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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77화 (77/712)

77화. 이때는 입 다물고 가만히 있는 것이 상책이다

허칠안이 교방사 일꾼의 손에서 말고삐를 건네받고 말에 올라타려는데, 갑자기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시선을 돌려보니 어도위 제복을 입은 남성 몇 명이 마구간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은 각진 사각형 얼굴에 우람한 체격을 가진, 다름 아닌 허칠안의 숙부, 허평지였다.

허평지와 동료들은 교방사에서 하룻밤 즐기고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마구간을 향해 걸어왔다. 그들이 마구간에 도착하자 눈앞에 야경꾼 제복을 입고, 가슴에 동라를 묶고, 허리에 패도를 찬 준수한 청년이 말 등에 올라타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

허평지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일순간 툭 끊겼다.

숙부와 조카가 소리 없이 서로를 마주보고 있었다.

‘이때는 입 다물고 있는 게 상책이다.’

몇 초 후 둘은 약속이나 한 듯 고개를 돌려 서로를 모른 척했다.

함께 온 어도위들은 눈치채지 못한 채 계속하여 웃고 떠들면서 농담을 주고받았다.

“올해 경찰이 지나면 또 얼마나 많은 고관들의 집안 여인들이 교방사로 보내질지 모르겠네.”

“그러고 보니 부향 낭자는 요즘 얼굴 한 번 보기 어렵더군.”

“올 때 보니 부향 낭자가 어젯밤 손님을 모신 것 같던데. 영매소각을 지날 때 간판을 내리더라고.”

“누군지 모르지만 복도 많네.”

허평지는 저도 모르게 허칠안을 한 번 쳐다봤다.

‘자네들이 마음속으로 질투하는 그 대상이 바로 내 조카라네.’

끝까지 서로 모른 척하던 숙부와 조카는 각기 교방사를 떠났다. 허평지는 골목 밖에서 동료들과 작별하자마자 허칠안을 쫓아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칠안아…….”

“숙부는 정말 부도덕합니다!”

허칠안이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숙모한테나 잘 대해줄 것이지 교방사에서 다른 여인들과 노닥거리다니요!”

‘숙모의 미모가 빼어난지라 숙부는 맨날 하늘이 내려준 은혜로 미모의 아내를 맞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잖아.’

사실 그 두 사람이 혼인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시대의 혼사 대부분이 부모가 정해주는 정략결혼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허평지가 입을 열었다.

“사흘 후면 폐하께서 제사를 지내는 날이다. 이 기간에 접대가 비교적 많아. 숙모한테는 절대 말하지 마라…….”

“교방사에 다니지 않았다 했던 말은 거짓말이었네요?”

허칠안이 한마디 더 쏘아붙였다.

“왜 그렇게 보세요? 더 할 말 있으십니까?”

“없다, 없어.”

허평지는 조카를 훈육하고자 했던 생각을 바로 버렸다.

선제공격에 성공한 허칠안은 결과가 마음에 들었는지 고개를 조금 끄덕였다.

허부가 가까워지자, 뭔가 마음이 켕겼던 허평지는 청귤을 파는 노점으로 고개를 돌리면서 말했다.

“내가 가서 귤 좀 사 가지고 오마. 여기서 기다리거라.”

허칠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가는 도중, 허평지는 귤을 하나 까더니 귤껍질을 짜서 옷에 발랐다.

‘이 능숙한 솜씨 좀 보게…….’

허칠안이 속으로 탄복하면서 말을 꺼냈다.

“숙부, 껍질을 버리지 말고 저한테 주세요.”

허평지가 껍질을 건네면서 호기심에 물었다.

“쓸모없잖아?”

‘숙부는 숙부의 아내를 속이고, 난 숙부의 따님을 속여야 되니까요.’

* * *

귤껍질을 옷에 문지른 두 사람이 허부에 들어섰다.

숙모는 두 사람의 몸에서 풍기는 냄새가 싫은지 눈썹을 찌푸렸다.

“금방 산 귤이오. 신선하면서도 달다오.”

허평지는 숙모에게 먹지 않은 귤을 건넸다.

숙모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한 조각 뜯어 입에 넣고는 무표정으로 귤을 다시 허평지에게 건넸고, 허평지는 그 귤을 받아 한 조각 먹더니 다시 무표정으로 허칠안에게 넘겼다.

‘귤 한 알을 온 가족이 나누어 먹다니 얼마나 따뜻한 광경인가…….’

허칠안은 웃으면서 받아 쥐어 한 조각 먹고는 이를 허영월에게로 넘겼다.

한 조각 먹은 허영월은, 사방으로 뛰어다니면서 놀 거리를 찾아다니던 허영음을 향해 손짓했다.

허영음은 곧장 받아든 귤을 두 조각으로 쪼개어 입 안에 쑤셔 넣었다. 허영음은 너무 신지 얼굴을 찌푸리더니 작은 체구를 부르르 떨었다.

그러나 그 허영음은 얼굴을 찌푸리면서도 남은 조각을 다 먹어버렸다.

그제야 남은 가족들이 시름을 놓은 표정을 지었다. 맛이 모호한 이 귤은, 앞으로 콩알이가 처리해주면 될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 *

허칠안은 별채로 돌아와 제복을 벗고 목욕한 뒤, 편복으로 갈아입었다. 마침 그때 문지기 로장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큰 공자님, 손님이 찾아온 듯합니다. 나리께서 큰 공자님을 부르십니다.”

“알았네. 대문을 닫고 들어오게.”

허칠안이 답했다.

로장은 멍해 서 있더니 경계의 눈빛을 드러냈다.

‘본채로 가는 거 아니었어? 사람은 안 가고 문을 닫으라니. 게다가 나보고 방 안으로 들어오라고? 뭐 하자는 거야?’

로장은 못 들은 척 별채를 나갔다.

지난번에 하인이 허칠안의 부름을 받고 갔다가 이상하게 까무러쳤던 사실을 그는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허칠안이 방을 나섰을 때, 로장은 이미 없어진 뒤였다.

‘괜히 에둘러 가지 말고 담 넘어가자고 하려 했는데. 먼저 가버렸네.’

* * *

허칠안은 높은 담을 뛰어넘어 전청으로 걸어갔다. 숙부가 그를 불렀다는 것은 허부에 손님, 그것도 자신과 관계있는 손님이 왔다는 뜻이었다.

전청에 도착하니 노란 치마가 시야에 들어왔다. 무척 오랫동안 얼굴을 보지 못했던 저채미였다.

그녀는 담황색 치마에 부스스한 머리를 하고 허리에는 녹피(鹿皮) 가방과 팔괘풍수판을 걸고 있었다. 눈은 여전히 맑고 반짝거렸다.

“어떻게 우리 집까지 온 거요?”

허칠안이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저채미가 주좌에 앉아 있었고 숙부는 그 옆에 앉아 있었다. 저채미는 계월루의 간식을 먹다가 차 한 모금 마셔 음식을 삼키고 입을 열었다.

“지금 사천감에 가지 않으면 다음에는 송 사형이 직접 찾아올 거야.”

이 말에 허칠안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머릿속에 송경에게 했던 약속이 떠올랐다.

주립의 일이 해결되었으니 허칠안은 사전에 주기로 했던 원소주기표를 송경에게 진작 줬어야 했으나, 아직도 사천감에 보내지 않았던 것이다.

한동안은 주 시랑이 무너지지 않은 상태였고, 그 후로는 야경꾼 관아에 불려갔었고, 그 다음으로는 영광스러운 동라가 되어 주야 교대 근무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던 탓이었다.

“나중에, 나중에 꼭 가도록 하겠소.”

“너, 준비 안 해둔 거 아냐?”

저채미가 의심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당연히 준비는 이미 해뒀소.”

저채미는 가뜩이나 큰 눈을 더 크게 뜨면서 말했다.

“거짓말을 하고 있는 얼굴이네.”

“…….”

“송 사형이 말했는데 네가 너무 오래 끌어서 이자가 붙었대. 네가 청서에 쓴 연금술 지식은 너무 심오해서 사천감 연금술사들이 짧은 시간 내에 파악하기 어렵다고도 하고.”

저채미가 간식 하나를 입에 집어넣고는 말을 이었다.

“연말이 다 됐으니 송 사형은 네가 사천감에 가서 육품 연금술사와 육품 이하 술사들에게 강의를 해줬으면 한다고 했어.”

허칠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빚을 졌으면 갚는 건 당연지사였다.

“내게 반 시진 정도만 더 주시오.”

그러자 저채미가 활짝 웃더니 말했다.

“물론. 대신 난 널 꼼꼼히 감시할 거야.”

저채미는 기분이 좋아졌는지 옆에서 큰 눈을 굴리며 갈망의 눈빛으로 간식을 바라보는 허영음을 보면서 말했다.

“이리 와 봐. 언니 간식 먹고 싶어?”

허영음이 연달아 끄덕였다.

“그럼 조금 나눠줄게. 여기, 먹어.”

이어 저채미는 펄럭펄럭 치맛자락을 날리며 허칠안을 따라갔다.

사실 그녀는 자신이 들고 있는 간식을 노리는 야심 많은 어린이한테 간식을 나눠주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허칠안이 흔쾌히 약속을 이행하겠다고 하자 기분이 좋아져서 나눠줬던 것이다.

‘어차피 어린애가 먹으면 얼마나 먹는다고.’

* * *

두 사람은 허칠안의 별채로 건너왔다. 저채미가 문을 짚은 채 한쪽 다리를 쳐들고 주방을 향해 머리를 내밀었다.

“너, 예전에 나한테 맛있는 걸 해준다고 했는데.”

“……다음에.”

‘그걸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

허칠안은 속으로 감탄했다.

저채미가 불쾌한 듯 두 볼에 공기를 불어넣었다. 워낙 달콤하고 귀엽게 생긴 얼굴인데 그러니 더 귀여웠다.

‘감정의 제자 신분과는 상관없어. 눈앞에 있는 달콤하고 귀여운 여자애가 난 좋아…….’

허칠안은 저채미의 귀여운 외모에 빠져들었다.

“조미료를 완성하고 나서 다음에 해 주겠소.”

허칠안이 말했다.

* * *

반 시진이 지나자 허칠안은 초고를 완성할 수 있었고 큰 눈망울의 미인과 함께 본채 전청으로 돌아왔다.

허영음이 저채미가 앉았던 의자에 앉아있었다. 짧은 다리는 지면에 닿지도 않아 허공에서 흔들렸고 배는 똥똥하게 나와 있었다.

“…….”

저채미가 입술을 삐죽 내밀더니 텅 빈 탁자만 바라봤다.

‘내 간식은? 은자 두 냥을 들여 산 건데. 그렇게 큰 봉투에 가득 찼던 간식이 어디 갔단 말이야?’

저채미의 큰 눈에 눈물이 고였다.

“언니, 고마워요. 간식이 정말 맛있었어요.”

허영음이 딸꾹질을 하면서 무척 공손하게 저채미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큰 눈망울의 미인은 벙어리 냉가슴 앓듯 볼록 튀어나온 허영음의 배를 노려보더니, 울상이 되어 허칠안을 따라 허부를 나섰다.

* * *

말발굽 소리만이 반복해서 들려왔다. 허칠안이 고개를 돌려 입이 삐죽 나온 저채미를 쳐다보면서 말을 꺼냈다.

“내 동생이 간식을 좀 먹었다고 여태 화를 내고 있는 거요?”

“네가 강의할 때 먹으려고 남긴 거란 말이야.”

허칠안은 잠깐 고민하더니 말을 꺼냈다.

“그까짓 간식, 내가 사주겠소. 얼마나 한다고?”

저채미가 얼굴에 웃음꽃을 피우더니 냉큼 답했다.

“은자 두 냥.”

“음, 송 사형이 오래 기다리지 않게 얼른 갑시다! 이랴!”

‘말아, 얼른 뛰어라.’

저채미는 흰자위를 희번덕이더니 말에 채찍을 가해 허칠안을 뒤따라갔다.

* * *

사천감.

관성루에 들어서자마자 허칠안은 백의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그는 단숨에 칠층으로 올라가 송경을 선두로 한 연금술사들을 만났다.

“자네, 드디어 왔구먼. 오늘도 오지 않았으면 내가 직접 자네 집으로 찾아가려고 했네.”

눈가가 거무스름한 송경이 말했다.

이것은 허칠안의 약속 이행이 지연된 것에 불만이 많다는 뜻이었다.

자신이 원칙을 어기고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공조했는데 돌아온 거라고는 무한 기다림이었느니 그럴 만도 했다.

“요즘 들어 일이 좀 많았습니다.”

허칠안이 옷소매에서 초고를 꺼내들더니 말을 이었다.

“최근 접목 연구는 어떻게 되어 가고 있습니까?”

“식물 접목은 내년 봄이 되어야 실험이 가능한지라 지금은 주로 동물 접목에 전념하고 있네. 잠깐 기다려봐…….”

송경이 동물 접목을 언급하면서 흥분하여 어디론가 사라지더니 종잇장 한 뭉치를 들고 돌아왔다.

“이게 요즘 내가 연구하는 접목 이론이네. 야경꾼이 됐다면서? 나를 도와 사형수 한 명을 찾아주게.”

종잇장에는 윗몸은 사람, 아랫몸은 말인 이상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그림 실력만은 실로 괜찮았다.

허칠안이 송경을 향해 공수하면서 입을 열었다.

“이에 관해서는 다음에 얘기를 나눕시다. 지금은 약속을 이행해야죠.”

허칠안은 감정 대인의 매질 한 방에 저세상으로 떠나고 싶지 않았다.

‘송 사형의 연금술 연구 방향이 이상하게 비틀어지고 있다……. 내 탄탄한 화학 지식으로 바로잡아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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