 소나무처럼 우뚝 서더니 문파를 새롭게 세우는 대유마냥 느긋하게 말을 시작했다.
“생물에 관한 연금술의 방향은 세포에 있습니다.”
“세포?”
송경이 무척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는 듣도 보도 못한 단어였다.
‘그래, 세포. 다만 세포를 관찰하기 위해서는 현미경이 있어야 하잖아. 현미경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데……. 에이, 모르겠다. 어쨌거나 나랑은 상관이 없잖아……. 성공하면 내가 잘 가르친 거고, 실패하면 네 자질이 나쁜 거고.’
허칠안이 가슴팍에서 책자 하나를 꺼내들면서 말했다.
“이건 제가 사천감에 드리는 두 번째 청서입니다. 이 안에 원소주기표를 기재한 동시에, 저의 개인적인 이해를 주석으로 기록해 놓았습니다. 송경 사형의 생물에 관한 연금술의 정확한 방향도 이 안에 있습니다.”
송경이 한시도 지체할 수 없다는 듯 달려와 책자를 가로챘다. 그는 여태껏 굶주림에 시달렸던 야수마냥 책자를 마구잡이로 펼쳤다.
서론의 첫 마디는 이러했다.
<세포는 생명의 시작이다!>
“하, 하하, 하하하…….”
책자를 펼쳐보던 송경이 갑자기 책자를 잡은 손에 힘을 꽉 주더니 하늘을 우러러 크게 웃기 시작했다.
‘책자에 도대체 뭘 쓴 거야?’
‘너무 알고 싶어. 너무 너무!’
사십 여명의 백의 술사들이 뜨거운 시선으로 송경이 손에 쥔 책자를 쳐다보았다. 지금 그들 속은 마치 고양이 한 마리가 박박 긁어대는 듯 따가웠다.
송경이 웃음을 멈추더니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방금 전 들었다시피 생물에 관한 분야는 지나치게 심오해. 네들 경지로는 아직 깨닫기 일러. 사형이 다 깨닫고 스승님을 대신해 전수해주마.”
여기서 스승은 허칠안이 아닌 감정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화학에는 무척 다양한 분야가 포함되어 있었다. 예를 들면 전기화학, 핵화학, 양자화학…….
허칠안 스스로도 어떤 부분은 해석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그는 강의를 여기까지 하기로 마음먹었다. 게다가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걸 단숨에 쏟아낼 필요도 없었다.
‘이들은 부향도 아닌데, 내가 왜 내 주머니를 비우겠어. 등가교환 같은 건 가늘게 오래 지속해야 하는 법.’
백의 술사들이 일제히 일어나서 허칠안을 향해 읍하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지식을 전수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문 밖에서 이를 지켜보던 장공주는 무척 놀랐다.
사천감 술사들이 무사를 향해 제자의 예를 갖추는 건 아마 사천감 설립 이후 처음일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허칠안은 충분히 역사에 작은 한 획을 남길 수 있을 터였다.
이때 송경이 숨을 크게 내쉬더니 옆에 서 있던 저채미의 팔을 톡톡 치면서 말했다.
“사매, 장공주가 와있어.”
송경은 진작 위연 일행이 도착한 것을 알고 있었다. 현장에서는 그의 수행 품계가 가장 높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송경은 장공주의 신분과 위연의 권력 때문에 수업을 중단할 마음은 없었다. 장공주의 고귀함과 위연의 권력 모두 그에게는 속물에 불과했다.
저채미는 이 소식을 듣자 기뻐 머리를 홱 돌렸다. 과연 장공주가 단박에 눈에 들어왔다.
허칠안이 총총걸음으로 위 공 앞에 다가가서 공수했다.
“위 공.”
위 공이 웃더니 옆에 서 있던 여인을 가리키며 소개했다.
“이분은 장공주마마시다.”
가까운 거리에서 장공주를 본 허칠안은 그녀의 미모에 깜짝 놀랐으나, 이내 바로 공수의 예를 갖추면서 인사를 올렸다.
“야경꾼에 추천해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이옥춘이 그와 자신이 야경꾼이 될 수 있었던 건 장공주가 추천했기 때문이라고 말해준 적이 있었다.
허칠안은 이 일을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괜찮았으나 언급하면 장궁주에게 은혜를 아는 청년이라는 인상을 남길 수 있어 구태여 이야기를 꺼냈다.
장공주가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더니 무척 듣기 좋은 목소리로 한 마디 했다.
“연금술 비급이라?”
“소직 허칠안, 어린 시절 고수 한 분의 가르침을 받은 적 있습니다. 그 고수분이 제게 연금술 비급 한 권을 전수했습니다.”
허칠안이 답했다.
허칠안은 장공주와 위연이 비급을 보고자 하면 부주의로 잃어버렸지만, 내용은 머릿속에 기억하고 있다고 말하고자 내심 준비중이었다.
사천감 백의들을 대상으로 우려먹었던 지식을, 장공주와 위연을 대상으로 다시 한 번 우려먹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장공주는 그저 웃어넘기고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신년의 말이 맞았다. 장공주는 뭔가 좀 달랐다.
‘무척 총명한 여인이야……. 정말 아름답다…….’
한편 방금 전의 강의를 듣고 난 후, 눈앞의 동라에 대한 위연의 호감은 한층 더 격상되었다.
“나와 감정(监正) 대인을 만나자꾸나.”
‘감정(监正) 대인을 만나……? 술사 전봉인 감정(监正)?!’
허칠안의 심박이 순간 요동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