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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타경-76화 (76/712)

76화. 경솔하네

연무장 근처에 있는 각루의 창 옆에서 금라 몇 명이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양연과 강율중?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강율중이 양연 수하에 있는 동라를 보내라고 했는데 양연이 이에 동의하지 않자 갈등이 격화된 거지.”

“양연과 강율중 사이에 별다른 일은 없었잖아. 이번 일을 빌미로 과거 빚을 청산하려는 건 아닐 거고, 그럼 그 동라한테 문제가 있는 거네.”

“허칠안이라는 동라라고 하던데.”

“귀에 익은데……. 아, 그 세은 사건? 하지만 단순히 세은 사건으로 이렇게 큰 마찰이 일어난다고?”

“에이, 모르겠다. 우선 보기나 하자고. 나중에 위 공께 물으면 되지.”

* * *

금라 두 명은 입장하자마자 피풍을 벗어던지더니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전투를 시작했다.

허칠안의 귀에 ‘훅’ 하는 소리가 들린 순간, 지면이 몇 촌 꺼지더니 강율중이 시선에서 사라졌다.

그러자 양연이 팔을 들어 좌측에 사람이 보이지 않는 곳을 쳤고, 주먹이 마주치는 소리가 들렸다.

퍽퍽퍽……. 두 사람의 손과 발은 잔영이 되었고 귓전에는 몸체가 부딪치는 소리가 끊기지 않았다.

‘너무 빨라. 너무 빨라…….’

육안으로는 부딪치는 장면을 포착할 수 없었다. 허칠안은 최대한 눈을 크게 뜨고 관찰하려 했지만 고품계 무사 두 명의 몸놀림은 그의 시력 한계를 벗어났다.

‘일초에 열 몇 번 내지 몇 십 번 부딪치는 건가?’

물리 성적이 괜찮았던 허칠안은 바로 문제점을 발견했다.

‘기능이 방출됐는데 일어나는 작용은 없는 건가? 동작이 지나치게 유창해. 힘은 상호작용인데, 어째서 두 개의 강한 힘이 강렬하게 부딪치고 나서 반작용이 나타나지 않는 거지? 몸이 전혀 정지되는 기미가 보이지 않잖아. 육안으로 잡히지 않는 건가? 아니면 고품계 무사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기능인가?

만약 후자라면, 몇 품계 무사의 특유 기능인가? 무조건 칠품 이상일 거다. 칠품은 연신경인데, 연신경은 정신을 겨냥한 단계니까.’

그밖에 두 금라가 전투할 때 기기(氣機)는 체내에서 움직이는 듯했다. 이건 쉽게 이해가 갔다. 만약 물불 가리지 않고 대놓고 싸운다면 두 사람은 아마 야경꾼 관아를 초토화시킬 것이다.

“그냥 재미로 보는 건데 그렇게 진지해서 뭐해.”

송정풍이 허칠안의 어깨를 두드렸다.

“금라들 사이의 전투는 일 년에도 몇 번 없어.”

“누가 이길 것 같아?”

허칠안이 묻자 송정풍이 웃었다.

“몸과 힘만으로는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금라 사이의 싸움은 대부분 무승부로 끝나지.”

몸과 힘만으로 대결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야경꾼 사이의 대결은 생사를 가르지 않기 때문이다.

대결이 시작 된 지 한 시진이 넘어갈 때였다. 현장에는 야경꾼과 하급 관리들이 점점 줄어들었다. 어떤 사람들은 점심을 먹고 다시 오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점심을 먹고 잠깐 와서 보다가 다시 돌아가 일을 처리했다. 그러다 일을 마무리하고서는 또다시 와서 잠깐 봤다.

무사체계의 구품 연정경의 특기는 체력이었다. 즉 끊임없이 체력이 재생되는 것이다. 조금 과장된 부분도 있겠지만 무사의 체력은 실로 놀라웠다.

허칠안은 점심을 먹고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말단 동라로서 동료들과 순찰을 나가야 했기 때문이다.

* * *

두 금라는 대결을 마친 후 조용히 호기루로 발걸음을 옮겼다.

전망대에서 대결을 지켜보던 위연은 두 사람이 칠층에 올라오자 바로 입을 열었다.

“양연은 체백을 더 연마해야겠구나. 아니면 십년 후면 기혈이 모자라 아무리 애써도 한평생 삼품에 이를 수 없을 거다. 창의만 훈련하지 말고 체백에 신경을 좀 쓰도록 해라.”

양연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율중은 지나치게 자신의 기혈에만 신경을 쓰더군. 줄곧 전봉의 체백을 유지하려만 하지 말고 도의를 주먹과 다리에 녹아들게 해야 하네. 그러면 전력이 크게 향상될 걸세.”

강율중이 한숨을 푹 쉬면서 말했다.

“위 공의 말씀은 제가 삼품은 어렵다는 겁니까?”

위연이 웃으면서 말했다.

“삼품은 평범한 경지가 아니라 수련해서만 되는 게 아닐세. 인연을 봐야지. 우리 진북왕을 보게. 전장에서 십여 년을 싸우다가 생사가 갈리는 순간을 수십 차례나 겪지 않았나. 죽음에서 살아난 거지. 그에 비하면 자네들은 조금 부족하네. 승부가 갈리지 않았으니 인사조정은 없었던 일로 하게.”

강율중은 아쉬운 기색이 역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소직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위연이 고개를 조금 끄덕이자 강율중이 입을 열었다.

“동라 허칠안이 뭐가 그렇게 뛰어나길래 양 금라가 이렇게도 아끼는 겁니까?”

양 금라의 태도는 무척 이례적이었다. 만약 평범한 동라였다면 금라 사이의 체면과 교분으로 통상 부탁을 거절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자신은 허칠안의 사건 분석 능력과 사천감과의 인맥이 마음에 든다지만, 무공에만 열광하는 양연은 이런 것들에 아예 관심이 없을 터였다.

강율중의 말이 끝나자 남궁천유가 입을 삐죽거리면서 하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과연, 동라 허칠안한테는 더 큰 비밀이 있군. 이 비밀은 위연, 양연, 남궁천유만 알고 있겠고.’

“별다른 이유는 없네.”

위연이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책자 위에 놓인 호적을 탁자 변두리로 밀면서 입을 열었다.

“자네가 물어볼 줄 알고 미리 준비했네. 스스로 보게.”

강율중이 공수하고는 호적을 펼쳤다. 거기에는 빨간색 주사로 적힌 등급이 보였다.

‘갑상!’

강율중은 몇 초 간 말을 잇지 못하더니, 강렬한 눈빛으로 양연을 쳐다보면서 입을 열었다.

“다시 한 번 싸워보지. 이 사람 내가 꼭 데려가야겠어.”

‘갑상의 자질이란 어떤 개념이던가? 위 공의 안목은 실수한 적 없다. 이는 동라 허칠안이 앞으로 반드시 큰 인물이 된다는 의미다. 적어도 나와 같은 금라는 되겠지. 이런 인재는 절대 놓쳐서는 안 돼.’

그러나 양연은 강율중을 무시했다.

“위 공!”

강율중이 눈가에 있는 주름을 문지르더니 불만의 어투로 말했다.

“양연이 의붓아들이라고 편들어주시면 안됩니다.”

위연이 이에 아무 응답도 하지 않자, 강율중이 큰 소리로 말했다.

“만약 허칠안을 내주지 않으면 이 사실을 퍼뜨릴 겁니다. 양연이 금라를 몇 명이나 이겨낼 수 있을지 지켜보겠습니다!”

위연이 눈썹을 찌푸리더니 한마디 던졌다.

“경솔하군!”

강율중은 여전히 얼굴에 불만의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감히 말을 꺼내지는 못했다.

위연이 느긋하게 말을 이었다.

“그를 양연의 수하에 둔 것은 양연 때문이 아니라 이옥춘 때문일세.”

세 명의 금라는 순간 오리무중에 빠졌다. 이옥춘은 한낮 은라에 불과했다. 그도 인재이긴 하나 성격이 고집스럽고 융통성이 없으며 자신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설마 이옥춘이 허칠안과 더 특별한 관계에 있나?’

강율중의 추측이었다.

위연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이옥춘은 허칠안의 성품을 알아볼 수 있고, 허칠안에게도 원칙을 지키는 윗사람이 필요하네. 다른 어느 은라 밑에 두어도 허칠안은 그와 갈등이 생기고 말 테지.”

한 치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는 이옥춘은 허칠안을 잘 인도하고 권면할 수 있었다. 게다가 허칠안이 문심관에서 보인 본성과 이념을 보건대 어떤 은라의 수하가 되어도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펼치지 못할뿐더러 오히려 말썽을 일으킬 수도 있었다.

세 사람이 사색에 잠긴 모습을 보던 위연이 온화한 어투로 말을 꺼냈다.

“자네는 어떻게 그 보석을 알아본 건가?”

강율중은 자신의 생각을 곧이곧대로 말했다.

“평원백 사건은 난이도가 있는 사건입니다. 현재 수중에 넣은 단서로는 강호인이 복수한 것으로 분석되는데, 흉수가 도망친 마당에 어디 가서 찾아내겠습니까. 허칠안이 사건 수사에 재능이 있으니 일을 돕게 하고 싶었습니다.”

이유가 합리적이었다. 위연 부자(父子) 삼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 강율중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허칠안이 진짜 마음에 들었던 다른 이유가 있었습니다.”

양연은 순간 시선을 강율중에게로 돌렸다.

“평원백 피살 당일, 사천감의 망기사 몇 명과 함께 흉수를 수색하고 있는데 백의들이 허칠안을 보자 무척 흥분하면서 꼭 다가가서 그와 대화를 나누겠다는 겁니다. 그것도 모자라 허칠안 앞으로 다가가 무척 공손하게 예를 갖추는 게 아닙니까. 사천감의 백의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잘 아시잖습니까. 그들이 무사를 이렇게 깍듯하게 대하는 것은 본 적이 없습니다.”

강율중이 고개를 절레절레하더니 계속해서 말했다.

“수하에 있던 은라가 백의들에게 물었더니 허칠안이 사천감의 연금술사들과 두터운 친분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군요.”

“사천감 연금술사와 친분이 두텁다고?”

미모의 남궁천유가 갑자기 뭐가 떠올랐는지 말을 꺼냈다.

“세은 사건에서 가짜 은자를 정제해서 숨겨진 진상을 밝힌 게 허칠안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럼 연금술로 사천감 백의들의 환심을 산 것일 테고. 머리가 좋군. 줄곧 무사를 업신여기는 사천감 술사들을 대상으로 허리 굽힐 줄도 알다니.”

양연이 눈살을 찌푸렸다.

양연 본인은 무공 외에는 눈에 뵈는 게 없었다. 기타 수행체계를 발아래 두는 건 고품계 무사로서 반드시 갖춰야 할 저력이라고 여겨왔던 것이다.

그는 모든 걸 경시해야만 마음속에 두려움이 없으리라고 생각해왔다.

사천감 술사들에 머리를 숙여 아첨하는 허칠안에 대한 양연의 인상은 한 층 깎였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강율중은 한숨을 쉬면서 남궁천유의 말을 부인하고 이어 말했다.

“오히려 그들이 허칠안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안달이었지. 심지어 사천감의 송경도 허칠안을 ‘자신의 스승’으로 칭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나 뭐라나.”

“거짓말!”

남궁천유는 이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송경은 감정 대인이 몸소 가르친 제자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한단 말인가? 감정 대인은 그럼 뭐가 되느냐고?’

양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도 이 말은 믿지 않았다.

위연은 깊은 사색에 빠졌다.

* * *

허칠안은 순찰을 끝내고 나서 야경꾼 관아에 돌아와 관례대로 보고서를 쓰고 관아를 나섰다.

그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교방사로 방향을 돌렸다.

오늘 영매소각에는 다도회 순서가 없었다. 주객들은 그저 노래를 듣고 춤을 감상했다. 부향이 얼굴을 한 번 내비치자 주객들은 그에 만족했다.

‘경찰 기간이라 참 좋군. 고품 관원들이 교방사로 오지 않아서 말이야…….’

허칠안은 관례대로 차를 마시러 안방으로 들어갔다.

화롯불이 활활 타오르는 안방에서는, 긴 치마 차림의 부향이 머리카락을 늘어뜨리고 칠현금을 타는 중이었다. 단정하고 우아한 모습이었다. 양미간 사이에 대갓집 규수의 고고한 분위기가 풍겼다.

허칠안은 욕통에 몸을 담그고 여종들의 시중을 누리면서 병풍을 사이에 두고 미인을 감상했다.

마침 부향도 고개를 들어 허칠안을 향해 고혹적인 눈웃음을 쳤다.

* * *

이튿날 아침, 허칠안은 깨어나서 침상 옆에 있는 물시계를 확인했다. 진시 이각으로 평소와는 다르게 늦잠을 잔 듯했다.

옆에서 자고 있는 부향을 보니 몸이 무척 나른해 보였다. 견사가 아리따운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활짝 핀 아리따운 목단화가 어젯밤 폭풍우에 한껏 시든 것처럼 보였다.

부향은 피곤했으므로 잠을 더 보충해야 했다.

허칠안은 여종들의 시중하에 씻고 아침밥을 먹었다. 부향을 모시는 여종이 민망한 얼굴로 말을 꺼냈다.

“공자는 건장한 남자의 몸이나 낭자는 필경 연약한 여인의 몸이 아닙니까. 부디 낭자를 아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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