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화. 공자가 수업을 열어 수강하다
강의 장소는 칠층 대청이었다.
백의 술사들이 탁자를 옮겨 와 학생인 것마냥 바른 자세로 앉아있었다. 구품에서 육품까지 모두 마흔여섯 명의 술사들이 자리에 앉아있었다. 타지에 있는 백의들을 포함하지 않은 수였다.
허칠안은 그들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것이, 자신의 화학 지식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실전 능력이야 자신이 술사들과 비교조차 안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이번에 강의를 마치고 나면 사천감에서 나의 지위가 또 한 층 격상될 것 같은 예감이다. 시를 베껴 운록서원 대유들의 환심을 사고 위 공의 다리를 꽉 잡고 있으면, 머지않은 미래에 경성에서 판치며 다녀도 되는 게 아닌지 몰라.’
허칠안의 마음속에서 희열이 솟구쳤다.
이 세 개의 세력만 뒷받침이 된다면 반역죄가 아닌 이상, 그는 반석처럼 경성의 한복판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신년아, 형님이 너를 지극히 사랑해서 네가 재상의 자리에 오르기 위한 길을 터놨단다. 그런데 너는 형님한테 약속 하나를 안 해주고 있다니. 말이 되니?’
허칠안이 백의들을 훑으면서 입을 열었다.
“여러분, 연금술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고 있습니까? 강의를 시작하기 전에 우선 연금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봅시다.”
* * *
화려한 마차 두 대가 관성루 밖에 멈춰섰다.
양연이 마차에서 뛰어내리더니 쪽걸상을 꺼내 마차 안에 있던 위연을 의전했다.
미모의 남궁천유도 그를 따라서 마차에서 내렸다.
또 다른 한 마차는 금사남목(金絲楠木)이었다. 발이 올려지자 마차 안에서 화려한 치마를 입은 여인 한 명이 내려왔다. 늘씬한 키에 빼어난 미모, 냉랭한 눈빛과 갸름하고 흰 얼굴. 그야말로 세상에 둘도 없는 절세가인이었다.
“공주마마!”
위연이 여인을 향해 공손하게 예를 갖췄다.
의붓아들 두 명도 똑같이 예를 갖췄다.
“위 공께서는, 감정 대인을 찾아 오신건가요?”
장공주가 가볍게 웃으면서 물었다. 양미간에서 우아한 분위기가 흘러나왔다.
“예.”
위연이 탄식하면서 말을 이었다.
“태강현 경내에서 초석광을 발견했는데 이미 깔끔하게 채굴해간 상태입니다. 만요국 잔여세력의 짓이라 의심됩니다. 게다가 요족이 경성에 숨어있는 것 같아 감정께 천안(天眼)을 열어 찾아달라고 부탁하러 왔습니다.”
위연은 지종과 지서 파편에 관한 정보를 장공주에게 알릴 계획이 없었다.
‘훌륭한 모사는 절대 사전에 자신의 무기를 사람들에게 공개하지 않는 법.’
“장공주께서는 무슨 연유로 관성루까지 행차하셨는지요?”
“저는 채미를 찾으러 왔습니다.”
장공주가 답하다가 무심코 한 마디 물었다.
“위 공은 평원백의 죽음이 요족과 관련되었다 생각하십니까?”
위연이 고개를 절레절레하더니 입을 열었다.
“평원백은 요족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그럴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이죠.”
두 무리는 함께 관성루로 들어왔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관성루 내에 한 사람도 없다는 점이었다. 그들을 맞는 사람도 없었다.
이층과 삼층도 동일했다.
장공주가 눈썹을 찌푸리더니 입을 열었다.
“사천감에 오늘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요?”
위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계속해서 계단을 올라 오층에 도착했다. 그제야 무척 분주해 보이는 백의 한 명을 만날 수 있었다.
백의가 위연과 장공주를 보더니 느긋하게 걸어와서는 예를 갖췄다.
장공주가 물었다.
“본 공주가 관성루에 들어와서부터 현재까지 만난 사람이라고는 자네 한 사람뿐이네. 사천감에 무슨 일이 있는가?”
“허 공자가 칠층에서 강의를 열어 연금술 지식을 전수하고 있습니다. 사형들도 모두 가서 수업을 듣고 있어요.”
‘허 공자…….’
낯선 호칭에 위연과 그의 일행은, 본능적으로 사천감의 내부 명단을 검색해보기 시작했다. 그들은 감정이 몸소 가르친 몇몇 제자를 훑었다.
‘아니야. 방금 전 백의가 분명 허 사형이 아닌 허 공자라고 했지. 강의를 하고 있는 사람은 사천감 제자가 아니라 외부인이다.’
‘허씨……. 그럼 혹시…….’
장공주는 눈빛을 반짝거리며 마음속으로 과감한 추측을 해보았다. 한시바삐 자신의 추측을 검층하고 싶었다.
위연도 뭔가 깨달은 기색이었다. 송경이 예전에 자신과 허칠안이 뛰어난 연금술 기재라고 말한 적 있었으나, 그때 위연은 그 말을 마음에 두지 않았다. 필경 송경이 사천감 연금술의 일인자니까.
송경의 입으로 인정한 기재라면 아마 뛰어난 연금술 천부를 가지고 있는 자지, 송경과 어깨를 견주거나 송경의 ‘스승’이라고 불릴만한 실력을 갖췄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위연이 의자(義子) 두 명을 바라봤다. 그들의 얼굴과 눈빛도 의문으로 가득했다.
물론 그들은 허 공자와 허칠안을 연결시키지는 않았다. 당일 송경의 말을 두 사람은 이미 까먹었기 때문이다.
“의부님, 사천감에 언제 허씨 성을 가진 사람이 나타난 겁니까?”
남궁천유는 정보와 심문을 책임진 자라, 새롭게 나타난 인물에 무척 민감했다.
말하기 싫어하는 양연이 고개를 돌려 검증해달라는 눈빛으로 위연을 바라봤다.
두 금라는 당일 송경이 허칠안에 대해 한 평가는 잊었으나, 강율중의 말은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위연이 웃더니 말했다.
“올라가 보면 알게 되겠지.”
* * *
“연금술의 본질은 등가교환입니다.”
머리 좋은 백의 술사들은 허칠안의 말에 답했다.
“사물에서 정수만 추출해내면 폐기물도 보물이 될 수 있습니다.”
육품 이하의 술사들은 답하지 않고 강의에만 몰두했고, 육품 연금술사들은 저마다 자신의 해석을 내놓았다.
‘하지만 다들 너무 일방적으로 자신의 경험에만 의존해 답을 한다……. 내 명언을 도용한 놈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놈이야. 사천감 사람들은 확실이 이론 지식이 부족해.’
허칠안은 인내심을 가지고 듣기만 하고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았다.
백의들은 저마다 자신의 해석을 발표하고 나서 송경을 바라봤다.
송경은 감정이 몸소 가르친 제자인데다가 사천감이 공인하는 연금술 일인자였다. 그는 연금술 분야에 푹 빠져 품계를 올리려는 마음도 없는, 단지 연금술에만 열광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품계의 높고 낮음에 아무런 흥미가 없었다.
사품, 오품의 사형과 사매들 모두 연금술 분야에 있어서는 송경에 뒤처지는 바였다.
송경이 고개를 절레절레하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뜻이지?’
백의 술사들의 마음속에선 저마다 송경의 반응에 대한 의혹이 생겼다. 이때 허칠안이 열렬한 박수를 쳤다.
모든 사람의 시선이 일제히 연금술 기재에게 쏠렸다.
허칠안이 사람들의 시선을 인식하고 감개무량하다는 듯 말을 꺼냈다.
“사천감의 연금술 분야에서는 제가 유독 송 사형을 높이 평가합니다. 저와 어깨를 견줄 수 있는 유일한 분이라 할 수 있죠.”
사천감 백의들은 새삼 송경을 향한 존경의 마음이 샘솟았다.
이에 입꼬리가 조금 올라가던 송경의 허리가 스윽 펴졌다.
허칠안이 말을 이었다.
“송 사형은 여러분의 이해가 맞긴 하나, 완전하지는 못하다고 이야기 하고 싶으신 겁니다.”
사람들은 사색에 빠졌다.
허칠안이 당찬 목소리로 해석을 시작했다.
“연금술은 범위가 무척 넓은 분야입니다. 여기에 앉은 여러분들도 이에 대해 다소 알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다만 인식이 모호하거나 포괄적이겠죠……. 음, 원래 오늘은 한 가지 지식만 가르쳐주기로 송 사형과 약속했었는데, 송 사형이 기어코 이자까지 쳐서 갚으라고 하니 좀 더 가르쳐드리겠습니다. 연금술 분야에 대해 좀 더 넓고 분명하게 알려드리죠.”
이 말이 끝나자 백의 술사들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송 사형, 고맙습니다. 허 공자, 고맙습니다.”
“허 공자, 얼른 시작하세요. 궁금해서 미치겠습니다.”
떠들썩한 소리가 마침 칠층에 올라온 장공주의 귀에 들려오자, 그녀는 발걸음을 멈췄다. 장공주는 바로 들어가지 않고 멀리서 몸을 숨기고 탁자 앞에 서서, 자부심이 하늘을 찌르는 술사들을 향해 손을 저어가며 격앙된 목소리로 연설하는 젊은 남성을 지켜봤다.
‘허칠안, 역시 그였군.’
위연도 발걸음을 멈췄다. 그는 허칠안을 보자 얼굴에 잠깐 멈칫하는 기미가 보이더니 이내 평온한 기색으로 바뀌었다.
위연이 가던 걸음을 멈추자, 미모의 남궁천유와 안면마비 양연도 공주와 위연의 어깨를 너머로 허칠안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강율중의 말이 진짜였어…….’
양연은 허칠안을 잠깐 지켜보다가 몰래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그는 속으로 ‘이 동라는 내 수하로만 남을 수 있다. 그 누구도 뺏을 생각을 안 하는 게 좋을 거다.’라고 다짐했다.
남궁천유는 원래 들어가 강의를 잠깐 들어볼 생각이었다. 이 녀석이 대체 뭐라 지껄이는지 알고 싶었다. 하지만 장공주마마와 의부님이 그를 방해할 기미가 없는 걸 눈치채자 참고 제자리에서 지켜보았다.
허칠안이 말했다.
“연금술의 본질은 등가교환입니다. 이는 요점을 찌르는 원칙이지만 형상화되지 않은 표현이라, 송경 사형과 같은 연금술 대사(大師)만이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늘 얕은 데서부터 깊은 곳으로 제가 천천히 해석해드리겠습니다.
연금술 하면 일반 사람들은 선단(仙丹)이나 약제(藥劑)를 연상할 겁니다. 하지만 조금이나마 연금술을 안다고 하는 사람들은 바로 이것이 떠오르겠죠…….”
말하다가 허칠안은 갑자기, 저채미가 머리에 꽂은 검소한 장신구를 가리켰다.
“바로 금속입니다.”
백의 술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여러분께 알려드리고 싶었던 것은, 위의 두 가지가 바로 연금술의 2대 분야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를 의학 분야와 재료 분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 연금술사들은 이 두 개 분야를 두고 고심하고 있을 겁니다. 가끔 다른 분야로 튀는 별개 경우도 있죠. 송 사형만은 자신만의 특별한 연구 분야가 있습니다.”
순간 백의 술사들이 시선이 송경에게로 쏠렸다. 이에 어리둥절해있던 송경이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던 자신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동류를 만난 것마냥, 불타오르는 눈빛으로 허칠안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는 허칠안이, 자신이 연구하고 있는 생물 접목 분야에 대해 중점적으로 강의하리라 예측했다.
따라서 이번 강의를 통해 그는 새롭게 뛰어든 분야에서 중요한 한 걸음을 내딛게 되는 것이었다.
여기까지 예상한 송경의 호흡이 갑자기 가빠졌다.
밖에서는 장공주와 위연이 송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감정 대인의 특이한 제자, 두 사람 모두 그가 낯설지 않았다.
그가 종종 끔찍한 연금술을 연구한다는 것과 심지어 이 때문에 감정이 그를 출입금지시킨 적이 있다는 것도 그들은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허칠안이 파악하고 있는 연금술이 송경을 가르칠 정도라는 것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송경 사형이 연구하고 있는 연금술은 생물 분야입니다. 연금술은 사물을 대상으로 연구할 수도 있겠지만 생물을 대상으로 연구할 수도 있습니다.”
백의 한 명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진지한 목소리로 반박했다.
“허 공자, 감정 선생께서 생명은 연금술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는 허칠안의 연금술 분야에서의 조예는 높이 평가하지만, 스승의 가르침에 어긋나고 이념을 거스르는 허칠안의 발언에는 찬성할 수 없었다.
현장에 있던 백의 술사 모두 의혹으로 가득 찬 표정을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